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46)
바다새와 늑대 (345)화(346/347)
#189화
하몬이 말했다.
“내 검과 랄티아의 피스톨은 아마 클루스도 녀석이 갖고 있겠지. 안 그렇더냐?”
“그렇죠. 아마 선장실 어딘가에 있을 겁니더.”
“간단하군. 난장판인 때를 틈타 선장실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만 하면 된다.”
“웃으라고 하는 소리죠?”
“울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지.”
하몬의 너스레에 요한은 혀를 요란스럽게 차고는 말했다.
“하몬은 너무 눈에 띄니께 느이 둘이 지키고 있어라. 내가 다녀올 테니까.”
“어디에서요?”
“포문이 있는 상갑판 바로 아래층. 베제 놈과 프라세를 불러야 쓰겄다.”
말한 대로 하몬의 휠체어를 들고 상갑판 바로 아래층의 구석에 내려준 요한은 서둘러 뛰어가며 클레인스에게 외쳤다.
“클레인스 니는 할 수 있제?! 잘 지키고 있어라!”
“크게 소리치지 마세요!”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러나 그럴 걱정은 적었다. 파도를 가르는 소리와 포성, 전투의 소음이 시끄럽게 울려대는 중이었다. 클레인스는 검을 뽑아 들고 하몬과 랄티아를 등지고 서서 물었다.
“마장석 기구는 그대로 둬도 정말 괜찮을까?”
“뭐 어때. 이 해적선도 우홉피아주처럼 항구에 제대로 박아 보라지.”
마장석 기구의 출력은 여전히 빠른 속력을 내는 채로 고정되어 있었다. 랄티아가 그렇게 하고 탈출하자고 한 것이었다. 마장석 기구를 다룰 수 있는 하몬과 클레인스가 빠져나온 상황이니 만약 검은바다가 어디로든 정박을 시도하려고 하면 곤혹스러운 정도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랄티아는 흔들리는 배에서 침착하게 하몬의 휠체어를 붙잡았다. 시간도 재료도 부족했던 탓에 피스톨을 새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요한이 하몬의 검이라도 챙겨온다면 그들에게 승산이 있었다. 자신의 자리에 앉은 하몬은 휠체어의 바퀴를 쥔 채 혀를 끌끌 찼다.
“배를 험하게 모는군. 너희가 없었으면 휠체어째로 구를 뻔했다.”
“엄살 부리지 마요. 하몬은 어느 정도 흔들려도 괜찮잖아요.”
“엄살 같으냐? 휠체어에 앉아서 돌아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데. 코앞에 낮은 턱이라도 있어봐라.”
하몬은 무어라 꿍얼거리며 연신 불평을 했다. 그때 아래층으로 내려온 선원이 그들을 마주쳤다. 클레인스는 순식간에 검을 세우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너, 너희! 빠져나온 거냐? 그럼 마장석 기구는…….”
“함구해줄 것 아니라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선원은 클레인스의 검을 몇 번 막아냈다. 그러나 곧이어 클레인스가 그의 발목을 턱 걷어찼다. 그에 선원이 뒤로 넘어지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클레인스는 선원의 어깨를 밟은 뒤 검으로 그의 목을 푹 찔렀다가 빼냈다. 깔끔하고 자비 없는 손속이었다.
랄티아는 약간 질린 얼굴을 했다. 암만 그래도 같이 지낸 선원 아닌가? 그러나 클레인스는 별로 자책하거나 우울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하몬이 헛기침하자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일반 선원들한테 딱히 좋은 감정은 많지 않잖아요.”
“그렇다고 너무 잔혹해지지 말거라.”
“안 그래요.”
클레인스는 시무룩한 기색으로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선원을 발로 밀어 치워뒀다. 그 뒤 그는 둘에게 걸어오며 말했다.
“예전의 검은바다이고 예전의 저였다면 꼭 이런 식으로 굴진 않았을지도 모르죠.”
하몬은 가라앉은 눈으로 소년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하몬의 선상 반란과 이후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클레인스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모두 이해한 눈치였다. 랄티아는 그저 뺨을 톡톡 가리키며 말했다.
“피나 닦아.”
클레인스는 머쓱한 얼굴로 뺨을 닦아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베제와 프라세가 그들 쪽으로 달려왔다. 클레인스는 반색하며 그들을 불렀다.
“베제 형, 프라세.”
“요한한테 들었어! 요한은 이미 선장실로 들어갔을 거야. 때맞춰 올라가자.”
베제가 그렇게 말하며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하몬의 휠체어를 들었다. 프라세는 베제의 쇠뇌를 대신 들곤 그들의 뒤를 따랐다. 노상 갑판과 포갑판에서 방어와 도주로 정신이 없는 모양인지 한산한 선내를 가로지르며 랄티아가 물었다.
“지금 배가 어디까지 왔어요?”
“아직 소리의 바다야. 육지는 멀었어. 그걸 묻는 거 맞지?”
“네.”
“어느 정도 육지가 가까워지면 구명정을 타고 도망가는 게 나을 거야.”
베제는 그렇게 말하며 계단을 올랐다. 클레인스에게 업힌 하몬이 투덜거렸다.
“망할, 내가 다리만 말짱했어도.”
“지금은 그냥 얌전히 업혀 계세요.”
클레인스는 그렇게 말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것을 본 랄티아는 약간 의아한 얼굴을 했으나 하몬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언제 내려 간 댔느냐? 무거운 아저씨나 업어야 하고, 클레인스 놈만 안 됐지.”
“그렇게 무겁진 않아요.”
클레인스의 말에 하몬은 흥, 하고 퉁명스러운 소리나 냈다. 넷이 포갑판으로 올라가자 시끄러운 소리가 더 커졌다. 그들은 자신들을 발견한 선원을 조용히 처리하며 노상 갑판으로 올라갔다. 갑판 위로 발을 디디자마자 바닷바람이 거칠게 그들을 훑고 지나갔다.
베제가 서둘러 휠체어를 내려놓자 하몬이 앉았다. 배가 거칠게 휘청이고 있어 클레인스는 다급하게 하몬의 휠체어를 잡았다.
“요한은?”
“일단 이쪽으로.”
베제가 그들을 이끌고 갑판의 구석으로 향했다. 대부분이 난간에 매달려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선원 중 하나가 외쳤다.
“인질이 탈출했다!”
“젠장.”
욕을 짓씹은 베제가 프라세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프라세, 네가 가서 요한을 불러와! 우린 여기서 선원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어서!”
“아, 네, 네!”
프라세가 얼른 뛰어가는 것과 동시에 선원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클레인스는 검을 세우며 랄티아에게 말했다.
“하몬을 부탁해.”
“나도 무기 하나 없는데……. 넌 괜찮아?”
랄티아의 말에 클레인스는 잠시 입을 벙긋거리다가 대꾸했다.
“소리가 여러 겹으로 겹쳐 들려서 그래. 머리가 좀 아프지만 싸우는 데에 문제는 없어.”
“그러시겠지. 어차피 이런 난전이 아니어도 머리 아픈 너보다 피스톨 없는 내가 더 쓸모없는 건 나도 알아.”
랄티아는 그렇게 투덜거리긴 했지만 하몬의 휠체어를 잡고 섰다. 클루스도는 조타실에서 명령하느라 아직 그들의 존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베제는 쇠뇌에 볼트를 장전하며 말했다.
“어휴, 어휴. 버텨보자.”
“버티긴 뭘 버텨요?”
클레인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될 수 있으면 그냥 싹 밀고 나가자고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