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48)
바다새와 늑대 (47)화(48/347)
#47화
로지안나에게 떨떠름한 얼굴을 한 키이엘로가 한숨을 쉬었다. 잊은 것 같은데 나 남자야……. 너희 배는 남자는 못 오르잖아. 그 말에 로지안나는 혀를 차며 자신의 양팔을 교차해 팔짱을 꼈다.
“알아, 당연히. 하지만 너처럼 잘생기고 실력도 좋은 남자라면 선장님도 뭐라 하진 않으실걸.”
“아니, 됐어. 그냥 날 놀리려는 거지.”
키이엘로는 이마를 짚으며 손을 휘저었다. 이미 여러 번 당해본 적이 있다는 어투였다. 나는 도멤을 팔로 툭 치며 말했다. 키이엘로에게 친구가 더 있는 모양인데. 그 말에 도멤은 웃음을 참는 얼굴로 눈을 굴렸다. 요한이 로지안나의 뒤에서 너도 이만 셀리팜으로 돌아가라고 위협하자, 로지안나는 고개를 한 번 까딱이고는 키이엘로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털 듯 두드렸다.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말해. 나는 네가 꽤 좋아.”
“난 싫어…….”
“앙칼지긴.”
키이엘로의 코를 손가락으로 치려는 것을 그가 고개를 틀어 피하고는 로지안나를 정중히 밀어냈다. 네 배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로지안나. 그 말에 로지안나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고 셀리팜으로 돌아갔다. 그녀를 구경하는 것 같던 셀리팜의 해적들이 로지안나가 돌아오자 우르르 그녀에게 몰려가 웃고 떠드는 것이 들렸다.
키이엘로는 잔뜩 기가 빨린 것 같은 얼굴로 피곤한 듯 비척이며 우리에게 걸어왔다. 나는 장난으로 말했다.
“그래, 로미오와 줄리엣. 딱 좋네.”
내 말에 키이엘로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얼굴을 손에 파묻더니 마른세수를 하고는 말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말아, 로트. 나는 어깨만 으쓱이고 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결론이 날 때까진 해먹에 가 있자. 무엇보다 네 코트 꼬라지 좀 봐! 이젠 진짜 거의 걸레 꼴이라니까.”
내 말에 키이엘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게 맞은 어깨를 문질렀다. 나는 설마 그게 아픈 건 아니겠지, 하며 도멤과 선실로 향했다. 우리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 같던 우투그루도 로지안나와 키이엘로를 봤다가 불쾌한 듯 고개를 저으며 브레딕과 세운의 선실로 들어갔다.
갑판 아래로 내려가 해먹에 온 키이엘로는 자신의 코트를 벗어 살펴보더니 침착하게 말했다. 버려야겠다. 나와 도멤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며 동의해줬다. 이리저리 찢기고 뚫린 코트는 조금 꿰맨다고 입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와 도멤도 자신의 코트를 살펴보았지만 내 코트는 끝만 조금 헤졌을 뿐이었고, 도멤의 것은 꿰매면 될 정도였다.
도멤이 자신의 해먹 옆에 있는 상자에서 반짇고리를 꺼내며 말했다.
“그런데 네가 로지안나와 아는 사이인 건 또 처음 알았어.”
“셀리팜과 우리 배는 만나기만 하면 싸워댔잖아. 지금처럼 여유 있게 말할 시간은 없었지.”
키이엘로는 코트를 둘둘 말아 한구석에 던지며 말했다.
“물자 조달을 위해서 육지에 있을 때 몇 번 마주쳐서 아는 사이야.”
“어쩌면 걔가…….”
도멤은 ‘어쩌면 걔가 너에게서 정보를 얻으려 했는지도 몰라’ 하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키이엘로는 속이 울렁거린다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도멤의 말을 막았다. 그럴 리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자.
나는 그걸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정보를 얻으려는 게 뭐가 나쁘지, 하고 생각했다가 퍼뜩 로지안나가 그 정보를 어떻게 얻는다고 했는지를 떠올리고 침착하게 물었다.
“잤어?”
“로트! 말 좀! 곱게 좀!”
키이엘로가 헛기침을 크게 하는 것과 동시에 도멤은 기겁했다. 키이엘로는 강력하게 부정했다. 절대 아냐! 나는 내가 너무 말을 무심코 했음을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무 놀라서 갑자기 말이 튀어나왔네. 미안해. 키이엘로는 약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니라며 고개만 저었다.
나는 대충 해먹에 기대며 말했다. 하긴, 그래. 전에 순결하다고 말하셨었지. 키이엘로가 헛기침했다. 정말인데 좀 믿어줘……. 나는 어깨만 으쓱였다. 물론 내가 키이엘로를 안 믿는다는 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이야 남녀노소 관심을 살 만한 것이었고, 뭐 로지안나가 키이엘로에게 관심을 보이긴 했어도 어쩌면 정말 말랑한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엔 어려운 태도였다. 담백한 친근감에 비롯된 몸짓이었지. 딱히 꿍꿍이가 보이지도 않았고 말이다.
뭐 다른 선원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지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갑판 위에서 키이엘로와 로지안나를 힐끔대던 선원들과 우투그루를 떠올렸다. 둘 다 그럴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사실이 어떤지는 상관없이. 나는 발카를 쓰다듬다가 문득 키이엘로한테서 이상한 버릇을 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발카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어.”
“뭐가?”
“우홉피아주 말이야. 검은바다가 우홉피아주를 배신한 건 8년 전이랬고 셀리팜이 배신한 건 5년 전이라고 했잖아.”
“그렇지. 아니, 잠시만…….”
“우홉피아주가 셀리팜이 배신할 걸 알고 정보를 통제했을까? 아니면 왜 검은바다가 배신하고 떨어져 나간 걸 셀리팜에게 숨겼지?”
내 말에 도멤과 키이엘로가 그 생각은 못 했던 듯 턱을 잡고 골똘히 머리를 굴렸다. 도멤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확실히 이상하네. 검은바다는 8년 전 그 전투 이전부터 떨어져 나올 준비를 은밀하게 하고 있었어. 그러니 우홉피아주는 분명 눈치를 못 챘겠지. 그런데 그걸 3년 넘게 셀리팜에게도 숨겼다는 건…….”
“숨길 이유가 있던 건가?”
키이엘로가 물었다. 키이엘로는 검은바다가 반란하던 당시에 합류해서인지 이쪽 방면으로는 도멤이 가장 많이 알고 있었다. 도멤은 잠시 머리를 맹렬하게 굴리는 것 같더니 말했다. 너희는 추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난 도통 모르겠다……. 나를 혀를 찼다. 그러자 키이엘로가 말했다. 단서라도 늘어놔 봐.
그에 도멤이 손가락을 접으며 그 당시의 셀리팜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음, 일단 8년 전에도 셀리팜은 산하 해적이었고, 사실 산하 해적보다는 자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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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올라탄 식객이었지. 지금은 배가 바뀌었지만……. 그리고 셀리팜은 스칼렛의 의지에 따라 여자 선원만 고집했고, 그나마 있던 남자 선원들은 우홉피아주로 옮겨갔어. 나도 전해 들은 게 다지만.”
도멤은 어른들에게 주워들은 것을 기억하려는 듯 턱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음, 음, 그리고, 하며 중얼거렸다.
“본선에 오른다는 것을 선장님이 반대한 것 같고, 계속 자매선으로만 지냈고. 스칼렛이 우홉피아주 선장인 페데르와 그렇고 그런 사이…… 잠깐!”
“그냥 욕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애인이었어?”
“그래! 그리고 내 추측에 의하면…… 어쩌면 페데르가…… 스칼렛에게 차이기 싫어서…… 비밀로 한 건…….”
“무슨 낭만극을 생각하는 거야? 그 둘이 진짜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사이였다고 확신해?”
내 말에 도멤은 민망한 것처럼 헛기침했다, 그러자 키이엘로가 대신 항변했다. 하지만 일리는 있는 말이야. 나는 흠, 하고 해먹에 몸을 파묻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스칼렛이 우홉피아주를 배신한 이유는 뭐지? 그 정도의 사이에서 말이야…….
하지만 연인관계라는 건 한 번 돌아서면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경우도 있는 법이었다. 그런 류의 감정을 느껴본 적 없는 나보단 나이대가 지긋한 편이라지만 스칼렛과 그 선장 놈이 좀 더 감수성이 풍부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미친 짓을 일삼는 사람을 보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느니 하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달리 뭐라 하겠는가?
나는 문득 그럼 검은바다가 우홉피아주를 배신한 이유는 뭐지, 하고 생각했다. 도멤이 그 이유에 키이엘로가 연관되어있을 거라고 했다면 적어도 어른들 사이에서 그 말이 돌았다는 뜻이었다. 나는 슬쩍 키이엘로를 보았다. 키이엘로는 도멤과 뭐라고 떠들다가 내 시선에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그 잘생긴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굳이 본인에게 물을 필요는 없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시선을 돌리고 한숨을 쉬었다. 도멤은 찢어진 코트를 꿰매고는 팡 펼치며 자화자찬을 했다. 나는 대충 박수를 쳐주며 말했다.
“앞으로 우리 바느질은 네가 하는 거로 하자.”
“이렇게 시켜 먹기야?”
“왜, 잘하는 놈이 해야지.”
나는 잘하지도 못하는데 여자애란 이유로 섬에서 얼마나 부려 먹혔는지 이놈들이 알까. 물론 모르겠지만. 그때 선원이 키이엘로에게 와서 회의가 끝났다고 알렸다. 키이엘로는 알겠다고 대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도멤도 따라 일어나자 키이엘로는 묘한 얼굴을 하더니 목덜미를 쓰다듬던 텐을 내려주고 말했다.
“같이 갈 거야?”
“그럼 뭐 우리가 못 갈 곳 가냐?”
“맞아. 끽해야 갑판에 같이 나가는 거로 유난이야. 키이엘로, 친구 없는 거 티 내지 말자!”
도멤의 뼈 때리는 말에 키이엘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도멤 말본새가 로트를 닮아가……. 그 말에 나는 반박했다. 나는 저렇게 말 안 해. 도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더 깡패처럼 말하지.
아주 잠깐 도멤을 쓰다듬어주는 시간을 가진 뒤 우리는 나란히 노천갑판으로 나갔다. 갑판 위에는 스칼렛과 메르디가 클루스도와 디겔을 마주 보고 나와 있었다. 도멤이 내게 쓰다듬어진 머리를 문지르며 속닥였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데.”
“휴전 협상이 잘 된 모양이지.”
내 말과 동시에 스칼렛이 말했다. 그럼 나중에라도 마주치지 말자고. 디겔이 혀를 찼다. 그게 동맹 맺은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이야? 나와 도멤은 시선을 교환했다. ‘동맹’? 키이엘로는 간부진 사이로 걸어가 우투그루 옆에 섰다. 클루스도의 뒤로 번듯한 부선장 둘이 나란히 있는 모습은 둘의 사이가 어떻든 꽤 그럴듯하게 보였다.
메르디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서로에게 엄청난 재난이 닥치지 않는 이상 돕는 일도, 적대하는 일도 없는 거야.”
“그래. 우홉피아주를 칠 때는 전서구를 보내고.”
그들은 이후로도 무언가 더 확인하더니 마지막으로 스칼렛과 클루스도가 서로 악수를 꽉 했다. 협력의 의미보다 힘겨루기 같은 악수였다.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되는 건가 하는 것과 동시에 메르디가 돌아서며 물었다.
“그런데 정말 저 새 바다새가 아닌가?”
“뭐, 로트의 새?”
디겔이 콧잔등을 구기며 날 돌아보았다. 나는 몸을 조금 뒤로 물렸다. 디겔은 잠시 나를 보다가 하늘을 보며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어 말했다. 그럴 리가 없지. 설령 그렇다 해도 자네들에게 넘기진 않아. 그 말에 나는 내심 안도했다. 그러나 그에 돌아온 스칼렛의 대꾸는 더 황당한 것이었다.
“뭐, 메르디는 아닌 것 같지만 난 저 잘생긴 청년은 별 관심 없어. 대신 나는 네 아들이 탐나는데, 클루스도.”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키이엘로에게로 향했다. 분명 클루스도의 아들은 두 명인데도 그랬다. 심지어는 우투그루까지 키이엘로를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들고 있었다. 키이엘로는 잠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것처럼 눈을 감더니 한숨을 쉬었다.
“절 말하는 건 아니겠죠?”
“너 말고 달리 누가 있어?”
확인 사살에 키이엘로는 잠시 말을 잃었다.
“아들은……, 더 있는데.”
“어이, 늑대소년.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너 같은 놈이 필요해. 응? 알잖아.”
그 말에 키이엘로의 얼굴에 선명하게 거부감이 떠올랐다. 클루스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가 키이엘로를 알아? 그러자 메르디는 코웃음을 치며 스칼렛 대신 말을 받았다.
“저놈만큼 사창가를 꿰고 있는 놈이 누가 있다고?”
그 말에 우투그루가 인상을 구겼고, 키이엘로는 눈에 띄게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조금 수치스러운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 같았다. 클루스도가 버럭 소리쳤다. 헛소리! 그에 메르디와 스칼렛은 순순히 물러났지만 셀리팜으로 향하면서 키이엘로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참지 않았다.
언제든 이 배가 질리면 우리에게 오라고, 꼬마야.
키이엘로는 얼굴을 굳히고 그들을 무시하고 있다가 둘이 자신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자 곧장 짜증 난다는 듯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다가 그는 나와 도멤을 보고는 몸을 움찔 굳혔다. 낌새가 또 삽질이나 하면서 우리에게 오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라 나는 한숨을 쉬며 먼저 그쪽으로 걸어갔고, 도멤은 진저리를 치며 후다닥 키이엘로에게 뛰어갔다.
“으! 주책이야, 늙은 아줌마!”
“들리면 어떡해? 조용히 욕해.”
“하지 말라고는 안 하는구나.”
키이엘로는 그 말에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다가 결국 얼굴을 손으로 싸매며 한숨을 쉬었다. 다시 돛을 펴고 두 배가 모두 각자 출항하려 하는데, 갑자기 셀리팜의 난간 쪽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어이, 파란 눈!
돌아보니 메르디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메르디 뒤에 있던 셀리팜의 해적들이 약간의 호들갑을 떨며 나를 힐끔힐끔 보았다. 찌푸리는 몰골이 재수 없어 보인 모양이었다. 내가 키이엘로와 도멤에게서 조금 떨어져 그들에게로 몸을 돌리고 불퉁하게 뱉었다.
“뭔데요?”
“듣자 하니 네 여동생이 그 약탈자 놈들에게 잡혀있다며?”
그 말에 내가 인상을 구겼다. 메르디는 낄낄 웃으며 외쳤다.
“사창가에 안 던져지나 조심해라! 우리가 그 새끼들이라 하면 진저리치는 것도 그 짓에 환장해서니까. 아니면 그 핑계로 놀러나 가든가.”
나는 누가 내 뺨을 때린 것 같은 충격에 휩싸여 메르디를 보았다. 감히, 감히! 내가 분기탱천해 이를 갈며 난간 쪽으로 성큼 걸어가려 하자 도멤과 키이엘로가 놀라서 뛰어와 말렸다. 로트, 진정해! 그러나 그러든 말든 메르디는 셀리팜 위에서 유유자적 나를 보며 웃었다.
“난 사내놈이 도도하게 구는 게 싫어. 저렇게 낯짝을 구겨야 제맛이지.”
나는 번지수 잘못 찾았다고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머리가 얼어붙은 것처럼 차게 식는 것과 동시에 내가 그들을 노려보자, 조금은 찔끔했는지 메르디는 난간에 걸쳤던 팔을 거두며 입을 비죽였다. 미친 새끼, 꼬나보기는…….
나는 도멤과 키이엘로를 뿌리치고 그들을 노려보다가 발카를 불렀다. 그러자 발카는 순식간에 날아가 메르디의 눈가를 발톱으로 긁어놓았다. 도멤과 키이엘로가 입을 떡 벌렸다. 로트! 나를 부른 도멤이 이내 포기한 듯 말했다.
“그래, 많이 참았다 로트…….”
메르디가 긁힌 눈가를 싸쥐고 욕설을 내뱉었다. 나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
“또 한 번 그 애에게 그딴 개소리를 지껄여봐! 그때는 네 눈깔을 파내줄 테니!”
내가 외치는 소리에 셀리팜의 해적들이 질색하듯 난간에서 물러나 배 안쪽으로 사라졌다. 메르디도 욕을 지껄이다가 미친놈 건드렸다며 선실로 향했다. 내가 입술을 깨물고 돌아서는데, 셀리팜의 선미루에 서서 나를 바라보던 스칼렛과 눈이 마주쳤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이 나를 응시하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입꼬리를 올리더니 우렁차게 외쳤다.
“출항한다!”
셀리팜이 뱃고동을 울리며 출항하는 것을 보며 나는 내 어깨에 다시 앉은 발카를 보았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욕만 내뱉었다. 젠장, 젠장! 랄티아는 무사할 거야! 저 미친 항해사가 괜한 시비를 건 거라고!
그러나 곧 나는 욕을 짓씹던 입도 그저 꾹 다문 채 셀리팜의 체리목 선체를 죽어라 노려보았다. 여자 해적단이라는 특이한 존재와의 마주침은 그렇게 최악으로 끝이 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