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34)
바다새와 늑대 (333)화(334/347)
#177화
검은바다는 며칠을 내내 정처 없이 헤매기만 했다. 전서가 몇 번 오가고, 전쟁을 대하는 제국의 대처가 생각보다 잠잠하다는 것까지 알게 된 클루스도는 약간 당황한 상태였다. 그는 차라리 전쟁이 시작되면 제국이 정신없으리라 생각했지, 태연하게 랄티아를 내놓으라고 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레고리는 꽤 말이 통하는 작자라는 것이었다. 그레고리는 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클루스도의 말을 받아들였다. 또한 그는 랄티아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실히 확인하고자 했으나, 그것 외의 것은 대체로 검은바다의 편의를 봐주는 듯 행동했다. 앞선 전서에는 금화로 가득 찬 작은 자루 하나가 함께 오기도 했다. 선금 중 아주 일부라고 말하며 말이다.
그것을 본 해적들이 기대에 부푸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클루스도는 그 금화를 보고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그는 오간 전서를 확인하다가 머리를 짚었다. 이번에 돌아온 답신에서는 소리의 바다 근처에서 만나 거래를 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클루스도는 이 내용을 믿고 소리의 바다로 향해도 되는가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레고리의 말에 따르면 제국과 연합군의 전쟁은 제국 변두리와 식민지들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그렇기에 소리의 바다는 온전히 제국의 영역으로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클루스도 역시 랄티아가 잡히기 직전까지 혁명단과 협력을 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굳이 연합군의 눈에 띄는 곳으로 향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과 제국령으로 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다른 선원들은 클루스도에게 모든 결정권을 내준 상태였고, 유일한 간부진인 요한에게 의견을 물어 봤자 답은 뻔했다.
‘다 관두고 섬으로 돌아갑시더!’
현재의 요한은 클루스도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선택지만 뱉는 간부였다. 클루스도는 한숨을 쉬다가 갑작스럽게 기침을 내뱉었다. 한참을 콜록이던 그는 혀만 쯧 찬 뒤 입가를 닦아 냈다. 원래도 있던 지병은 최근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 곁에서 살뜰히 그를 돌보던 우투그루가 없어진 탓이었다.
‘만약 우투그루 녀석을 다시 만나면 그땐 다시 회유하는 것이 더 낫겠군.’
클루스도는 이 드넓은 바다에서 우투그루를 다시 볼 수나 있을까 생각했으나 이내 관뒀다. 인연이 닿으면 이 바다에서도 반드시 마주친다는 마당에 부자의 연이 있는 그들이 못 만날 것은 또 뭐란 말인가? 게다가 이번 애시포드 남작과의 거래가 잘 끝나서 섬이 부유해지면 우투그루도 언젠가는 방황을 끝내고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어차피 우투그루는 성격이 좋지 않아서 누구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니 그 충실하던 아들을 회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클루스도는 얼마 남지 않은 약을 입에 털어 넣고는 전서를 들었다.
“소리의 바다라니.”
제국령에 너무 가깝지 않은가? 하지만 클루스도는 이게 그렇게까지 고민할 문제인가 싶기도 했다. 우홉피아주는 심지어 알라프라리의 항구에 정박하기도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와중에 같은 인물과, 더 중요한 거래를 하는 검은바다가 소리의 바다로 못 갈 것은 또 뭔가.
만약 그렇다면 검은바다가 우홉피아주보다 못한 것처럼 되는 것 같아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범하게 나서기엔 클루스도는 그렇게 무턱대고 승낙할 정도로 낙천적이거나 호쾌한 성정이 되지 못했다. 디겔의 죽음이 이럴 때마다 그에게 실감 나게 다가왔다.
클루스도는 선장실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전서의 뒤편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 * *
바깥이 어떻든, 제국의 심부는 평화로웠다.
“남작님.”
“전시니까 소장님이라고 부르게.”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애시포드 남작, 그레고리 경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그야 당연했다. 끽해야 식민지, 혹은 제국 변두리에서나 일어나는 중인 전쟁의 화마가 그가 있는 곳까지 끼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전선으로 파견된 해군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레고리가 뭘 바라든 필립은 그에게 곧잘 맞춰주는 보좌관이었다.
“네, 소장님. 다름이 아니라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녀석들이냐?”
“예.”
그레고리의 손짓에 필립은 얼른 그의 손에 검은바다에서 보내온 전서를 건네줬다. 그레고리는 빠르게 전서를 뜯어 보고는 혀를 찼다.
“전에 보낸 종이의 뒷장에 답을 썼군. 이놈의 해적이란 것들은 하여간…….”
그러나 내용을 모두 읽은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필립이 물었다.
“어떻게 한답니까?”
“뻔하지. 소리의 바다에 오겠다는군.”
“그렇군요.”
모든 것이 차근차근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그레고리는 클루스도에게 보내준 금화 이상의 현금을 준비하지 않았다. 은행에 가서 출금하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누구든 옆에서 그런 그레고리를 보면 애초에 돈을 줄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레고리에게 필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소리의 바다는 곧 전선이 될지도 모르는 곳인데…….”
“그러니까 그곳으로 오라고 하는 거지. 우리도 채비하고 소리의 바다로 향한다.”
“예?”
“그곳에 가서, 검은바다에게서 그 동생이란 인질을 받아낸 뒤엔 대포든 뭐든 쏴서 섬멸하면 될 일이야. 그럼 돈 잃을 일도 없고 원하는 것은 얻고, 딱 좋지.”
“그것을 믿을까요?”
그레고리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전서를 흔들어 보였다.
“믿은 모양인데. 그리고 우리는 사실 그 인질을 굳이 산 채로 잡아두지 않아도 된다.”
“아, 네? 하지만…….”
“캐시언 후작에게 조만간 전선에 그 호문…쿨루스인지 뭔지를 시험 투입하는 것을 약속했거든. 그리고 난 그 대가로 그의 도움을 좀 받기로 했지.”
필립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애시포드 남작의 최측근으로 일하는 만큼, 캐시언 후작의 ‘연구’가 영 찜찜한 부류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레고리가 말을 이었다.
“물론 산 채로 잡는 게 가장 좋지. 하지만 시체라도 온전히 남는다면, 우리에게 이득이다. 아, 온전하게 죽이는 게 더 어려운가? 아무튼, 그 인질을 확보해야 하지.”
“……그렇군요.”
“그럼 사흘 내로 소리의 바다로 떠날 준비를 시작하게. 나는 병영 이동을 건의하고 올 테니.”
“예, 소장님.”
그레고리의 이동 요청은 아주 빠르게 허가가 나왔다. 목적은 전쟁이 아니었으나 소장이라는 인력을 전선 가까이 옮긴다는 것만으로 훗날 제국이 전쟁을 위해 애썼다는 증거와 명분은 만들어낼 수 있었고, 무엇보다 황제가 애시포드 남작의 행동을 지지하고 버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흘도 안 되어서 이미 소리의 바다로 갈 준비가 끝난 애시포드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필립이 이미 일등석의 자리를 예매해둔 상태였다. 제국을 가로지르는 기차는 탑승객이 많았기 때문에 항상 역이 붐볐다. 제국을 제외하면 끽해야 백려와 게슈베르송에만 있는 기차였다.
‘그것도 우리 제국이 만들어준 거지만.’
그레고리는 본인이 제국인이라는 것에 매우 큰 긍지를 느끼고 있는 작자였기 때문에 붐비는 역과 길게 뻗은 기차선로를 볼 때마다 은근히 자부심을 느꼈다. 게다가 표를 사려고 매표소 앞에서 종일 북적이며 기다려야 하는 이들과 달리 자신은 말 한마디면 편안하게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어떻게 스스로가 타인과 다르다는 선민사상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때 역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역의 위층, 귀빈 대기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그레고리는 창밖을 흘끔 보았다.
“뭐지? 바깥이 소란스러운데.”
“아마 새 신문이라도 도착한 모양이죠.”
“흠.”
그레고리는 흥미가 없다는 듯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우렁찬 외침이 밖에서 터져 나왔다.
“호외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