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53)
바다새와 늑대 (52)화(53/347)
#52화
나는 트라페 가의 문 앞에 앉아 거칠게 호밀빵을 뜯었다. 깃털 날린다며 질색하는 겔라 부인 때문에 발카는 결국 키이엘로의 집으로 돌아갔다. 텐과 싸울 것 같으면 키이엘로가 잘 말려주겠지.
겔라 부인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기대 이상이었다. 우라질, 왜 항상 이럴 땐 기대를 벗어나 주질 않는 거지? 나는 파리가 앉아도 미끄러질 것처럼 반짝이는 마루를 노려보며 빵을 마저 입에 쑤셔 넣었다.
그녀는 내가 마루를 쓸고 닦는 동안 고고하게 팔짱을 끼고 바라보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마루 틈이 안 닦이잖아, 먼지가 다시 들어오잖아, 가구 밑은 안 닦을 셈이니? 카펫을 바꿔야겠다, 물기 때문에 미끄럽잖아, 다시 마른걸레로 닦아라, 먼지가 다시 쌓였잖아!’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질색을 했다. 섬마을 할아버지도 저 정도는 아니었어!
내가 빵을 다 먹고 입가에 묻은 빵가루를 털어내는데, 마당 대문 앞에서 우투그루와 브레딕이 뭔가 대화를 하며 걸어왔다. 세운의 이름이 들리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다녀온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유리 바다에서 합류한 그들도 나처럼 이 섬에 거처가 없을 텐데 어디서 지내고 있는 거지?
“그래서…… 어? 로트?”
브레딕이 우투그루에게 말하다가 문 앞의 계단에 앉아 있는 날 보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나는 쩝 소리를 내고 일어나 걸레의 장대를 지팡이처럼 짚으며 그들에게 가까이 가 인사했다.
“안녕, 브레딕.”
“오, 그래. 오랜만이야……. 너 진짜 청소하고 있구나.”
“마루 청소를 네 시간 동안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내 말을 들은 브레딕은 웃음을 참는 얼굴을 했다가 헛기침을 해 갈무리한 뒤 말했다. 글쎄, 그래도 네토르보단 낫지 않을까? 네토르가 무슨 징계를 받았는지 모르는 내가 눈썹을 휘는데, 우투그루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대체 무슨 징계를 받은 거냐, 하는 궁금증만 커지고 있었다.
“네토르는 디겔 아저씨의 정원을 위해 거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거든.”
브레딕이 으, 하고 질색하는 얼굴을 장난스럽게 꾸며내며 말한 뒤 웃었다. 그 말에 나는 과연 어떤 일이 더 나은 것인지 분간이 안 될만하다, 하고 생각하며 걸레의 장대에 턱을 얹었다. 흘끔 본 우투그루의 뺨은 아침에 본 것과 달리 다시 멀쩡해져 있었다.
우투그루를 몰래 살피는 나에게 브레딕이 트라페 가를 고갯짓하며 물었다. 넌 어때? 나는 매우 할 말 많은 얼굴로 브레딕을 봐주었다. 그러자 그가 마구 웃어댔다. 나는 우투그루를 턱짓하고 말했다.
“뭐, 저 집 아들이 여기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을게.”
“했다면 내가 징계를 내렸을 거야.”
우투그루가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내심 그가 내 말에 공감할 줄 알았기 때문에 조금 놀랐지만, 그러려니 고개를 까딱이고 입을 꿰매는 시늉을 했다.
그때 브레딕이 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로트 너 어디서 지내? 역시 키이엘로의 집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멤이랑 키이엘로랑. 내 대답에 브레딕은 알 만하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그 ‘알 만하다는 얼굴’이 대체 뭘 안 거냐며 눈썹을 휘고 싶었지만, 그보다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세운이랑 원은 어디서 지낸대?”
“선장님 집에서 지내. 좋은 일이지.”
나는 브레딕의 답을 들으며 오전에 헤더가 말한 ‘별거’가 떠올랐다. 적어도 내가 트라페 가의 마루를 청소하면서 클루스도 아저씨나 세운과 원을 본 기억은 없으니 정말로 클루스도는 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는 것이 분명했다.
어째 점점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사실만 알아가는 기분인 걸……. 나는 조용히 생각하며 어깨에 대걸레를 걸쳤다. 그때 트라페 가의 집에서 불호령이 쩌렁쩌렁 울렸다.
“신입! 빵 하나 먹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니?”
“이런 미친!”
나는 작게 욕을 내뱉고 외쳤다. 지금 갈게요! 브레딕과 우투그루에게 나는 고갯짓을 해 간단하게 인사한 후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내 뒤로 브레딕이 애써 웃으며 우투그루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뭐라고 하는 것이 웅얼웅얼 들렸지만 나는 그것보단 겔라 부인의 불호령이 우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들어오자 겔라 부인은 곧장 내게 호통을 쳤다.
“시간이나 때우라고 식사를 준 줄 알아?”
아니 끽해야 빵 한 쪼가리 줘놓고 무슨 생색이란 말인가? 나는 애써 울컥하는 심기를 가라앉히며 예, 예, 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대걸레로 다시 마루를 닦으려 하자, 겔라 부인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밖에서 먼지나 묻혀온 걸레를 다시 쓰려고? 깨끗하게 도로 빨아와!”
“아, 네…….”
사실대로 말하자면 겔라 부인의 앞에서 마루를 닦는 것보다 밖에서 걸레를 빠는 것이 더 나았다. 나는 얼른 다시 밖으로 나가려 문가로 걸어갔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우투그루가 들어왔다. 그는 코앞의 나를 보고 조금 물러나더니 이내 길을 비켜주며 집 안을 향해 말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오, 우투그루!”
겔라 부인이 반기기보단 하소연할 사람을 찾은 것처럼 말하며 그에게 다가와 아들의 어깨를 힘줘 잡았다.
“저 녀석을 좀 보렴! 네 아비는 어떻게 저런 놈에게 우리 집 청소를 맡길 수가 있니!”
나는 그 소리에 으, 하고 진저리치며 고개를 저었다. 사돈 남 말 하시네! 속으로 툴툴거리며 밖으로 나가기 위해 나는 문고리를 잡고 몸을 내뺐다.
우투그루가 작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집은 충분히 깨끗해진 것 같은데요…….”
그러자 사나운 소리가 울렸다. 나는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깜짝 놀라서 멈춰 섰다. 휙 뒤를 돌아 집안을 보자 우투그루가 침착하게 겔라 부인의 어깨를 짚고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의 뺨이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붉게 물들어있었다. 겔라 부인이 목청을 높여 외쳤다.
“지금 내가 틀렸단 거야? 넌 네 어미는 보이지도 않는구나! 어쩜 이 집안 남자들이란! 네놈은 어찌 내 배에서 났으면서 그렇게 네 아비만을 닮은 게냐? 응? 이 어미의 마음은 알지도 못해?”
“어머니, 잠시……. 진정하세요.”
“너도 나에게 진저리를 치는 거니? 응? 아들아, 어머니는 살 수가 없다. 네 어미는 이 섬에 갇혀있어. 내가 어떻게 하겠니? 나에겐 너밖에 없는데 이젠 너도 다 자랐다고 날 떠나려고 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게 내 탓이니? 생각해봐! 누구 탓이겠어!”
겔라 부인의 목소리는 흐느끼듯 잦아드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쩌렁쩌렁 울렸다. 나는 주춤 뒤로 물러났다. 문가의 마루가 밟히는 소리에 우투그루가 날 돌아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겔라 부인을 내 시야로부터 가리며 어서 나가라는 얼굴을 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나는 수돗가의 작두 펌프 앞에 섰다. 아직 청소가 끝나지 않아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브레딕은 이미 우투그루와 인사를 나누고 마을로 떠난 지 오래 같았다.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전에 이미 끌어 올려둔 물이 가득 찬 양동이를 노려보았다. 트라페 가의 집 문이 크게 흔들렸다. 양동이의 안에서 파란 하늘을 담은 수면은 잠시 흔들릴 뿐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마당은 산속으로 산책을 온 것처럼 조용했다. 그냥 이대로 신경을 끄고 키이엘로의 집으로 튀어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겔라 부인의 고함이 높게 울리고 우투그루는 그에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새봄의 초록이 돋아난 한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당의 풀냄새와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나 흘러가는 구름 따위가 너무 터무니없이 평화로웠다.
나는 기이한 위화감을 느꼈다. 너무 평화롭다. 겨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내가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삐걱대는 태엽 인형 같은 동작으로 걸레를 펌프 아래 고인 웅덩이에 철퍽철퍽 빨았다.
우투그루는 무슨 생각이지? 그는 저런 취급이 괜찮은가? 저게 훈육인가? 저대로 둬도 되나? 애초에 배에서는 그렇게 번듯한 그가 저렇게 되는 모습이라니. 왜 그에게 그런 화를 푸는 거예요, 겔라 부인. 걘 당신 아들이라구요…….
나는 어느새 동작을 멈추고 눈을 깜빡였다. 겔라 부인의 목소리는 도통 작아지질 않았다. 이젠 우투그루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겔라 부인은 계속해서 우투그루를 탓하고 있었다. 세상을 탓하고, 클루스도를 탓하고, 이윽고 다시 우투그루를 탓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런 소릴 듣고 살면 멀쩡할 수 있을까?
나는 작두펌프를 부숴버릴 것처럼 힘을 주고 노려보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너무 청명했고, 나는.
기분 한번 더러웠다.
다음 순간, 나는 걸레를 내던지고 트라페 가의 문이 가루가 될 듯 거세게 열었다. 겔라 부인이 집기를 들어 올리다가 놀라서 나를 돌아봤다. 나는 깨진 잡동사니가 낭자한 바닥을 나는 것처럼 뛰어가 우투그루의 팔뚝을 잡았다.
그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보았다. 나는 정말 터무니없게도 그 순간 그의 눈이 키이엘로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겔라 부인이 집어 든 집기를 내던졌고, 나는 우투그루를 당겼고, 그는 놀란 얼굴로 겔라 부인 쪽을 보았다.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지독한 통증이 머리에서 죽 타고 내렸다. 한순간 눈앞이 번쩍였다. 우투그루가 입을 벌렸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그대로 우투그루를 끌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뒤에서 겔라 부인이 소리를 질러댔다. 너도 내가 지긋지긋하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세상이 나에게만 어쩜 이렇게 가혹하냔 말이야! 지옥에서 살라고 해, 차라리!
우투그루는 거의 넋을 뺀 것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앞이 흐렸다. 이마가 축축하게 젖은 것이 땀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 나는 우투그루를 끌고 지긋지긋한 마을 대신 집 뒤에 있던 바다 쪽으로 도망쳤다.
나는 순간 겔라 부인에게 분노보다 동정심이 불쑥 치솟았다. 어떻게 그게 당신에게만 가혹한 세상이겠어요, 겔라 부인. 당신과 나는 비슷한 지옥에 살았고 아마 다른 사람들 대부분도 당신의 지옥에 공감하겠지.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이건 그냥 다른 피해자를 만들 뿐이라고…….
나는 파도가 바짓단을 적실 때에야 충분히 집과 멀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섰다. 이렇게까지 바다로 뛰어들 필요도 없었는데 나는 어느새 파도에 발까지 담그고 있었다.
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바다를 노려봤다. 또 바다로 도망쳤다. 그것이 절망스러운 동시에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 나조차도 왜 그런지 짐작하지 못했다. 그때 누가 내 옆통수를 눌렀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자 우투그루가 마찬가지로 숨을 몰아쉬면서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의 금발이 집 안에 있었을 때와 달리 햇빛을 받아 모래사장 사이의 사금 조각처럼 반짝였다. 나는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다가 그가 계속 내 옆통수를 누르고 있자 고개를 뒤로 물리고 그가 누르던 곳을 만져봤다. 질척하게 피가 묻어났다. 내가 약간 넋을 빼고 있는데, 우투그루가 날카롭게 말했다.
“왜 그랬어?”
“뭐?”
“왜 그랬냐고.”
나는 당황스러웠다. 고맙다는 말은 못 들을지언정 이런 날카로운 말을 들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우투그루는 한숨을 길게 쉬더니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몸을 숙였다. 그는 파도를 나가서 그대로 백사장에 주저앉았다. 내가 그런 그를 보며 멀뚱멀뚱 서 있자 그가 턱짓했다.
“앉아.”
나는 일단 그의 옆으로 가 앉았다. 그러자 그가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연고와 적당한 길이의 붕대, 거즈 따위가 들어있었다. 그는 나에게 그것들을 주며 말했다.
“어디 가서 오늘 일 말하지 마. 특히 키이엘로 놈한테는.”
“뭐?”
우투그루는 내가 되물었음에도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고 손짓했다. 알아서 연고 바르라는 것 같았다. 나는 얼을 뺀 채로 그를 보다가 그가 준 것들을 겸연쩍게 만지작거렸다. 그때 우투그루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당황해서 그를 보았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버지는 항구와 가까운 곳에서 지내시니까 그곳으로 가서 세운에게 치료받아. 그러면서 그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내가 그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너 어디 가! 설마 다시 돌아가는 거야?”
“시끄러워. 소란 피우지 마.”
그러더니 우투그루는 낮게 덧붙였다.
“네가 신경 쓸 일 아냐.”
그리고 오늘 청소는 그만해도 돼. 이만 돌아가. 그렇게 말하고 그는 충성스러운 개처럼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나는 턱까지 흐른 피만 뚝뚝 백사장에 흘리며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서서, 파도의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뭐야, 내가 그곳에서 빼내 줬잖아. 왜 돌아가는 건데? 너는 거기서 벗어나고 싶지도 않아? 다들 조금씩만 노력하면 바꿀 수 있어. 그런데 왜 뭔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거야? 아니면 너도 노력한 적이 있는 거야?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나는 과거와 비슷한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파도치는 소리가 우르르 울렸다. 나는 무심코 바다를 돌아보았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복잡한 일들을 차라리 파도가 휩쓸고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나를 비웃듯 파도는 백사장만을 문지르며 아름다운 조개껍데기를 탐욕스레 가져갈 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