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57)
바다새와 늑대 (56)화(57/347)
#56화
나는 키이엘로의 집으로 가던 중 사과밭에서 프로데, 프라세 형제와 마주쳤다. 내내 복잡하던 생각을 손을 내저어 날리며 내가 인사했다.
“프라세, 프로데. 안녕.”
“형!”
프라세가 웃으며 다가왔다. 프로데는 머뭇거리다가 프라세의 뒤에 숨었다. 나는 그들의 품 한가득 사과가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웃고 물었다.
“서리한 건 아니지?”
“여기 사과는 마을 사람이 마음껏 따도 돼요.”
“그렇구나.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사과 따려고 온 거야?”
그 말에 프로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냐, 내가 기다리는 곳 보러 온 거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기다리는 곳? 그러나 프로데는 그 말만 하고는 도로 프라세의 뒤로 쏙 숨었다. 나는 문득 섬의 항구로 진입할 때 사과나무 아래에서 손을 흔들던 프로데를 떠올렸다. 내 시선이 절벽 쪽으로 향하자, 프라세는 어색하게 웃었다.
“위험하다고 말을 하는데도 안 들어서요. 울타리라도 칠까 해서, 베제 형이 대충 폭을 재보라고 했거든요. 겸사겸사 사과도 따고요.”
“베제 놈이 또 애들한테 잡일을 떠넘기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베제 형은 지금 바빠요……. 프라세가 내게 사과를 몇 개 주며 말하는 것에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이 사과는 뇌물인가. 그럼 뭐 입 다물어야지. 사실 나도 베제를 크게 뭐라고 욕할 생각은 아니었다. 애초에 애들 앞에서 어른의 뒷얘기를 해서 뭘 하겠어.
나는 프로데에게 물었다.
“위험하다는데 말을 들은 생각은 없어?”
“나는 맨날 맨날 저기 서봤는걸. 하나도 안 무서워. 떨어진 적도 없어!”
그야 떨어졌었다면 네가 지금 여기 있진 않겠지……. 나는 조용히 미소만 지으며 생각했다. 열 살짜리 아이는 볼멘소리로 툴툴댔다. 나이 많은 형들은 저기 옆에서 바다로 뛰어들기도 한단 말이야. 그야 그 옆은 완만하기도 하고, 보통 높은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것은 섬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좋아하는 놀이였다.
나는 프로데를 탓하는 대신 말했다.
“그래도 조심해, 네가 저기서 기다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다들 마음이 어떻겠어.”
프로데는 자기가 자신 있다는데 왜 다른 사람이 뭐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지만 별달리 토를 달진 않았다.
프라세가 말했다.
“앞으로는 배가 귀환한다는 말이 없는 날엔 기다리지 마.”
나는 그 말에 프로데가 검은바다가 항해하는 동안 내내 빠짐없이 프로데가 이곳에서 그들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아챘다. 프로데는 대충 응, 하고 대꾸했지만 다 큰 사람이 보기에 열 살짜리 아이는 전혀 그것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두 형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걸음을 옮겼다. 품 안에 사과가 떨어지지 않게 대충 키이엘로의 집 문을 발로 차자, 안에서 도멤이 문을 열었다.
“로트! 일찍 왔네?”
도멤이 나를 반겨주다가 ‘웬 사과야?’ 하며 몇 개를 받아 갔다. 나는 가벼워진 손으로 문을 닫고 말했다. 프라세를 만났어. 나를 반기는 발카를 어깨에 앉히고 아침에 퍼 놓았을 물에 손을 씻는데, 키이엘로가 엉거주춤 뭔가 숨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눈썹을 휘었다.
“거기서 뭐 해?”
내가 씻은 손을 털어 물기를 떨치며 묻자, 키이엘로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것도 아냐.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 헤더의 말이 문득 생각나 소파에 앉으며 그것을 전해줬다.
“헤더랑 잠시 대화했는데, 완성품 좀 보여 달라더라. 무슨 완성품이야? 너 뭐 만들어?”
내 말에 키이엘로는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놀랐는데, 이어 내가 뭔가 만들고 있냐고 묻자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도멤이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로트, 기억 못 하는구나!”
나는 의아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뭐를? 내가 뭘 기억을 못 한다고 그래?
그러거나 말거나 도멤은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몸을 구부려가며 낄낄 웃었다. 그가 가져온 사과를 씻는 틈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키이엘로의 앞을 막아섰다. 키이엘로가 기겁해서 몸을 움츠렸다.
“뭐야? 뭘 숨기는 거야?”
“별것 아냐, 로트!”
“맞아, 별것 아니긴 해. 로트 너도 잊어버렸잖아!”
“아, 뭐냐니까?”
키이엘로가 이리저리 몸을 피하는 것을 나도 이리저리 막으며 묻자, 키이엘로의 주변을 텐이 빙글빙글 돌면서 컹컹댔다. ‘그냥 말해, 키이엘로! 뭐가 그리 수줍어?’ 내 어깨에 있던 발카도 ‘으유, 한심이!’하고 짹짹거렸다.
나는 발카도 그렇게 말하는 것에 키이엘로가 숨기는 것이 명백하게 나와 관련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내 눈이 사냥감을 보는 매처럼 더 가늘어지자, 키이엘로는 단번에 항복을 외쳤다.
“알았어, 때리지 마, 로트!”
나는 조금 황당해졌다. 내가 널 왜 때려? 도멤이 사과를 깎으며 말했다.
“이래서 평소 행실이 중요한 거야…….”
나는 그를 한 번 꾹꾹 쓰다듬어주고―‘냉혈한 로트, 손속에 자비가 없구나!’ 도멤이 장렬히 외치며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소파에 앉았다.
키이엘로는 한숨을 쉬며 뒤로 숨겼던 손을 앞으로 꺼냈다. 그의 손아귀가 아직 무언가를 꽉 쥐고 있어서 정체는 모르지만 그게 적어도 키이엘로가 한 손에 쥐고 감출 수 있는 종류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내가 다시 묻기 전에 키이엘로가 한숨을 쉬더니 내게 내밀었다.
그건 짙은 색의 가죽끈과 붉은 산호 구슬이 엮인 목걸이였다. 나는 그제야 도멤이 왜 그렇게 웃어댔는지 이해했다. 세상에, 이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니! 나는 그걸 얼른 받아 들었다. 키이엘로가 변명하듯 말했다.
“미안해, 헤더한테 가죽끈을 더 받아서 보완하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짧아진 건 어쩔 수 없었어…….”
나는 구구절절 이어지는 그의 말을 한 귀로 들으며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그의 말대로 가죽끈이 짧아 목걸이는 목에 달라붙듯 채워졌다. 하지만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이제 네토르와 다시 쌈박질을 해도 목걸이가 뜯길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웃으며 그의 팔뚝을 주먹으로 쳤다.
“뭘 미안해해? 이걸 너한테 맡기고 있었는데 잊어버린 나도 나다. 요즘 신경 쓸 게 많아서 까맣게 잊고 있었나 봐.”
“마음에 들어?”
“그럼 안 들겠어? 정말 고마워.”
도멤도 내 옆에 앉으며 하하 웃었다. 잘 어울린다! 나는 웃으면서도 따뜻한 물을 삼킨 것처럼 가슴에 온기가 퍼지는 걸 느꼈다. 정작 따뜻한 차를 마셨던 브레딕의 집에서는 느끼지도 못했던 감각이었다.
나는 내가 최근 정말 많은 일에 신경이 쏠려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어떻게 이 목걸이를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가 줬던 목걸이는 그때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런데도 만족스러웠다. 그래, 나는 굳이 뭔가 할 필요 없어. 이미 내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날 위해주는 친구가 있고, 도멤의 일도 내가 굳이 파고들기엔 미안하고, 우투그루는 그의 친구인 브레딕이 있으니 상관없겠지.
굳이 있을 자리를 개척하려고 힘내지 않아도 돼. 이미 이걸로 충분하잖아.
나는 키이엘로의 머리카락을 헤집어주며 칭찬했다. 그러자 키이엘로는 다행이다, 하며 안심한 듯 웃었다. 도멤은 깎은 사과를 내밀며 물었다.
“요즘 로트가 정신없긴 했지. 청소하느라 힘들었을 거 아냐?”
“음…… 뭐, 그렇지.”
정작 오늘은 청소도 하지 않았고, 생각보다 겔라 부인과 크게 부딪힌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며칠간 산만했던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사과 조각 하나를 들어 입에 넣었다. 도멤은 더 먹으라며 걱정을 해댔다. 나는 정말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말해야 했다.
램프의 불빛만 있는데도 손끝까지 따스해지는 기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