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21)
바다새와 늑대 (320)화(321/347)
#164
화
저녁이 되자, 키이엘로와 도멤이 여관의 아래로 내려가 직원들에게 정보를 얻어오기로 했다. 우투그루와 방에 남은 로트렐리는 짧게 쪽잠을 자는 중이었다. 아무도 그녀가 자는 것에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간 항해를 하면서 가장 피곤했을 사람이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우투그루는 남은 돈과 적어온 메모를 보며 물자를 다시금 점검하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식량은 게슈베르송에서 보충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다행히 여관에서 묵게 되었으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관이라면 으레 저장식 같은 것을 상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투그루는 대강 확인이 끝난 것들을 정리하며 한숨을 쉬었다. 제국으로 간다는 결정을 했지만 우투그루는 사실 그답지 않게 ‘될 대로 돼라’ 하는심정이었다.
똑똑하다던 로트렐리의 동생이 왜 제국으로 향했는지도 모르겠고, 아버지도 왜 제국으로까지 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어쨌든 브레딕이 그들과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브레딕과 만나면 이 자식들과는 그냥 연 끊고 떠나야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머리와 달리 그는 영 찜찜하다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솔직히 자신이야 냅다 떠나면 상관없을 일이지만 로트렐리의 일행은 그렇지 않았다. 도멤은 가족도 없고 로트렐리에게 모든 걸 베팅한 녀석이라고 쳐도……. 키이엘로는?
그 녀석이야 아버지나 검은바다가 상관이 있겠는가. 그놈은 원래부터 우리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던 거야. 이젠 자신도 아버지를 거슬렀고, 검은바다로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으니 그를 뭐라고 탓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넌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이용할 생각뿐이었던 거지. 가족이란 생각은 추호도 없던 거야.
어쩌면 키이엘로는 정말로, 우투그루가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그 늑대만을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투그루는 허공을 노려보다가 설설 고개를 저으며 괸 주화들을 주머니에 모아 넣었다. 알 게 뭐야, 알아서 살라고 해. 그와 자신이 둘도 없는 형제 같았던 때는 너무 까마득했고, 우투그루는 키이엘로는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는데 자신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꼴사납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는 문득 주화들을 보았다. 게슈베르송에서는 괸 주화가 상용되었지만 이곳의 여관 주인은 펠른만 받겠다고 했기에 다른 곳과 달리 오히려 괸 주화에 여유가 생긴 참이었다. 브레딕과 다시 떠나기 위해서는 그들도 돈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돈을 따로 챙겨둘까….
우투그루는 간만에 세상모르고 잠든 로트렐리와 방에 없는 두 녀석을 떠올리고 돈 자루를 보았다. 대부분의 물자 점검을 우투그루가 도맡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괸이나 펠른을 조금 챙긴다고 해서 일행이 알아차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냅다 챙기기엔 조금 꺼림칙했다. 우투그루는 잠시 반들거리는 주화들을 보다가 한숨을 쉬며 주머니의 주둥이를 조여 닫았다.
이놈들이 상도덕도 없는 놈들도 아니고, 나중에라도 이제 떠날 거니까 돈이라도 좀 나누자고 하면 흔쾌히 그러자고 하겠지. 특히 로트렐리나 도멤은 우투그루가 여비를 챙기겠다고 하면 자기들 인원은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돈을 반으로 나눠줄 녀석들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이나 하겠지.
‘어차피 그간 네가 관리해오던 거잖아. 대충 반 갈라서 너 가져라.’
정말이지 어디에서 사기 안 당하고 산 것이 용한 놈들이란 말이지……. 로트렐리와 그 일행이 사기를 당하기엔 위협적이고 예리한 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우투그루는 자신이 그들을 마치 세 살배기 아이라도 된다는 듯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대충 정리를 끝내가던 때가 되어서야 키이엘로와 도멤이 저녁 식사와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오는 것에 발카가 로트렐리의 옆통수를 가볍게 쪼아 그녀를 깨웠다.
“그래서, 뭐 알아 온 거 있어?”
탁자에 모여 앉은 그들을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잠이 부족했는지, 로트렐리는 연신 하품을 하면서 입에 대충 빵 조각을 물고 키이엘로와 도멤을 보았다. 도멤은 로트렐리를 조금 걱정하듯이 보면서도 대답했다.
“게슈베르송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섬에서도 제국과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대.”
“뭐? 그건 진짜 의외다.”
“어디에서? 역시 백려인가?”
우투그루가 미간을 좁히며 묻자 도멤이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한 곳이 더 추가되는 정도가 아냐. 거의 연합군 수준으로 결집되고 있대.”
“그런 정보가 쉽게 퍼져있을 것 같지 않은데. 그렇다고 이미 선전포고를 했다면 우리가 몰랐을 리도 없고.”
“혁명단을 중점으로 모이고 있는 거겠지.”
키이엘로가 빵을 찢으며 말했다.
“게슈베르송은 중부 바다 혁명의 본거지로 유명한 곳이야. 중부 혁명단의 대장은 누군지 모르지만, 다들 게슈베르송 사람일 거라고들 말하니까.”
“서부 쪽 혁명 대장은 좀 알려져 있지 않나?”
“이름 정도만? 게르멜라라는 성이었던 것 같은데…….”
도멤과 키이엘로의 대화에 우투그루 역시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였으나 로트렐리는 눈썹만 치켜올리고 있었다. 그래, 내가 정말로 깡촌 출신이긴 하지. 그녀는 조금 자조적으로 생각하고는 이어 물었다.
“그럼 적어도 제국과 전쟁을 벌이겠다는 계획이 꽤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라는 거네.”
“좀 난감하게 됐지.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까?”
“그러면 좋겠지만……. 사란이 랄티아와 검은바다가 둘 다 제국으로 향했다고 말한 게 걸려. 대체 왜 제국으로 간 거지?”
“우리가 잡혔다고 생각했나?”
“설마. 우리가 잡히면 신문이든 뭐든 대대적으로 소식이 떴을 텐데.”
그러나 로트렐리의 말에 우투그루가 고개를 내저었다.
“혹시 모르지. 로트렐리 네가 잡혀도 별다른 기사를 안 낼지도 몰라.”
“왜?”
“제국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거나 하면 굳이 네 이야기를 실어서 관심이 집중되게 하기보단 우리의 수배가 잊힐 때쯤 바다새는 원래 제국의 것이었습니다, 하고 나오는 게 더 소요가 적을 것 아냐.”
그 말에 일행은 잠시 침묵했다. 우투그루는 식기를 밀어내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어쨌든, 어떻게 할 거야? 당장 움직여서 제국을 헤집고 다닐 거야?”
“…….”
“좀 더 고민해보자.”
도멤이 로트렐리를 달래듯 말했다. 로트는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거 외엔 다른 건?”
“이곳 사람들이 제국을 매우 경계한다는 것? 제국도 낌새를 눈치채긴 했는지 종종 정보원을 파견한대. 그래서 부러 외부인을 배척하고 살피던 것 같아.”
“그거야 딱 보면 알지.”
우투그루가 불퉁하게 말했다. 그에 키이엘로가 입을 열었다.
“아마 아까의 칼란투라는 사람, 혁명단과 관계가 있을 거야. 그리고 이곳 주민들 대부분이 혁명단에 가담하고 있겠지.”
“……지나치게 넘겨짚은 건 아니지?”
로트렐리의 물음에 키이엘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의 대표도, 특별한 지위의 사람도 아닌데 꼬박꼬박 존칭을 사용하고, 그 사람의 보증에 우리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우리가 외부인이더라도 그 사람이 데려오면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게 보이잖아.”
“그럴 만한 일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군.”
“그리고 그 사람은 ‘순찰’을 돌고 있다고 했어. 게슈베르송에서 경비대도 아닌 사람이 순찰을 돈다고?”
“만약 그냥 경비대였다면?”
“그러면 굳이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감출 이유가 없지.”
로트렐리의 말에 도멤은 흠, 하며 턱을 괴었다. 로트렐리 역시 입에 문 빵을 우물거리며 생각에 잠겨있다가 이내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