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17)
바다새와 늑대 (316)화(317/347)
#160
화
“제국의 정보를 알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지? 그냥 다짜고짜 아무나 잡고 물어보기엔 의심스럽고, 정보상은… 이제 돈은 상관없지만, 역으로 우리가 간파될지도 모르잖아.”
“숙소를 잡으면 그런 건 다 해결돼.”
키이엘로는 그답지 않게 조금 자신 있는 어투로 단언했다. 그러나 나는 좀 떨떠름한 상태였다. 그 숙소 잡는 일부터 좀 난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갈리니 섬이나 그 근처 섬들과 달리 게슈베르송은 관광자원이라곤 하나도 없는 섬이었다. 듣기론 예전엔 자연경관이 나름 그럴듯했으나 제국의 공장들이 들어서며 모조리 사라졌다던가. 게다가 무역으로 활발한 섬이라고 해도 이곳의 수출은 대게 제국과 연관되어 있었다.
제국에 속한 큰 상단들은 이미 게슈베르송에 상단의 건물이 있었고, 상인들은 그곳에서 머문다. 여관을 빌릴 만큼 자잘한 상단은 사실상 제국의 독점으로 인해 게슈베르송엔 발도 못 들이는 처지였다. 즉, 게슈베르송은 숙박업이 활발하지 않다는 소리였다. 내가 그런 생각을 표정에 숨기지 않고 있자 키이엘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게슈베르송에도 여관은 있어…. 그리고 그런 숙소는 정보가 잘 오가거나, 적어도 어디를 가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니까.”
“그래, 믿으마.”
“응…….”
내가 다른 말 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자 오히려 역으로 키이엘로는 잔뜩 부담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순수한 격려였는데 압박으로 느낀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게슈베르송의 항구를 나와 거리를 돌아다녔다. 돌이 깔리고 짐마차가 다니는 거리는 공장이 뱉어 낸 연기 탓에 어둑하게 보였으나, 침체된 분위기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숙소를 찾으며 우투그루가 미묘하게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파업하고 있다지만, 이건 너무…….”
“분위기가 긴장되어 있네.”
나는 그렇게 웅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 벽에 기대 있든 다른 일을 하고 있든, 묘하게도 사람들의 반응이 팽팽히 당겨져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을 예상하고 있는 사람처럼 움츠러든 모습들이었다. 게다가 기분 탓인지 건물이 빽빽한 거리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위가 더 심해졌다. 키이엘로가 진땀을 빼며 한숨을 쉬었다.
“심하다……. 아무래도 건물들 때문에 바람이 안 부는 거 같아.”
“기운 내, 정보랑 물자만 충분히 비축하면 그땐 제국의 알라프라리로 갈 거니까.”
“하나도 기운 안 나, 로트. 오히려 기운 빠져.”
“그렇게 기운 빠진 도멤 너부터 좀 빠져있어. 난 키이엘로한테 말했거든?”
너무해……. 도멤이 우는 시늉을 하는 것을 내버려 둔 채 나는 주변의 간판들을 살폈다. 우투그루 역시 여태 우리가 떠드는 것을 무시하고 건물들을 살핀 모양인지 말했다.
“음식점, 잡화점, 옷가게……. 가게는 많지만, 숙소는 안 보이는군.”
그러더니 우투그루는 나에게 작게 말했다.
“그리고 가게엔 손님도 하나 없어. 전부 파리만 날리고 있는데.”
“가게 주인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없는 때가 많았어. 아예 문을 열지 않은 모양이야.”
그 말에 우리는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다. 단순히 단체 휴일인 건지, 아니면 가게들도 파업인 건지, 뭔지……. 도멤이 작게 속닥거렸다.
“혹시 거리 분위기가 이런 거랑 관련이 있을까?”
“없다고는 못 하겠지.”
키이엘로가 그렇게 대꾸하는 찰나였다. 건물에 기댄 채 삼삼오오 모여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거기 가는 외부인들.”
그 소리에 우리는 곧장 그들을 돌아보았다. 우투그루와 키이엘로가 슬쩍 검 손잡이 위에 손을 얹자 뭔가를 오해했는지 그들은 나와 도멤을 번갈아 보다가 저들끼리 수군덕거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후드 아래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나이는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우리 나이대의 이들이었다. 옷차림이나 주머니의 부피감 등으로 보았을 때 무기를 감추고 있거나 제복 위에 다른 옷을 덧대 입은 기색은 아니었다. 완벽한 현지인이었다.
도멤은 의심 없이 일견 천연덕스러울 정도의 태도로 그들에게 물었다.
“저희 부른 건가요?”
도멤의 발랄하다시피 한 소년 같은 목소리에 그들은 잠시 서로 속닥이는 것을 멈추더니 시선을 교환했다. 의심을 어느 정도 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갈리니 섬 때처럼 우투그루와 키이엘로를 나와 도멤의 호위로 오해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지금 같은 때에 게슈베르송을 방문하다니. 최근에 소식을 못 들은 모양인데, 서둘러 여길 뜨거나 좀 더 조심하면서 다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최근엔 줄곧 바다에 나가 있던 터라 들은 것이 없습니다.”
내가 말하자 그들은 어깨를 으쓱였다.
“상선도 한 번 만나질 않았어?”
“운이 안 좋았죠.”
“게슈베르송에선 조만간 제국과 크게 부딪힐 거란 소문이 돌고 있어.”
“부딪힌다고요?”
이번엔 우리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게슈베르송이 제국과 치고받고 싸우는 거야 이미 유명한 이야기지만, 그것을 현지인이 구태여 덧붙일 정도라면 뭔가 더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영 어리바리한 기색이자, 무리 중 대장 격으로 보이는 청년이 우리 쪽으로 두어 발짝 다가와 말했다.
“그냥 종종 있던 항쟁이나 파업이 아니라, 전쟁 말이야, 전쟁.”
“…….”
나는 잠시 말을 잃고 입을 벌렸다. 전쟁? 그것도 게슈베르송에서? 제국 이 미친 것들은 전쟁을 할 거면 전쟁 준비나 할 것이지 바다새는 왜 탐내? 물론 그렇다고 전쟁이 달갑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때 우투그루가 그에게 물었다.
“제국에서 전쟁을 선포했다는 겁니까?”
“아니. 아마 혁명단 쪽에서 곧 전쟁을 벌일 거란 이야기가 파다해.”
“게슈베르송의… 이 분위기는 그것 때문이고요?”
“파업 탓이기도 하지만, 다들 몸을 사리는 거지. 전쟁이 일어나면 싸우는 사람은 싸우겠지만 일개 소시민들은 무슨 날벼락이야? 다들 식량과 물자를 비축하고 사재기하느라 정신이 없어. 공장도 조만간 안전하지 못할 거란 이야기도 암암리에 떠돌고 있고…….”
공장도 안전하지 못하다니. 공장까지도 털어버린다는 이야기였다. 키이엘로가 약간 의심스럽다는 듯 느리게 물었다.
“왜 그런 걸 굳이 우릴 불러세워 가면서 알려주는 거죠?”
“외부인이 천연덕스럽게 들어온 거라면 서둘러 떠나라고 경고해주려는 친절이지.”
그러나 나는 그 말에 역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정말로 그게 다인가? 하지만 이들은 우리를 불렀을 때, 우리의 반응과 차림새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내가 그들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 처음부터 친절함의 발로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우리가 무해한 여행객 정도라고 판단한 후에야 저 정보들을 공유해줄 마음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사실만을 말해준 것 같지도 않았다.
제국과 전쟁을 할 거라는 소문이 돈다는 이유만으로 사재기가 횡행하고 물자와 식량을 비축한다고 했지만, 거리의 가게는 창문이나 문이 부서진 흔적 없이 모조리 깔끔했다. 가게를 털 정도의 혼란이 생긴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공장까지 털릴 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니? 가게가 먼저 털리고 나서야 공장을 턴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나? 몸을 사리고 있다는 말과 공장을 턴다는 것 또한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것을 생각한 모양인지 우투그루가 내게 눈짓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게슈베르송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때 골목 사이에서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차라스, 뭘 하는 거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