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50)
바다새와 늑대 (49)화(50/347)
#49화
도멤의 말대로 키이엘로는 선미에 있었다. 도멤이 기함하는 소리에 어색한 얼굴로 일어난 키이엘로의 뒤로 텐은 느긋하게 몸을 굴려댔다. 나는 한숨을 쉬며 키이엘로의 어깨를 잡아 누르고 옆에 앉았다.
“친구야, 솔직히 말하자. 어디까지 삽질했니?”
“로트, 전혀 친근해 보이지 않으니까 관둬.”
도멤이 고개를 설설 저으며 키이엘로를 사이에 두고 옆에 앉았다.
“로트는 깡패처럼 말하는 비법서를 써보는 건 어때? 잘 팔릴 것 같아.”
내가 도멤을 쓰다듬으려 하자 그는 얼른 키이엘로 뒤로 숨었다. 나는 약삭빠른 놈이라며 혀를 한 번 차주고 키이엘로를 보았다.
그는 우리가 자신의 양쪽에 앉아 옴짝달싹 못 하고 갇히자 난감한 얼굴로 텐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텐은 그런 눈빛을 외면하며 갑판 위를 게으르게 한 번 더 굴렀다. 나는 눈을 굴리며 뭐라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 내 동생이 사창가에 던져졌어도 찾을 수 있어?”
사실 금방이라도 ‘너 우투그루랑은 무슨 일이 있던 거야?’ 하는 말이 튀어나오려 했지만 일말의 이성이 그것을 붙잡았다. 내 말에 키이엘로는 조금 이상한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이내 침착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깍지 껴 잡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아주 빨리는 어렵겠지만……. 대충 우홉피아주가 다니는 사창가는 알아. 그래도 걱정 마, 로트. 네 동생은 무사할 거야.”
나는 그 말에 몸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른 화제로 돌리기 위한 질문임을 알고도 진지하게 대꾸해주는 키이엘로가 고마웠다.
맞아, 사실 나에게 키이엘로가 사창가와 어떤 연관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창부였단 것도 나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동생이 안전하면 되는 거였는데.
도멤도 내 동생을 걱정하다 우투그루와 키이엘로의 다툼으로 흐름이 샜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열렬하게 나를 위로했다.
“로트, 메르디는 원래 말을 괴팍하게 한댔어. 너무 걱정하지 마.”
그에 나는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서둘러 우홉피아주를 찾아야지. 내가 생각해도 나는 지금 이상할 정도로 그들의 말에 휘둘리고 있었다.
이제 곧 검은바다의 고향 섬에 도착하게 되면 단서를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홉피아주만 따라잡으면, 그다음의 일은 그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그래. 아무렴 지금은 이 해적단 고향 섬이나 걱정해야지.”
“굉장히 이 해적단 선원 아닌 것처럼 말한다, 로트…….”
나는 별다른 대꾸는 안 했지만 약간의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이 해적단 소속이라는 인식이 그다지 없었다. 어느 배든 내가 있을 만한 곳이 있기는 할까? 키이엘로는 그런 내 생각을 눈치챈 것 같았지만 딱히 뭐라고 하진 않았다. 그때 바다의 소금기만 느껴지던 코끝으로 사과 향이 끼쳐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키이엘로를 보았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 딱 이런 향이 났었기 때문이었다. 너 또 사과 처먹었니? 장난 어린 내 물음에 키이엘로가 침착하게 답했다. 아닌 거 알지, 로트? 물론 농담이었기 때문에 한 번 웃으며 그의 어깨를 쳐준 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도착한 모양이야.”
도멤의 말과 동시에 우리는 노천갑판 쪽으로 나섰다. 그러자 커다란 절벽이 배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그 절벽을 보다가 위에 커다란 사과나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과나무의 아래에서 작은 인영이 우리 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 우당탕,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프라세가 계단을 올라와 그 작은 인영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프로데!”
소년은 뺨이 상기되어 난간 쪽으로 달려갔다. 프라세의 뒤를 따라 나온 베제가 웃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도멤이 그들을 보며 웃었다.
“쟤네는 참 형제처럼 지내네.”
그 말에 키이엘로도 그러게, 하며 베제와 프라세를 보았다. 그들은 형제나 삼촌 조카, 좀 과장을 보태서 부자지간처럼도 보였다. 항상 그래왔기 때문에 나는 별생각 없이 베제와 프라세를 보다가 사과나무 아래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를 가리켰다.
“저건 누구야?”
“프라세의 동생이야. 프로데인데, 진짜 꼬맹이지. 프로데가 지금 몇 살이지?”
도멤이 가물가물한 듯 꿍얼거리자 키이엘로가 대꾸했다. 열 살. 나는 그 어린 나이에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프라세가 열넷이니까. 네 살 터울인가. 내 막냇동생들도 그 또래였는데.
무심코 든 동생들 생각에 내 얼굴이 흐려지자 키이엘로가 내 눈치를 보더니 내 팔을 툭 건들었다.
“이제 곧 정박할 것 같아.”
나는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뭔가 준비할 게 있어? 키이엘로는 어색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긴 집이나 다름없는 섬일 텐데 무장을 하겠나, 뭘 하겠나. 그는 정말로 그냥 내 생각을 우울한 곳에서 끄집어내려는 의도였던 것 같았다.
절벽의 옆으로 지나치자 적당한 크기의 만과 함께 정박장이 나타났다. 검은바다는 작은 어선들을 지나쳐 가장 끝에 있는 곳에 배를 대고 닻을 내렸다. 섬은 습격이 있었다는 소식과는 다르게, 의외로 멀쩡해 보였다. 선원들이 모두 갑판으로 올라와 하선을 기다리자, 마을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몇몇이 몸에 붕대가 감겨있거나 목발을 짚는 것을 보며 우홉피아주의 습격이 있었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대부분의 선원들은 집에 돌아온 것이 좋은지 연신 웃고 있었다. 나는 감흥 없이 그것을 보다가 문득 우투그루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얼굴임을 발견하고 미미하게 미간을 좁혔다.
그는 오히려 섬에 온 것이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키이엘로와 도멤을 돌아보았다. 둘의 표정도 그다지 밝지 않았다. 나는 미묘한 얼굴로 그들을 흘끔거리다 다시 섬을 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배와 정박장을 잇는 다리가 놓이고, 해적들이 하선을 시작했다.
위풍당당한 꼴로 귀환한 이들을 반기며 뛰어와 안기는 사람도 있었다. 디겔과 똑같은 금발 머리를 턱선에서 깔끔하게 자른 여자가 그랬다. 그녀는 와다다 달려와서 디겔을 답삭 끌어안으며 명랑하게 웃었다.
“아빠! 어서 와!”
“헤더!”
디겔이 껄껄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를 끌어안고 둥기둥기 몸을 흔들었다. 몇 번이고 빙글빙글 돈 그녀는 이내 디겔과 떨어졌는데, 놀라울 정도로 그과 닮아있었다. 뼈가 굵은 체구 역시 판에 찍은 것 같았다. 단발머리 사이로 모아 땋은 머리카락이 날개뼈 근처에서 말 꼬랑지처럼 흔들거렸다.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이 짓궂게 웃으며 디겔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다가 도멤을 보고 와하하 웃었다.
“야, 도멤! 오랜만이다! 짜식, 주근깨가 늘어서 왔네!”
“헤더 누나, 누나도 만만치 않거든!”
도멤이 낄낄 웃으며 소리치고는 내게 말했다. 디겔 아저씨 딸 헤더 누나야. 나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프라세와 베제도 어느 한 곳을 향해 달려갔다. 절벽 위의 사과나무에 있던 작은 소년이 둘에게 끌어안겨 와르르 웃음을 쏟아냈다.
그때 한참 반가움에 젖어 소란스럽던 항구의 분위기가 어느 부분을 기점으로 점점 조용해졌다. 무슨 일이지, 하고 고개를 돌리자, 어떤 빼빼 마른 중년 여성이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항구를 가로질러 클루스도에게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저건 누구야?”
내가 묻자 도멤과 키이엘로의 얼굴이 미묘하게 비틀렸다. 보면 알아……. 나는 그 도움 안 되는 대꾸에 어깨만 으쓱이고 다시 그쪽을 돌아보았다. 클루스도가 덩치에 맞지 않게 그 여성을 보고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부인.”
나는 그 말에 입을 쩍 벌리고 키이엘로와 도멤을 돌아보았다. 둘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그녀는 거의 귀족처럼 보일 정도로 옷을 차려입고 있었고, 자세도 매우 꼿꼿했다. 나는 그래서 아마 이 섬의 영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이다.
하기야 해적들의 섬인데 영주가 있을 리가……. 내가 바보 같은 생각을 한 걸지도 모른다. 그때 클루스도의 인사를 대강 받던 그녀가 그 뒤의 우투그루를 보고 눈을 세모꼴로 치떴다.
“여기서 우두커니 뭘 하고 있는 거야? 먼저 내려서 일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못 한 게냐? 박수받을 생각에 여기에 있는 거야?”
그 날카로운 말에 우투그루가 침착하게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그에 나는 약간 희게 질린 얼굴을 했다. 그때 도멤과 키이엘로가 슬쩍 내 팔을 잡아끌어 그들과 멀어지며 속닥였다.
“우리는 몰래 가자. 저분 눈에 걸려서 좋을 게 없어…….”
그 말에 내가 얼렁뚱땅 끌려가려는데, 거미줄 위의 움직임을 포착한 거미처럼 그 부인이 고개를 홱 돌려 우리를 보았다. 도멤이 움찔하며 멈추자 키이엘로의 얼굴이 ‘망했다’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드는 순간 평정을 가장했다.
“도멤……. 그래. 고생했겠구나.”
“아유, 아니에요, 겔라 부인. 그간 잘 지내셨죠?”
도멤이 싹싹하게 대답하자 그녀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보았다. 그리곤 기억을 뒤져 봐도 내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는지 옆의 클루스도에게 운을 뗐다. 못 보던 아이인데요. 그 말에 클루스도가 정중하게 대꾸했다.
“이번 항해 때 만나 데려온 신입이에요, 부인.”
주고받는 말투만 보면 정말로 고상하고 서로에게 예의가 있는 부부였다. 나는 클루스도 뒤에서 조용히 뒷짐을 지고 군견처럼 꼿꼿하게 선 우투그루를 힐끔 보았다. 왜 저렇게 긴장하고 있지?
그때 나를 보며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던 겔라 부인이 돌연 야차처럼 얼굴을 구겼다.
“그래, 신입이니 제 옆에 있는 놈이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 모를 자식새끼인 줄 생각도 하지 않고 어울리겠지.”
그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키이엘로는 칼에 맞은 것처럼 몸을 긴장시켰다. 살벌한 말에 재회의 순간을 즐기던 마을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나는 뒤늦게 그것이 키이엘로를 가리킨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키이엘로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자, 부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의붓어머니께 안부 인사 하나 없구나.”
그에 키이엘로가 작게 ‘오랜만에 귀가했습니다,’ 하고 인사하자 그녀는 다시 신경질적으로 인상을 구겼다.
“생각해 보니 네 어미는 그저 몸 팔아 널 낳았을 뿐, 아무 사이도 아니니 인사받기엔 우리 사이가 거북하다. 관두거라.”
어쩌란 거야……. 인사를 하라고 해서 인사를 하니 그럴 관계 아닌데 인사받아 기분 나쁘다 하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연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키이엘로는 침착하게 고개를 한 번 숙이더니 슬쩍 뒤로 빠졌다. 그러자 다시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직 물러가라 안 했는데 어딜 가!”
“죄송합니다.”
“됐다! 못 배워먹은 놈 가르치느라 열이 난다, 아주……. 썩 가버려!”
변덕이 죽 끓듯 하시는 부인이었다. 키이엘로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뒤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별생각 없이 키이엘로를 따라가려 걸음을 옮겼다. 그에 도멤이 으악, 하는 얼굴을 하는 것과 동시에 뒤통수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리꽂혔다.
“자네, 신입! 넌 누굴 따라가는 거야?”
“……이 녀석 따라가는데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적당히 대꾸했다. 그러나 클루스도 뒤에 있던 우투그루가 뒷짐 지던 손을 풀고 이마를 탁, 치는 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내 말이 신경을 건들었는지, 겔라 부인은 예민한 인상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우투그루와 똑같은 색의 머리카락이 떨릴 정도로 부들부들 떨었다.
“네가 위아래를 모르는구나! 이 섬의 안주인은 나야! 어디 나에게 인사도 않고!”
“아…….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나는 얼른 허리를 숙여 사과하고 그럼……, 하며 다시 뒤를 돌려 했다. 도멤이 다시 으아악! 하는 얼굴을 했다. 키이엘로도 날 돌아보며 하얗게 질린 얼굴을 했다. 키이엘로의 옆에 있는 텐은 우스워 죽을 얼굴을 하고 있는 점이 달랐지만.
부인이 새되게 외쳤다.
“어디 예의도 없이! 이 섬에서 살 준비도 되어 있지 않구나!”
“저……, 정말 죄송한데요, 부인, 저는 이 배에 탔지만, 아직 이 섬에 살 생각은 없고, 또 얘는 제 친구라서요. 제가 제 친구를 따라간다는 일에 어떤 잘못이 있는 건지 저는 모르겠어요.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양해해주시면―.”
“당신은 어디서 저딴 것을 주워왔습니까? 섬에 창부와 어울릴 작자를 더 늘리시려고요?”
난데없이 불똥이 클루스도에게 튀자 나는 조금 아차 했지만 이내 그러려니 신경을 거뒀다. 어차피 그의 부인이고, 사실 정말 까놓고 말해 혼외자식을 만든 죄인은 클루스도가 아닌가? 하지만 그걸 차치해도 불쾌한 것은 불쾌한 것이라 나는 잠시 짚었다.
“죄송한데 부인,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요. 저나 키이엘로는 창부와 어울리진 않아요.”
“닥쳐! 닥치고 꺼져라!”
나는 그 말에 아 옙, 하고 얼른 꺼져드렸다. 꺼지라니까 꺼져야지. 이럴 때 안 꺼지면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생활의 지혜랄까. 뒤에서 뭐라고 버럭버럭 외치는 것 같았지만 딱히 가렵지도 않았다.
나는 얼이 빠져 있는 우투그루를 딱하게 봐주고, 역시 얼이 빠진 키이엘로의 정강이를 한 대 발로 차며 팔을 잡아끌었다. 텐이 코웃음을 쳤다.
『사람 한번 잘 건드는군.』
『저 미친 여자!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욕할 거면 이놈에게나 하든가! 왜 우리 로트에게!』
발카가 욕을 내뱉자 키이엘로가 찔렸는지 작게 중얼거렸다. 미안, 로트……. 후다닥 그들에게서 멀어져 만을 빙 둘러 가는 길에 들어선 나는 어깨만 으쓱이고 말했다.
“미안해하진 마. 딱히 신경 쓰이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 어차피 며칠 있다 떠날 섬인데 욕 좀 듣는다고 안 죽어. 그나저나 저렇게 예민한 분이실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깐깐하신 것도 같더라.”
그 말에 키이엘로가 어색하게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깐깐하기만 하면 다행이지……. 키이엘로의 말에 나는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난 어른 대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리저리 살펴야 하고 피곤해…….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도, 뭐. 자기 남편이 대뜸 혼외자식이나 만들어오고 하면 누구든 짜증은 날 거 같아. 그렇다고 너한테 한 말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내가 말하자 키이엘로는 눈을 깜빡이다가 내가 이끌던 움직임에서 벗어나 스스로 걸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게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나는 그러겠지, 하고 말했다.
“네가 ‘저분도 사정이 있겠지’ 하면서 이해하고 있었다면 그때는 내가 박수를 쳐줬을 거다. 니가 무슨 보살이야? 욕 처먹으면서 너그럽게 포용해주게?”
내 말에 키이엘로는 가볍게 웃었다. 그때 뒤에서 도멤이 부랴부랴 뛰어왔다. 로트, 로트!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와 키이엘로가 돌아보자, 도멤은 한숨을 쉬며 한탄했다.
“어쩌자고 겔라 부인의 심기를 건든 거야? 불똥 튀면 어쩌려고…….”
“뭐 어때. 나는 어차피 이 섬에서 살 생각 없어.”
그 말에 도멤은 약간 충격을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로트, 정말 우리랑 같이 안 살 거야? 나는 그 말에 혀를 차줬다.
“내가 왜? 나는 내 동생만 구하면 적당히 치안 좋고 번화한 섬에 정착해서 물고기나 잡으며 살 거야.”
“앗, 그건 좀 현명해 보인다. 네가 어부를 한다면 분명 부자가 되겠지. 그땐 나도 동료로 끼워줘, 로트.”
이 녀석이 잿밥에 관심을 두네. 나는 식은 눈으로 도멤을 봐주다가 물었다.
“저 겔라 부인은 원래 성격이 저러셔? 그러고 보니 왜 겔라 부인이지? 트라페 부인 아냐?”
“원래는 다들 그렇게 불렀어. 근데…….”
도멤은 키이엘로를 한 번 보더니,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키이엘로의 존재가 알려진 뒤로는 트라페 성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거든. 그래서 지금은 겔라 부인이라고 불러.”
그때 누군가 우리의 뒤에서 웃었다. 우리가 놀라서 돌아보자, 금색 단발머리의 여자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깡 좋은 신입과 뭘 떠드나 했더니, 뒷담화야?”
그러더니 그녀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나도 끼워줘. 디겔의 딸이라던 헤더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