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19)
바다새와 늑대 (318)화(319/347)
#162
화
키이엘로가 그렇게 말하곤 내게 속삭였다.
“어쩌면 이 섬에 제국인… 그것도 첩자 같은 사람들이 섞여 있는 걸지도 몰라.”
“뭐, 물론 나도 안심하고 눈과 발카를 까고 다니자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나저나 저 사람들은 그럼 정체가 뭐지? 우리가 정말로 제국 쪽 사람이었다면 저들에게 위해를 끼칠 수도 있는 문답 아닌가?”
그 말에 키이엘로는 잠시 침묵했다. 아무도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비슷한 의심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조금 위험하거나 성가신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항구 근처 마을을 한 바퀴를 다 돈 뒤에야 정말로 그럴듯한 상가나 숙소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도멤이 골치라는 듯 끙 소리를 냈다.
“이래선 정말로 아무 소득 없이 게슈베르송을 뜨게 생겼는걸.”
“그러게나 말이야…….”
키이엘로는 확연히 지친 기색으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더운 것을 질색하는 그로서는 로브를 둘러쓰고 산들바람 하나 통하지 않는 게슈베르송을 다니는 것은 꽤 내키지 않는 시간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결국 항구 쪽으로 돌아온 우리는 한숨을 쉬며 잠시 계획을 상의하기로 했다. 그나마 항구로 나오자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키이엘로는 너풀거리는 후드를 붙잡은 채 겨우 숨을 돌렸다. 키이엘로보다는 아니겠지만 피차 모두가 더웠던 참이기에 우리는 잠시 바람을 쐬며 더위를 식혔다.
이윽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다른 섬에 가거나, 차라리 제국으로 당장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아?”
“사실 정보가 있다고 해서 확 안전해지지도 않잖아.”
내 말에 도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우투그루는 조금 생각이 달라 보였다.
“만약 여기서 들은 대로 제국과 혁명단이 조만간 전쟁을 일으키고, 그것 때문에 제국이 다른 곳으로 눈을 팔기 시작할지도 몰라. 그렇게 된다면 우리야 막무가내로 가는 것보다는 틈을 노리기 쉬워지겠지. 하물며 우리는 소수야. 창칼 좀 다루는 네 명이라고. 뭐가 됐든 대비는 해야 해. 네 동생도 검은바다도 제국으로 향했다면 그에 관련한 마땅한 정보도 얻어야 그나마 헛발질할 확률이 적어.”
그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우투그루를 보았다.
“그래, 나도 그 생각엔 동의한다니까? 그런데 지금 어디서 정보를 얻냐고.”
“일단 숙소가 안 되는 것 같다면 다른 민간인 집이라도 빌려야겠지.”
키이엘로의 말에 우리는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렇게 쉽냐? 딱 그렇게 보는 얼굴이었으나, 곧이어 도멤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키이엘로 너라면 가능할지도!”
그 말에 우리는 다시금 키이엘로를 보았다. 우리의 열렬한 시선에 그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을 하다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잠깐, 진심이야? 그냥 마음씨 좋은 사람을 찾아보면 안 돼?”
“미인을 보면 마음씨도 아름다워지기 마련이야.”
“이게 무슨 소리야!”
“일단 뭐든 해 봐야지.”
키이엘로의 동의 없이 그렇게 결정한 뒤 도멤과 나는 두 손을 모아 잡고 키이엘로를 보았다. 우투그루가 우리를 한심함을 넘어 아는 척하기 싫다는 것 같은 얼굴을 했으나 알 바 아니었다. 우투그루가 우리처럼 손을 모으고 키이엘로를 보면 그건 오히려 역효과니 차라리 좋았다. 키이엘로는 결국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나와 도멤이 서로 손을 마주치는 것을 보며 키이엘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으나 무어라 입을 열진 않았다.
결국 우리는 키이엘로를 위시한 채 주택가로 향했다. 상가의 뒤편에 몰린 주택가는 우리가 생각하던 전원적인 풍경보다는 빽빽하다시피 들어찼다는 감상이 먼저 들었다. 그것을 보며 도멤이 말했다.
“이러면 정말로 바람이 안 드나들 만해. 왜 이렇게 건물을 촘촘하게 지은 거지?”
“공장 때문이겠지. 공장 부지를 넓혀가며 공장을 짓다 보니 정작 주택가를 지을 공간은 부족해진 거야.”
우투그루가 그렇게 말하며 시시껄렁한 자세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높고 빽빽한 주택가의 건물들을 보며 말했다.
“공동주택 같은데, 그러면 우리 계획이 좀 틀어지는 거 아냐?”
“1층에 사는 집 문을 두드리면 되지.”
“그래, 절대 그만두자고 하지는 않는구나.”
도멤의 말에 키이엘로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고는 아무 주택가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택가의 문이 열리고 어떤 사내가 고개를 내밀었다.
“뉘쇼?”
약간 불퉁한 말투에도 키이엘로는 후드를 살짝 내리곤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이곳에 묵을만한 곳이 있는지 여쭐 수 있을까요?”
“……외지인이요?”
“네, 게슈베르송의 정세를 모르고 무턱대고 도착했다가 난감한 상황에 처해서요.”
그의 상냥한 말투에 우투그루가 토하는 시늉을 했다. 나는 발로 그의 정강이를 가볍게 걷어차며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사내는 키이엘로의 말에 눈만 끔뻑이다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그, 저기로 가면 여관이 있긴 할 거요.”
“어? 정말요? 저희가 찾아다닐 땐 없었는데.”
도멤이 천진한 말투로 끼어들자 사내는 거의 의심을 푼 모양이었다. 그는 다시금 헛기침하고는 대답했다.
“뭐 어디서 상황은 듣고 온 모양인데, 알다시피 지금 상황이 영 아니라서 숙박업 하는 사람들은 다들 일을 쉬고 있어. 알음알음 가는 거지. 간판도 내리고 손님도 없는 것 같으면 여기 처음 온 사람이 그게 여관인지 그냥 주택인지 어찌 알겠어? 안 그래?”
“오…….”
키이엘로가 낮게 웅얼거렸다. 그는 과한 미인계를 사용해서 그에게 하룻밤만 일행들을 재워주십사 사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다행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사내에게 물었다.
“제국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게 거의 기정사실화된 모양이네요?”
“뭐, 그렇지. 여기야 원체 화끈한 작자들만 있어서, 그 소문이 돌기 시작하니까 죄다 너도나도 옳다구나, 하고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어.”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내는 그러면서도 새삼 우리를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가 아까 보았던 청년 무리처럼 우리가 제국 쪽 사람은 아닌지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수배자라는 의심은 산 적이 있어도 제국군이라는 의심을 사다니. 참 감회가 새로운 일이었다. 그는 우리가 딱히 수상하다고 생각되진 않았는지 턱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뭐, 상황이 어려워도 그냥 떠나는 게 좋을 거요. 여관에 가도 딱히 고운 대접은 못 받아.”
“그럼…….”
“노숙을 하든가.”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 키이엘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나와 도멤은 거의 기대하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얼른 꼬셔 봐, 얼른! 그런 나와 도멤의 시선을 애써 피하는 키이엘로의 뒤로, 누군가가 호탕하게 외쳤다.
“이봐, 코르헬. 그렇게 매정해서야 쓰나.”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라는 생각에 우리는 일제히 소리친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까의 칼란투가 서 있었다. 당황스러운 재회였다. 우투그루가 작게 속삭였다.
“저 여자분은 왜 자꾸 우리와 엮이는 거지?”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대충 웅얼거리기만 했다. 반면 코르헬이라고 불린 사내는 그녀를 향해 놀란 듯 조금 굽신거리는 태도로 말했다.
“칼란투 님, 어쩐 일이십니까.”
“그냥, 순찰을 도는 중이었지.”
저 여자…… 정말로 뭔가 높은 직급의 사람인가? 그런 사람이 반제국파라고? 미심쩍은 구석이 어떻든, 그녀는 우리를 보고 반갑다는 낯을 했다.
“또 마주치는구만. 묵을 곳을 찾던 중인가?”
“예에…….”
우리는 어물쩍 대꾸했다. 칼란투는 후드를 조금 젖힌 키이엘로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놀란 것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 그야 키이엘로의 얼굴이야 처음 보면 누구나 좀 놀랄만한 얼굴이긴 하지. 그녀는 우리에게 말했다.
“상황이 썩 좋지 않은 모양인데, 어때? 그냥 내 이름을 대고 여관에서 묵도록 하게나.”
“네? 그래도 되나요?”
도멤이 놀라서 물었다. 반면 우투그루는 눈썹을 슬쩍 올리며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키이엘로 역시 ‘좋기는 좋지만 왜 갑자기?’라는 눈초리로 칼란투를 보았다. 나는 문득 혹시라도 내 눈이나 발카가 드러났을까 싶어 후드와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갑갑하게 벌새 크기로 변해있던 발카가 뭐라고 꿍얼거렸다.
거울을 앞에 두고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 눈이나 발카가 보이는 것은 힘들 것이 분명했다. 나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칼란투를 살폈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로 별다른 의심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남자가 칼란투에게 놀란 얼굴로 말했다.
“잠깐, 그렇게 해도 됩니까? 암만 그래도 외부인인데…….”
“뭐, 지금껏 본 바로는 딱히 수상한 짓도 하지 않고 있고. 물론 계속 후드를 쓰고 있는 건 걸리지만.”
칼란투는 마치 들으란 듯 우리의 면전에서 그렇게 말하고는 씩 웃었다. 난 정말로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마을 이장? 어느 회사 조합장? 그러나 그렇게 보기엔 평범한 사람들과 지나치게 허울이 없기도 하고…. 물론 단순히 인망이 좋은 사람일 수 있으나 여태껏 봐온 이들이 그녀를 존칭하며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는 잠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어쩔까?’
‘뭐, 보면 딱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진 않은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