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46)
바다새와 늑대 (45)화(46/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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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로트……. 왜 그랬어?”
“저 적색 양파 새끼한테 물어봐.”
“누가 적색 양파야!”
도멤은 갑판 위에서 나란히 의자를 두고 앉은 나와 네토르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키이엘로는 어색하게 웃다가 내 얼굴에 남은 상처를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로트? 나는 네토르를 흘끔 보고 말했다.
“걱정되면 옆에 있는 새끼나 전심전력으로 한 대 후려쳐줘.”
도멤이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키이엘로가 전심전력으로 한 대 치면 사람 죽어, 로트……. 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넌 눈치도 없냐? 죽으라고 하는 말이잖아.”
도멤이 다시 중얼거렸다.
“제발…… 숨길 생각이라도 해줘 로트…….”
네토르는 우리가 짜증 난다는 얼굴로 다리를 꼬고 팔을 교차해 껴안더니 혀를 찼다.
“내 얼굴에 난 멍들은 안 보여? 누가 봐도 내가 더 상태가 나쁘잖아!”
“어쩌라고, 새끼야. 누가 쳐 때리는데 얌전히 맞고 있으래? 지는 나 안 친 것처럼 씨부리네, 찌질한 놈.”
“너……!”
네토르는 ‘네가 피할 새도 없게 때렸잖아!’하고 외치고 싶은 것 같았지만 그런 말을 하기엔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던 듯 이를 악물고 주먹만 움켜쥐었다. 나는 저 주먹이 내 어디 한 군데를 스치기라도 하면 핑계 삼아 다시 비 오는 날 먼지 날 정도로 후려 패주겠다고 조용히 생각했다.
새벽부터 쥐어패고 싸운 우리 때문에 잠이 깨버린 클루스도와 디겔은 좀 더 멀리 떨어져서 이마를 짚고 있었다. 디겔은 감탄하는 것 같은 동시에 한탄하는 것처럼 내게 말했다.
“너는 정말…… 타고난 싸움꾼이구나, 로트.”
“칭찬 감사해요.”
“칭찬 아냐, 욘석아! 왜 이렇게 싸우는 게야! 물론 적들과 싸울 때는, 그래, 아주 든든하지만!”
“제 인생의 적이 이 배에서 하나 더 생길 줄은 저도 몰랐어요.”
디겔이 머리를 싸쥐며 외쳤다. 한 마디도 안 지는구만! 나는 패배를 모르는 사람이야. 내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방자하게 늘어지자 도멤은 고개를 설설 저었다. 클루스도는 골치 아픈 얼굴을 지우더니 이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원래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지.
그 말에 나와 네토르는 팍 인상을 찡그렸다. 저 아저씨는 우투그루랑 키이엘로에게 쓰는 수법을 진심으로 우리에게도 사용하고 싶어 하는 건가? 애석하게도, 클루스도의 ‘싸우면서 친해진다’라는 지론은 우투그루와 키이엘로 사이에서도, 나와 네토르 사이에서도 모두 이루어지지 않을 이야기였다.
클루스도는 우리를 크게 꾸짖을 생각은 없는 듯 수염 아래로 호쾌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거기 앉아서 서로의 장점을 세 가지 정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무나.”
내 얼굴이 절로 ‘우리가 세 살배기 꼬꼬마인 줄 아세요?’하는 표정으로 변했지만, 클루스도의 뒤쪽에서 브레딕과 함께 있던 우투그루가 내게 또 헛소리를 하면 자신이 나서겠다는 얼굴을 했기 때문에 의자에 몸만 더 파묻을 뿐이었다. 간부진이 물러가자 도멤과 키이엘로가 내 옆쪽에 주저앉았다.
나는 그들을 흘끔 보고 물었다.
“의자라도 갖고 오지 왜 바닥에 앉아?”
“너랑 같이 벌 받는 거로 보일까 봐.”
나는 도멤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키이엘로가 웃으며 도멤에게 ‘그러게 왜 까부느냐’며 놀렸다. 이젠 완전히 해가 뜬 하늘은 밝아서 하얗게 보일 정도였다. 클루스도가 물러가자 언제나와 같이 내 어깨 위로 올라온 발카가 그걸 보다가 기분 좋게 머리를 내게 부볐다.
『다행히 한동안은 항해에 문제가 없겠어.』
나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발카의 턱을 긁어주었다. 텐은 콧김을 흥 뿜었을 뿐이었다. 네토르는 내가 발카를 쓰다듬는 걸 불만스레 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짐승 따위나 배에 태우고…….”
“새끼가 아가리를 못 털게 만들어줘야 정신을 차리나…….”
“싸우지 마, 로트! 싸우지 마! 또 싸우면 진짜 근신 당해!”
도멤이 헐레벌떡 나를 말리며 외치자 나는 흥, 하고 일으켰던 몸을 다시 의자에 앉혔다. 배에서 근신 당해 봐야 뭐 얼마나 힘들겠나 싶었지만, 겨우 저 녀석 탓에 작은 독방에 틀어박혀 있기는 또 싫었다. 키이엘로가 한숨을 쉬며 네토르에게 말했다.
“네토르, 로트가 불만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나도 텐을 데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줬으면 해.”
“키이엘로, 네가 명색은 간부진이니 내가 말을 듣는 거야. 너에게도 불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
그 말에 키이엘로는 미간을 조금 찌푸렸지만 그러려니 넘겼다. 오히려 듣고 있던 내가 다 짜증이 났다. 자기가 일반 선원 사이에서도 뭐 얼마나 잘났다고 저렇게 콧대가 높단 말인가? 어지간하면 넘어갈 도멤도 고개를 젓더니 말을 얹었다.
“네토르. 그 말은 좀 부적절한 것 같다. 선장님도 신경 쓰지 않는 문제를 왜 네가 불만이야? 게다가 키이엘로는 배에 오르기 전부터 텐과 함께였고, 아무도 그것에 불만을 갖지 않았어.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인제 와서 이러기야?”
“이러다 검은바다가 바다 위의 동물원이 될까 봐 하는 말이지. 한 마리만 있을 때면 몰라도 이젠 새까지. 점점 더 늘어날지 누가 알아?”
네토르의 말에 텐이 작게 웅얼거렸다.
『그래, 새를 내쫓는 거라면 난 찬성이야.』
키이엘로가 그를 쓰다듬는 척 텐의 머리에 작게 꿀밤을 놓았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으나 더 싸우면 이번에야말로 근신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도멤의 말을 떠올리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네토르를 노려볼 뿐이었다.
도멤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그걸 로트에게 말하지 말고 선장님께 공식적으로 건의를 해야지. 이건 그냥 네가 괴롭히려고 꼬투리를 잡는 거로밖에 안 보여.”
“재미있네. 선장님께 말해도 제 아들 편을 들겠지. 너 저놈이 능력이 있어서 부선장 자리에 있다는 듯 말한다?”
그 말에 네토르와 우리 셋 사이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도멤이 입을 다물고 곧 얼굴을 굳혔고, 키이엘로도 희미하게 걸쳐있던 미소를 싹 지웠다. 도멤은 뭐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가 입만 몇 번 달싹이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맙소사……. 도멤의 얼굴을 덮은 손 틈새로 한탄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못 참고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게 차인 의자가 네토르의 다리에 부딪히고 바닥에 넘어졌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선실로 들어가자. 도저히 못 들어주겠네.”
“벌써 내 장점을 찾아냈어? 거참 대단하네. 나는 누구 씨를 아무리 살펴도 단점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첫째, 말 한 번 뭣 같게 하는 재주가 있다. 둘째, 사람 빡치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안다. 셋째, 실패한 인생을 살면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됐냐?”
나는 거의 씹어뱉듯 말하고 도멤과 키이엘로를 잡아 일으켰다. 가자. 내 말에 엉거주춤 일어난 키이엘로가 뭔가 말하려는 것처럼 입술을 축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도멤은 네토르 쪽은 보지도 않고 이마만 짚고 있었다.
네토르는 다리를 꼬고 있는 그대로 나를 흘겼다.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네가 얼마나 대단하신 존재라고 그렇게 콧대 높이 구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남을 그렇게 까내리고 싶으면 네가 먼저 그럴듯한 사람부터 되고 해.”
아이고, 실수. 훌륭하신 분이라면 남을 이렇게 근본 없이 까진 않겠지. 내가 손을 휘저으며 말하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적색 양파 찌꺼기가 이죽거렸다.
“진심이야? 근본 없는 험담이라고? 진짜 근본 없는 건 저 얼굴만 잘난 부선장 아냐?”
“네토르!”
상황을 피하려는 것 같던 도멤이 그의 말에 경악해서 버럭 외쳤고, 키이엘로는 움찔 몸을 굳혔다. 그리고 나는 네토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관자놀이를 주먹으로 갈겼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도멤이 얼굴을 싸쥐었다. 근신…… 근신이다…….
그러나 미처 의자에서 일어날 틈 없이 내가 네토르의 명치를 무릎으로 치고 멱살을 틀어잡자 도멤은 이내 응원하는 얼굴로 외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입을 못 털게 해, 로트!”
그에 오히려 하얗게 질린 건 키이엘로였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두드러진 손뼈로 네토르의 얼굴을 후려 팼다.
그런 나를 키이엘로가 기겁해서 떼어냈다. 검은바다에서 이길 수 없는 악력의 소유자답게 도멤이 매달렸다면 세 대는 더 때렸을 나는 키이엘로의 힘에 그대로 네토르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로트,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어? 저놈이 입을 터는 걸 계속 보기만 할 거야? 넌 화도 안 나?”
나는 키이엘로에게 소리쳤다가 퍼뜩 이 말은 그다지 옳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키이엘로가 머뭇거리며 나를 놔주자 나는 옷깃을 털어 정리했다. 얼굴에 멍이 더 화려하게 핀 네토르를 보며 나는 애써 화를 가라앉히고 키이엘로에게 말했다.
“그래, 네가 화를 내든 안 내든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지. 근데 내가 열 받아서.”
그 잠깐의 소란을 전해 듣고 다시 밖으로 나온 디겔이 멀리서 골치 아픈 얼굴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나는 도멤의 말처럼 정말 근신 징계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거, 선실에 며칠간 좀 쭈그리고 있지 뭐. 디겔이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우리 쪽으로 오려 하는데, 갑자기 마스트의 정찰원이 요란하게 종을 흔들며 소리쳤다.
“해적선이다! 해적선이 보인다!”
그 말에 골치를 앓던 우리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디겔이 외쳤다. 해적? 어떤 해적이지? 그 말에 마스트 위의 장루에서 선원이 고개를 내려 우리를 보았다. 그의 얼굴이 약간의 분노와 약간의 전의에 물들어있었다.
“셀리팜입니다!”
셀리팜? 나는 처음 듣는 이름에 눈을 굴렸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모두 얼굴이 굳어있었다. 디겔이 성큼 내게로 걸어와 내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네토르 놈과의 문제는 나중에 말하자꾸나. 네토르 너도! 지금은 당장 전투준비를 해!”
그러더니 디겔은 곧장 우렁차게 우투그루를 불렀다. 우투그루! 클루스도에게 알려! 그때 누군가 내게 코트를 던졌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그걸 받아 팔을 꿰었다. 내게 코트를 던진 건 베제였는데, 그는 안경 너머로 긴장한 것이 역력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로트! 멍하니 있지 마!”
나는 일단 고개만 끄덕이며 코트를 입고 허리에 벨트를 둘러맸다. 그러면서 어느새 키이엘로가 가져온 검을 차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셀리팜이 누군데?”
키이엘로는 심각한 얼굴로 셔츠 소매를 모아 묶다가 내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내가 셀리팜이라는 해적을 모른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챈 것 같았다. 키이엘로는 짧게 말했다.
“우홉피아주의 산하 해적이야.”
“겨우 산하 해적을 갖고 이렇게 소란이야?”
“겨우……. 그러니까, 로트. 물론 다른 산하 해적들은 ‘겨우’가 맞아. 하지만 셀리팜은 달라. 그들은…….”
그때 선체 옆에 돌연 물기둥이 생겼다. 쾅! 하는 소리에 선장실에서 나온 클루스도가 외쳤다. 포문을 열어라! 하부 포갑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