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38)
바다새와 늑대 (337)화(338/347)
#181화
엘레나는 샤를리나가 화를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렸다. 황녀의 횡포로 깨진 잔해들이 모두 사라지고, 깨진 것들을 대신해 새로운 것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던졌던 신문까지 원래 자리에 올려 모든 것이 원상복구 되자 황녀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좋아……. 다시 생각해보자고.”
샤를리나는 느리게 걸어 소파에 늘어지듯 앉으며 신문을 들어 올렸다. 신문은 호외로 실린 것이었다. 수배된 마녀의 선언. 그것을 처음 봤을 때 엘레나는 생각했다.
‘역시 로트. 가끔 앞으로 뛰쳐나갈 때면 감당이 안 되는 행동력인 건 여전하구나.’
로트렐리의 선언은 퍼진 직후 제국 변두리에서 이어지던 전투가 일시 중단될 정도의 파급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금 잊을만하던 바다새와 그 수배자에 관해 생각했다. 제국이 아직까지도 수배된 마녀를 쫓고 있는 것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거의 다 잡은 것일 줄 알았는데 로트렐리는 보란 듯 알라프라리에 돌연 나타났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선언을 하고 다시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호사가들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욕심이 있는 자들까지 바다새에 관한 정보를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다. 원래 알던 것과 다른 것은 없는 정보들뿐이었으나, 제국이 저렇게 눈에 불을 켜고 찾을 정도면 뭔가 더 있는 게 아닐까. 그간 제국이 로트렐리를 잡기 위해 벌인 모든 일들이 역으로 방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목표는 이제 로트렐리가 아니라 검은바다라는 해적이 되었다.
‘아마 이걸 노리고 그런 행동을 한 거겠지.’
엘레나는 로트렐리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알 수 없는 향수를 느꼈다. 그 섬으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도, 유일하게 그 시절에 그리웠던 것이 있다면 그건 로트렐리와 다른 여자아이들이 복닥복닥 모여있던 방이었다. 강인한 듯 아직 무르고 여렸던 로트렐리와 그런 그 애를 동경하고 애정하던 아이들의 틈바구니.
로트렐리, 너는 항상 바다를 보느라 바빠서 몰랐겠지만, 너의 행동은 항상 우리에게 이정표가 되었지. 그들에게 로트렐리는 마치 알 수 없는 항로를 향해 떠난 선구자와 같았다. 엘레나는 시린 눈동자로 파도를 바라보던 로트렐리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그런 엘레나를 향수에서 끄집어낸 것은 샤를리나의 목소리였다.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어.”
샤를리나는 손가락 끝으로 소파의 팔걸이를 두드리다가 말했다.
“어쩌면 지금이 적기일지도 모르겠군. 아버지를 따르는 치들은 지금 완전히 카오스일 테니까.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황녀님?”
“준비해.”
“네?”
“나갈 준비 하라고. 짐 싸.”
“제가요?”
엘레나는 다소 얼빠진 얼굴로 물었다. 그에 샤를리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보았다.
“그럼 누가 있어? 단델리온 백작 부인의 동생인 널 멋대로 팽하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난 네 행동에 화가 나긴 했지만…….”
황녀는 어깨만 으쓱였다. 엘레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것은 여전했으나 어쨌든 어린 황녀가 바라는 대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샤를리나는 소파에 드러누워서 다른 하인들에게 손짓했다. 옷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엘레나는 다른 하인들이 샤를리나를 치장하는 동안 그녀의 짐을 쌌다.
그러면서도 의아하기만 했다. 이대로 언니인 아르세나에게 다시 보내지는 줄로만 알았는데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거지? 짐을 모두 꾸리자, 샤를리나 역시 외출 준비를 끝낸 듯 엘레나에게 다가왔다. 샤를리나의 차림새를 본 엘레나는 깜짝 놀랐다.
“나간다는 게 궁을 아예 나가겠다는 말씀이세요?”
“그래.”
황녀는 평소보다 간단한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귀한 신분인 것은 감출 수 없었지만, 적어도 당장 티파티에 가야 할 것 같을 정도는 아니었다. 평소에 샤를리나가 입는 드레스를 생각하면 정말 엄청나게 검소한 모습이었다.
“이 기회에 아예 나가야지. 상황이 예상외로 흘러가서 당황했지만, 오히려 잘 됐어. 명분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명분이요?”
“제국이 바다새에 정신이 팔린 것이 드러났잖아?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차기 황제, 샤를리나가 용감하게 나섰다. 그런 거지.”
엘레나는 조금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샤를리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아바마마는 나를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유폐하셨지.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는 그 명분이 부실해진 거야. 큰 사건 없을 때 나간다면 그건 반항으로 비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정세가 한 번 뒤흔들렸다면 내 독단은 일견 타당하다는 거야.”
샤를리나는 그렇게 말하며 엘레나를 잡아끌었다. 엘레나는 결국 직속 시종의 역할대로 샤를리나를 따라가야 했다. 엘레나는 트렁크 가방을 들고 샤를리나를 뒤따랐으나, 여전히 불안했다. 샤를리나는 영특하고 교활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경향도 있었다. 분명 아직 어린 탓에 그런 것일 터였다.
과연 이 선택이 용감한 결단인지 치기 어린 만용인지 샤를리나가 명확히 인식하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엘레나의 걱정을 모르는 샤를리나는 성큼성큼 황녀 궁을 가로질렀다. 화려한 정원을 지나며 엘레나는 뒤늦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당연히 단델리온 백작가지.”
“네? 하지만…….”
“단델리온 백작가는 나를 지지하는 귀족들의 대표야. 그곳으로 가면 전쟁에 관한 지휘권을 일정 수준 얻을 수 있어. 아니면 적어도 언론전으로 정세를 흔들어볼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러면 이후에 황권이 약화되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미 정세는 지진 수준으로 흔들리는 중인데요.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괜히 황녀의 심기를 거스를까 싶어 입을 다물었다. 정보를 넘긴 것을 들키고도 엘레나는 상상보다 미약한 처벌을 받았다. 직속 시종 자리에서 내려오지도 않았고 말이다. 엘레나를 믿는 샤를리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녀는 황녀의 밑에서 또 유의미한 정보가 나온다면 다시 혁명단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처음의 전서는 세운의 전서 향을 몰라 샤를리나가 갖고 있는 전서 향 중 백려 왕의 것을 썼지만, 답으로 엘레나는 세운의 전서 향을 얻었다. 물론 샤를리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이었다. 다른 생각으로 뭉친 둘이 궁을 거의 빠져나갈 때였다. 샤를리나는 궁 앞을 지키고 선 경비들을 보고 혀를 차며 몸을 낮췄다.
“경비를 생각 못 했네.”
‘그 외에도 많은 걸 생각 못 한 것 같지만요~!’
엘레나는 거의 울고 싶어졌다. 샤를리나의 아래에서 정보를 빼돌리면서도 죽음을 각오하진 않았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걸리면 엘레나는 목이 달아날 것이 분명했다. 서둘러 주변을 살핀 엘레나는 정원의 낮은 나무 아래로 개구멍이 있는 것을 보고 샤를리나에게 속삭였다.
“저쪽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요?”
“뭐?”
샤를리나는 엘레나가 가리킨 곳을 보고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개구멍? 지금 나더러 땅을 기라는…….”
“어서요!”
엘레나는 샤를리나의 투덜거림을 다 들어주지 않고 손을 잡아끌었다. 결국 엘레나를 따라 개구멍으로 들어간 샤를리나는 들어갈 때는 오만상을 쓰고 있었으나 나올 땐 묘하게 상기된 얼굴이었다.
“이거 꽤 재미있네. 지저분한 것만 빼면. 나중에 개구멍에 타일을 깔아두라고 시켜야겠어.”
“하하…….”
그럴 바엔 그냥 출입구를 하나 더 만드는 게 낫겠지만요……. 차마 황녀의 사치스러운 생각에 토를 달지는 못한 채, 엘레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이 어디죠?”
“내 궁 옆은 큰 정원이야. 그 옆은 황궁 도서관이 있고, 더 옆은 출입 금지 구역이지.”
“아, 여기가 그 큰 나무들로 뒤덮인…….”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