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2)
바다새와 늑대 (31)화(32/347)
#31화
아이가 우는 소리가 울렸다. 넓은 바다에는 아이를 이끌어 줄 존재도, 길을 알려주는 지표도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는 그야말로 푸른색의 사막처럼 보였다. 맨발로 수면을 밟던 이가 우는 자들을 발견했으나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었다.
“미안해.”
나조차 길을 몰라 널 이끌어 줄 수가 없구나. 고요한 목소리가 물만 가득한 사막 위에 퍼졌다. 자색 눈동자가 시퍼렇게 빛났다. 하지만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돼.
조금만 기다리면, 지금의 바다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낭랑한 웃음이 심해의 그것처럼 음산하게 울렸다.
* * *
“아직 오로라는 안 보이는데.”
베제가 이마 위로 손 그늘을 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오로라는 뒤로 미뤄두고 연신 바다를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완전한 밤이 되자 하늘과 바다를 구분할 수 있던 수평선마저 어둠에 묻혀 사라졌다. 하늘에도 수면에도 모두 별이 떠 있어 밤하늘을 항해하는 기분이었다.
도멤은 난간에 기대서 기지개를 피다가 품에 안은 창을 흔들며 말했다.
“이대로 경치 구경만 하다가 들어가고 싶다.”
나는 그에 동의하며 난간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채로 베제를 돌아보았다.
“없으면 좋은 거 아냐? 굳이 찾지 마, 피곤하고 싶지 않다.”
“그건 그렇지만…….”
베제는 입을 비죽 내밀고 툴툴댔다. 이래서 신문은 믿을 게 못 돼. 나는 스며드는 한기에 몸을 한 차례 떨고 코트를 더 단단히 여몄다. 도멤이 춥냐고 물으며 내게 목도리 따위를 내밀었지만 일단 이 정도로 버틸 만하다며 거절했다. 괜히 몸이 둔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키이엘로가 어째 조용하다 생각이 든 나는 그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키이엘로는 품에 텐의 머리를 넣고 막무가내로 문지르며 넋을 빼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걸 보다가 텐의 표정이 무시무시한 것을 보고 슬쩍 시선을 돌렸다.
발카는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겠다며 날개를 으쓱였다. 나는 허리춤에 맸던 검에 손을 올리고 손가락으로 금장 부분을 툭툭 두드리다가 한숨을 쉬고 키이엘로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왜 그렇게 넋을 빼고 있어?”
“어? 어어? 나?”
“여기서 넋 빼고 있는 게 너 말고 누가 있나 봐.”
내 말에 키이엘로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텐을 쓰다듬는 손에 힘만 더 넣었을 뿐이었다. 그의 손아귀 안에서 텐이 나 죽는다, 소리를 내며 목이 졸리고 있었다. 늑대도 극한직업이 아닐까? 아니, 직업은 아니지. 극한종족…….
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텐을 보았다가 키이엘로를 한번 보고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평소에 뭐든 물어보면 모르면 모른다고 할지언정, 아무런 대꾸가 없는 것은 초면이었을 때도 보이지 않던 태도였다.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양쪽에 달아 둔 검 중 하나를 돌려 키이엘로의 손을 쿡쿡 찔렀다.
“텐 죽일 일 있어?”
“오……. 미안해, 텐.”
『꺼져.』
텐이 야멸차게 쏘아붙이고는 느리게 일어나 키이엘로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나는 그걸 허망하게 바라보는 키이엘로를 보다가 검집을 다시 바르게 차고 갑판 위에 있던 아무 상자를 키이엘로 앞으로 끌고 와 위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키이엘로는 마치 야단날 것을 눈치챈 어린애처럼 몸을 떨었다. 나는 눈썹을 슬쩍 올렸다가 그의 다리를 퍽퍽 걷어차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그러자 도멤도 우리 쪽으로 와서 내 옆에 앉았다. 그래, 너 요즘엔 사람하고 잘 어울렸잖아. 왜 갑자기 예전의 사회 부적응자처럼 굴고 그래. 도멤의 뼈 한번 옹골차게도 때리는 말에 키이엘로가 울컥해서 그를 노려보았다. 도멤은 곧장 꼬리를 내렸다. 미안.
나는 도멤을 한심하게 보다가 키이엘로를 보았다. 키이엘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불에 덴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 우리 셋 사이에서 잠시 흰 입김만 조용히 떠올랐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키이엘로를 가늠하며 물었다.
“너…….”
“…….”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냐?”
“로트, 깡패 같아.”
조용히 해, 도멤. 그러나 내 말에 키이엘로는 얼이 빠진 얼굴로 오히려 반문했다. 내가? 뭐라고? 나는 침착하게 키이엘로와 처음으로 다른 이들의 간섭 없는 대화라는 걸 해봤던 때를 떠올리며 인내심을 뽑아냈다. 이놈은 ‘그…’를 다섯 번은 했던 놈이다. 좀 말이 헛돌아도 그러려니 해야지. 음, 적당히 요점을 집어 말해주면 된다.
그래서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런데 왜 눈깔을 피해, 새끼야.”
“로트……. 깡패 같다고…….”
도멤이 우는소리를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키이엘로의 얼굴이 해괴하게 일그러지는 걸 볼 수 있었다. 키이엘로는 이 상황 자체가 낯간지러운지 귓바퀴를 새빨갛게 물들이며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그냥, 그냥 피한 건데…….”
“그러니까 왜 피하냐고. ‘그냥’이라는 건 없어. 야, 내 눈 봐. 안 봐?”
“보, 보겠습니다…….”
키이엘로는 힘겹게 나와 눈을 마주했다. 도멤이 옆에서 혀를 찼다. 로트 네가 깡패니? 나는 어깨만 으쓱여주며 말했다. 왜, 별다를 건 없잖아 깡패나 해적이나……. 내 말에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던 키이엘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급하게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그제야 앞으로 기울였던 몸을 뒤로 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꽁해 있고 난리야. 원래 그렇게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가끔 도져?”
“아니, 딱히 그런 거 아닌데……. 정말 별 이유 없었어. 너희가 유별나게 군거지.”
키이엘로가 어설프게 항변하는 것에 나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아, 그러셔? 하고 말았다. 그의 대답이 별로 믿음직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단단히 여민 코트를 잡아당기다가 결국 도멤에게서 목도리를 뺏어다 코트 깃 안으로 단단히 감았다.
내가 다시 한번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앉아 키이엘로를 보자 그는 민망한 얼굴로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제발 내 쪽 쳐다보지 말아 줄래.”
“왜? 너 내가 무섭냐? 거참, 악력과 미모로 세계 제패할 것 같은 놈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는, 그냥…….”
키이엘로는 어색하게 나를 힐끔거리다가 말했다. 네 눈이 파란 게 신기해서 그런가 봐. 나는 그 말에 음, 하고 생각했다. 진짜로 별것 아닌 이유였네. 그래서 나는 그냥 ‘아, 그래.’라고 대답해주고 끝마쳤다. 멍하니 눈만 꿈뻑꿈뻑거리던 도멤이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분명 차분히 대화하려고 왔는데 어느새 이렇게 말려들었지? 혹시 이렇게 대화 끝이야?”
도멤이 은은하게 우리의 대화를 되새김질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키이엘로의 등짝을 탁, 치고 말했다.
“고민할 일 있으면 혼자 입 다무는 것보단 털어놓는 게 나아.”
사실 말하면서도 나는 속이 뜨끔했다. 정작 나야말로 아무것도 안 털어놓은 마당에……. 그러나 도멤과 키이엘로는 내 말이 상당히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도멤은 상자를 넘어 한달음에 와서 신난 얼굴을 했다.
“로트, 우릴 친구라고 생각해주는구나!”
“헛소리 마.”
나는 진심으로 질색했으나 도멤은 히죽이며 웃더니 먼저 걸음을 옮기는 나를 따라와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로트, 이 수줍음 많은 자식! 감동이야! 그의 이러한 언행으로 미뤄보아 도멤은 아무래도 조금 정신이 나간 모양이었다. 친구 놀이에 지나치게 빠졌다든지, 만물을 너무 평화롭게 본다든지…….
도멤의 우둔한 머리가 꽃밭에 뒹굴며 산다는 건 예전부터 알았기 때문에 나는 가뿐하게 무시했다. 그러나 키이엘로도 우리를 따라 걸어오며 웃었다.
“감동이야, 로트.”
“헛소리 좀 집어치워.”
그리고 넌 좀 떨어져. 내가 도멤의 팔을 떨어트리고 어깨에 먼지라도 앉은 양 털어내도 도멤은 연신 실실 웃고만 있었다. 나는 저거도 중증이라며 혀를 찼고, 발카는 뭐가 또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연신 욕을 했지만, 도멤과 키이엘로는 참새라도 발견한 고양이처럼 히죽 웃고 있었다.
“좋아, 앞으로 더 분발해서 로트의 제일 친한 친구가 되어주겠어.”
“내 기준 가장 친한 친구는 내 손에 무덤까지도 가주는 친구인데.”
“……그럼 두 번째로 친한 친구!”
노력도 가상하다. 내 질린 얼굴에도 도멤은 표정이 이상하다며 낄낄 웃었다.
“로트 너 지금 표정, 되게 쑥스러운…….”
스걱,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튼 도멤의 뺨 언저리로 잘린 갈색의 고수머리가 흩날렸다. 도멤의 머리카락이었다. 내가 숨을 들이켜는 사이, 키이엘로가 서둘러 소리쳤다.
“나타났다!”
도멤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허공을 향해 창을 휘둘렀지만 무언가 맞는 느낌은 없었다. 젠장, 그새 사라졌어. 도멤이 이를 가는 사이, 나는 도멤의 왼뺨에 작은 실선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이어 그곳에서 핏방울이 점점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낮추고, 발카에게 작게 물었다.
“발카, 괴이가 어디 있는지 감지 못해?”
『나도 그건 어려워.』
유감이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검을 먼저 뽑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아직 오로라가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인상을 찌푸렸다. 동시에 갑판 멀리에 있던 우투그루가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오로라는 나타나지도 않았어! 거짓말하는 거라면 용서 안 해!”
“하지만 분명 공격받았다고! 이딴 거로 놀려 먹을 것 같아?!”
도멤이 사납게 외쳤다. 나는 그가 화내는 어조로 소리치는 것을 처음 들어보는 거라, 조금 생경한 기분이었다. 키이엘로가 베제의 옆으로 가서 하늘을 보며 혼란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갑판 위에 나온 모두가 그랬다.
선장실에서 우리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나온 클루스도는 커다란 월도를 들고 하늘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키이엘로에게 물었다.
“뭐가 보이느냐?”
보일 리가! 베제는 키이엘로의 옆에서 그렇게 소리치듯 표정을 일그러뜨렸고, 키이엘로는 짧게 아뇨, 하고 대꾸했다. 나는 어느새 별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하늘과 바다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나는 귓가에 희미하게 들린 소리에 고개를 퍼뜩 위로 올렸다.
뺨에 맺힌 피를 닦은 도멤은 내 기색을 눈치채고 왜 그래, 하고 물었다.
“방금 그 소리 못 들었어?”
“무슨 소리?”
나는 다른 이들의 시선도 나에게 향해 있는 것을 느끼고 시선을 바닥 위로 굴리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잘못 들은……. 그러나 내가 말을 마저 잇기도 전에 빠르게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도멤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우왁, 하고 끌려온 도멤의 발치로 콱 박히는 소리와 함께 깊은 흠집이 패였다. 도멤이 숨을 몰아쉬며 나를 보았다. 나는 내게 몰린 선원들의 의아한 시선을 신경 쓸 새도 없이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몇 명인지 두 손으로는 도저히 세지 못할 어린아이의 소리가 뭉개져 귓가에 쟁쟁 울렸다. 로트, 왜 그래? 키이엘로가 다가와서 묻는 말에 나는 거의 넋을 빼고 중얼거렸다.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그것이 뭉친 거대한 기척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베제가 외쳤다. 오로라다! 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아지랑이가 퍼지는 것처럼 오로라가 떠오르는 것에 따라 울음소리의 수가 늘어갔다.
희미한 한숨 소리 같기도 했고, 웃음소리 같기도 했으나 제대로 들어보면 분명 울음소리였다. 나는 오로라를 보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에도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오로라에 다 숨을 수도 없을 만큼의 많은 괴이가 우리를 찾아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