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31)
바다새와 늑대 (330)화(331/347)
#174화
로트렐리에게는 나름 고분고분하게 굴고 있었지만 다른 일행에게는 때때로 까다롭게 굴었다. 그것을 보고 우투그루는 ‘이간질’이라고 말했고, 키이엘로는 ‘로트를 고립시키려는 속셈’이라고 했다. 도멤은 그냥 혁명단에게 있어 로트보다 일행의 필요성이 확연히 떨어지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었지만 말이다.
지금도 로트렐리는 방을 나와 칼란투와 몇몇 혁명 단원을 마주한 상태였다. 로트는 시큰둥하게 물었다.
“이번엔 또 뭐야?”
“대본은 제대로 외우고 있는 거 맞아?”
“설마 지금 그걸 물어보고 싶어서 번거롭게 부른 건 아니지?”
로트렐리가 질색하는 얼굴이자 칼란투는 얼른 말했다.
“네가 그 자리에서 대본만 보고 읽으면 그게 과연 호소력이 있겠어? 대중은 우리가 뒤에서 시킨 줄 알 것 아냐.”
“뭐 딱히 틀린 건 아니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안 돼. 연설하는 자리에 대본을 가져가는 것 정도는 허락해주겠지만, 대본만 보고 읽는 얼간이 짓은 하지 마.”
“걱정 마, 어차피 그럴 생각 없었으니까.”
“진심이겠지? 믿는다.”
로트렐리는 더 따지지 않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칼란투가 말했다.
“당장 오늘도 제국군 소대가 게슈베르송의 공장을 되찾기 위해 접근해왔다. 연합군의 사기가 높고 제국은 불안정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어.”
“그래, 그래.”
대충 대꾸하는 기색을 감추지도 않는 로트렐리를 보며 칼란투는 문득 이런 사람이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선전을 돕겠다고 말한 것인지 의아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을 해소할 여유는 없었다.
“소리의 바다에서 연설을 하면 제국은 너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만큼 곧바로 진격하려 할 것이다. 우리 연합군은 물론 그것을 막을 생각이지만, 정말 만약의 경우에 네가 제국에 잡히는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흠.”
“그러니 연설이 끝나면 곧장 우리에게 합류해서 보호를 받도록 해. 그쪽 일행이 얼마나 강하든 제국의 군대를 단칼에 무찌를 정도는 아닐 것 아냐?”
“그렇지.”
칼란투와 혁명 단원이 무어라 논의하고 로트렐리에게 말하는 동안 그녀는 시종일관 반쯤 시큰둥한 기색이었다. 그다지 협력적이지 않은 로트렐리의 태도는 칼란투가 하는 이 논의가 쓸모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였기에 다른 단원들은 칼란투의 눈치를 보며 로트렐리를 흘겼다.
그러나 아무도 로트렐리의 태도를 지적하진 못했다. 괜히 심기를 건들어서 약속한 선전을 취소할지도 모르고, 또 그간 그렇게 쿡 찔러봤다가 벌집이라도 들쑤신 것처럼 달려드는 로트렐리를 겪어온 탓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로트렐리는 회의 내내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는 사람 같았다. 칼란투는 괜히 로트렐리에게 다시금 말했다.
“기억하지? 연설 후에 어떻게 하라고?”
“너희한테 오라고.”
“그래.”
용건이 끝난 것 같자 로트렐리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그것을 보며 혁명 단원 중 하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정말 저렇게 둬도 됩니까?”
“뭐, 어쩌겠어. 무르하의 예지에 따르면 연설하는 모습이 있었다고 하니 상관은 없겠지.”
“하긴…….”
만약 로트렐리가 돌발행동을 한다고 해도 개인의 힘으로 제국과 혁명단을 모두 따돌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특히 소리의 바다는 현재 연합군과 제국이 모두 큰 전투가 일어날 것으로 예의주시하는 중이었다. 소리의 바다는 알라프라리의 아래쪽에 있었는데, 수도 바로 옆에 붙은 알라프라리의 밑이라는 것은 당연하게도 중요한 위치였다. 제국의 평온을 선전하고 있는 만큼 제국에서 눈에 드러나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경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로트렐리가 광장에서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며 연설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파장이 될 것이고, 제국의 요지에서 혁명단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만으로 연합군에게는 더한 도움이 될 것이다. 칼란투는 솔직히 쉽게 다룰 수 없는 로트렐리를 계속 혁명단이 안고 가는 것보다는 제국에 의해 피습당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제국에게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피살되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로트렐리라는 통제 불가능의 개인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고, 혁명단의 선전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칼란투와 서부의 혁명 단원들이 로트렐리와 그녀의 일행들에게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로트렐리를 혁명단 내로 고립시키기 위함도 있었지만, 마녀와 관계가 없는 일반인을 보호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기도 했다.
“칼란투 님, 백려로부터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그때 단원 중 하나가 편지를 들고 들어왔다. 칼란투는 곧장 받아서 전서를 꺼냈다. 닥나무 종이로 된 전서에는 묵으로 쓴 글씨가 빼곡했다. 빠르게 내용을 읽어내린 그녀는 미간을 좁혔다. 세운이 보내온 편지에는 샤를리나 황녀 쪽에서 먼저 정보를 보내왔다며 그것을 공유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 생각엔 샤를리나 황녀 측에서 보내온 전서 용지나 어투 같은 것을 보았을 때, 샤를리나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 아래의 사람이 독단으로 보내온 것 같네. 일종의 고발자인 셈이지. 그나저나 자네 쪽에 로트가 있다고 했지. 그녀는 좀 괜찮은가? 샤를리나 황녀 쪽 고발자가 내준 정보처럼 제국에 암약하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예전에 칼란투 자네가 말했듯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제국의 속셈이 있는 거겠지.]세운의 전서에는 그 외에도 여러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 칼란투는 제국으로 심어둔 정보원들이 캐시언 후작의 자택에서 수상함을 느꼈던 것을 상기했다. 그에 더해 제국이 바다새에 과하게 집착하는 것이 단순히 멍청한 황제의 집념이 아니라 다른 이유라면……. 샤를리나 황녀, 정확히는 그 아래 미지의 고발자는 ‘황제의 뒤에 암약하는 자가 있고, 샤를리나 황녀는 그와 대치’하는 중이라 말하고 있었다.
칼란투는 세운의 전서를 대충 구겨 주머니에 넣어두고 고민에 빠졌다. 바다새를 노리는 걸 단순히 제국의 탐욕으로만 생각했으나 이쯤 되면 굳이 전해진 정보가 아니어도 제국에게 그 외의 꿍꿍이가 있음을 확신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의문은 그것이었다. 제국의 뒤에 누가 암약을 하고 있든 말든, 왜 굳이 바다새를 노리는가. 굳이 지금 시점에서 기껏해야 항해에 도움이 되는 바다새를 제국의 출혈을 감수하며 노려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바다새는 연막이고 로트렐리를 노리는 것이라고 보는 것도 애매했다. 로트렐리가 제국과의 어떤 연관점도 없다시피 한 사람인 것이 그랬다. 분명 무슨 지표가 있었기에 로트렐리가 표적이 된 것일 테고, 그 지표는 바다새였다.
‘바다새로 뭘 하려고……. 소서러를 모으던 것과 관련이 있나?’
캐시언 후작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서러를 모으던 것은 칼란투 역시 알고 있었다. 최근엔 그런 움직임이 줄었는데……. 마치 주변 퍼즐은 모두 모였는데 가운데의 퍼즐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칼란투는 한숨을 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 뒤 세운의 전서를 태우며 생각했다.
뭐가 되었든 소리의 바다에서 제국을 크게 쳐야 했다. 백려는 제국의 강제징집에 소극적으로 대하고 동부 혁명단이 징집되는 이들을 빼돌림으로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서부 혁명단은 중부와 함께 연합군을 더 끌어모으고 최전선에 서는 중이었다. 케르헤티는 군사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았으나 제국의 케르헤티 주둔군에는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제국군이 주둔하는 군사 기지의 수원에 독을 탄 것이다.
곧장 제국의 보복이 시작되고는 있었으나 다른 연합국의 도움으로 케르헤티는 전화위복으로 제국으로부터 군사력을 독립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이대로 소리의 바다를 통해 제국령을 공략하고 제국의 국력을 쇠하게 할 수만 있다면 연합국의 승리였다.
‘제국의 속셈이 무엇인지 같은 것은 나중에라도 알아낼 수 있어.’
당장 급한 일은 로트렐리의 선전이다. 칼란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항과 전쟁의 준비를 해야 했다.
한편 로트렐리는 일행이 지내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웠다. 발카는 로트렐리 머리맡의 이불에 몸을 파묻고 졸고 있었다. 키이엘로가 말했다.
“곧 소리의 바다로 가는 날인데, 괜찮아?”
“안 괜찮을 게 뭐야.”
“정말로 순순히 혁명단의 선전을 도울 생각은 아니지?”
그 물음에 도멤과 우투그루의 시선도 모였다. 로트렐리는 한참 무언가 생각하는 기색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안 그래도 알려줄 생각이긴 했어. 너희, 나 좀 도와줘야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