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60)
바다새와 늑대 (59)화(60/347)
#59화
네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내 바다로 와. 넌 아직 어리고, 나는 그런 널 사랑하거든.
* * *
아침 일찍부터 검은바다는 떠날 준비로 바빴다. 마을에 가족을 둔 선원들이 서로 포옹하고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와 키이엘로는 도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멤은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떠난 상태였다. 나는 분주한 갑판 위를 물끄러미 보다가 키이엘로에게 물었다.
“도멤의 집, 알아?”
“갑자기? 왜, 뭐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숨을 쉬었다. 괜히 고민거리를 얹어주는 건 아닌지 몰라. 키이엘로는 텐의 콧잔등에 손장난을 치다가 내가 말이 없자, 가까이 앉아 내 팔을 툭 쳤다. 뭔데 그래?
나는 눈을 한 번 굴리고 그에게 털어놓았다. 도멤의 집이 엉망이었던 것이나, 아마 그가 평소에 섬에서 그의 집에서 지냈던 것 같지 않다는 것 등을.
그러자 키이엘로의 얼굴이 당혹을 담고 일그러졌다.
“난…… 난 전혀 몰랐어.”
“별수 없는 일이지. 나도 마을을 좀 쏘다니다가 본 거니까. 넌 마을에도 잘 안 간다며?”
키이엘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키이엘로의 얼굴은 미약한 우울을 담고 있었다. 워낙 주변에 관심 없이 살았으리라 짐작이 가는 그의 행동에 나는 역시 괜히 말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대신 키이엘로의 종아리를 걷어차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때. 도멤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키이엘로는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도멤이 볼일을 끝내고 온 건지, 갑판 위로 오르며 우리를 불렀다.
“로트! 키이!”
“뭐? ‘키이’?”
생소한 애칭에 눈썹을 휙 올렸는데, 뜻밖에 키이엘로도 처음 듣는다는 생경한 얼굴로 도멤을 보고 있었다. 왜 날 그렇게 불러? 그 말에 빠르게 우리 곁으로 달려온 도멤이 혀를 찼다. 당연히 애칭이지. 내가 토 쏠린다는 얼굴을 해 보이자 도멤은 하하 웃으며 내 팔뚝을 쿡 찔렀다.
“나랑 로트는 이름이 두 음절이라 줄이기 묘하잖아. 돔? 롯? 롯 어때, 로트?”
“……꺼져.”
매정하긴! 도멤이 앵돌아져 말했지만 나는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지금 너희가 부르는 ‘로트’가 애칭이라는 소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키이엘로는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왜 ‘키이’인 거야? 나는 그의 말에 도멤이 멋대로 정한 애칭을 생각하다가 풉 하고 웃었다.
“그러게, 과일 같잖아. 키위.”
“그래서 귀여운 거지!”
“딱히 귀엽고 싶지 않아…….”
도멤과 나는 낄낄 웃을 뿐이었다. 그러다 도멤은 생각났다는 듯 우리에게 물었다. 맞아, 헤더 누나 못 봤어? 나는 눈만 꿈뻑였다. 헤더? 키이엘로도 늘어지듯 앉아 있던 몸을 추슬러 바르게 앉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누나는 왜?”
“그게…….”
도멤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자 나와 키이엘로는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 도멤은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췄다. 아까 마을 안이 어수선해서 잠깐 들었는데…….
“헤더 누나가 어제 디겔 아저씨랑 한바탕 싸우고 가출했대.”
뭐? 나는 홱 몸을 젖혔다. 놀란 내 얼굴을 보고 도멤이 알만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놀랐다니까……. 섬이니까 어디 멀리 못 가고 숨어있겠지만 걱정은 되는 모양이야. 흘끔 갑판 위를 살피자 디겔 아저씨의 안색이 안 좋은 것이 보였다. 발카는 매정하게 혀를 차고 관심 끄자, 로트. 하고 말했지만 나는 도멤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싸웠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정원 일로 싸웠나 봐.”
나는 그 밀림 같은 정원을 떠올렸다. 온갖 꽃과 나무, 풀들이 드리워져 마치 꿈속처럼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가꾸는 데에 큰 노력이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디겔은 정원일에 재능이 없다고 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을 텐데.
키이엘로는 한숨을 쉬며 느리게 말했다.
“그 정원이 예쁘긴 하지만, 헤더도 많이 힘들었을 테니까. 헤더도 정원을 벗어나 다른 걸 하고 싶었을 거야.”
그의 말에 동감이었다. 도멤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좀 더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꾹 물었다가 말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 정원은 디겔 아저씨께도 소중했을 거야. 헤더 누나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럼 둘이 가꿔야지 헤더만 정원 붙들고 아등바등하는데. 혼자 그렇게 일하고 있으면 정원에 있던 정도 떨어지겠다.”
내 말이 퍽 매정하게 들렸는지 도멤은 어색한 얼굴로 그런가……, 하고 웅얼거렸다. 키이엘로는 아무렴 상관없는 듯 걱정하는 어투로 물었다. 그래서 헤더 누나가 어디로 갔는지 다들 모르는 거야? 도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디겔 아저씨가 저렇게 죽을상인 것도 이해가 갔다. 인사도 못 하고 떠난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터였다.
배는 곧 출발하며 우렁차게 고둥을 울렸다. 마을 위에 서서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선원들은 모두 손을 흔들었다. 배가 섬을 벗어나는 즈음, 사과나무가 있는 절벽에서 프로데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베제는 아이를 보고 ‘저기 올라가지 말라니까!’하고 역정을 내다가도 이내 잔뜩 귀여워하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섬이 더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다로 나아가자 키이엘로가 간부진 회의에 호출되었다. 나와 도멤은 그를 보내주고 오랜만인 듯 느껴지는 해먹에서 늘어져 있었다. 도멤은 마을에서도 자주 하던 글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었고, 놀랄 정도로 배우는 게 빨랐다.
마을에서 나오면서 최근의 신문들을 구해왔다고 하니 도멤이 똑소리 나게 글을 쓰는 것도 먼일은 아닐 것이다. 반면 나는 나대로 속이 엉망이었다. 네토르에게 여자인 것을 들킨 것이나 겔라 부인의 고함 따위가 머리를 기어 다녔다. 우투그루도 이제는 다시 출항했으니 만족할까?
사실 그를 살펴보려면 얼마든지 살펴볼 수 있었지만, 일부러 보지 않았다. 나는 해먹에 누워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직도 불안해. 모든 게 불안해. 내가 도울 수 있는지 없는지는 빼더라도 어차피 나를 알게 되면 태도가 바뀌겠지……. 나는 짧게 단념했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행동할 필요도 없어.
애초에 처음부터 이렇게 되는 게 무서웠다. 역시 아무하고도 친해지지 않는 게 나았어. 이제는 자칫 발을 잘못 디뎠다가 미끄러질까 무서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잖아. 내가 손댈 수 없는 문제로 괴로워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발카가 물었다. 어디 아파, 로트? 나는 도멤 때문에 대답은 못 하고 얼굴을 가린 그대로 고개만 가로저었다. 피곤한 몸을 쉬고 있는데, 회의가 끝난 건지 키이엘로가 해먹에 앉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리고 고개를 조금 들어 그를 보았다.
키이엘로는 ‘왔어?’ 하고 반겨주는 도멤에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묘한 얼굴로 내 쪽을 보았다.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키이엘로의 얼굴에 나는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뭐야? 왜 그렇게 봐? 인사 안 해줘서 서운해?”
“그, 그럴 리가 없잖아…….”
키이엘로가 민망한 듯 얼굴을 조금 붉히다가 한숨을 쉬었다. 텐이 비웃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헛소리할 때가 아닐걸? 늑대의 말에 나는 눈만 깜빡였다. 키이엘로는 탓하는 것처럼 텐을 한 번 보았다가 도멤의 눈치를 살피더니―왜?― 차분하려 애쓰는 것처럼 말했다.
“그, 로트……. 디겔 아저씨가…… 너를 의심하던데.”
“의심? 나? 나 뭐?”
키이엘로는 깍지 낀 자신의 손을 움찔거리며 매만지더니 나와 발카를 흘끔 보았다.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얼굴이 굳었다. 그는 마치 커다란 상어 앞에서 최대한 그 상어에게서 과한 반응을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느리게 말했다.
“발카가…… 바다새가 아닌지…….”
나는 순간 얼굴이 완전히 날카롭게 굳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아차 한 마음에 표정을 풀었으나, 반사적으로 상체를 조금 뒤로 뺀 것을 보고 도멤이 눈을 깜빡였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욱 흐르는 것 같았다. 방금, 방금 반응은 누가 봐도 도둑이 제 발 저린 반응이었다고, 멍청아!
발카는 울컥해 욕을 쏟아냈다.
『그놈이 그걸 씨부리는 동안 넌 뭐 했어?』
『헛소리 마, 조류! 키이엘로가 거기에서 나서봤자 의심만 더 산다고!』
텐이 낮게 윽박질렀지만 발카는 늑대는 완전히 무시한 채로 버럭 외쳤다.
『그냥 네가 말을 흘린 건 아냐? 우리가 너희 따윌 어떻게 믿어!』
그에 텐이 벌떡 일어나 으르렁거렸고, 나는 다급하게 발카를 품에 안고 키이엘로와 도멤의 눈치를 살폈다. 도멤은 영문을 모르고 텐을 보았다. 키이엘로는 발카의 말에 조금 상처를 받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걸 더 자세히 읽기 전에 키이엘로는 표정을 갈무리하고 말을 이었다.
“항로를 결정하다가 나온 얘기야. 물론… 그냥 하신 말씀이겠지. 발카처럼 파란 새는 드물잖아.”
“그래, 로트. 발카가 바다새라니, 텐이 몇백 년 전부터 살아온 늑대라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거야.”
도멤은 우스갯소리를 할 겸 말한 것 같았지만 키이엘로와 나는 미묘한 얼굴이 되었다. 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 나는 헛기침을 하고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 아무래도 디겔 아저씨가 바다새를 바랄 정도로 항해기술자가 많이 고프신가 보다. 내 말에 발카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딴 놈을 어떤 바다새가 선택하겠어?』
나는 그 말에 문득 바다새가 사람을 고르는 기준이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솟았지만, 지금 물을 거리는 아닌 터라 눈을 돌렸다. 도멤이 고양이처럼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이참에 발카가 바다새인 척 항해사 자리를 꿰차는 건 어때, 로트? 나는 헛소리 말라고 일갈하고 한숨을 쉬었다.
불안한 소재를 벗어나기 위해 나는 가만히 나와 발카의 눈치를 보는 키이엘로에게 물었다.
“그래서 항로는 어디로 결정이 된 거야?”
“아. 일단 정보원을 사는 게 가장 시급할 것 같아서, 제국 본섬 가까이 갈 거야. 그러면 적어도 다시 꼬투리를 잡을 수는 있겠지.”
“더는 초월자를 찾아가는 일도 없겠지?”
내 물음에 키이엘로의 말을 듣고 있던 도멤이 푹 죽은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일은 없어야지! 에르노리에게 찾아갔을 때 나와 키이엘로가 홀라당 잡혀갔던 일이 아직도 무서운 모양이었다. 나는 도멤을 보며 장난으로 겁쟁이라고 놀렸고, 키이엘로도 가볍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홱 고개를 돌렸다. 배의 나무 벽만 있었다. 파도가 선체에 부딪히는 소리가 낮게 울렸으나 결코 사람의 목소리가 나올 구석은 없었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이 이상했는지 키이엘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래, 로트?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저으며 귀를 손으로 문질렀다. 아냐, 잘못 들었나 봐.
나는 미심쩍은 기색을 버리지 못하고 천천히 다시 키이엘로와 도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멤이 어색하게 굳은 그대로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녹색 눈동자를 힐끔거렸다.
“왜, 왜 그래, 로트. 나 이런 거 약하단 말이야…….”
“…그냥 파도 소릴 잘못 들은 거야. 그렇게 겁먹지 마, 쫄보 같으니까.”
“너무해!”
나는 귓가를 두어 번 더 문지르다가 손을 뗐다. 내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키이엘로가 아직 내 머리에 붙은 밴드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직 다 안 나았어? 나는 어깨만 으쓱였다. 거의 다 나았어. 이틀쯤이면 떼도 될걸. 나는 대꾸해주며 몸을 해먹에 기댔다.
그때 누군가 귓가에 입김을 부는 것처럼 바람 소리가 스쳤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다시 돌아보았다. 도멤이 으악 하고 자지러졌다.
“로트, 장난 그만해!”
그러나 이 상황이 장난이길 바라는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뭐지? 그 끝에 미약한 웃음기가 섞여 있던 것이 어쩐지 낯이 익었다.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웃음기는 둘째치고, 무슨 괴이쩍은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해먹에 드러누웠다.
“잠이 부족한가 봐.”
“어제 많이 잤잖아.”
“요즘 시대엔 낮잠도 필수적이야. 몰랐어?”
그런 소리 들은 적 없어……. 키이엘로가 미약하게 딴지를 걸어도 나는 한숨을 쉬고 눈을 꿋꿋하게 감았다. 머리도 터지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기력이 허해진 게 분명했다. 발카는 아무렴 내가 키이엘로나 도멤과 더 말을 섞지 않고 쉬는 것이 좋은지 내 몸 위에 엎드려 달라붙었다.
막상 쉬려니 정말로 피로감이 몰려왔다. 나는 눈을 감고 수마에 잠겨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기둥을 탁, 치며 우렁차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눈을 번뜩 떠버렸다.
“로트!”
안경을 반짝이며 뛰어온 베제의 모습에 키이엘로가 텐의 털을 설렁설렁 빗어 주다 말고 그를 보았다.
“베제?”
“으…… 제발, 나 거의 잠들었었다고!”
내가 버럭 짜증을 내자 베제가 이크, 하며 미안하다고 빠르게 굽실거렸다. 나는 끓는 한숨을 쉬고 삐딱하게 그를 보았다. 뭔데? 단언컨대 베제에게 이렇게 묻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과하게 흥분한 나머지 나를 부를 때와 비슷하게 우렁찬 소리로 외쳤기 때문이었다.
“네 새가 바다새라며!”
나는 뒷목에서 살짝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갑판 아래를 우렁우렁 퍼진 베제의 목소리 때문에 각자 쉬던 해적들이 고개를 두더지처럼 빼 들고 우리 쪽을 보았다. 뭐라고? 바다새? 무슨 새? 이 배에 새는 한 마리잖아. 걔가 바다새라고?
웅성거리는 소리에 키이엘로는 빠르게 포기하고 이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뜻이 가득 담긴 얼굴로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망할 뱃사람들, 미신에 연연하는 건 여전해서……. 내가 속으로 이를 가는 동안, 도멤은 베제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베제에게 물었다.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해?”
“헛소리야? 디겔 아저씨가 그러던데?”
“아니…….”
나는 한 번 더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망할 살아 숨 쉬는 저혈압 치료제 새끼가……. 내가 이를 악물고 있자, 도멤이 베제에게 작게 말했다. 베제…… 꺼져……. 그러나 베제는 들떠서 도멤의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대단하다! 바다새가 말을 해? 진짜 바다새야? 네 새 이름이 뭐였지? 비, 비… 빅키? 베로니카?
어금니에 힘을 꽉 준 탓에 내 턱이 씰룩이자 키이엘로가 침착하게 날 만류했다. 로트, 참아. 베제는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는 쫑알거렸다. 신기하다! 바다새는 날씨를 읽는다며? 진짜야? 대단하다! 그 설레발에 졸지에 영문을 모르는 해적들도 조금씩 가까이 와서 힐끔힐끔 발카를 곁눈질해댔다.
이런 씨……. 나는 급기야 뒷골이 당기는 것을 느끼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발카가 바다새가 아니라고 말뚝 박기도 그랬다. 망할, 네놈들의 옹이구멍 눈은 파란 새만 보면 바다새 같냐? 물론 바다새지만! 나는 점점 웅성거리는 선원들을 보고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고민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들 잘 들어! 발카는― 우왁?!”
그 순간 갑자기 배가 크게 출렁였다.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균형을 잃은 내가 넘어지려 하자 키이엘로와 도멤이 뒤에서 잡아주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방금?”
“설마― 지진?!”
“도멤 멍청아! 여기 바다야!”
나는 도멤에게 버럭 외치고 반사적으로 발카를 보았다. 바다의 이상기후라면 발카가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드물게 발카도 휘둥그레 놀란 눈을 하고 푸드덕 날갯짓해 해먹에 앉았다.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지금 무슨 일이야?”
『모, 모르겠어.』
뭐? 나는 아연한 얼굴로 발카를 보았다. 발카 역시 나 못지않게 황망한 얼굴로 헤매고 있었다. 나, 나는 몰라! 이런 거 몰랐다고! 나는 발카의 모습에 의아한 동시에 불현듯 술렁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선원들도 우리도 모두 놀라서 가까운 기둥이나 사람을 붙들고 엉거주춤한 채로 있었다. 베제가 느리게 기둥을 놓으며 말했다.
“뭐지, 그냥 큰 파도였나……?”
그러나 다음 순간 다시 배가 크게 출렁거렸다. 곳곳에서 으악,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리에서 넘어지는 선원도 있었다. 나는 내 팔을 붙들고 있는 키이엘로를 놓고 선체에 귀를 가져다 댔다.
우르릉, 하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갑판 위에서 땡땡거리는 종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폭풍이다! 폭풍 안으로 들어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