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5)
바다새와 늑대 (4)화(5/347)
#4화
“―이복형제?”
“그래, 사실 둘 다 키가 길쭉한 거 외에는 닮은 게 없잖아? 머리카락 색부터가…….”
“그건 그래도 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나와 도멤, 키이엘로는 주방에 와서 선원이 주는 샌드위치를 우물우물 씹는 중이었다. 키이엘로는 슬쩍 자리에서 빠지려다가 도멤이 붙잡는 탓에 우리와 같이 앉아 있었다.
어쨌든, 형제끼리 안 닮아도 뭐… 부모 양쪽이 연달아 힘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지. 나도 내 동생과 눈동자 색이 달랐다. 그나저나 연어가 맛있네. 키이엘로가 사 온 훈제연어라고 했던가.
내가 이 배에 오르기 이전에, 키이엘로는 물자 조달을 위해 한 달 정도 전부터 따로 나와 육지에서 머물렀다고 했다. 그래서 상하지 않고 짐이 되지 않는 자잘한 물건만 사고, 해적선이 정박하기로 한 날 며칠 전부터 나머지를 구매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선도가 중요한 식료품은 오늘 새벽부터 샀다고 말했다.
도멤은 그 이야기를 퍽 흥미롭게 들으며 중간마다 ‘그래서 사과는 언제?’라고 이죽거렸다. 키이엘로는 그때마다 힐난하듯 눈을 가늘게 뜨긴 했지만, 그럭저럭 재미있게 얘기를 늘어놓았다. 사과 수레를 미는 할아버지가 어떤 무뢰한 때문에 넘어져 사과에 멍이 들자, 그걸 팔 수 없어 곡하는 것을 듣고 자신이 샀다는 이야기였다.
도멤은 내게 분명 키이엘로가 그 무뢰한을 혼쭐을 내줬을 거라며 속닥였다.
물론 난 회의적이었다. 글쎄, 일단 너희의 정체가 자선단체가 아니라 해적인 점을 생각해주면 좋겠어.
그 뒤, 키이엘로는 아까 사과로 배를 채웠다는 말이 무색하게 두툼한 소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복스럽게도 먹는 중이었다. 뒤이어 나에게 키이엘로와 우투그루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멤은 크림빵을 한 입 베어 먹고 있었다. 크림빵은 비싸고 보관기간이 짧아 물자가 조달된 때에나 먹을 수 있는 별미였다.
그의 옆에서 텐이 키이엘로 앞의 그릇에서 고기를 혀로 날름날름 빼먹고 있었으나, 그걸 빤히 보는 키이엘로는 딱히 말리진 않았다. 나도 내내 조용히 내 어깨에 앉아 있는 발카에게 알이 굵은 청포도를 쥐여 준 참이었다. 두 동물이 각자 음식을 먹는 것을 구경하던 도멤이 난데없이 말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양쪽에 동물이 있으니까 좋다. 내가 말한 적 있었나? 내 꿈이 동물들과 교감하는 거라고…….”
“헛소리 그만하고 말하던 거나 다 말해.”
“내 꿈 취급 좀 해줘…….”
“내가 말해줄게. 어차피 지내려면 알고 있는 편이 낫고.”
너희 내 말 안 듣는구나……. 결국 무시당한 도멤이 눈물을 훔치든 말든 키이엘로는 입에 들었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우투그루랑은 이복형제 사이야. 따지자면 우투그루가 본처 자식인 거고, 나는……. 음, 여하튼.”
키이엘로가 부자연스럽게 말을 끊더니 물로 목을 축였다. 더 길게 말하지 않아도 예상이 되었기에 나는 더 캐묻진 않았다. 어딜 가나 이런 사연들은 있는 법이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굳이 알고 싶은 건 아니었다.
말마따나 알아두는 편이 나으니까 듣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샌드위치를 무는데, 키이엘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느 쪽이 형인지 동생인지……. 그건 잘 몰라. 딱히 중요하지도 않고. 난 아마 내가 동생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 자식한테는 말 안 해주고 있지. 재수 없잖아.”
나는 그의 말에 별 생각 없이 한 번 덧붙여보았다.
“그럼 이제 내가 가서 말하면 되나?”
“안 할 거지?”
키이엘로가 놀라서 날 보며 물었다. 나는 태연하게 그를 보며 생각했다. 역시 얼굴 한 번 너무 잘생겼다. 만약 정말 말할 속셈이었더라도 저 얼굴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어차피 장난이었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키이엘로는 내가 정말로 우투그루에게 가서 밀고하려 한다고 생각했는지 엄청나게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왜지. 그 녀석이랑 친해 보였나? 안 친한데.
염소처럼 샌드위치를 씹고 있는데, 키이엘로가 멋쩍어하며 말했다.
“어쨌든……. 적자가 서자를 탐탁스럽잖게 여기는 것도 이해 못 할 건 아니지. 그냥 그런 거야. 우투그루는 날 싫어하고, 나도 딱히 가만히 욕만 듣고 앉아 있을 성격은 아니라서 마주치면 싸우고…….”
“그런데 얘네 둘이 몇 년 전만 해도 엄청나게 사이좋았어.”
“도멤.”
갑자기 끼어든 도멤의 말에 키이엘로는 당황하며 그를 불렀다. 미약하게 위협하는 것 같은 호명에 도멤은 능청 부리며 종알댔다.
“어이구, 입이 실수를!”
“내 생각엔 너도…… 입 간수 잘해야 하지 않을까?”
“죄송해요…….”
살려주세요. 별 위협이 담기지 않은 말에도 곧장 꼬리를 내린 도멤이 칭얼대는 걸 대충 밀어낸 키이엘로가 날 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도멤이 한 얘기는 못 들은 거로 해. 어찌 됐든, 지금은 사이가 남보다 못하니까. 나는 우투그루 녀석이 재수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 자식이 이 배의 선장 후보로 일하는 건 상관없어. 그래서 원래는 번갈아 가면서 해야 하는……, 이를테면 육지에서 물자를 들여오는 것처럼, 배를 오래 떠나있는 일은 내가 굳이 도맡아 하는 거고.”
“복잡하네.”
“복잡하지.”
키이엘로가 가볍게 수긍하며 다시 샌드위치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나는 잠시 그가 해준 말을 되감으며 샌드위치를 물다가 도멤이 무언가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걸 알아채고는 느릿하게 입을 우물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샌드위치를 씹다가 삼키고는 물었다.
“뭘 봐?”
“정말 매정하긴……. 이젠 네 얘기도 해봐!”
“내 얘기를 캐내려고 이런 얘길 해준 거야?”
“이건 그냥 여기서 생활하려면 알아두는 게 좋은 거고! 당연히 해줬을 거야!”
도멤이 손을 내저으며 둘러대자 대충 수긍한 나는 샌드위치를 마저 입에 쑤셔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애초에 해적단을 가족 취급이라니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가족이 별거인가. 간단하잖아. 이 배의 모든 사람은 우홉피아주에 원한이 있으니까.”
도멤이 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다시 나온 이름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아 얼른 입안의 샌드위치를 삼켰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덩어리 감에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나름 평화롭던 작은 섬이 문득 떠올랐다.
“너도 듣기론 동생을 찾아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맞아.”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도멤의 말에 나는 둘을 슬쩍 흘기고는 고개를 설설 저었다.
“왜, 아직 의심되는 신입이니까 호구조사 좀 단단히 하라든?”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도멤은 화들짝 놀라다가 이내 우물쭈물하며 손에 쥔 빵조각을 만지작거렸다. 묘한 침묵 탓에 대치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발카가 날개를 펄럭이며 위협적으로 목울음을 냈다. 그러자 텐 역시 지지 않는단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문득 미묘하게 굳어져 날이 선 분위기를 느끼고 손을 멈췄다.
주방 안의 선원 중 가까이 있는 이들이 내 쪽을 갑작스럽게 주시하고 있었다. 완전히 감시하고 있었군……. 나는 도무지 이 해적선에 정을 붙일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 딱 봐도 목적이 있는 해적선인데 목적도 같지 않은 이방인이 타면 안 되겠지.”
“아니, 진짜 난 그냥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변명하듯 말을 꺼내던 도멤도 선실의 공기를 느끼고 말을 멈췄다. 그가 입을 헤 벌리고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자 키이엘로는 이유식을 죄다 흘리고 먹는 아이의 수발을 들어주듯 도멤의 벌어진 입을 다물게 해주었다. 아무래도 도멤 또한 주방의 선원들이 은근슬쩍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챈 듯했다.
나는 잠시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어차피 처음 배에 오를 때 간부진에게 설명하긴 했었지만, 그 이야기가 일반선원에까지 전해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그다지 소용은 없는 것 같았다. 조금 중얼거리듯이 말이 나간 것이다.
“내가 살던 섬이 우홉피아주에게 습격당했어.”
“오, 이런.”
“그중에 내 가족들은 무사하지 못했어.”
“안타깝지만 자주 있는 일이네.”
도멤이 꿍얼거리는 사이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의심을 크게 받지 않으면서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정보를 선별해야 했다. 도멤과 키이엘로는 입을 딱 다물고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 가족들은…… 나를 빼고 모두 죽은 줄 알았는데.”
눈앞에 검은 머리카락이 스치는 것 같았다. 올이 가는 머리카락의 틈새로 얼핏 하늘색으로 보이는 회색 눈동자가 뇌리에 선연했다. 책을 꼭 쥔 손과 웃는 입술 사이의 고른 이가 반사되는 빛처럼 새하얬다. 조개로 만든 풍경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절로 눈가가 짓무르듯 일그러졌다. 지금 어쩌고 있을까. 안전할까? 다친 곳은 없을까? 갑작스레 드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는 애써 말을 끝냈다.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우홉피아주한테 납치되었다고 말이지.”
“그, 굉장히 미안한 말이지만…….”
“잡혔으니 살아있을 경우가 적다고? 알아. 하지만 아냐, 걔는 살아있어.”
식탁 위로 올렸던 손에 힘을 줘 주먹을 꽉 쥐자, 발카가 내 옆머리에 머리를 비벼왔다. 부드러운 깃털의 감촉에 속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
“걔는 정말로 똑똑한 애야. 그런 애가 쉽게 죽을 리는 없어.”
“음……, 로트.”
“그리고.”
도멤이 어물어물 말을 꺼내려는 것을 뚝 잘라내며 내가 고개를 들었다. 날 선 시선으로 미묘하게 굳어 있는 키이엘로와 우물쭈물하는 도멤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내게 바라는 게 있는 건 우홉피아주야.”
“뭐?”
키이엘로의 눈이 크게 뜨이고 도멤은 반쯤 벌떡 일어났다가 도로 앉았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우홉피아주가 내게 한 일이 별일이긴 했던 모양이다. 선장인 클루스도도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미묘한 반응이었으니까 말이다. 발카를 흘끗 일별하고 나는 찌푸린 인상을 펴지 않은 채마저 입을 열었다.
“그놈들이 나한테 바라는 게 있다고. 난 대충 그게 뭔지 알 것 같지만……. 어쨌든, 내 동생은 쉽게 죽이기 어려운 위치일 거란 말이야. 물리적인 위협이 제외되었다면 머리싸움으로는 내 동생이 질 리가 없어.”
“우홉피아주가 너에게서 바라는 게 뭔데?”
도멤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안 알려줄 건데.”
“아! 진짜! 궁금하게!”
“안 알려줄래. 소문나서 좋을 건 아닌 것 같아.”
“으악! 이해는 하지만! 키이엘로! 넌 안 궁금해?”
도멤이 머리를 쥐어뜯다가 급기야 키이엘로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었지만 키이엘로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에……. 길게 늘이는 대꾸에 도멤은 학을 떼며 칭얼거렸다. 악! 왜 내 주변엔 죄다 이런 놈들뿐이야!
둘의 만담을 적당히 한 귀로 듣고 넘기며 하얗게 질린 주먹을 풀었다. 뜨끈하게 손바닥 안으로 피가 도는 느낌이 소름 끼쳤다. 작게 말했으니 주변에 있는 선원들도 제대로 듣진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이 이야기를 간부진이 굳이 일개 선원들에게까지 알리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갔다. 섣부른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양이었다. 새삼 너무 대책 없이 이 녀석들을 믿고 떠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나는 도멤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너도 어디 가서 크게 떠들진 마.
내 말에 도멤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잡고 있던 키이엘로의 멱살을 놓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한데 진짜 안 진지해 보인다……. 나는 그 말도 굳이 꺼내진 않았다.
나는 손톱자국이 둥글게 박힌 손바닥을 보고 있다가 시선을 돌렸다. 파도가 넘실대는 아래로 기억 속의 하얀 백사장이 어른거렸다. 나는 이내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튼 나는 키이엘로의 시선이 발카에게 박혀있는 것을 보고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되었다.
이 자식, 왜 발카를……. 갑작스럽게 새가 신기해서 본다고 하기엔 타이밍이 너무 애매하다는 것이 걸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키이엘로에게 뭐라 뭐라 징징대던 도멤이 놀라서 나를 보았다.
“어? 뭐야, 왜? 아직 배고프냐?”
나는 키이엘로를 바라보다가 그가 내 시선을 알아채기 전에 도멤에게로 눈을 돌리고 대꾸했다.
“……아니. 나 마스트로 돌아갈게.”
“지금? 벌써?”
“좀 쉬어야겠어.”
도멤과 대화하는 사이에 키이엘로는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눈치챈 듯 시선을 급하게 돌렸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심지어 이제는 텐까지 이글거리는 노란 눈으로 발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정오만 겨우 넘은 시간인데, 하며 도멤이 꿍얼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걸음을 옮겼다. 속이 메슥거려 욕지기가 치밀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뒤져도 본질은 해적이다. 가족이니 어쩌니 취급을 해도, 말만 가족이지. 애초에 누가 가족이라고 들인 사람을 신고식이랍시고 마스트의 장루에 박아두냔 말이야. 이들이 발카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우홉피아주에게 무슨 짓이든 해보기 위해 나와 발카에게 허튼 짓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역시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던 걸까? 나는 랄티아처럼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란 말이야…….
게다가 발카 외의 말하는 동물……. 그리고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것 같은 키이엘로…. 순식간에 머리가 엉켜 들어갔다. 푸른빛의 새, ‘바다새’는 바다 그 자체로 빚어진 동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바다새가 나와 함께인 걸 알게 된다면, 이 배의 순탄한 항해를 위해 이용된다면…….
애초에 나는 배에 타면 안 되는 존재였지. 절대 들킬 수는 없어. 발카만을 뺏어가고 나를 바닷속 물고기 밥으로 내던진다는 생각은 조금만 마음을 나쁘게 먹으면 누구든 할 수 있다.
나는 좀 더 빠르게 자리를 박차고 갑판으로 나갔다. 마스트의 위로 올라가기 위해 얽힌 돛대 줄을 잡는데, 뒤쪽에서 쫓아 나온 듯 키이엘로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못 들은 척하며 위로 올라가자 키이엘로는 더 쫓아오진 않고 장루의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나부끼는 사이로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놀란 듯 동그랗게 뜨여 있는 눈동자가 햇살처럼 터무니없이 순진해 보여서 나는 회피하고 싶은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이어 늑대까지 날 똑바로 보고 있다는 것에 나는 한쪽 눈을 찡긋 일그러뜨리고는 장루로 들어갔다. 일주일간 나름 조용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되돌아온 부선장 탓에 다시 기분이 엉망으로 꼬여갔다.
그때, 나를 따라서 날아온 발카가 웅얼거렸다.
『저 늑대, 정체가 뭐지? 파악하느라고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있었어.』
“잘했어, 발카. 키이엘로가 아무래도 늑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보였어……. 네 목소리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곤란해, 바다새를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알게 된다면 네가 위험할 수도 있어. 해적들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알고 있지?』
당연한 말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무릎 사이에 고개를 숙였다. 나는 가만히 그렇게 쪼그리고 있었다. 피로감이 뒤늦게 온몸을 덮쳐와 꼼짝할 기운도 없었다. 거기에 더해 조바심이 마음을 부채질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조급함만이 치밀었다.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발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뺨에 부리와 머리를 비빌 뿐이었다.
데구르르, 구르는 소리를 따라 나는 장루 안을 돌아다니는 배가 든 유리병을 흘긋 보고는, 누워서 담요를 덮었다. 그때 다시 도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담요의 틈으로 병이 굴러와 닿았다. 유리병의 바닥에는 「키이엘로」라고, 짓눌린 것처럼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힘껏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새로운 부선장과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
* * *
“로트 녀석 이상한 구석이 있단 말이지.”
도멤이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는 해먹에 드러누우며 말하는 것에 대강 대꾸해주며 키이엘로는 텐의 목덜미를 문질렀다.
그는 도멤의 ‘노는 것 한정으로 지치지 않는 체력’에 다시금 감탄하는 중이었다. 이 미친놈에게 끌려다닐 때마다 튼튼한 제 체력이 낡아가는 느낌이었다. 이상하다……. 분명 도멤보다 내가 더 체력이 좋은데…….
키이엘로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어쩌는지는 모른 채 도멤이 다시 말했다.
“로트 말이야, 되게 예민한 인상이지 않아? 실제로도 그렇고…….”
키이엘로는 다시 조용히 생각했다. 선실 복도를 거의 끌려가듯 마구 내달릴 때 마주친 우투그루의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는데. 나 같은 놈이 도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하긴, 내가 누구랑 자주 같이 있는 편은 아니지. 키이엘로는 제 삶을 한 차례 반성했다.
하지만 별수 없는 일이었다. 키이엘로는 사회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눈치 빠른 이들이 곧잘 알아채듯이, 그는 빛이 나는 얼굴과 다르게 우중충하고 폐쇄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도멤은 이때쯤에야 키이엘로가 제 말을 안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해먹에서 요령 있게 몸을 뒤집은 도멤이 키이엘로를 노려봤다.
“내 말은 듣고 있습니까, 형님?”
“안 들었습니다, 아우님.”
“인간적으로 나한테 좀 형님이라고 해라, 내가 너보다 나이 많잖아!”
“너한테……?”
“됐다 그래……. 로트 말이야, 로트.”
키이엘로는 그제야 문득 아까 마주친 로트의 푸른 눈이 떠올랐다. 새까만 머리칼 사이로 바다의 한 귀퉁이를 떼어다 빚은 것처럼 한없이 파란 눈.
그 눈이 왜인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예민하기보단 맹금류의 것처럼 날카롭게 보이는 눈을 생각하던 그가 드디어 도멤에게 대꾸했다.
“날이 서 있는 것 같긴 했어. 하지만 별수 없지. 대부분이 우홉피아주 얘기만 나오면 그렇기도 하고. 다들 당한 게 있잖아.”
“이제야 대화라는 걸 하는구나. 어쨌든, 로트는 좀 더 다르다고. 왜인지는 몰라도 우리까지 경계하는 것 같아서……. 단순히 낯을 가리고 너처럼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거라면 괜찮지만…….”
도멤이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관뒀다. 그래도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알지, 내 사람 보는 눈 정확한 거? 도멤의 말에 키이엘로는 성실하게 텐의 털을 빗으며 생각했다. 넉살이 좋을 뿐인 거 아니었어……? 그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도멤이 돌연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
“근데 너는 딱히 없지 않아?”
“뭐가?”
“당한 거 말이야. 네가 우홉피아주에 원한이 있을 만한 일이 있다곤 못 들었는데……. 그새 생겼냐?”
“너도 참…….”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도멤도 참 신경 줄이 무던한 녀석이었다. 도멤의 성격이 넉살 좋고 산뜻하기 때문에 그렇게 발이 넓은 것이리라 생각하며 키이엘로는 멋쩍게 목덜미를 문질렀다.
“음,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왜, 없으면 좋은 거지 뭐!”
도멤은 말꼬리를 흐리는 키이엘로에게 씩 웃어 보였다. 텐이 킁,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키이엘로가 그렇지, 하고 대충 대꾸해주며 도멤이 누운 해먹 근처에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다들 우홉피아주에게 원한이 있는데 나는……. 내가 그들을 싫어하는 이유야 있지만, 그게 정말 ‘내’ 원한일까? 고작 내가 그 원한을 갚겠다고 여기서 설쳐도 되는 건가…….
키이엘로의 귀로 배의 밖에서 파도가 부딪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갑판 아래 곳곳에 묶인 해먹에 몇몇 선원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드러누워 조금 이른 잠을 자고 있었다. 문득 살갗을 타고 덩굴이 스산하게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키이엘로는 문득 우홉피아주에 대한 얘길 했을 때 굳어졌던 로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때 그도 이런 기분이었나? 막막하고 무력한 기분과 동시에 음산한 불쾌감이 가슴에 치미는…….
도멤이 날카롭게 손뼉을 쳤다.
“넌 어째 우울한 생각을 관두질 못하냐.”
“……티가 나?”
“잘생긴 얼굴이란 피곤하겠다…….”
도멤이 하품을 하며 말하자 키이엘로는 눈을 굴리다가 불쑥 찔렀다. 너는 그럼 안심이겠네. 도멤이 일갈했다. 너 나빠. 키이엘로는 그저 웃었다. 저런 말을 하면서도 도멤은 항상 다른 친구들보다 키이엘로를 챙기는 편이었다.
그게 선장인 클루스도의 부탁이든 아니든 간에 고마운 일은 맞았다. 키이엘로가 그와 깊이 연관되지 않으려 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잠시 잡담을 나눠도 여전히 머리 뒤쪽이 물에 젖은 것처럼 우울감에 질척거렸다. 키이엘로가 그 느낌을 떨쳐내고자 대충 옷을 털고 텐에게 손짓하자 누워있던 도멤이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게?”
“선미에.”
“너도 참 그 퀴퀴한 곳을 잘도 간다.”
키이엘로는 말없이 미소만 짓다가 손만 대충 흔들고 걸음을 옮겼다.
* * *
어느새 해가 져서 배 위에는 밤기운이 내려앉아 있었다. 한 달간 육지에 있었음에도 배에 돌아오니, 마치 집에 온 기분이었다. 검푸른 물에 사라져가는 시뻘건 빛깔을 잠시 바라보던 키이엘로는 금방 시선을 돌렸다. 텐이 그 걸음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가 그물이 개어진 곳에 가 풀썩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 새 봤지?』
“너 로트라는 애한테 왜 그랬어?”
『봤잖아, 그 바다새.』
텐의 말에 키이엘로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의 옆에 앉았다.
“그래, 봤지. 눈이 멀쩡하다면 그 새를 대수롭지 않게 보진 못할걸.”
키이엘로의 말대로, 발카는 그저 파란 새가 아니었다. 그 새는 파도를 떼어다 붙인 것처럼 묘한 빛깔의 푸르른 깃털을 갖고 있었다. 보통 조류와 달리 또렷한 눈동자는 자줏빛이었는데, 때때로 딱정벌레의 등껍질처럼 묘한 푸른빛이 돌기도 했다.
그런 새를 보고 그저 평범한 바닷새 한 마리 보듯 일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텐은 조금 그르렁거리며 이를 드러냈다.
『왜 그 새가 남아있는 거지?』
“그보다 정말 바다새 맞아? 네가 얘기하던? 하지만 그 새들은…….”
그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하고 잠시 입을 달싹였다. 로트의 새파란 눈이 마치 파도라도 된 듯 뇌리에 밀려들어 왔다. 그리고 그것이 한 차례 지나갔을 때에야 키이엘로가 말을 뱉어냈다.
“……멸종했다며.”
『뭐, 그렇지.』
텐은 성의 없이 대꾸했다. 키이엘로는 조금 황당한 기분으로 그를 보았다. 그렇게 심드렁하게 말할 일이야? 그 말에 텐은 그럼 어쩌라고, 하는 얼굴로 키이엘로를 보다가 말투만큼이나 심드렁하게 고개를 내려 앞발에 얹었다.
그 새가 바다새라고 이 배의 녀석들이 생각을 못 하는 건 아마 그 이유도 있겠지. 텐이 꿍얼댔다.
그야 그랬다. 바다새는 이미 오래전에, 까마득한 때에 멸종되었고, 지금은 전설 속 동물처럼 뱃사람들 사이에서 어쩌다 언급될 뿐이었다. 키이엘로는 더 말을 이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텐의 머리를 조금 힘을 실어 쓰다듬고는 텐의 두둑한 검은 털을 베개 삼아 누웠다.
네 목소리도 그 애한테 들렸을까? 키이엘로의 물음에 텐은 조용히 대답했다. 아마도. 그런데도 반갑지 않았던 걸까? 키이엘로가 한 번 더 질문했다. 이번에도 텐은 조용히 대꾸했다.
아마도. 너와는 다르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