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29)
바다새와 늑대 (328)화(329/347)
#172화
칼란투의 물음에 로트렐리는 미묘한 미소를 보였다.
“전에 당신이 원하던 선전 말이야. 그걸 해줄까 생각했었거든.”
바다새의 의지와 마녀는 제국이 아닌 혁명단과 함께 한다고. 그 말에 칼란투는 일차적으로 의심했고, 다음으로는 의아했다. 그러나 수차례 확신을 받아낸 그녀는 로트렐리를 미심쩍게 보면서도 말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래, 너희가 종종 확성기 같은 것을 쓰는 걸 봤어.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슈베르송은 공장이 많은 만큼 제국도 되찾고 싶어 했고, 그간 몇 번 접전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로트렐리와 일행들은 혁명단이 소리를 증폭시키는 장치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로트렐리가 말했다.
“내가 그걸 쓰게 해줘.”
“…허튼소리는 안 하겠지?”
“정 의심되면 대본을 써서 줘. 그대로 읽어주지.”
로트렐리의 말에 칼란투는 다른 인원들을 보았다. 에퀘야는 신중한 태도로 로트렐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헤더는 로트가 바라는데 무슨 문제냐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혁명단과 로트 일행 사이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고, 대체로 로트렐리의 편이었다. 그리고 무르하는 약간 겁에 질린 얼굴로 로트렐리를 보고 있었다. 과거에 자신이 본 예언이 다가오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로트렐리의 푸른 눈은 예지로 본 것과 달리 생기가 있고 얼핏 장난스러워 보일 정도였으나, 깊은 곳에서 미약하게 갈라진 분노의 냉기는 감춰지지 않았다. 로트렐리는 사실상 혁명단 내에서 ‘분노의 화신’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무르하를 제외하면 그다지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칼란투가 답했다.
“……좋아. 대본을 주지.”
“그래.”
로트렐리는 가뿐하게 말하고는 회의실을 나갔다. 에퀘야가 무르하에게 물었다.
“어때?”
“그, 모르겠어요…….”
사실 예지에서 봤던 강렬한 인상과 현실에서 만난 로트렐리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때 무르하는 눈앞이 깜빡 점멸하는 것을 느꼈다.
수많은 사람 앞에 선 로트렐리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대본이 들려있었고, 로트렐리의 표정은 평온했다. 짧게 번뜩이는 예지였다.
그것을 본 무르하는 불안하던 마음이 차츰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아직은……. 아직은 괜찮은 건가? 그럼 예전의 그 예지는 당최 언제 이루어지는 거지? 전쟁이 더 장기화되면…? 그렇다면 전쟁은 얼마나 이어지는 거지? 약간의 불안감이 남은 상황에서도 시간은 흘러갔다.
* * *
에르노리는 관자놀이를 짚었던 손을 떼어냈다. 여름이 무르익은 숲의 바다의 나무들은 더 싱그러웠고, 온기는 찜통처럼 더웠으나 그런 것은 이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황금빛의 눈동자가 음울한 기색으로 앞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숲의 주인 앞에는 마녀가 서 있었다.
“…만족해?”
“좋아.”
루루미가 살풋 웃으며 대답하는 순간, 다시금 루루미의 뺨에 금이 갔다. 그에 에르노리는 맞잡고 있던 루루미의 손을 쳐냈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
“그럼.”
무르하에게 예지를 보낸 에르노리는 멀쩡했으나 오히려 루루미는 손끝부터 미약하게 바스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루루미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거의 다 왔어.”
“…….”
“우린 우리가 할 일을 다 한 거야.”
루루미의 말에 에르노리는 침묵하다가 물었다.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우리 말이야.”
그 말에 루루미는 눈만 깜빡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내 생각엔…… 신이 죽던 순간부터?”
루루미의 말에 에르노리는 황금빛의 형형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은 얼굴이기도 했다.
“메흐가 그를 죽인 것은 잘한 일이었어.”
“알아.”
“그런데 어떻게…!”
에르노리의 흰 머리카락이 날 선 가시나무처럼 돋쳤다. 그에 숲의 바다에 몸을 담고 있던 케찰코와틀이 고개를 들고 불안한 기색으로 그녀를 살폈다. 루루미는 허공에 손을 내저어 쓰개치마를 만든 뒤 그것을 뒤집어쓰곤 말했다.
“그냥 내 생각일 뿐이잖아. 너무 열 내지 마.”
그러고는 마녀는 싱긋 웃었다.
“내 부탁은 들어줄 거지?”
에르노리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지독하게 패배한 것 같은 사람의 얼굴을 했다. 일그러진 숲의 주인을 본 루루미는 금 간 뺨 위로 만족스럽게 웃으며 바다를 가로질러 사라졌다.
어쩌면 잊힐 세기말의 한구석, 필멸자들은 모를 이야기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