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4)
바다새와 늑대 (3)화(4/347)
#3화
그런 우리의 시선을 알아챈 키이엘로가 민망하단 얼굴로 도멤을 마저 밀어내곤 헛기침을 했다. 첫인상과는 다르게 그는 시종일관 어색하지만 정중한 태도였다.
아니 뭐, 혹시 모르지, 그냥 내가 어색해서 그럴 수도……. 나는 그에 관해 관심을 거두고 도멤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까는 왜 부른 거야?”
“응? 아아, 맞다.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어…….”
이 자식이. 내 기색이 언짢아지자 도멤이 얼른 말을 꺼냈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너도 이제 선실에 자리 정해야 하지 않아?”
“……. 아직 하루 남았어.”
“아 진짜? 유감이네.”
“설마 신고식을 말하는 거야?”
도멤이 별수 없다는 듯 말하는데 키이엘로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나는 잠시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의 ‘신고식’이라는 건 마스트의 장루에 쑤셔 박아두고 모포나 끌어안으며 추운 일주일을 나게 하는 것이었다.
나도 어이는 없었지만, 별수 있나 싶었다. 어차피 이제 일주일도 거의 지나갔고. 애초에 내 의지로 탄 배도 아니었지만, 이왕 한배를 타게 되었으니 그들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키이엘로는 내 긍정에 침음을 흘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시무룩한 얼굴이었지만 외모에서 오는 처연미가 마치 비 오는 날 누군가의 부고를 들은 건가 싶을 정도의 파급력을 뽐냈다. 진짜 적응 안 되는 미친 외모다…….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키이엘로가 말했다.
“그거 하지 말자고 했었는데…….”
“누가 네 얘길 듣기나 해? 그리고 뭐 어때, 크게 문제 있던 적도 없고.”
“아, 그래, 문제야 없었지. 내가 좀만 허약했으면 감기에 걸렸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멀쩡하네.”
“미안, 사실 난 신고식 같은 거 해본 적 없어.”
거참 부럽구만. 키이엘로는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입술만 달싹이다 이내 입을 꾹 닫았다. 도멤이 웅얼거리듯 그럼 선실은 나중에 보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데, 대뜸 땅바닥을 기듯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야, 퍼런 눈.』
키이엘로가 숨을 들이켜며 텐을 보았다가, 늑대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자 번뜩 고개를 들어 날 보았다. 그의 수려하고 진한 눈매가 휘둥그레 뜨여 있었다. 나는 어느 쪽에도 시선을 주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굳어 있다가 모른 척 도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오늘, 날 일찍 깨운 이유가 이런 일들 때문이었어? 짐을 정리하라고 부른 거라고 하기엔 난 지금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야! 일찍이라니! 그다지 일찍도 아니었거든?”
“나는 나만의 시간을 살아간다.”
“멋진 말 하면서 게으름을 뽐내지 마…….”
어쨌든. 내가 다른 용건이 없느냐는 의미로 도멤을 보며 눈썹을 휘자, 그는 수더분하게 웃으며 갈색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사실 이게 용건 끝 맞아. 그 말에 나는 상냥하게 웃어줬다.
“넌 그냥 맞아라.”
나는 도멤의 옆구리에 주먹을 한 대 꽂아 넣는 시늉을 하고는 흘끔 늑대를 보았다. 노란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발카는 아까부터 아무 말 없이 키이엘로와 늑대를 쏘아보고만 있었다. 나는 잠시 늑대를 바라보다가 키이엘로를 향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네 늑대가 날 계속 쳐다보는데, 안 무는 거 맞지?”
“어?”
“얘 물어?”
“아, 음……, 아니.”
키이엘로는 뒤늦게 내 말을 알아들은 듯 몇 번 얼빠진 소리를 내다가 대꾸하고는 민망한 표정을 해 보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텐을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 네가 주인이니 네가 잘 알겠지……. 그러자 텐이 콧잔등을 일그러뜨렸다. 다시 생각건대, 마치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텐 귀엽지? 근데 완전 도도해. 늑대는 너무 멋있는 것 같아. 도멤이 상황도 모르고 헤실헤실 웃으며 헛소리를 했다.
『네놈, 내 목소리 들리지? 못 듣는 척 하…….』
“그래서 결국은 용건은 끝?”
“어? 아니, 그리고 이왕 일어난 김에 밥이라도 같이 먹자. 키이엘로도 육지에서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래?”
내가 끝까지 늑대의 말을 무시하자 급기야 텐은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키이엘로가 만류하듯 제 다리로 텐을 슬쩍 치고는 어색하게 대꾸했다.
“어, 음, 아까 오면서 사과를 잔뜩 먹긴 했는데…….”
키이엘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긴가민가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반응 없이 태연한 얼굴을 가장하고 도멤과 키이엘로의 대화를 주워듣는 척하고 있었다.
“너 많이 먹잖아. 설마 사과 먹고 배부른 거냐?”
“좀 많이 먹었거든. ……뭐, 아주 못 먹는 건 아니니까 그냥 같이 가자.”
사과? 나는 그의 몸에서 아직도 배어있는 잔향을 슬쩍 맡아보았다. 좀 전과 똑같이 사과 냄새였다. 사과즙에 몸을 담근 것도 아닐 것이니 향수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미묘한 표정이 되어 키이엘로를 살피는 걸 눈치챘는지, 도멤이 낄낄 웃으며 날 팔꿈치로 찔렀다.
“왜, 아까 우투그루한테 이상한 거라도 들었어?”
“어?”
돌발적인 말에 깜짝 놀라 도멤을 보자, 도멤은 알만 하다는 듯 고개를 잘게 흔들며 너스레 떨듯 말했다.
“우투그루가 또 키이엘로 보고 더럽다느니 어쩌느니 했겠지.”
“아…….”
키이엘로도 아까의 일을 떠올린 듯 가늠하는 것 같은 얼굴로 침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민망한 듯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나는 머쓱하게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눈을 굴렸다.
“음, 맞아. 설마 내가 생각하는 뭐……, 육지의 이모저모……. 뒷골목의 으슥한 곳에서……. 질펀하게 노는 부류는 아닐까 생각했지.”
“이럴 수가.”
키이엘로는 대번에 앓는 소리를 내며 잘난 얼굴을 잘난 손으로 감쌌다. 도멤은 방정맞게 웃으며 키이엘로의 등짝을 팡팡 내리쳤다. 으하하! ‘질펀하게 노시는 키이엘로 씨’! 키이엘로가 차분하게 도멤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들의 반응에 덩달아 민망해진 내가 입매를 비틀어 꼬자, 간신히 웃음을 추스른 도멤이 말했다.
“완전 오해야, 로트! 사과가 어쩌고 하는 걸 보면 또 마음이 약해지셔서 어느 아주머니가 파는 사과라도 잔뜩 사줬나 봐.”
“할아버지였어.”
도멤의 말에 키이엘로가 시답잖은 것을 정정했다. 도멤은 이거나 저거나, 하고 가볍게 대꾸한 뒤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진짜 완전 오해야! 나도 마찬가지인데. 난 나의 순결은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에게만 줄 거라서―안 궁금한데.―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 말씀. 그리고 키이엘로는…….”
유쾌하게 말을 이어가던 돌연 도멤이 붕어처럼 두어 번 뻐금거렸다. 키이엘로가 그를 보며 눈썹을 끝을 그림처럼 추어올렸다. 결국 도멤은 키이엘로를 놀릴 생각에 딱따구리처럼 줄기차게 잇던 말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얼버무렸다.
“아무튼 그런 짓은 안 해. 우리 배에서 사창가 따위를 가는 놈은…… 모르겠네, 있긴 한 거 같은데 난 그 녀석들하고 안 친해서.”
어차피 이 배는 해적인데다 죄다 남자뿐이었다. 그런 곳에 가지 않는다는 기대는 당연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것보다 도멤이 친하지 않은 부류가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이 녀석은 바다 괴물이 와도 악수하고 친구가 될 것 같은 놈이었으니까. 서로 알게 된 지 일주일이 채 넘지 않은 나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부분에서 더욱 그랬다.
곧 나는 이상한 오해를 한 게 무안해져 어색하게 눈을 굴렸다.
“음, 내가 괜한 오해를 했네. 불쾌했을 텐데 미안하다.”
“아니, 괜찮아. 종종 받는 오해기도 하고.”
키이엘로가 어색하게 대답하자, ‘이런 걸 얼굴값이라고 하는 걸까?’ 하며 도멤이 또 헛소리를 했다. 키이엘로는 그 말에 도리어 더 민망해진 얼굴로 시선을 피해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우투그루는 왜 그런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을 하는 거야?”
헛다리를 짚은 머쓱함에 괜한 우투그루를 타박하자 키이엘로는 다시 시선을 피했고, 도멤은 짚이는 것은 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는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키이엘로랑 우투그루는 사이가 안 좋아. 도멤의 말에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힘내라는 듯 말했다.
“그래, 형제끼리 언젠가는 화해하길 바랄게.”
“…….”
“…….”
침묵 속에서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이 울렸다.
“……좋아, 내가 또 뭔가 잘못 말했네, 그렇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묻자 결국 도멤은 다시 빵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