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37)
바다새와 늑대 (336)화(337/347)
#180화
‘그래. 그리고 애초에 제국은 청정바다정책이네 뭐네 하면서 해적과의 접촉을 부정하고 있잖아. 그런 와중에 검은바다와 제국이 유착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 제국에 퍼지면 낭패지 않겠어? 적어도 로트렐리가 검은바다를 언급한 시점부터는 제국이 섣불리 움직일 수 없지.’
우투그루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정 불안하면, 알라프라리로 향하며 관련 정보에 귀를 기울여보자고. 끝까지 제국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면 그땐 정말로 검은바다와 제국이 서로 믿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는 뜻이니까.’
우투그루의 말에 로트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멤은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그거로 무슨 효과를 기대하는 건지 난 잘 모르겠어, 로트.’
‘간단해.’
로트렐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 망할 삼파전의 중심을 내가 아니라 검은바다에게로 돌리는 거야.’
그간 제국은 바다새를 가진 로트렐리를 노렸고, 제국을 노리는 혁명단은 그 탓에 로트렐리에게 눈독 들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로트렐리는 이리저리 치일 뿐이었다. 이런 구도를 길게 끌어가 봐야 로트렐리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그런 와중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낼 기회가 찾아왔으니 로트렐리는 이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그리고 계획은 시작되었다. 로트렐리와 우투그루의 예상에 따르면, 제국과 혁명단, 그리고 대중은 이제 로트렐리의 행방이 아니라 랄티아의 행방과 안전, 즉 그녀를 데리고 있는 검은바다를 주시하게 되어 있다. 바다새를 노리는 커다란 집단이 제국과 혁명단일 뿐, 자질구레한 민간 집단도 검은바다를 노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검은바다는 지금처럼 유유자적 다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호기심이든, 로트렐리의 말을 듣고 바다새를 노리는 것이든 모두가 검은바다를 주시할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제국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혁명단이 바다새를 노리는 것은 정말로 그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제국이 노리기 때문’이니까. 로트렐리는 뱃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소리의 바다 변두리까지 가야겠어. 멜런고르 근처나.”
“아까도 말했지만, 오래 항해할 정도의 물자는 없어.”
“걱정하지 마.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걸.”
이미 제국으로 자신의 선언은 퍼졌고 랄티아가 검은바다에 잡힌 것은 꽤 시일이 지난 시점이다. 지금부터 많은 일이 빠르게 벌어질 것이라는 데에 로트렐리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로트렐리는 생각했다.
난 만용을 부린 거야. 대단한 결단이 아니라, 더는 물러서지 못한다는 핑계를 댄 만용을.
하지만 이미 로트렐리는 주사위를 던졌다. 다음은 다른 이들의 차례였다.
* * *
“말도 안 되는 소리!”
샤를리나는 신문을 내던지며 새되게 외쳤다. 신문에 떠밀린 호화스러운 찻잔 세트와 봉봉이 담긴 단지가 떨어져 깨졌다. 설탕과 사탕이 카펫 위로 우수수 떨어지자, 샤를리나는 히스테릭하게 하인들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개미 꼬이기 전에 치워!”
하인들이 바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황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엘레나가 서 있었다. 엘레나는 뺨이 부은 얼굴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린 황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아주 눈에 뵈는 게 없지? 너도 내가 유폐되어서 우스워?”
“아닙니다, 황녀님.”
“고작 전쟁통에 뒤지든 가난에 뒤지든 어떻게든 뒤질 천민들 때문에 나를 배신해?”
어린 황녀의 분노는 생각보다 거센 편이었다. 그러나 엘레나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행동을 하면 반향이 있기 마련이지. 이건 과거의 그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엘레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를 경계하는 건 황녀님뿐만이 아니에요. 혁명단도 그에 관해 알게 되면 그를 경계할 겁니다. 우리는 그들과 일시적으로 손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웃기는 소리 마. 그럼 그 망할 버러지들이 끝까지 나와 함께할 줄 알고? 이참에 제국을 완전히 무너뜨리려 하겠지! 명심하랬지, 내가 바라는 건 만민에게 이상적인 세상이 아냐. 내가 편한 세상이야!”
엘레나는 입을 다물었다. 샤를리나는 엘레나가 백려로 정보를 넘겼다는 것과 함께 로트렐리의 선언을 접해 격해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 샤를리나에게 어떤 말을 하든 별로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엘레나는 샤를리나에게 물었다.
“모든 원흉은 제국에 있어요. 전 제국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걸 부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황녀님, 각자 가진 것을 조금만 나누면, 지금의 제국을 바꿀 수 있어요.”
“삼촌 같은 소리를 하네.”
샤를리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뭐……. 나도 얼추 비슷하게 생각해. 모든 일의 원흉은 격차와 차별에 있지.”
엘레나는 그 말을 듣고 황녀가 흥분을 가라앉힌 것인가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샤를리나는 분노와 한심함이 섞인 눈으로 엘레나를 보았다.
“계급이 낮은 자는 비참하지만 높은 자도 누리는 만큼 경계해야 하는 것이 많지. 나 역시 언제 이 목숨이 끊길까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손에 쥔 권력이 사라질까 전전긍긍하지 않더냐?”
“그럼…….”
“그렇다고 계급과 격차를 철폐하자니. 순진하긴!”
샤를리나의 말에 엘레나는 일순 어깨를 흠칫 움츠렸다. 황녀는 거칠게 씨근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왜 우리가 계급을 공고히 하는 줄 알아? 내 밑에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불행한 이들이 있는 게 낫거든. 간혹 보면 어떤 얼간이들은 가난하고 미천한 이들을 보며 부러워하던데……. 그게 진짜로 부러운 거겠니? 그 천한 것들에게서 비탄도 뺏어오고 싶은 거지. 우린 욕심쟁이거든.”
황녀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돌연 웃음을 터뜨리며 낄낄댔다.
“그리고 설령 내가 계급을 철폐한다고 해보자. 그럼 천한 것들이 감명받아 나를 위대한 자라며 칭송하고 서로서로 친하게 지낼 줄 알아? 아니지.”
그게 아냐……. 샤를리나의 읊조림에 엘레나는 미묘하게 굳는 표정을 어쩌지 못했다.
“그게…… 왜 불가능하죠?”
“그 천한 것들이 우리와 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면 말이야. 그럼 무엇을 하려 들겠어? 내내 자신들의 위에 군림하며 짓밟던 이들이 자신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와, 우리 서로 다를 게 없으니 친하게 지내자,’ 이럴 것 같아?”
엘레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황녀는 은은하게 웃었다.
“그들은 내 목을 자르는 것으로 그게 사실인지 증명하려 하겠지. 설사 아니더라도 우리의 목을 베는 순간, 그들의 위에 있던 것들이 사라지니 아쉬울 것이 없을 거야.”
“……그러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려 한다면 그간의 핍박 탓이에요.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모르는 소리 말아. 한 시대의 끝은 피로써 쓰여야 한다. 나는 그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이 불쌍하지만 딱 그뿐이야. 내 말년이나 기다리라고 해. 내가 죽을 때가 되어서는 혁명을 일으키든 뭘 하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엘레나는 그저 할 말을 잃은 채 샤를리나 황녀를 바라보았다. 높은 자들은 모두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 것인가? 언니는 이것을 저더러 어떻게 설득하라고 자신을 이 막돼먹은 황녀에게 붙여주었단 말인가?
자신이 없었다. 이런 일을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엘레나는 문득 작은 섬마을의 바다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그 바다를 항상 응시하던 푸른 눈을 떠올렸다. 자신이 그 애만 한 반골이었다면 샤를리나에게 무어라 반박할 말이 떠올랐을까?
자신 같은 이들은 그런 이들이 일으키는 반향에 탑승해 휩쓸릴 뿐 스스로 폭풍을 부를 수는 없다.
엘레나는 그나마 자신이 넘긴 정보 덕에 혁명단이 인력을 아끼는 정도로도 만족했다. 제국이 전쟁에 집중하려는 샤를리나와 바다새에 집중하려는 황제로 파가 갈린 것은 혁명단에게 있어 어떤 인사가 지휘하는 전투냐에 따라 전략을 달리 할 수 있다는 이점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