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39)
바다새와 늑대 (338)화(339/347)
#182화
엘레나 역시 샤를리나를 따라 황궁 도서관을 오간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곳이 정원인 줄은 몰랐다. 높은 정원수로 담장이 만들어져 있어 오가면서도 그 너머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샤를리나가 엘레나를 데리고 다시금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도서관 뒤쪽으로 빙 돌아서 나갈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출입 금지 구역이면 경비병이 없겠지.”
“오히려 많은 게 아니고요?”
“그곳은 정말로 모든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야. 일정 반경을 두고 경비들이 있긴 하지만, 내 궁 쪽은 없어. 어쨌든, 그곳은 우리 아버지만 드나들지.”
“뭐 하는 곳이기에 그런대요?”
“나도 몰라. 예전엔 아버지가 그곳에 애첩이라도 두고 사나 했는데, 다른 후계가 뿅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정원은 매우 넓었다. 샤를리나의 궁에 있는 정원보다 두세 배는 더 큰 것 같았다. 덕분에 꽤 걸은 뒤에야 정원의 끝을 마주할 수 있었다. 높게 솟은 울타리 나무 너머로 황궁 도서관은 지나친 것을 확인했으니 이곳이 정말로 그 출입 금지 구역일 것이다.
정원을 나가는 것도 개구멍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출입 금지 구역과 인접한 곳이라서인지 관리가 허술해 개구멍은 곳곳에 있었다. 산짐승이 종종 드나드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엘레나는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가자 갑작스레 오한이 이는 것을 느꼈다.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묘하게 주변 공기가 낮았다.
엘레나는 긴장한 얼굴로 샤를리나를 보았다. 막 개구멍을 나오는 그녀는 별다른 점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일어나서 옷을 가리키는 샤를리나의 손짓에 그녀의 옷을 털어주며 엘레나는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숲처럼 우거진 곳은 황궁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황녀님, 정말로 이곳에 관해 하나도 모르세요?”
엘레나는 조심스럽게 물었으나 샤를리나는 묵묵부답이었다. 그에 엘레나는 고개를 들고 의아한 얼굴을 했다.
“황녀님?”
샤를리나는 엘레나의 뒤쪽을 보며 굳어있었다. 그에 엘레나 역시 뒤를 돌아보았다.
“이런. 아무도 오지 못하게 했다고 그렇게 자신하더니…….”
매끄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어둑하게 우거진 숲에 울렸다. 듣기 좋은 목소리였으나 상황적으로 보자면 퍽 공포스러웠다. 그들의 앞에 선 남자는 보라색 머리카락을 구불구불 늘어뜨린 상태였다. 검정 일색으로 입은 로브는 후드를 뒤집어써서 그의 턱 정도만이 선명하게 보였다.
엘레나는 주춤 물러서며 샤를리나를 제 뒤로 감췄다. 특별하게 황녀이기에 지켜야 한다는 판단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단지 샤를리나가 아직 어리기 때문이었다. 샤를리나가 희미하게 웅얼거렸다.
“네…르갈…….”
후드 아래로 네르갈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그래, 황녀님.”
그는 느리지만 순식간에 둘의 근처로 다가와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엘레나는 그것에서 마치 먹잇감의 주변을 맴도는 들짐승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는 어쩐 일이지?”
“……황궁을, 나가려고…….”
“아하. 왜? 얌전히 있는 게 더 좋지 않나?”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상황이?”
네르갈은 걸음을 멈췄다. 엘레나는 샤를리나가 왜 그런 것을 순순히 말해주는 것인지도 당혹스러웠으나 네르갈의 반응이 더욱 신경 쓰였다. 그자는 마치 자신이 물으면 샤를리나가 당연하게 대답할 것처럼 굴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샤를리나는 그러고 있었고 말이다! 황녀의 답을 들은 그는 잠시 턱을 짚고 생각하는 것 같다가, 아주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눈치를 보던 엘레나는 희미하게 느껴지던 숨결도 그가 내쉬지 않는 것을 보고 퍼뜩 생각했다. 지금이 기회이지 않을까? 엘레나는 직감이 들자마자 샤를리나의 손을 잡고 냅다 뛰었다. 다행히 네르갈은 그들을 쫓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직감이 맞았던 것이다. 무슨 생각에 저렇게 오래 잠기지? 그러나 그가 자신들을 쫓아와 위협하는 것보단 나았기에, 엘레나는 멈추지 않고 뛰었다.
샤를리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엘레나가 겨우 나가는 곳을 찾아 황궁을 나서 말에 올랐을 때에야 입을 뗐다.
“그 작자…….”
얼핏 이를 가는 것 같았으나 아니었다. 샤를리나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엘레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그 정도로 무서웠던가? 물론 초월자긴 했으나, 엘레나는 그에게서 샤를리나처럼 공포심을 느낄 정도의 위압감을 받진 못했다. 엘레나는 샤를리나를 말에 태우고 자신도 올라탄 뒤, 고삐를 쥐었다.
“이러!”
목적지는 단델리온 백작가였다. 적어도 이렇게 된 이상 황궁은 정말로 위험해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한편, 엘레나가 황궁을 나간 뒤에야 생각에서 빠져나온 네르갈은 텅 비어있는 앞을 보고 혀를 쯧 찼다. 그러나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군, 로트렐리가 그런 짓을…….”
네르갈은 턱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다가 이내 소리 죽여 낮게 웃었다.
“바보 같긴.”
그는 몸을 돌려 자신이 지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길게 늘어져 있던 로브가 검은 모래처럼 움직이며 그의 손에서 뭉쳐졌다. 그것은 이내 길고 검은 검이 되었다. 네르갈은 검날을 땅에 끌면서 느리게 걸어갔다.
“이제 정말 때가 되었어……. 끝을 낼 때가 되었어.”
모든 세력이 한곳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이야 관심 밖이다. 세력이 모여드는 근원. 로트렐리가 있는 곳. 그는 소리의 바다로 갈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