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22)
바다새와 늑대 (321)화(322/347)
#165화
“뭐, 일단 밥이나 먹자. 제국으로 가는 건 좀 더 상황을 보기로 하고. 전쟁이 일어난 후에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혼란스러울 때 들어가서 해군 목을 따줘야지.”
“그래…….”
다음 날이 되자, 일행은 다시금 게슈베르송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게슈베르송의 항구 마을에만 있지 말고 더 섬 안쪽의 마을로 가볼까도 고민했으나, 배를 두고 가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은 부족하게나마 지금의 도시에서 정보를 얻고자 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에게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섬이나 큰 항구가 있는 곳은 큰 마을이고 도시다. 괜히 길도 모르는 곳을 향해 시간과 발품과 돈을 써가며 향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몰랐다.
칼란투의 보증으로 여관에 묵고 있다는 것이 소문이라도 났는지, 전날과 달리 게슈베르송의 이들은 일행에게 친절했다. 그것에 일행은 더욱 꺼림칙하다고 생각했으나, 칼란투가 혁명단과 연관된 사람일 것이라는 확신은 굳어져 갔다. 그러나 어제 묘하게 마주쳤던 것은 정말로 우연일 뿐이었는지, 칼란투와 다시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도멤은 간만에 받는 사람들의 친절이 좋았는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조만간 떠날 거잖아? 그 전에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을 보니 좋다.”
“나 후드 벗는다?”
“그러지 마…….”
로트렐리의 장난스러운 위협에 도멤은 금방 떨떠름해졌다. 그때, 주변을 둘러보며 걷던 키이엘로가 말했다.
“그런데 특이하네. 다들 제국과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면서 이렇게 하나 같이 준비를 하고….”
“맞아, 좀 특이한 것 같아. 불안해하기보단 기대하는 것 같은 분위기잖아.”
게슈베르송의 상가는 유령도시가 따로 없을 정도였으나, 그들의 울타리 안으로 발을 들인 외부인이 되자 주민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일행은 그들이 그렇게 삭막하지 않은 것이 놀라웠다. 보통 전쟁이 터질 거란 소문이 돌면 불안하고 조마조마하지 않나? 아무리 준비를 하고 있고 혁명단과 모종의 소식이 오고 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로트렐리는 품에 가방과 함께 발카를 끌어안고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우투그루의 제안에 따라 식료품을 사고, 다른 물품을 살 수 있나 주민들에게 물어가며 거리를 거니는 중이었다. 우투그루가 말했다.
“아무리 혁명단과 연이 있다고 해도 언제 공습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태평한 건 이상할 정도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게 더 있는 걸지도 모르지.”
도멤은 일견 나태하게까지 느껴지는 어투로 말하며 창을 고쳐 맸다. 그러나 로트렐리나 키이엘로는 도멤의 말에 순순히 수긍하며 관심을 거뒀다. 어쨌거나 그들은 게슈베르송에 남을 것도 아니었고, 제국과의 소식을 더 빠르게 알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그게 어려운 상황에 분통을 터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우투그루는 이미 수차례 익숙해진 그들의 평온함이 지긋지긋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가 열불을 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전에 없이 친절해진 게슈베르송의 이들 덕분에 일행은 원하던 물자는 대부분 구할 수 있었으나, 정보에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결국 그들은 제국과 혁명단의 자세한 계획을 알아내는 것은 포기했다. 당연한 이야기이긴 했다. 그런 조직의 정보를 일개 개인 일행이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이미 제국이 혁명단을 뿌리 뽑았을 테니 말이다. 대신 정말로 칼란투가 게슈베르송에서 영향력이 강하고, 혁명단과 연관이 있으며 어쩌면 혁명단에서 꽤 높은 직위의 사람이리라고 확신했다.
도멤이 말했다.
“아예 그 사람이 혁명단 대장일지도 몰라.”
“그럴듯하지만, 그런 사람이 그렇게 무방비하게 혼자 순찰이니 뭐니 하면서 돌아다닌다고?”
물론 그의 의견은 우투그루 신랄한 이의에 막혔다. 로트렐리는 솔직히 칼란투가 혁명단 대장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뭐 그 사람한테 가서 제국 정보 내놓으라고 할 거야, 뭐야. 그런 그녀의 옆에서 키이엘로는 조금 한가롭게도, 마담 릴리에 관해서나 생각하고 있었다. 마담 릴리라면 혁명단의 인사들을 만난 적도 있을 테니 얼굴을 알지도…….
이변은 저녁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한낮을 지나 여름의 더위를 내리던 해가 기울어 뜨거운 볕이 덜어진 때였다.
“호외요!”
상가를 여는 사람도,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도 없어 권태롭기까지 한 게슈베르송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이젠 거의 산책을 하는 수준이던 일행은 물론이고 게슈베르송의 주민들 역시 놀라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보았다. 신문을 든 신문팔이 소년이 거리를 내달리며 호외를 마구 뿌려댔다.
“호외요! 서부 바다의 혁명단이 연합군을 이끌어 제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뭐?”
“드디어! 전쟁이 일어나는가?!”
주민들이 너도나도 놀라서 신문을 주워 읽기 시작했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까지 거리로 나와 떠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놀라고, 어떤 사람은 환호하는 탓에 거리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얼이 빠진 일행 사이에서 우투그루가 서둘러 거리에 떨어진 신문을 집어 들었다.
[혁명단, 선전포고…. 전쟁 발발하나] [혁명단에 몸담은 마녀의 혈육?]여러 자극적인 표제 사이로 랄티아가 막지 못했던 전단지에 관한 내용까지 기사화되어있었다. 기사를 읽은 로트렐리는 곧장 얼굴을 굳혔다. 도멤 역시 당황스러운 얼굴로 신문을 보았다.
“세라무티? 그곳에 랄티아가 있다고? 혁명단과? 제국에 있다던 사란의 정보는 그럼 뭐야?”
“우리야 모르지. 제국과 전쟁을 한다는 게 이렇게 가까운 이야기였단 말이야?”
키이엘로의 말에 우투그루는 생각했다. 오히려 잘 됐지. 일주일이나 몇 달씩 제국에서 언제 전쟁이 나나 살피며 헤매는 것보단 말이다. 그러나 로트렐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신문을 찢을 듯 쳐다보고만 있었다. 우투그루는 그것이 못내 불안했다. 반면 제국과의 선전포고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오자 게슈베르송의 사람들은 시끌벅적하게 굴더니 각자 무기를 꼬나쥐고 건물에서 나왔다. 그 분위기에 놀란 일행은 인파에 떠밀리기 전에 구석으로 피했다.
“뭐, 뭐야?”
“공장을 부수려는 모양인데.”
게슈베르송이 혁명단에 거의 먹힌 상태라고는 하나 그것도 항구 도시인 이곳만의 이야기였다. 다른 도시에는 제국 인사와 군인들이 남아있을 것이 분명했다. 일행이 오랜만에 운이 좋아 중부 혁명단에게 꽉 잡힌 항구 도시로 온 셈이다. 게슈베르송의 사람들은 마치 예전부터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행동하기 시작했다. 키이엘로는 몰려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로트렐리를 돌아보았다.
“로트, 어떻게 할 거야?”
“…곧장 세라무티로 갈까?”
도멤이 조심스럽게 묻는 것에 신문을 보던 로트렐리는 이내 그것을 대충 내던지고 고개를 들었다.
“아니, 굳이 우리가 생고생할 필요 없지. 더 낭비할 시간도 없어.”
로트렐리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이 인어가 거짓을 고했다는 사실에 의한 분노인지, 랄티아의 소식을 신문에서 접하게 된 절망인지 다른 이들은 가늠할 수 없었다. 로트렐리가 말했다.
“칼란투, 그 여자를 찾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