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40)
바다새와 늑대 (39)화(40/347)
#39화
그 난리를 피웠지만 우리는 세운과 원이 왕궁에 있던 사람이든 아무 상관하지 않았다. 대신 선의의 방에서 시답잖은 잡담을 한참이나 나누는 우리를 신기하다는 듯 흘끔거리던 세운이 다시 평소의 단정한 차림새로 돌아와, 도포의 소매를 말아 토시와 함께 팔뚝에 묶으며 물었다.
“자네들은 어째 각자 개성도 다양한데 어울리는 것에 서슴지 않는군. 오랫동안 친했소? 보기 좋구려.”
그 말에 나는 삐딱한 얼굴을 했고, 키이엘로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도멤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발랄하게 말했다. 그쵸! 우리 좀 친해 보이죠! 나는 좋냐? 하고 빈정대고 싶은 기분이 목구멍 끝까지 치솟았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대신 성질을 내는 건 발카였다.
『이딴 원숭이 새끼들과 친해 보인다니! 모멸적이야!』
『너 보고 친하다고 한 적 없어, 신경 좀 꺼. 네가 무슨 얘 부모야?』
『시끄러워! 넌 그 부선장 놈 솜인형 노릇이나 하라고!』
으르렁 짹짹 화내는 둘을 소리 내서 말리지도 못하고 나는 발카를 어깨에서 내려 품에 안을 뿐이었다. 키이엘로도 텐을 끌어안으려다 발카의 ‘솜인형’이라는 말이 걸렸는지 그 대신 자기 뒤쪽으로 밀어 감췄다.
텐은 키이엘로의 행동에 금방 콧김을 뿜고 얌전해졌지만, 발카는 내 품에서도 몇 번이고 텐을 향해 소리를 하는 것을 내가 막아야 했다.
세운의 선실을 나오고 난 뒤, 미뤄왔던 글공부를 시작한 도멤은 나와 키이엘로에게 지적을 받아 가며 종이에 구부러진 글자들을 끄적이며 씨름했다. 비교적 쉬운 단어를 알려주면서도 아까의 일에 앙심을 품은 발카가 ‘어려운 단어를 말해!’하고 재촉했지만 실행하진 않았다.
우리는 숲의 바다를 향하는 내내 도멤의 글공부를 도와주거나 낚시를 하며 보냈다. 낚시하며 물고기를 가장 많이 잡는 것은 나였는데, 정말 이상할 정도로 잘 잡혔다. 도멤은 기다린 만큼은 잡았고, 반면에 키이엘로는 내내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키이엘로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지만, 도멤은 그럴 때마다 키이엘로를 놀려대다 한 대씩 얻어맞곤 했다. 우리의 낚시 삼매경에 가끔 베제와 프라세가 끼기도 하고, 가끔 신기한 물고기를 잡으면 브레딕이 우투그루가 없을 때 다가와 물고기를 이리저리 살펴 무슨 종인지 알려주곤 했다.
가장 웃음꽃이 핀 것은 요한이었다. 식재료가 동날 걱정은 없다며 히죽이며 이제는 만날 때마다 내게 키스를 날리며 낚싯대를 쥐여줄 정도였다. 물론 나는 그의 비쥬를 정중하게 쳐냈고, 낚싯대는 받아다 도멤에게 던져주었다. 요한, 넌 속고 있다니까? 오늘도 요한에게 유감스러운 하루였다.
숲의 주인을 찾아간다는 나름 위험한 항해인 것치고는 굉장히 여유롭고 느긋한 일상이었다.
그런 일상이 일주일쯤 반복되고 있을 때, 한참 글자를 쓰던 도멤이 질렸는지 종이를 구기며 말했다.
“우리 낚시나 가자!”
“너 아직 열 번 안 썼어.”
“일곱 번이나 썼어! 가자, 낚시 가자, 응?”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키이엘로는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울였다.
“얼마나 외웠는데?”
“뭐…… 일곱 번 쓴 거로 어떻게 외워!”
“그래서 열 번 쓰라고 했잖아. 다 쓰면 낚시하러 가자.”
깐깐해! 도멤은 울상을 지으면서도 구겼던 종이를 다시 폈다. 결국 도멤이 마저 열 번을 채운 뒤에야 우리는 낚싯대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일주일간 항상 이래왔기 때문에 나는 도멤이 진심으로 공부를 귀찮아하는 건지 내게 뚱기치고 싶어서 하는 말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이전의 서늘한 공기는 꿈이었던 것처럼, 갑판에는 온화한 바람만 불고 있었다. 기온은 비교적 서늘한 것에 반해 바람이 따뜻하니 오히려 그 차이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유리 바다와는 확연히 다른 날씨였기 때문에 우리는 코트를 벗고 셔츠와 바지 차림의 편안한 옷을 입고 있었다.
수평선보다 가까운 부분에 수면 위로 튀어나온 나무의 푸른 잎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물 위에 정원을 만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저렇게 수면 밖으로 튀어나온 나무는 얼마 없는데도 어디서 뻗어 나온 건지 모를 줄기들은 숲의 바다 근처를 항해하는 내내 수면 아래에 있었다.
어쩌면 저게 뿌리일지도 모르지.
나는 신이 나서 낚싯바늘에 찌를 끼우는 도멤을 뒤로하고 난간 너머를 흘끔 보았다. 수면 아래에 나무줄기들은 하루하루 눈에 띄게 늘어있었다. 나는 이리저리 엉켜 하얗게 보이다가 깊이 들어가 푸른빛 속으로 파묻히는 줄기를 보다가 물었다.
“항상 궁금했는데, 이거 배에 부딪히진 않아?”
“보이는 것치고는 그렇게까지 수면에 가깝진 않은가 봐. 우리 경험에 의하면, 숲의 바다 언저리까지는 부딪히는 일은 없었어.”
키이엘로가 대답해주다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정말 숲의 바다 안으로 들어가게 될 텐데 그때는 어떨지 모르겠네.”
“그런 걱정 말고 물고기나 잡자.”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도멤을 보았다. 저 녀석의 신경줄은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눈에 보일 정도의 깊이에 있는 줄기에 배가 부딪치지 않는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멤은 꼬물대며 낚싯바늘에 찌를 모두 끼우더니 우리에게 하나씩 내밀었다. 나는 대충 아무 곳에나 낚싯대를 드리우고 난간에 걸터앉았다.
낚싯대를 드리우기 무섭게 내 낚싯줄이 움직였다. 턱을 괴고 있던 키이엘로가 화색을 띠었다.
“로트! 네 낚싯대에 걸렸나 봐!”
아니 이렇게 빨리……? 나는 낚싯줄을 올렸고, 그 끝엔 아니나 다를까 정말 물고기가 찌를 단단히 물고 있었다. 도멤이 감탄했다. 세상에, 오늘도! 물고기가 잡혀서 신난 키이엘로와 도멤과는 반대로 나는 떨떠름해지고 말았다.
난 정말 낚시에 소질이 있는 걸까……? 랄티아를 구하고 낚시꾼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름대로 돈벌이가 될지도 몰라. 도멤이 이번엔 자신이 가장 큰 물고기를 낚겠다며 기대에 차서 낚싯대를 놓았다. 키이엘로는 별 기대는 안 하는 것 같았지만 일단 낚시를 하러 나왔으니 한다는 듯 대충 걸치고는 나처럼 난간에 흐물텅하게 앉았다.
물고기를 떼어다 나무상자에 던지고 바늘에 찌를 끼우는데, 구불거리는 줄기 사이로 무언가 스치는 것이 보였다. 내가 미간을 좁히며 몸을 기울이자 갑자기 옆구리를 누군가 붙잡았다. 고개를 들자 키이엘로가 놀란 얼굴로 나를 보더니, 자신이 잡은 내 옷깃을 번갈아 힐끔거렸다.
“조심해, 로트.”
“알아, 안 떨어져. 그보다 방금 저 줄기 사이로 뭐 지나가지 않았어?”
“그래? 눈도 좋다. 장어인가? 만약 그렇다면 내가 잡을래!”
도멤이 고개를 빼며 기웃거리다가 난간 밖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놀라서 난간을 붙든 도멤은 한숨을 쉬더니 내 옆구리를 잡은 키이엘로를 보며 버럭 외쳤다. 너무해, 나는 왜 안 잡아줘! 나는 혀를 찼다. 넌 너무 산만해서…….
발카가 내 어깨 위에서 퍼드덕거리며 말했다.
『뭔가를 봤어, 로트?』
나는 발카를 흘끔 보았다. 발카도 몰랐다고? 물론 오로라의 괴이처럼 아무리 바다새라고 해도 알아챌 수 없는 존재들이 있기는 했다. 누가 뭐래도 바다새는 괴물을 무찌르는 쪽이 아니라 날씨를 읽고 순탄한 항해를 기원해주는 쪽이니까. 나는 애써 신경을 낚싯대로 넘기며 바다를 힐끔거렸다.
낚싯대를 잡은 도멤이 휘파람을 부는 것을 들으며 나는 다시 찌를 던졌다. 그리고 아까 본 것을 다시 목격할 수 있을까 싶어 바다를 살피는데,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내 낚싯대가 당겨졌다. 휘청이다가 급하게 난간을 잡고 황당하게 낚싯대를 보는데, 도멤이 눈이 휘둥그레져 외쳤다.
역시 낚싯배 짬밥은 달라도 뭐가 달라! 감탄인지 분개인지 헷갈리는 그 말에 나는 귀찮은 것을 감추지 않고 대충 그것을 당겼다. 역시나 이번에도 꽤 큰 물고기가 찌를 단단히 물고 있었다. 우리가 하는 것을 지나가다 보았는지 세운이 뒤에서 강태공이 여기 있었군, 하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낚싯대를 갑판 위로 던져두고 바다를 응시했다. 키이엘로가 한량처럼 낚싯대를 설렁설렁 흔들며 물었다. 낚시 안 해? 나는 손을 내젓고 하얀 줄기들이 푸른 물을 꿰뚫고 있는 광경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도멤도 나를 보며 말했다.
“로트, 정말 낚시 더 안 해? 요한이 요즘 싱글벙글해서 낚시 더 하라고 성화던데.”
“아까 정말 뭐가 있었단 말이야. 숲의 바다를 모르는 만큼 이런 걸 간과할 수 없어. 괴물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그래?”
도멤은 반박할 수 없었는지 입만 비죽였다. 나는 장난치듯 내 쪽으로 낚싯대를 기울이는 도멤의 행동에 그를 얄밉다는 듯 흘기며 그것을 밀었다. 도멤은 한 번 해본 장난이었는지 더 나를 방해하진 않았다. 정확히는 도멤의 낚싯대도 흔들리기 시작하자, 그는 거기에 정신이 팔려 나를 더 건들 여력이 없었다.
도멤도 커다란 물고기를 낚아냈지만, 키이엘로는 허허롭게 웃으며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낚싯대를 설렁설렁 휘젓고 있었다. 나는 바다에 집중하면서도 내심 그가 저렇게 낚싯대를 흔들어대니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수평선 근처에서 보였던 나무가 코앞으로 가까워지자, 물 밖으로 튀어나온 줄기도 있었다.
나는 그 줄기가 여태 보아온 줄기보다 더 나무 같다고 생각했다. 그야 나무지만. 그때 수면 아래의 흰 줄기가 일순 꿈틀 움직이며 물살 사이로 스르륵 사라졌다. 내가 퍼뜩 몸을 기울이자 키이엘로는 다시 슬쩍 내 옆구리의 옷깃을 잡았다. 나는 그의 손을 때려 떼어놓고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다를 응시했다.
그때 뒤에서 디겔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낚시냐?”
“아저씨! 이것 봐요. 오늘도 로트가 많이 잡았어요.”
“얼씨구, 실한 놈들로 잡았네.”
도멤과 디겔이 대화하는 것을 들으며 다시 줄기들을 하나하나 살피는데, 얼핏 그것들이 수면 위로 자라있는 나무와 다르게 약간의 위화감이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지? 나는 희미한 연기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감각을 물고 늘어지려 했다. 그러나 디겔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것이 먼저였다.
“이제 바로 숲의 바다 안쪽에 도착하는 건 알고 있는 게냐? 혹시 모르니까 낚시는 그만하고.”
“이런…… 키이엘로는 이번에도 피라미 한 마리 못 잡았네!”
“이럴 수가 아쉬워라…….”
키이엘로는 전혀 아쉽지 않은 말투로 낚싯줄을 감아올렸다. 그때 키이엘로의 낚싯줄의 끝을 따라 줄기가 스륵 옆으로 움직였다. 나는 그 순간 줄기를 보며 느낀 위화감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여태 본 것들은 나무줄기라기엔 잔가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줄기를 뒤덮은 것은 나무껍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무줄기라기보다 뱀의 몸통에 가까워 보였다. 나는 번개처럼 깨달았다. 나무줄기에 배가 부딪치지 않는 게 아니다.
줄기가 배를 피한 것이다!
그때 뜨거운 바람이 휘몰아치듯 불어왔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난간에서 떨어졌다. 디겔이 외쳤다.
“숲의 바다로 들어간다!”
나는 더 늦기 전에 외쳤다.
“잠시만, 줄기를 잘 봐요! 저건 나무가 아니라…….”
그때 얽힌 그물처럼 잠겨있던 줄기들이 수면 위로 솟구쳤다. 선체를 감싸고 올라온 줄기는 바닷속에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 두껍고 단단해 보였다. 동시에 명확하게 보였다. 그것은 나무껍질이 아니라 비늘로 덮여있는 뱀의 몸통이었다!
도멤과 키이엘로가 아연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디겔도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그 몸통의 주인이 머리를 들었다. 온통 하얀 비늘은 오팔과 같은 빛깔을 띠었고, 그것의 머리로 갈수록 나뭇가지가 비늘 사이로 왕관처럼 솟아있었다. 이어 턱의 아래로 연두색의 깃털로 된 날개가 퍼드덕거리며 기지개를 켰다.
그것의 머리는 검은바다의 선수를 덮을 수 있을 만한 크기였다. 텐이 키이엘로의 앞을 가로막고, 발카가 내 어깨에서 날개를 펼쳐 내 목덜미를 가렸다. 내가 가까스로 소리를 냈다.
“뱀…….”
그와 동시에 그 기묘한 흰 뱀이 눈을 번뜩 떴다. 새빨간 루비와 같은 눈동자 가운데로 세로로 선 동공이 수축하며 우리를 담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