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62)
바다새와 늑대 (61)화(62/347)
#61화
단지 으스스한 이름 때문에 겁에 질렸다고 보기엔 도멤의 안색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빠르게 키이엘로를 보았다. 그는 내가 이번 바다에 대해 모른다는 걸 눈치채고 얼른 설명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배가 흔들렸다. 파도 때문에 출렁이던 것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진동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다시 폭풍인가? 그러나 곧장 키이엘로가 긴장한 얼굴로 내게 검을 꺼내줬다. 도멤에게도 창을 쥐여줬지만 도멤은 아까부터 안색이 허옇게 질려서 도무지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허리춤에 검을 매면서도 도멤에게 물었다.
“너 괜찮아?”
“나, 난…….”
도멤은 경황없이 중얼거리다가 걱정하는 내 얼굴을 보더니 눈을 깜빡였다.
“……난 괜찮아.”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나는 그렇게 꼬집고 싶었지만 애써 입을 다물었다. 도멤은 파리하게 질린 채로도 꿋꿋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창을 꺼내 들었다.
발카는 해먹으로 옮겨가 앉아 내게 말을 걸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아직은 태연한 시늉을 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발카를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흔들리는 배를 마치 늪지대를 기는 뱀처럼 유연하게 걷는 내 뒤로 키이엘로가 따라붙어 빠르게 설명했다.
“바다의 괴물이 나오는 해역이야. 아니, 괴물이라고 할 수 있나……. 도멤? 어디 안 좋아?”
키이엘로는 바로 따라오지 않는 도멤이 의아한지 그를 돌아보고는 미미하게 미간을 좁혔다. 상태가 나쁘면 그냥 있어. 선장님께 내가 말할게. 그 말에도 도멤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후다닥 우리에게 달려왔다. 키이엘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도멤을 보았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으스스한 낌새의 이야기만 나왔다고 하면 왁왁하며 겁내는 도멤이 이름부터 유령이 들어가는 바다에 겁을 집어먹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잠시 도멤의 안색을 살핀 키이엘로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내게 이어 말했다.
“유령의 바다는 꽤 작은 해역이야.”
“그러니까, 바다 한가운데에 특정 지어질 정도로는 유별난 곳이라는 거네.”
“맞아……. 여기서는 유령선이 나오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갑판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가 멈춰 섰다. 뭐가 나온다고? 내가 키이엘로를 돌아보자, 키이엘로는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유령선이 출몰해.
유감스럽게도 내가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도멤의 안색이 정말 백지장보다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눈치채고 갑판 밖으로 나왔다.
과연 기겁해서 비상을 알린 이유가 있었다. 멍청하게 입을 벌린 나는 검은바다의 옆으로 한 치의 출렁임 없이 스르륵 다가온 커다란 범선을 보았다. 검은바다의 노상 갑판보다 높은 크기의 범선은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고, 돛도 갈가리 찢겨 음산했다.
저런 돛으로 어떻게 항해가 가능하지, 하고 얼빠져 생각한 나는 그래, 유령이니까, 하고 애써 결론지었다. 유감스럽게도 전혀 위로가 안 되었다.
끼이익, 하고 마치 노를 젓는 것 같은 소리가 음울하게 울려 퍼졌다. 배는 거무죽죽한 이끼가 바위에 붙은 해초처럼 뒤덮고 있었다. 그것이 없는 자리에는 대신 녹이 가득했다.
시간대에 맞지 않게 캄캄한 바다 위의 유령선은 그 괴이쩍은 공기가 압도적이었다. 배의 선수엔 여신을 조각했던 것으로 보이는 선수상이 있었는데, 썩어가는 시체처럼 이끼에 뒤덮여 을씨년스러웠다.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짓눌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나는 문득 이렇게까지 가까이 온 유령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인상을 찌푸렸다.
딱히 무언가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음침한 배가 우리 배에 딱 붙어 나란히 항해하고 있을 뿐 아무런 일도 없다는 점이 이상했다. 나는 잠시 주변을 곁눈질해 거의 시체 낯빛인 도멤을 힐끔 보고 마찬가지로 기이한 분위기에 압도되어있는 해적들을 살폈다.
나는 옆의 키이엘로에게 작게 속닥였다.
“왠지 조용하네.”
“좋은 일이지만, 뭔가…….”
키이엘로는 나와 마찬가지로 조금 미심쩍어하는 눈으로 유령선을 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배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고풍스러운 조각이 된 난간의 너머로도 아무도 없어 보였다. 슬쩍 위를 보자, 마스트의 장루에서 배를 살피던 정찰원이 클루스도에게 아무도 없다는 몸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긴장을 풀고 도멤을 툭 쳤다. 도멤이 입을 떡 벌리며 비명을 지르려는 것을 나는 기겁해 막고 빠르게 토닥였다.
“너무 놀라지 마!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하려던 거였어!”
“심장 튀어나올 뻔했어!”
“음, 미안.”
도멤의 질린 얼굴에 나는 반사적으로 사과하며 그를 달래는데, 갑자기 키이엘로가 나와 도멤을 밀쳤다. 졸지에 갑판 위로 넘어진 나와 도멤이 황당하게 키이엘로를 쳐다보는데, 그는 우리가 있던 자리에서 마치 구정물에 적신 헝겊으로 손을 감은 것처럼 잔뜩 구겨진 얼굴로 무언가를 손가락으로만 주워들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키이엘로와 비슷한 얼굴이 되었다.
그건 손목이었다. 헤진 천 자락에 감싸진 앙상한 팔목은 겨울의 나뭇가지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그것의 손에 단도가 들린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키이엘로가 그것을 손가락으로 잡아들고 황망한 얼굴을 했다.
“이게 뭐야?”
그 순간 죽은 듯 얌전하던 손목이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퍼드덕 날뛰었다. 키이엘로가 깜짝 놀라 그것을 놓치자 손목은 혼자 펄떡대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도멤이 히익, 하고 소리를 내는 것을 들으며 나는 눈만 깜빡이다가 검을 꺼내 그것의 손등을 찍었다.
덫에 걸린 쥐처럼 찍, 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낸 그것은 이내 까만 재가 돼서 흩날렸다. 나는 덩그러니 남은 단도를 주워들고 인상을 찡그렸다. 키이엘로에게 시선을 보낸 내가 물었다.
“이거 어디서 나온 건지 봤어?”
“……아래에서 솟아났어.”
“뭐?”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좁히다가 얼굴을 굳혔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 클루스도가 고요한 갑판 위에서 외쳤다. 함저 구역을 살펴라! 그때 갑판 아래에서 쨍쨍거리는 칼부림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우리는 일제히 계단 쪽을 보았다. 우투그루가 성큼성큼 계단을 향해 걸어가다 말고 흠칫하며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계단에서 괴이쩍은 뼈다귀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우리를 공격했다. 디겔이 욕설을 내뱉으며 외쳤다.
“망할!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나는 내게 달려오는 시체를 보고 기겁해 검을 모두 뽑아 들었다. 뼈와 가죽만 남았다고 봐도 무방한 외관의 그것들은 낡은 외투와 함께 해초 따위를 걸치고 있었다. 이마에 따개비가 붙은 것도 있었다. 살갗이 벗겨져서 뼈가 드러나 보이는 것들도 있었는데, 피는 흐르지 않았지만 부패하는 익사체 같은 모습에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모골이 송연해져 검을 휘둘러 목을 베어내고 난간 너머로 차 냈다. 그러나 이내 잘라냈던 머리가 이를 딱딱 부딪치며 내 팔뚝으로 튀어 오르자 진저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몸을 돌려 머리를 피하자 머리는 옆을 지나가며 이를 다문 듯 딱 소리를 냈다. 검으로 꿰뚫은 뒤에야 머리는 아까의 손목처럼 까만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러자 곧장 뒤에서 머리가 없는 몸뚱이가 덤벼왔다. 나는 잇새로 욕을 씹으며 휘두르는 눈먼 칼을 쳐냈다. 가슴께를 찌르자 그것도 재가 되었다.
나는 베는 것보다는 찌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칼을 고쳐 쥐었다.
덤벼오는 것들을 검으로 찌르는데, 갑자기 눈먼 검이 내 쪽을 그었다. 나는 황급히 피하며 황당한 눈으로 그 해적을 보았다. 이상하게 낯선 그 해적은 주황색 머리칼에 눈가가 얼핏 가려진 청년이었는데, 내가 피하는 것에 아차 했는지 고개를 까딱였다.
“죄송해요, 유령선원인 줄 알았어요.”
“……….”
나는 할 말을 잃고 그를 보다가 한숨을 쉬고 손을 내저었다. 그게 말이 되냐며 따질 여건이 아니었다. 내가 검을 들어 다시 뼈다귀 선원들을 찌르는데, 아까의 주황색 머리의 해적이 유령선원들을 마구잡이로 베어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쏘아붙였다.
“베지 말고 찔러! 네 발치에 손목들이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거 안 보여?”
“아.”
주황색 머리 해적은 내 말에 멈칫하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 제 발치를 보았다. 그러더니 검을 아래로 쥐고 벌레를 찌르듯 손목들을 가볍게 푹푹 찔렀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찌르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가 상대하던 해골들이 그 틈을 타 그대로 달려드는 것에 기겁하며 대신 그것들을 찔러댔다. 나는 어이가 출타하는 것을 느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단 말인가?
이내 고개를 든 그는 나를 보고 반사적으로 검을 들다가 멈추고는 아, 하고 어벙하게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가 검을 멈추기 전에 나를 다시 해골로 잘못 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진짜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일부러 이러는 건가?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대충 손을 내젓고 자리를 피했다. 그때 유령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가구가 삐걱대는 소리처럼 찢어지는 불쾌한 소음을 내며 느리게 검은바다와 거리를 둔 유령선은 이내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클루스도가 해골을 칼로 몇 구씩 꼬챙이처럼 찔러내고 외쳤다.
“포격이다! 포문을 열어라!”
그때 유령선에서 쾅, 하고 포탄을 쏘았다. 그러나 배가 심한 손상을 입을 것이라는 계산과 달리 검은바다는 멀쩡했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던 해적들이 의아한 얼굴로 유령선을 보았다. 뭘 쏜 거지? 웅성대는 소리 사이로 으악, 하는 비명이 들렸다.
나는 다급하게 비명이 들린 방향을 찾았다. 도멤의 소리였다. 내가 서둘러 도멤에게로 뛰어가자, 똑같이 도멤에게로 온 키이엘로가 도멤의 발치에 있는 것을 보고 흠칫 몸을 떨더니 칼로 찔러 바다로 떨쳐냈다. 도멤, 괜찮아? 키이엘로가 서둘러 묻자 도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핼쑥해진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
“포탄으로 사람 머리를 쏠 줄은 몰랐어…….”
“도멤, 괜찮아? 상태가 안 좋아 보여.”
나는 갑판 위로 이리저리 쏘아지는 머리를 질린 표정으로 쳐내며 도멤을 살폈다. 도멤은 고개를 내저었다. 나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정말이야! 그럴 리가 없었다. 도멤은 이런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누구보다도 질색하는 녀석이었다.
그때 다시 한번 유령선에서 포를 쏘았다. 몇 개는 반쯤 썩어 물러진 머리통들이 갑판에 질퍽대며 떨어졌고, 가끔은 박 터지는 소리를 내며 갑판을 뇌수로 더럽혔다. 나는 메스꺼움을 참으며 날아오는 머리를 공중에서 검으로 찔러 그대로 내던지고 도멤을 돌아보았다.
“도멤. 무서울 수도 있어. 무리라고 생각하면 내려가 피해.”
“하지만…….”
“별로 추천하진 않아요.”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나와 키이엘로는 고개를 들었다. 아까의 그 주황색 머리의 해적이었다. 키이엘로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클레인스! 그 말에 주황색 머리의 해적은 고개를 들고는 아, 하고 키이엘로를 보더니 인사했다.
“키이엘로 형, 오랜만이에요. 여기 계셨네요.”
그의 말투는 상황에 맞지 않게 너무 느긋했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동안 덤벼오는 유령선원은 나와 키이엘로가 검을 휘둘러 찔러야 했다. 도멤은 클레인스의 등장이 의외인 듯하다가 이내 더 하얗게 질려갔다. 나는 그의 얼굴이 더 하얗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네가 왜 여기까지 나와 있어? 하몬은?”
“이 해골들이 함저 구역에서부터 솟아났어요. 하몬은 마장석을 지키고 저는 노상 갑판까지 이놈들을 몰아낸 거예요.”
나는 그 말에 아까 계단에서 쏟아져 나온 유령선원들을 떠올렸다. 그걸 이 해적이 한 거라고? 나는 미심쩍은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러니까 이 주황 머리의 해적은 함저 구역에서 일한다는 소수의 선원이라는 건가? 그때 클레인스가 갑자기 귀를 막았다. 나는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눈만 깜빡이고 있었는데, 클레인스의 행동을 본 키이엘로와 도멤이 얼른 귀를 막았다.
키이엘로는 그들만 멀뚱히 보는 내 손을 잡아 내 귀를 막게 하고는 다시 자신의 귀를 막았다. 곧 검은바다에서 포탄을 발포하는 소리가 바다를 울렸다. 나는 귀를 일순 먹먹해지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며 유령선을 보았다. 안 그래도 너덜너덜하던 배는 검은바다의 포탄으로 더 볼품없는 배가 되었다. 당장에 침몰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유령선은 침몰은커녕 휘청이지도 않았다. 그 모습에 키이엘로가 인상을 굳혔다.
“소용이 없어.”
“유령선이라서? 하지만 갑판 위의 해골바가지들도 거진 다 해치웠어. 뭐가 더 있다고?”
그걸 모르니 문제지. 키이엘로가 침착하게 말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나도 주변을 경계하다가 조금 긴장이 풀린 것 같은 도멤을 보았다. 클루스도가 디겔에게 뭐라고 말하자, 디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선원들에게 외쳤다.
“유령선이 움직이기 전에 이 해역을 벗어난다! 속도를 높여!”
그 소리에 클레인스가 일어나 검을 갈무리하고 말했다. 저도 그럼 가봐야겠어요. 그에 도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나중에 또 봐. 그 말에 클레인스는 고개를 꾸벅이고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남은 해골들을 가르던 우투그루는 검은바다가 이내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주변을 살피며 경계했다.
유령선은 검은바다가 추월해 멀어지자 그제야 느리게 따라붙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이를 갈았다. 끈질겨! 도멤이 창을 짚고 유령선을 끔찍한 것을 보는 것처럼 흘기며 어깨를 떨었다. 뭐가 더 없으면 좋겠어……. 동감이었다. 나는 갑판에 아직도 질퍽대며 널브러진 머리통 몇 개를 검으로 쿡쿡 찌르며 몸서리를 쳤다.
그런데 돌연 우투그루가 얼굴을 굳히고 외쳤다.
“전방에 안개가 짙어요!”
“되돌아갈 수는 없어! 직진한다!”
클루스도가 외치자 우투그루는 불안한 얼굴로 안개와 클루스도를 번갈아 보았다. 그가 조금 만류하듯 클루스도를 불렀다. 아버지, 하지만……. 그러나 클루스도는 제 아들의 말을 막고 얼굴을 단단히 굳혔다.
그의 판단도 틀리지는 않았다. 뒤에는 유령선이 있었고, 되돌아가기엔 유령의 바다를 이미 많이 가로지른 상태였다.
돌아간대도 유령선은 우리를 쫓을 것이고, 운이 더 안 좋으면 다른 유령선까지 마주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개로 들어가는 것도 좋은 것 같진 않았다. 망망대해에 너무 뜬금없이 피어오른 안개는 그 농도부터 과하게 짙어 수상쩍었다.
도멤이 내 팔뚝의 옷깃을 꽉 쥐었다. 나는 도멤을 돌아보고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도멤, 괜찮을 거야.”
“그래, 아무렴 안개가 나을지도 몰라…….”
그 순간 안개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일그러지며 배를 집어삼켰다. 나는 깜짝 놀라 날 붙잡고 있던 도멤을 잡으려고 했으나 도멤도 놀라 나를 놓친 것인지 옷깃을 잡고 있던 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려 했지만 무리였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내 발도 안개에 가려져 마치 잿더미에 파묻힌 것 같았다.
나는 당황해서 외쳤다.
“도멤? 키이엘로?”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검 하나를 꺼냈다. 괴이쩍은 안개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는 몰라도 갑작스럽게 뭔가 튀어나올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나는 검을 쥐고 느리게 주변을 돌아보며 다시 외쳤다.
“키이엘로! 도멤!”
그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언니?”
나는 딱딱하게 굳었다. 랄티아의 목소리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