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26)
바다새와 늑대 (325)화(326/347)
#169화
황제는 샤를리나가 백려에서 돌아온 뒤로 곧장 그녀를 황녀의 궁에 유폐했다. 간만의 대외활동으로 지쳤을 그녀를 배려한다는 핑계였다. 말이 좋아 배려지 실상은 강압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행히 만일을 위해 밖에도 정보원과 제 사람들을 심어두었지만, 샤를리나가 즉각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할 수 없다는 지점에서 어느 정도는 페널티를 품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이대로라면 네르갈의 손속에 놀아날 뿐이다. 겉보기라도 돈독한 부녀지간을 흉내 내던 황제가 곧장 이렇게 태세를 전환한 것을 보면 샤를리나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존재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샤를리나의 정보력에도 불구하고 놓칠 정도의 일이라면 네르갈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샤를리나에게는 아직 외척 세력이 남아있었다. 단델리온 일가는 그녀에게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전쟁이 진행되면 제국이 감추지 못한 동요도 일어나겠지. 그때를 노려 샤를리나가 움직이면 될 일이다.
반면 엘레나는 심경이 복잡했다. 애초에 큰 언니인 아르세나―단델리온 백작 부인―의 부탁으로 샤를리나의 직속 하인으로 들어오긴 했으나, 딱히 제국을 향한 충성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돈을 모아서 상단을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엘레나 역시 전단을 전해 받아 샤를리나와 함께 확인했다.
로트렐리와 랄티아 그 자매는 대체 무슨 악운을 타고났기에 이런 일에 휘말리는 걸까? 엘레나는 로트렐리를 떠올렸다. 과거의 시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때의 소녀는 여전히 투쟁 속에 사는 중이었다. 엘레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고, 동시에 자신이 팔자 좋게도 전단지의 소식을 보고 향수를 느끼고 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때 샤를리나가 말했다.
“어쨌든, 난 할 만큼 했어. 백려 쪽으로 내 전서 향도 줬고, 전쟁은 일어났지.”
“…마땅한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손 놓고 있겠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어떻게 되든, 내가 죽기야 하겠어?”
엘레나는 그것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제국과 연합군의 전쟁이란 건 큰 사건이었다. 평화롭다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사이에도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엘레나는 그러니 샤를리나와 같은 고위 계급이 그에 마땅한 책임을 지고 어떻게든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이 ‘내버려 두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라니…….
하지만 엘레나는 몇 달간 샤를리나와 지내며 황녀를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다. 단델리온 백작가의 기대가 어떤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샤를리나는 완전히 기득권층 소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호화롭게 먹고 마셨기에 체력이 또래보다 좋고, 기력도 넘쳤고, 온갖 고급 교육을 받아 똑똑했으나 그뿐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샤를리나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것을 남들과 나누는 것 또한 바라는지는 모를 일이다. 엘레나는 남몰래 한숨을 쉬며 창밖을 보았다. 전쟁이 터졌다고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 푸르르고 화창한 하늘이 그곳에 있었다. 엘레나는 문득 생각했다.
‘백려에 소식을 먼저 전하면 안 되는 건가?’
그게 제국이나 연합군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민간인을 위해서……. 엘레나는 눈을 깜빡였다.
로트렐리, 어쩌면 네게 배운 것이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것인지도 몰라.
* * *
로트의 일행이 칼란투를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녀를 만났던 것은 정말로 순전히 우연이었던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칼란투가 자신의 행적을 감추며 다니지도 않았다. 특히 일행은 그녀의 호의로 게슈베르송의 항구 마을에서 지내는 중이었기에 주민들에게 물어보는 족족 행적이 드러났다. 그렇게 일행이 마지막으로 들어간 곳은 공장의 빈 창고였다.
그들을 앞에 둔 칼란투는 눈만 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자네들이 웬일인가?”
칼란투의 물음에 로트의 뒤에서 키이엘로와 도멤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나 그들이 무언가 할 말을 고르기도 전에 로트렐리가 먼저 앞으로 한 발짝 걸어가 말했다.
“당신, 혁명단과 관계가 있나?”
그 물음에 칼란투의 기색이 곧장 변했다. 그녀의 옆구리에서 순간 비죽 쇠막대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몽둥이인가 했으나 아니었다. 칼란투가 꺼내 든 것은 긴 총기였다. 그러나 그 적대에 반사적으로 키이엘로가 그것을 움켜쥐자, 순식간에 시커멓던 총열엔 손자국이 찍히며 찌그러졌다. 그에 칼란투의 눈이 둥글게 뜨이자, 로트렐리가 말을 이었다.
“우린 제국군이 아냐.”
“……그럼 뭐지?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나?”
칼란투의 말투에서 묘한 지점을 잡아낸 우투그루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이 이미 칼란투와 혁명단의 관계성을 거론하며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다른 이유를 찾는다는 것은 칼란투가 혁명단과 그 이상의, 일행이 생각한 것보다 더 깊은 연관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에 우투그루가 말했다.
“역으로 물어볼까? 왜 온 것 같나?”
“난 너희가 그렇게 수상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어. 제국군도 아니라고 하는데 동부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에퀘야인가? 그녀가 너희를 보냈나? 하지만 이상한데. 나를 의심하는 게 아닌 이상 왜 나에게 정체를 감추지?”
로트렐리는 에퀘야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전단지에서도 붙어있던 이름이었다. 그와 동시에 일행은 확신했다. 칼란투는 최소한 혁명단의 대장과도 아는 사이다. 도멤이 로트렐리에게 속닥였다.
“우리를 혁명단이라고 생각했나 보네.”
“사람을 잘 찾아오긴 한 모양인데…….”
로트렐리는 두 번 말하지 않고 후드를 확 걷어냈다. 그에 칼란투는 혹여 공격받을까 긴장한 기색을 했으나 곧이어 로트렐리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게슈베르송은 저녁이 되었고 공장의 빈 창고에도 어둠이 내려앉았으나 쪼개진 창문으로 내려앉은 황혼의 빛은 로트렐리의 눈에서 빛나는 푸른색을 가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칼란투는 잠시간 말을 잃었다.
“너…….”
로트렐리의 어깨에서 작은 크기로 앉아있던 발카 역시 몸을 키우고 기지개를 펴듯 날개를 펼치자, 칼란투는 그제야 눈을 번뜩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수배된 마녀였군!”
“몰랐던 모양이네.”
“고작해야 어리숙한 도련님들이나 제국의 첩자라고 생각했지. 무슨 용건이지?”
그렇게 말하는 칼란투는 꽤나 긴장한 상태였다. 그녀는 로트렐리 일행, 그러니까 ‘수배된 마녀와 폭도들’을 향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어떻게든 자신의 과거 발언을 알아내고 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녀와 바다새라면 어떤 알지 못하는 능력이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고…….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완전한 헛다리였다. 로트렐리는 언제나 그랬듯 깡패처럼 주변의 기물을 걷어차고는 말했다.
“너희 혁명단이 내 동생 데리고 있다며. 이렇게 화려하게 광고를 하고는 모르는 척하시겠다?”
“네 동생? 아…….”
그제야 칼란투는 랄티아에 관해 떠올렸다. 마녀의 동생이라고, 에퀘야로부터 정보를 공유받은 전적이 있었다. 그 동생을 이용해 마녀를 끌어들일 수 있지 않겠냐는 정보를 듣기는 했지만……. 칼란투는 재보는 눈으로 로트렐리를 응시했다. 에퀘야에게 ‘알아서 해봐라’하고 말하기는 했으나 칼란투는 그 계획에 다소 부정적이었다. 심지어는 그 동생이 제국 쪽으로 넘어가서 더한 인질이 되기 전에 해치우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칼란투가 입수한 정보를 기반으로 생각했을 때 제국에게 마녀가 넘어가면 더욱 큰일이 되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제국은 연합군의 전쟁에 더불어 혁명단을 향한 경계를 늦추지 않겠지. 내가 게슈베르송에서 눈에 띄며 제국 내 정보원들을 향한 경계를 가져온 건 잘한 짓이었다.’
그러나 마녀가 직접 찾아온 이상 이야기는 달라진다. 칼란투는 긴장한 얼굴로 로트렐리를 보며 물었다.
“한 가지 물어도 되나?”
“뭔데?”
“제국이 왜 너를 노리지?”
칼란투는 이 질문의 답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로트렐리는 대번에 얼굴을 짜증 난다는 듯 구기며 시건방지게 말했다.
“내가 어찌 알아, 망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