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45)
바다새와 늑대 (44)화(45/347)
#44화
출항한 뒤 우리가 한참 숲의 주인과 있었던 일을 떠든 다음에는 간부진 호출이 있었다. 키이엘로가 회의에 불려 나가자 나와 도멤은 해먹에 누워 농담이나 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라면 조용하든 시끄럽든 평범하던 갑판 아래가 조금 어수선한 것을 보고 도멤에게 말했다.
“어째 좀 어수선하네.”
“아까부터 그랬어. 그 초월자가 의미 모를 말만 했잖아. 너희를 데려가기도 했고.”
나는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그들에게 큰 문제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키이엘로가 사라졌다면 클루스도가 가만히 있진 않을 것 같으니 문제가 되었겠지. 하지만 나는 일개 신인 선원이고, 딱히 눈에 띄는 편도 아니었으니 나 혼자 사라진 거라면 숲의 바다에 사는 초월자가 질문의 대가로 사람 하나 데려갔다, 하고 끝났을 터였다.
나는 그런 것을 말하는 대신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정확히 뭐 때문에 어수선한 거야? 우투그루가 그래도 문답은 잘 마친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있지. 우홉피아주가 어딜 향하는 건지도 제대로 안 알려줘 놓고는 배반자니 뭐니, 사람 마음 어지르는 말이나 하고…….”
나는 그러고 보니 배반자를 말했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도멤은 해먹 밖으로 다리 한쪽을 걸치고 발끝을 까딱이며 말했다.
“설마 진짜 우리 배에 배반자가 있겠어?”
“그렇지만 초월자가 거짓을 말하진 않을 것 아냐.”
“그건 그렇지만…….”
도멤은 불퉁한 얼굴로 꿍얼거렸다. 안 했을 거란 보장도 없잖아. 그것도 그랬다. 나는 눈을 굴리다가 내 위에 누운 발카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네토르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하지만 내가 추측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나는 이 배의 선원들을 전부 알지 못했고 심지어는 간부진도 전부 알지 못했으니까. 내가 아는 놈들 중 밥맛인 놈이 네토르뿐이니 그를 의심하는 것이지만 거의 심술에 가까운 억지임을 나도 잘 알았다. 그때 도멤이 내게 물었다.
“로트 너는 의심 가는 사람 없어?”
“네토르.”
“걔 말고…….”
“나한테 묻지 마. 내가 이 배 선원들 얼굴도 다 모른다는 건 알고 있잖아.”
도멤은 고개를 설설 저었다. 그때 간부진 회의가 끝난 건지, 키이엘로가 우리 자리로 돌아왔다. 도멤과 나는 그를 반겨주다가 키이엘로의 얼굴이 딱히 밝지 않은 것을 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발카를 품에 안고 내가 곧장 물었다. 우투그루랑 싸웠어? 도멤이 헉! 하며 입을 손으로 가리고 키이엘로를 살폈다.
싸워서 나란히 일반 선원으로 강등됐니? 그 말에 키이엘로는 떨떠름한 얼굴로 우리를 보았다.
“그런 거 아냐.”
“우투그루가 시비 걸면 말해.”
“멋지다, 로트! 대신 싸워주려고?”
“아니, 구경 가려고.”
내 말에 도멤과 키이엘로의 얼굴이 침착하게 변했다. 그래, 다른 누구도 아니고 로트였지. 나는 그 말에 무슨 의미냐고 눈을 가늘게 떴지만 따지지는 않고 키이엘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왜 죽상이야?”
“죽상 아니었어…….”
키이엘로는 민망하다는 듯 제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그러더니 이내 손을 툭 내리고 해먹에 앉아 텐을 끌어안았다. 도멤이 내 품의 발카와 키이엘로 품의 텐을 보더니 부럽다는 얼굴을 했지만 나나 키이엘로나 모두 그것을 무시했다. 키이엘로는 품에 안은 텐의 털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우홉피아주가 향한 곳, 우리 섬일지도 몰라.”
“뭐?”
나는 별생각 없이 ‘왜 그런 결론에 닿은 건데?’ 하는 얼굴이었지만 도멤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키이엘로는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쉬며 거의 누워있던 상체를 일으키고 텐을 놓아줬다. 텐은 몸을 한 번 털고는 키이엘로의 발치에 느긋하게 엎드렸다.
“숲의 주인이 말했잖아. ‘우홉피아주는 사과나무 향이 짙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 ‘화풀이를 하려 한다’.”
“그게 왜?”
나는 드디어 물어보았지만, 도멤은 들은 뒤에야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입을 가리며 해먹에 도로 앉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키이엘로가 날 보며 설명했다.
“우리 섬은 정박하기 위해 섬을 돌 때 절벽 위에 있는 사과나무가 보여. 그 너머로 사과나무가 잔뜩 있거든. 그래서 날이 좋은 날엔 사과 향이 풍기지.”
얼핏 듣기엔 동화 같은 섬이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이엘로가 이어 말했다.
“그리고 화풀이……. 그 녀석들이 화풀이하러 굳이 사과나무 향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면 우리 섬밖에 없어.”
“그럼 지금 항로는…….”
“맞아. 검은바다의 고향 섬으로 귀환할 거야. 이 추리가 빗나갔다고 해도 한 번 들러서 확인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키이엘로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우투그루 녀석도 초월자의 대답에 이걸 생각해냈던 거 같아. 나는 과연, 그때 키이엘로와 우투그루의 낌새가 이상했던 것을 상기하고 눈을 굴렸다. 도멤은 머리를 싸쥐더니 떫은 얼굴을 했다. 키이엘로도 딱히 다르진 않았는데, 둘은 섬으로 귀환하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둘을 보다가 물었다.
“너희 섬으로 돌아가는 건데, 딱히 내키진 않나 봐?”
“음…….”
“나나 키이엘로나 그곳에서 딱히 맞이해줄 가족은 없거든.”
나는 그 말에 눈을 조금 휘둥그레 떴다. 도멤 너도? 나는 그 말이 입 밖에 튀어나오기 전에 삼켰지만, 도멤은 내 생각을 눈치챈 듯 예의 그 소년 같은 미소만 씩 지으며 웃었다.
“그리고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건 없잖아. 로트 너도 딱히 내키진 않을 것 아냐.”
“나? 나는…….”
별로, 라고 말하려다 문득 랄티아가 떠올랐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키이엘로가 쓰게 웃었다.
“우홉피아주가 네게 원하는 것이 있어서 네 동생을 잡아두고 있다면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체되어서 좋을 건 없어. 내 말은…… 굳이 네 동생의 안전 때문만이 아니라 네 동생의 정서에도 말이야.”
정상인이 미치광이 소굴에 있어서 좋을 건 없잖아. 그 말에 나는 누가 내 머리를 때린 것처럼 넋을 놓고 키이엘로를 보았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발카의 꼬리깃을 만지작거렸다. 아냐. 랄티아는 무사할 거야. 설사 네게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내가 구하러 갈 거니까.
하지만 과연 랄티아가 지금 어쩌고 있을지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나는 입을 달싹이다가 눈을 감고 숨을 내쉰 다음 침착하게 말했다.
“괜찮을 거야. 그렇게 약한 애는 아니거든.”
“애가 야무진가 봐. 그러고 보니 로트 동생은 몇 살이야?”
도멤이 애써 밝은 쪽으로 분위기를 돌리려는 듯 웃으며 물었다. 나는 애써 그에게 맞장구치며 열여덟 살, 하고 대꾸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쿡쿡 찔리는 느낌은 여전했다. 겨우 열여덟 살이 미친 해적들 틈새에 잡혀있어. 아무리 머리가 좋고 야무져도 랄티아는 열여덟 살인데…….
잡담을 이어나가려던 나는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려 하자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난 날 보고도 키이엘로와 도멤은 뭐라고 묻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나는 고개를 내젓고 애써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말했다.
“난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
“잠깐, 로트…….”
나는 그들의 대꾸를 들을 새도 없이 후다닥 자리를 벗어났다. 랄티아는…… 랄티아는 괜찮을 거야. 그래야만 해. 하지만 우홉피아주인걸. 나는 아직도 그들의 검붉고 커다란 배를 떠올릴 수 있었다. 검은바다의 두 배는 되는 크기의 해적선은 돛만은 나름 하얀 편이었지만 그것에도 피가 얼룩덜룩 묻어 더러웠었다.
심지어는 가까이 왔을 때 그 배에서는 피비린내가 났다. 그 배가 원래 검붉지 않았는데 피가 묻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나는 검은 난간을 잡고 파란 바다를 노려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에르노리에게 답을 들었어야 했나? 아니면 더 정확하게 물어봤어야 했나? 하필 그때 키이엘로가 와서, 걔 때문에……. 나는 생각을 끊고 한숨을 터트렸다. 자기 대신 날 살린다고 답했던 애 탓을 하고 잘하는 짓이다, 진짜.
나는 잠시간 눈을 감고 있다가 길게 한숨을 쉬고 다시 바다를 보았다.
출렁이는 물결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뭐 하려고 저렇게 예쁠까. 변덕 한 번에 배를 뒤집고 뱃사람을 집어삼키는 주제에. 괜히 그것마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아니꼬운 마음에 찰랑이는 물결을 노려보는데, 발카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로트?』
“……랄티아가 너무 걱정돼.”
나는 갑판 위에 선원이 없는 것을 보고 발카에게 말했다.
“그 애가 내 생각처럼 잘 버티고 있을까?”
『그럴 거야.』
“랄티아는…….”
나는 울 것 같은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난간에 몸을 수그렸다. 랄티아의 회색 눈과 까만 머리카락, 웃을 때면 얄미우면서도 명석함이 빛나던 입꼬리가 떠올랐다.
언니, 하고 부르던 목소리와 항상 또박또박 말하는 말투도. 무언가 말할 때마다 검지를 세우고 가르치듯 굴던 것도, 동생들의 장난에 잔소리를 길게 늘어놓던 모습도, 내게 책의 내용을 줄줄 재잘대던 것도…….
나는 난간에 이마를 댄 채 중얼거리듯 물었다.
“랄티아는 내가 구하러 가고 있다고 믿어줄까……?”
발카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새벽이었다. 내가 랄티아에 대한 생각을 비우고 돌아왔을 때부터 저녁 내내 어색하게 굴던 키이엘로와 도멤도 지쳐 곯아떨어져 있었다. 나는 선잠을 자다가 돌연 퍼뜩 눈을 떴다. 악몽을 꾸고 일어났는데 정작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 순식간에 기억이 사라진 것처럼 어딘가 어정쩡하고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조용한 선실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설치며 잤는데……. 질척한 피로가 온몸에 매달린 느낌이었다. 나는 소리 없이 일어나 유령처럼 노상 갑판으로 나갔다. 새벽하늘은 희미하게 여명이 걸쳐져 파랗고 노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선미의 구석으로 향했다. 기묘했던 예감이 틀리지 않게 선미에서 웅크리고 앉자마자 날카로운 통증이 일어났다. 내장 안에서 칼날이 일어나며 살점을 가르는 것 같은 아픔이었다. 아무래도 이것 때문에 요즘 달거리를 안 하는 것 같은데 점점 통증이 심해진다면 차라리 달거리를 하는 쪽이 더 반가울 것이다.
누가 배에 칼을 쑤셔 넣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카로운 고통이 연신 복부를 걷어차듯 이어졌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웅크리고 있다가 문득 내가 갑판 위를 뒹굴 듯 옆으로 쓰러져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몸이 기우는 것조차 못 느낄 정도였다.
이어 어느 정도 숨죽이던 시간이 지나자 아픔이 사라져갔다.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것과 달리 하늘의 빛은 아까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한 것도 없는데 탈진한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축 늘어졌다. 아냐, 해먹으로 돌아가야지. 나는 겨우 힘을 짜내서 몸을 일으켰다. 입안이 피가 말라붙은 것처럼 비릿했다.
내가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대충 쓸어내며 선미에서 나서는데, 누군가와 마주쳤다. 나는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네토르였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 피곤하게 해, 안 그래도 피곤한데……. 한숨을 쉬며 올려다본 새벽의 하늘이 바다와 같을 정도로 새파랬다. 네토르가 기묘한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병 없다며?”
이런 썅……. 나는 속으로 비속어를 쏟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전염성 없어.”
“내가 물은 건 병의 유무야.”
“…….”
나는 묘하게 그의 말투가 누그러져 있단 것을 깨닫고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갑자기 태도를 바꿀 이유가…….
그때 네토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대답 안 해? 나는 속으로 정정했다. 아니네, 전이랑 다른 건 없군.
“…이건 병이 아냐. 그리고 내가 너에게 명령받을 이유는 없어.”
“왜 없어? 너는 나보다 아래야. 일개 선원 사이에도 연차는 있는 법이니까.”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나는 네토르가 헛소리를 시작했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너는 나보다 아래야’라고 말할 때, 마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이 유쾌하다는 듯 굴었다. 그것에 내 심기가 매우 불편하게 된 것은 별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안 그래도 피곤했고, 하필 내 입장에서 제일 밥맛인 새끼가 앞에서 나대고 있었고, 하늘은 짜증 날 정도로 푸르렀으니까.
그러니까, 내 주먹이 곧장 네토르의 턱주가리를 향해 나간 것은 일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