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61)
바다새와 늑대 (60)화(61/347)
#60화
갑작스러운 상황에 선원들이 일어나는 파도처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폭풍? 이렇게 갑자기? 항해하면서 날씨의 변화는 어느 정도 조짐이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건 이상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시작된 폭풍은 그 시작부터 너무 갑작스러웠다.
나는 선체에서 떨어져 균형을 잡고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괜찮아, 이 배는 크니까 그렇게 쉽게 난파하진 않으리라. 그러나 벌써부터 대부분의 해적이 휘청이며 마구 넘어질 정도로 배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노상 갑판에서 내려온 우투그루가 흠뻑 젖은 채 고함을 질렀다.
“화물을 확인해! 고정이 안 된 화물을 찾아 단단히 묶어라!”
그의 목소리에 해적들이 기다시피 하며 로프를 찾아 굴러다니는 궤짝들을 기둥에 엮어 묶기 시작했다.
일어나려다 휘청이는 도멤을 지탱해 붙든 나는 발카에게 따지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이게 뭐야? 왜 갑자기 폭풍이 온 거야? 그런 내 생각을 대변하듯 한 해적이 버럭 외쳤다.
“네 새는 바다새라면서!”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내가 짜증스럽게 외치자, 그는 뭐라고 더 하진 못하고 궤짝들을 기둥에 묶는 작업에만 열중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해적들을 노려보다가 이내 내 해먹의 아래에 있는 상자를 단단히 고정해 묶기 시작했다. 밖에서 쾅, 하는 천둥소리가 울렸다.
도멤이 어깨를 움츠렸다가 질린 얼굴로 내게 말했다.
“왜 갑자기 폭풍이 온 거지? 아까까지만 해도 날이 맑았는데…….”
“모르겠어. 이럴 리가 없는데…….”
내 대꾸에 도멤의 얼굴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나는 그가 왜 저런 표정인지 짧게 의아했다가 내 대답이 조금 이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서둘러 궤짝을 묶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도치는 소리가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처럼 들렸다.
갑판 위에서는 해적들을 아래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잘못하다간 항로가 틀어질 거야. 그리고 발카와도 대화를 해야 했다. 나는 짧게 고민하고 걸음을 옮겼다. 밖 좀 보고 올게. 내가 그렇게 말하고 발을 떼자 뒤에서 도멤이 날 몇 번 부르며 만류했다.
나는 그걸 뒤로하고 외쳤다. 발카! 푸른 새가 내 어깨에 앉자, 나는 꿋꿋하게 밖으로 나왔다. 난데없는 폭풍에 돛을 접는 것도 고된지 마스트의 활대에는 해적들이 매달려 고전하고 있었다. 나는 선미 쪽으로 가 더 지체하지 않고 어깨에서 발카를 내려 붙들고 말했다.
“이게 뭐야? 왜 진작 말 안 했어!”
『나도 몰랐어!』
“말이 돼? 넌 바다새잖아! 이걸 네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
발카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 난간에 앉았다. 나는 바람 때문에 뺨을 때리는 머리카락을 밀어내며 인상을 찌푸리고 발카를 마주 보았다. 발카는 단단히 기분이 상한 듯 나를 응시했다.
『정말로 몰라! 아주 불가능한 건 아냐. 나보다 상위의 존재가 바다를 움직였을 수도 있지…….』
“바다새보다 상위의?”
『초월자가 있잖아.』
하지만 드넓은 바다를 다루는 초월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나는 산호섬에서 짧게 마주쳤던 루루미를 떠올렸다. 하지만 굳이 바다를 움직일 필요가 있나?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내 발카에게 물었다. 확실해? 그러자 발카가 정말로 기분이 상한 듯 날카롭게 말했다.
『그래!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란 말이야!』
그러나 그 말에 일순 나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처음? 처음이라고? 이게 처음일 리가 없잖아. 나는 발카가 날씨를 읽지 못했던 적이 한 번 더 있었던 것을 상기했다. 내 얼굴이 미묘하게 굳자 발카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날 믿어, 로트. 정말이야! 하지만 한 번 피어난 의심은 쉽게 거두어지지 않았다.
나는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그럼 아버지를 삼킨 폭풍은 왜 몰랐던 거야?”
그 순간 발카가 부리를 딱 다물었다. 그 모습에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너…… 그때도 몰랐다고 했잖아. 그 순간 내내 흔들리던 배가 크게 출렁거렸다.
나는 균형을 잡고 서서 갑판 쪽을 내다보았다. 돛을 겨우 올린 배 위에서 몇몇 해적이 급하게 키를 조종하며 뭐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파도가 높게 일어 갑판을 몇 번 쓸어냈다. 머리 위에서는 시끄럽게 천둥과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덮쳐오는 파도를 피하고 하늘을 노려보았다. 과연 바다의 마녀의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다는 거칠게 일었고, 그로 인해 하늘까지 시꺼멓게 죽어 배를 삼킬 것 같았다. 나는 심지어 이게 그나마 덜한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이 이상 폭풍의 안으로 더 나아가면 정말로 크게 휘말릴 것이 분명했다.
나는 발카를 돌아보았다. 바다새는 아직도 부리를 딱 다물고 나를 보고 있었다. 그 고요한 자색 눈동자를 읽을 자신이 없었다. 잠시 난간을 붙들고 선 나는 차분하게 물었다.
“……정말 이번이 처음이었어?”
『…….』
발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미약한 절망감과 분노의 한기가 가슴을 쪼개고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발카에게 따지고 싶었다. 지금 날씨가 어떻든 이 망할 새의 목을 쥐고 흔들며 소리치고 싶었다. 왜? 왜 항상 이 꼴이야?
그러나 나는 발카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 어쨌거나 발카가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바다로 나갈 수도 없었을 터였다. 난 왜 뭐 하나 멀쩡한 게 없지? 배가 출렁이는 것에 따라 두개골 안으로 응어리가 질척이며 차오르는 것 같았다. 바다로 나왔으니 좋아질 줄 알았으나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항해를 계속할수록 나는 스스로가 점점 닳아간다고 생각했다. 내가 과연 지금 항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표류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입술을 깨물며 발카를 보다가 결국 치솟는 울분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내키지 않는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팔을 뻗었지만 불퉁한 몸짓을 숨길 수는 없었다. 바다새가 있는데도 바다 위를 헤매기만 하는데 내가 뭘 더 해야 하는 거야? 정말이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 머리에 엉킨 실타래가 들어온 것 같았다.
발카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내 팔 위로 올라왔다가 어깨에 앉았다. 나는 그 무게가 평소보다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때 광풍이 불어 뒤로 떠밀리듯 걸음이 주춤거렸다. 거센 바람에 팔을 들고 선수 방향을 보자, 하늘을 찌를 것처럼 파도가 높게 밀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휘청이며 그걸 보다가 갑판으로 달려갔다. 넘어진 해적 대신 키를 거의 끌어안듯이 붙들었다. 키는 자기 혼자 저절로 이리저리 돌아갔다. 결국 나는 거의 매달리듯 키를 잡고 선수 쪽을 보았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휘몰아쳤다.
천둥이 두어 번 우르릉 울리더니 빗방울이 더 억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배가 크게 휘청이며 갑판이 다시 한번 파도에 닦여나갔다. 항로, 항로의 방향은……. 그때 누군가 나를 도와 키를 붙들었다. 네토르였다. 그의 보라색 머리카락은 나처럼 푹 젖어서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사방을 살폈다. 제국의 본섬 방향은 여기에서 서남서 방위로 가야 했다. 내가 외쳤다.
“서남서로 틀어!”
“뭐? 그걸 어떻게 알아?”
네토르가 마주 소리쳤다. 나는 그에게 더 설명하지 않고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그 순간 배가 반쯤 한쪽으로 기울어지자 네토르는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팔뚝을 붙들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주욱 흘렀다. 아찔한 감각에 일순 숨이 턱 막혀 왔다. 나는 기울어진 선체의 난간으로 수면이 닿아오는 것을 보았다.
……배가 옆으로 누웠다!
이제 키가 문제가 아니었다. 키를 붙들어도 항로를 따라가는 건 어려울 것이다. 방향을 가르지 못하는 키는 이젠 마치 절벽에서 붙들 수 있는 나뭇가지처럼 느껴졌다. 나는 배가 다시 서기를 기다렸지만, 파도가 거칠어지자 배는 일어나려다가도 다시 이리저리 눕기를 반복했다.
나는 버럭 외쳤다.
“발카! 배 안으로 들어가!”
그러나 발카는 날갯짓해 안으로 들어가기는커녕 하늘 위로 날아갔다. 저 망할 새는 또 말을 안 들었다! 비에 젖은 손이 미끄러웠다. 네토르가 남은 손으로 나를 붙잡으며 외쳤다. 놓지 마! 나는 이를 갈았다.
“당장 바다로 던지기 전에 입 닥쳐! 안 놓을 테니까!”
그 말에 네토르가 보랏빛 눈동자를 둥그렇게 뜨고 나를 보았다. 나는 그의 표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몸이 저절로 덜덜 떨렸다. 이를 악물고 한 손으로는 그를 붙들고 다른 손으로는 키를 붙들었다. 그러나 점차 빗물에 그의 손이 미끄러지기 시작하자 나는 다급하게 눈을 굴렸다. 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게 있나?
나는 물에 미끄러지는 손이라도 어디에 닦고 싶었다. 빗물인지 땀일지 모를 액체가 콧대를 타고 미끄러지더니 끝에서 방울져 떨어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외쳤다. 제대로 잡아! 그러자 네토르는 억울한 얼굴을 했다. 제대로 잡고 있어!
그때 옆에서 키이엘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로트!”
나는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그는 갑판의 아래로 가는 계단에서 고개를 빼고 있었는데, 나와 아직도 각자 난간이나 기둥에 매달려있는 선원들을 보고 얼굴을 굳히더니 잠시 계단 아래의 누군가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리고 곧 그는 갑판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체 뭘 하려고 그러는가, 생각하는 그때 키이엘로가 갑판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나는 이젠 그 괴력이 놀랍지도 않았다.
키이엘로는 갑판에 구멍을 뚫어가며 바닥을 붙들고 가까운 해적부터 한 명씩 건져내 선실로 던져 넣었다. 나는 키이엘로가 나에게 올 때까지 버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 파도가 다시 몰아쳐 배가 원래대로 일어났다. 졸지에 갑판에 부딪혀 나뒹군 나는 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빠르게 달려온 키이엘로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네토르도 앓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더니 우리와 함께 선실을 향해 뛰었다. 발카 역시 그제야 갑판 아래로 날아 들어갔다.
젠장, 항로는 둘째치고 침몰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나는 혼자서 이리저리 돌아가는 키를 노려보다가 흔들리는 배에 비틀거리는 두 명을 붙잡아 계단으로 내려갔다. 곧장 도멤이 기둥을 부여잡아가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도멤의 어깨에 발카가 앉아 있었고, 그의 뒤를 따라 텐도 비틀거리며 따라왔다.
“로트! 괜찮아?”
“키를 붙들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어디 다친 곳은 없지? 다행이다.”
나는 옆의 기둥을 붙잡아 흔들리는 선체에서 버티고 섰다. 그때 머리 위로 물줄기가 떨어져 인상을 찌푸리고 위를 보자, 키이엘로가 뚫은 구멍으로 물이 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키이엘로를 흘끔 보았다. 그는 자신이 거의 내던지듯 안으로 밀어 넣었던 선원들을 눈으로만 살피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었다.
“허락받고 뚫은 거야.”
“수선 조가 또 울겠군.”
애써 침착하게 읊는 내 말에 도멤이 고개를 설설 저었다.
“지금은 폭풍에서 멀쩡히 벗어나기만 해도 다행일걸. 폭풍을 벗어난 뒤에는 더 울겠지.”
맞는 말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잡았던 기둥을 놓고 걸음을 옮겼다. 해먹에 도착한 나는 기둥에 등을 기대며 젖은 옷깃을 쥐어짰다. 날씨가 이 지경이니 팔자 좋게 씻거나 해먹에 누워 쉴 수 없었다.
도멤이 원숭이처럼 기둥을 잡고 기대 가까이 와 혀를 내둘렀다. 배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잘도 걸어간다, 로트. 나는 어깨만 으쓱였다. 옆구리에 텐을 껴안은 키이엘로도 기둥을 하나 붙잡고 한숨을 쉬었다. 폭풍이 멈출 때까지 선실을 이리저리 구르든 무조건 기다려야만 했다. 그나마 배를 난파시킬 정도로 커다란 폭풍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그 뒤로 한참을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피곤함에 졸다가도 배가 기울어 이리저리 구르면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어디 한군데 부서질 것처럼 휘몰아치던 폭풍은 몇 시간이 지나자 그제야 조금 거친 파도만 몰아칠 뿐 상당히 잠잠해졌다.
그동안 발카는 여전히 도멤의 어깨에 있었는데, 도멤은 그게 좋으면서도 의아한지 내게 물었다.
“로트, 네 새가 너한테 안 가는데.”
“내버려 둬. 오기 싫은가 보지…….”
사실 발카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건 나였지만, 나는 대충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 키이엘로는 의아한 듯 발카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자 발카가 뭘 봐? 하고 키이엘로에게 시비를 걸었다. 왜 키이엘로한테 화풀이람……. 나는 결국 발카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 발카.”
그러자 발카는 곧장 부리를 다물고 내게 날아왔다. 나는 어깨에 앉은 발카를 두고 한숨만 내쉬었다. 손발이 제멋대로 떨리고 머리가 지끈거려 무엇이든 깊게 생각하기 싫었다.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바다의 마녀가 폭풍을 일으켰든, 발카가 일부러 그날의 폭풍을 함구했든, 아버지가 그 뒤로 어떻게 되었든…….
그때 해적들 몇이 디겔과 함께 우르르 갑판 위로 나갔다. 폭풍은 지났지만, 파도는 아직 높게 치고 있었다. 나는 문득 우리가 어느 해역으로 온 것일지 가늠하다가 생각을 관뒀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위험하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하기가 무섭게 해적들 사이로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퍼졌다.
“모두 일어나 무장해라!”
“뭐야?”
무슨 일인데? 불안감을 느낀 해적들이 하나둘 일어나며 기웃거리자, 디겔과 나갔던 해적 중 한 명이 허겁지겁 내려왔다.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유령의 바다로 진입했다!”
유령의 바다? 내가 의아하게 눈을 깜빡이는 것과 동시에 도멤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안 돼…….”
목이라도 졸린 것처럼 도멤은 가느다랗게 중얼거렸지만 배는 이미 괴이한 바다로 진입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