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20)
바다새와 늑대 (319)화(320/347)
#163
화
도멤의 긍정적인 표정을 뒤로하고 우투그루는 미간을 좁혔다. ‘꿍꿍이를 잘 숨기는 사람인지도 모르지,’하고 말하는 것 같은 기색이었다. 나는 어깨만 으쓱이고 말했다.
“저희야 도움을 받으면 좋죠.”
내 긍정에 사내와 뭐라 수다를 떨던 칼란투는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중에 서로 친해지면 그 후드도 벗겠지. 안 그런가? 요새 정세가 뒤숭숭하니 스스로를 감추는 건 크게 이상하지도 않아.”
“그럼요.”
나는 가뿐하게 대꾸했다. 물론 그들 앞에서 후드를 벗을 생각이라곤 추호도 없었다. 칼란투가 따라오라며 앞장서자, 우리는 느리게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안도한 기색의 키이엘로가 도로 후드를 내려쓰면서 내게 물었다.
“함정이면 어쩌려고?”
“깽판 치고 튀어야지.”
우리가 여태 해온 거잖아? 내 말에 키이엘로는 그건 그래, 하며 끙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런 마음가짐이 무색하게 칼란투가 이끌고 온 여관에서는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칼란투는 자신의 이름을 대고 우리에게 방을 달라고 여관 주인에게 말했고, 여관 주인인 여성은 흔쾌히 칼란투의 말만을 믿고 우리에게 방을 내줬다. 넓고 깨끗한, 꽤 좋은 방이었다.
방을 보며 조금 놀라워하는 우리에게 칼란투는 가볍게 말했다.
“어때, 좋지? 이곳은 음식도 맛있으니까 고마워하라고. 물론, 대금은 치러야겠지만 말이야.”
“물론이죠.”
대금 운운하며 우리에게서 돈을 뜯어내려는 건 아닌가 싶었으나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우투그루가 여관 주인에게 방값과 식비를 지불하는 동안 칼란투는 여유롭게 여관에서 내준 차만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는 우리가 쉬려는 기색이자 벌떡 일어나 마저 순찰을 돌아야 한다며 상쾌하게 퇴장했다.
“…….”
“……정말 뭐 하는 사람일까.”
우리는 이 미묘한 친절이 낯설어 멍하니 있었다. 겸사겸사 식사하기로 한 우리는 음식 몇 가지를 방으로 올려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도멤과 우투그루는 먼저 방으로 올라가고, 나와 키이엘로는 음식을 주문하며 점원에게 물었다.
“저, 아까 그 칼란투라는 분은 여기 이장이라도 되는 건가요?”
“칼란투 님이요? 아이, 아뇨.”
사근사근한 점원은 주문을 받으며 손을 내젓고는 우리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칼란투 님께서 데려오셔서 아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요?”
“오늘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이인걸요.”
“아……. 그렇군요. 어쨌든, 칼란투 님은 그런 사람은 아니고…….”
점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우리가 칼란투와 아는 사이인 외지인이 아닌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니 말하기 애매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점원은 후드를 눌러쓰고 무장을 한 우리가 칼란투를 모르는 것이 더욱 의심스러워진 것 같았다. 별개로 저런 반응을 보니 정말로 칼란투가 어떤 꿍꿍이를 갖고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주문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자, 갑갑한 후드를 벗어 걸어둔 도멤과 우투그루가 얼마 없는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와 키이엘로가 돌아오자 도멤이 물었다.
“낌새는 어때?”
“정말 의외로…. 순전한 호의였던 것 같아.”
“그거 진짜 기쁜 말이지만 이상하다…….”
도멤은 얼떨떨한 얼굴로 말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친절한 사람이었을 뿐이라면 좋은 거겠지.”
“그래도 영 의심스러운데….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우리의 정체를 알면 어떻게 나올지 몰라.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안 물어봤어?”
우투그루의 말에 나는 후드 안에서 발카를 꺼내주며 한숨을 쉬었다. 발카는 곧장 원래의 커다란 크기로 돌아가 비어있는 침대에 앉았다. 깃털을 고르며 날갯짓을 해대는 걸 보면 어지간히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로브를 벗으며 말했다.
“우리가 칼란투를 모르는 것 같으니까 자세하게 대답해주지 않던데. 그냥… 뭔가 특이한 지위에 있는 사람인 것만은 확실해.”
“결국 정보 소득은 없는 거네.”
“이따 저녁에 다시 내려가서 물어보거나 해야지.”
칼란투에 관한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게슈베르송에서 물어볼 것이 많았다. 그런 내게 우투그루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인어는 안 부르고?”
그 말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도멤의 팔뚝에 몸을 감은 뱀들을 한 번 노려본 나는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직. 인간들 이야기를 인어에게 물어서 뭘 해.”
“뭐, 그래.”
우투그루는 알만 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사실 나는 이제 사란을 부를 필요가 있을까 싶기만 했다. 뱀들의 이야기로 미뤄보아 내가 아무리 메흐의 파편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런 골치 아픈 일에 제대로 휘말리게 된 건 사란의 부탁이 큰 계기였던 것 같은데……. 사실 그것도 영 꺼림칙한 구석이 있었다. 메흐의 파편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텐데 왜 하필 나한테 와서 부탁을 했느냔 말이다.
물론… 눈물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 사란과 마주하게 된 사람 중 그 인어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게 살아남은 이들도 얼마 없었을 것이고, 거기에 메흐의 파편을 가진 사람이라는 조건까지 충족할 일은 희박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냥 그때 검은바다와 셀리팜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내가 나서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이지 오지랖이 따로 없었다. 내 팔자는 다 내가 꼬았군.
입이 쓰다는 얼굴을 하고 로브를 대충 던져두고 발카가 앉은 침대에 드러눕자, 우투그루가 질색을 하며 잔소리했다.
“씻고 눕든가 해, 더럽게.”
“네, 아빠.”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어.”
그렇지… 일단 넌 배우자도 없잖아……. 이젠 우투그루의 쌀쌀맞은 말투 따위는 따갑지도 않았다. 잠시 후, 점원이 가져온 음식을 받은 우리는 식사를 한 뒤 오랜만에 육지의 침대에 각자 누워 쉬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작은 배는 침대는 하나뿐이었고, 그마저도 꽤 조악한 것이었다. 그 침대에 누우면 나와 도멤까지도 발목이 밖으로 비죽 나오니 그다지 편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 외에는 해먹이 있었으나, 그것도 두 개뿐이었다.
즉, 편하게 눕는다고 할 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다들 불만 없이 돌아가며 해먹이나 침대를 차지하곤 했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대충 구석이나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자곤 했다. 게다가 나는 조타를 봐야 했으니 대부분 키를 앞에 두고 자는 경우가 많았다.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키이엘로가 말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꽤 호화로운 휴식이네.”
“‘호화로운’의 뜻이 뭔지 모르는 거야, 키이엘로?”
도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묻자 키이엘로는 어깨만 으쓱였다.
“자칫하다간 노숙할 뻔했는데, 그것보단 낫지.”
“글쎄, 난 네 미인계로 어떻게든 잘 곳을 얻어냈을 거라는 데에 걸겠어.”
내 말에 도멤이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키이엘로는 고개만 내저었다. 아냐, 안 그랬을 거야…. 나는 낄낄 웃기만 했다.
“확인해볼 수 없어서 안타깝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