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6)
바다새와 늑대 (35)화(36/347)
#35화
오로라와의 전투로 상한 돛과 갑판을 수선하느라 배 위로는 뚱땅이는 소리만 울렸다. 유리 바다를 건너면 곧장 돛을 써야 할 테니 수선 조가 부지런히 움직였고, 다 고치기 전에 유리 바다를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은바다는 속도를 늦춰 항해하고 있었다.
그동안 조용한 배에서 할 일이 없는 우리는 빈둥대기만 했는데, 도멤은 몇 번은 밖에 나가서 바다나 보자고 했지만 내가 딱히 내켜 하는 기색이 아니자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곧 제안하는 것을 관뒀다. 나는 나대로 생각이 복잡해서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감추지 못했다.
도멤은 키이엘로에게 ‘로트가 오로라 때문에 많이 피곤했나 봐’라고 귓속말을 했지만―발카가 듣고 전해줬는데, 그때 키이엘로의 표정은 도멤을 매우 안타까워하는 얼굴이었다―유감이지만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나는 랄티아와 아버지의 생각으로 머리가 뒤죽박죽이었다. 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이제 책의 내용까지도 어느 정도 불신하고 있었다. 어쩌면 죄다 엉터리 연구일 지도 몰라. 겉멋만 들어서 학자들이 제멋대로 씨부리는 거겠지……. 그런 것에까지 내가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어.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나는 얼굴을 왈칵 일그러뜨렸다. 신경을 안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도멤이 내게 말을 걸었다.
“로트, 아무래도 오로라 이후로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었어?”
또 네토르가 뭐라고 했어? 나는 그 말에 미간을 문지르며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설령 그렇다 해도 네토르는 나한테 그렇게 큰 존재가 아냐……. 내 말에 도멤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그 순간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 얘기를 도멤과 키이엘로에게 해도 되는 걸까? 사실 무엇 하나 명확하게 밝혀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학자도 아니고, 내 아버지에 대한 걸 알고 있지도 않고, 그 괴이를 본 것도 아니었다. 이런 것을 그들이 해결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굳이 말해서 그들에게까지 고민거리를 늘려줄 필요가 있나? 나는 여기까지 떠올리고 문득 조금 심술궂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면 뭐가 어때서? 키이엘로와 도멤에게 말해서 고민거리를 늘리든 내가 알게 뭔가. 나야말로 지금 기분이 영 좋지 않다고.
그러나 다음 순간, 키이엘로의 말에 나는 그런 생각도 멈췄다.
“뭔가 고민이 있으면 털어놓으라고 한 건 너였잖아.”
그러자 도멤이 옆에서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아냐, 너희가 알아도 해결책도 없다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거란 말이야. 속으로 한탄하던 나는 방금 내가 한 심술궂은 생각을 상기하고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마른세수를 몇 번 했다. 이 둘이 나에게 털어놓으라 하는 마음을 모르지도 않았다. 나도 키이엘로가 이상하게 침울해 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라도 무슨 일인지는 듣고 싶어졌을 테니까. 도멤이 그러고 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둘도 다르진 않을 거야……. 나는 천천히 얼굴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해먹으로 갈까?”
* * *
섬마을의 공기는 항상 맑았다. 작은 마을은 사람이 많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적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이름만 알거나 모르는 이는 있지만 한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좁고 작은 마을. 나는 그곳에서 꽤 유명인사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발카만 봐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발카가 바다새임을 보인 뒤에야 배에 탈 수 있었고, 함께 배에 오른 이들은 순항을 요구하면서도 나를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아무렴 상관은 없었다. 나는 누가 막는다면 바다에 뛰어들려 할 정도로 바다를 좋아했고, 뱃사람들의 눈총이야 좀 따가워도 나는 그런 것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하는 짧은 고기잡이 항해가 항상 순탄하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조금 의문이지만 때때로 큰 파도를 마주치거나 날이 조금 흐려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없는 때보다는 훨씬 나았는지, 내가 여자라서 바다새가 있음에도 이 정도의 불운은 따라오는 거라며 혀를 차대면서도 나를 항해에 끼워주었다.
아버지만이 그런 그들의 얘기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로트, 저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 너는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란다. 이것이 내 나이가 열여섯 살일 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나는 때때로, 아니. 꽤 자주 섬의 배에 올라탔지만, 뱃사람들의 묘하게 불친절한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이 일어난 것은 내가 열일곱이 되었을 때였다.
작은 섬의 배는 폭풍과 마주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것이 어떻게 발카가 있는, 내가 탄 배에 오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물며 발카는 아무것도 못 느꼈단 듯,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이 의아했지만 발카는 ‘못 알아채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바다새가 그렇다는데 나로서는 덧붙일 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는 폭풍과 마주해야 했고, 돛대가 꺾이고, 배에 물이 차고.
그리고 그 폭풍이 지나갔을 때, 우리는 거의 반파된 구명정으로 섬으로 돌아가야 했다.
돌아오지 못한 건 아버지뿐이었다.
“이게 뭐야, 바다새가 있었는데도…….”
“역시 바다새가 있어도 여자가 타면 재수 옴 붙는다고…….”
마을 사람들은 쉬지 않고 수군거렸다.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나였다. 우리 가족이었다. 그 배에서 아버지만이 사라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그 모든 피해가 자신들에게 향한 듯, 공포스럽다는 듯 떠들어댔다. 나는 그것들을 무시했으나, 그 뒤로 뱃사람들은 아무리 발카가 있어도 날 배에 태우지 않았다.
큰 배로 바다에 갈 방법이 없어진 나는 해변에 앉아서 한낮부터 밤까지 우두커니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기다렸는지는 기억이 흐릿했다. 그 당시의 기억은 대부분이 바다를 노려보며 기다리던 기억 외에는 뭉갠 것처럼 흐렸다.
바다는 언제나 아름다웠다. 아침에는 옅은 푸른색으로 터오는 새벽의 빛과 빵가루 같은 빛깔로 물드는 백사장이 있었고, 낮에는 언제나 여름인 것처럼 시원하고 발랄하며, 청명한 빛으로 물결쳤다. 그리고 황혼이 되면 화려하지만 묵직하게 가라앉는 놋쇠 덩이 같은 해를 품고 수없이 반짝였다.
그 뒤, 이윽고 밤이 되면. 바다는 죽은 모든 것을 거둔 것처럼 고요해진다.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지? 바다가 아버지를 삼켰다, 같은 생각. 아냐, 어쩌면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올지도 모른다, 발카는 잘못한 것 없고, 단순히 운이 안 좋았을 뿐이라는 도피적인 생각을 했었다. 그것도 아니면 나는 더 이상 배에 오르지 못한다는 절망을…….
나는 생각했다. 전부 내 탓이야.
내가 욕심을 내서 배에 올라 불운을 불러온 거야.
“언니, 너무 탓하지 마.”
어느새 다가온 랄티아가 그런 내게 말했다. 내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랄티아는 한숨을 쉬고 내 옆에 앉았다. 모래사장을 밟는 소리와 함께 치맛자락을 정리해 쭈그려 앉은 랄티아는 내게 말했다.
“언니 탓이 아냐. 이미 벌어진 일이고.”
“알아.”
“기다리지도 마. 지금 마을에서 언니를 보고 다들 수군거려.”
“상관없어.”
내 짧은 대답에 랄티아는 하얀 미간을 좁혔다. 그 애는 매우 똑똑하고 총명해서, 끈질긴 것이 자신에게 성공과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랄티아는 내게 강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올 확률은 0에 가까워. 언니 자신을 좀 챙겨! 바다에도 나가고!”
“바다에 나가라고?”
나는 눈을 치켜뜨고 랄티아를 노려보았다. 내 매서운 기색에 움찔 몸을 떤 랄티아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라 쓰러진 나무를 걷어찼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분노와 회의감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나는 왜 화가 나는 거지? 누구에게 화가 난 거지? 바다? 아버지? 랄티아? 아니면 나 자신에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나무통이 얇은 쿠키처럼 쪼개졌다. 나는 그 안에서 마구 뒤엉킨 검은 덩어리를 본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더는 바다를 못 나간다는 분노였고,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그딴 생각만 머리에 든 나에 대한 분노였고, 머저리 같은 마을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고, 잘난 척하는 것 같은 랄티아에 대한 분노였고, 발카에 대한 얄팍한 불신이었고,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픔이었다.
나는 그 순간 우는 것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내 머리통에 차 있던 바다가 빠져나오는 것처럼 숨과 눈가에 소금기 짙은 열기가 몰려들었다.
“그래, 넌 내 머리통에 바다 아니면 뱃놀이만 들어있는 줄 아는 거지.”
“언니…….”
“넌 네 계산이 틀리리란 생각은 도무지 하지 않는구나. 그렇지?”
나는 나뭇가지를 밟아 부러뜨리며 사납게 말했다. 하지만 나도 그때 알고 있었다. 똑똑한 랄티아의 계산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다. 항상 그녀에게 패배하는 건 나였다. 언제나 나였다.
그런데도 나는 오기를 부리며 외쳤다. 귀 열고 똑똑히 잘 들어, 랄티아. 나는 이제 더는,
더는.
더는 이 바다가 좋지 않아.
나는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말을 삼켰다. 굳이 이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도멤과 키이엘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가 감추는 사실은 대충 뭉뚱그려 전했지만, 이해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도멤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확실해? 너희…… 아버지 얼굴이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몇 년 못 보았다고 해도, 떠올리기에 어려울지는 모를지언정 코앞에서 본 얼굴을 착각하진 못할 거야.”
“그건 맞아……. 그렇지만 괴이는 어린아이들만 있었잖아. 책에서도 그랬고.”
“내가 바다에 빠졌을 때 다 큰 어른이나 나이 든 사람들도 있었어. 가장 날뛰는 게 어린 쪽이었을 뿐이야.”
내 말에 키이엘로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어쩌면 책을 쓴 작자들도 바다 밑까지 본 적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나는 문득 그 전에, 그들이 어떻게 괴이가 어린 영혼이라고 단정 지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야 학자들의 어려운 연구 내력을 모르니까. 심지어는 그 책은, 초월자의 의견까지―진위 여부는 차치하고―들어있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도멤이 끙 소리를 내며 물었다.
“그 책 저자가 누구였을까?”
“낸들 아나. 인제 와서 알아보려고 해도 그 책은 네토르 거였잖아. 분명 다시 찾기엔 어려울걸.”
도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미처 읽지 못했던 부분에 관련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야. 그때 키이엘로가 머뭇거리다가 이상하게 의욕적인 얼굴로 나를 보았다.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잠시 고민하고 고개를 저었다. 딱히 그놈에게 빚을 지고 싶진 않아. 나는 말하면서도 내 이런 성격을 키이엘로가 모를 리가 없는데 묻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도멤도 비슷했는지, 키이엘로를 보았다. 키이엘로는 우리의 시선을 느끼고 조금 멋쩍어하다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훔칠까?”
“이 해적 자식.”
“야! 제정신이야?!”
곧장 우리의 반대에 부딪히자 키이엘로는 조금 풀이 죽었지만, 나름 의견을 피력하며 말했다. 왜, 괜찮잖아…….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하거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 지인 중에 네토르가 의심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어? 그 새끼 분명히 편집증이 있을 거야. 썩을 놈.”
“그래, 이번에 이상하게 의욕적이다. 키이엘로.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주고 싶지만, 이번엔 좀…….”
우리의 완강한 반대에 키이엘로가 짧게 한숨을 쉬고 알았어, 하고 말했다. 나는 내심 생각했다. 그래, 털어놓긴 했지만 역시나 결국 아무런 해결책도 나오지 않았어. 그때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도와줄까?”
우리 셋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정말 의외라는 얼굴로 셋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금발처럼 보일 정도로 옅은 갈색 머리를 긁적이며 붉은 눈을 가늘게 휘었다.
“나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우투그루의 절친, 브레딕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