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18)
바다새와 늑대 (317)화(318/347)
#161
화
“칼란투 님.”
웬 흉흉한 얼굴의 여자가 성큼 다가오자 우리는 다시 한번 긴장했다. 그녀는 우리를 흘긋 보았다가 청년에게 무어라 속닥였다. 우리는 졸지에 좀 뻘쭘해진 어정쩡한 상태로 그들 사이에 있다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 그냥 갈까? 그럴까? 그러자……. 그런 눈짓을 주고받을 때였다. 칼란투라는 여자는 그에게 무슨 소리를 듣더니 우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외부인이라고? 이런 시기에? 무슨 일로 왔나?”
그 말에 키이엘로가 나섰다.
“근처를 항해하다가 물자가 부족해져서 왔습니다. 급하게나마 가까운 곳이 게슈베르송뿐이라서요.”
“이곳뿐이었다고? 가까운 곳에 제국이 있지 않나?”
키이엘로는 잠시 침묵했다. 나를 비롯해 다른 일행들은 부러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기 위해 꿋꿋이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이내 키이엘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여건이 촉박해져서요. 저희도 게슈베르송이 이 지경인 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의 매끄러운 말에 칼란투는 우리를 재보는 듯이 유심히 살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도멤을 보았다. 그 역시 후드 아래로 조금 불편한 얼굴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순간 내가 들키는 것보다 그의 팔에 몸을 감고 있을 세계의 뱀이 말을 꺼내는 불상사가 생기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이후 별다른 이야기가 오갈 것 같지 않자 우투그루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한 모양이군요. 볼일을 끝마치면 어차피 금방 떠날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러는 게 좋겠다만, 지금은 제대로 된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 없을 걸세.”
우리는 잠시 갈등했다. 물자 핑계를 대기는 했으나 사실 우리는 검은 해변에서 페낭가란을 알차게 털어온 덕에 아직 물자에 여유가 있었다. 우투그루는 적당히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긴 했으나 그 이상으로는 굴지 않았다. 나는 대충 그들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고민해볼 일이겠군요. 조언 감사합니다.”
“그래…….”
내 말에 도멤을 비롯해 일행은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칼란투는 순순히 우리를 보내주는 듯했다.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 우리는 서로 속닥이며 걸음을 옮겼다.
“방금 저분 봤어? 인상이 대단하시다.”
“그런 말은 실례야, 도멤.”
얼굴의 반쪽에 일그러진 흉터가 있고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과 같은 분위기를 가감 없이 내뿜는 칼란투라는 여자는 확실히 셀리팜의 해적들만큼이나 위용이 대단했다. 우리의 대화를 언제나처럼 흘려듣는 기색이던 우투그루가 말했다.
“그나저나 저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외부인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 어쩔 셈이야?”
“그러게. 무해함을 굳이 내보이며 다니지 않으면 눈총을 사기 딱 좋겠는데.”
“이런 분위기면 숙소부터 잡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 정보도 쉽게 안 내줄걸.”
확실히 그랬다. 우리가 끙 소리를 내며 길을 가던 때였다. 뒤에서 다시금 칼란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거기.”
돌아보자 칼란투와 차라스라는 청년의 일행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가 들리지는 않았겠으나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도멤이 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대답했다.
“왜 그러시죠?”
“굳이 이 더운 여름날에 계속 그러고 다닐 건가? 게슈베르송은 건물들이 빽빽해서 바람이 잘 안 통해. 그래서 여름이 좀 가혹하지. 점점 더 더워질 걸세.”
그 말에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마땅히 대답할 여건도 되지 않았다. ‘초면에 뭐 그런 걸 관여하세요? 신경 끄세요.’ 이러고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우리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칼란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우리를 보았다.
“아니면 그러고 다니는 이유가 있나?”
키이엘로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저희 일행이 남에게 얼굴을 내보이기 싫어하는 편이라서요.”
“왜?”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이전의 질문은 호기심 많은 현지인의 질문으로 볼 수 있으나 그 이상은 과한 관심이었다. 키이엘로는 입을 벌렸다가 말을 이었다.
“그걸 굳이 알려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알려줄 수 없을 정도의 비밀스러운 일인가?”
“그 정도로 사적인 일일 수도 있죠.”
키이엘로의 말에 여자는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눈은 아직도 형형했기에 전혀 살갑게 느껴지지 않는 웃음이었다. 우리는 자연히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칼란투의 뒤에 있던 청년들도 미묘한 기색으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칼란투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너희, 제국 놈들이냐?”
그러나 그 말에 우리는 모두 벙찌고 말았다. 뭐… 뭐? 제국? 이런 오해는 또 새로울 정도였다. 순식간에 탁 긴장이 풀려버린 우리는 묘하게 떨떠름한 얼굴로 그들을 보며 고개나 꾸벅 숙였다.
“뭔 소리를 하시나 했더니……. 그런 거 아닙니다.”
“그래?”
칼란투 역시 우리의 맥이 풀린 꼴을 보고 객쩍은 눈치였다. 그녀는 흉터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긁적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우리가 오해했던 모양이군. 그런데 그러면 정말로, 왜 그런 꼴을 하고 다니는 거야?”
“정말로 신상을 알리기 싫을 뿐이라니까요.”
“뭐 부잣집 아드님들이기라도 한가?”
그 말에 우리는 잠시 서로를 보았다. 갈리니 섬 때처럼 가출한 부잣집 자제 시늉을 해야 하나? 그러나 더 망설일 틈이 없었다. 키이엘로가 먼저 침묵이 길어지기 전에 입을 열었다.
“사정이 복잡하긴 하죠.”
딱히 칼란투의 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여러 의미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나는 정말로 키이엘로의 이런 임기응변이 점점 수상할 정도였다. 이 자식은 대관절 어디서 뭘 하고 다녔으면 이렇게 대처가 능숙하담? 칼란투는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우리를 잠시 응시하다가 이내 호쾌하게 웃었다.
“그래, 뭐, 실례했네. 우리가 제국 때문에 좀 민감해져 있어서 말야.”
“네, 그렇게 보이네요.”
우투그루가 습관적으로 비아냥거리자 나는 팔꿈치로 그를 찔렀다. 칼란투는 그의 말에 크게 신경 쓰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녀는 우리를 향해 산뜻하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뒤의 청년들에게로 돌아갔다. 우리 역시 몸을 돌리고 소곤거렸다.
“놀랐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알 게 뭐야.”
우투그루는 날카롭게 응수했다가 이내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꺼림칙한 사람이야. 빨리 뜨는 게 낫겠어.”
나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일단 당장은 그녀가 우리를 향한 의심을 거둔 것처럼 생각이 된다고 해서 안심하기엔 그간 겪어온 뒤통수 후려갈기는 인간상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게슈베르송에서 굳이 신고를 당할 것 같진 않다는 게 그나마 희망적이네. 제국을 적대하면서 굳이 우리를 신고해서 제국 좋을 일을 하진 않을 것 아냐.”
“그렇긴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저 사람들이 우릴 제국 쪽 사람이라고 의심하는 거 못 봤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