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64)
바다새와 늑대 (63)화(64/347)
#63화
우리는 나란히 걸어가며 안개를 헤치고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한참을 살폈다. 브레딕이 작게 툴툴거렸다.
“우리 꼴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아?”
“떠들지 말고 소리나 잘 들어봐.”
키이엘로의 타박에 브레딕은 입을 닫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주변을 살피다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가장 처음 주변을 살피며 돌아다닐 때는 왜 갑판이 끝도 없이 나왔지?
기실 지금도 갑판의 난간이나 계단 따위와는 마주치지 않았다. 어쩌면 머리가 소리 내며 안개를 뿜는 것과 별개의 이유가 있을지도 몰랐다. 방향 감각을 흐리게 만들든가, 그런 종류의…….
나는 애초에 이 바다가 처음이었으니 묻는 게 좋을 것 같아 입을 열었다.
“이 바다에서 이런 일이 흔해?”
“묻지 마. 우리도 이 바다로 온 건 처음이니까.”
“…….”
브레딕이 딱 잘라 말하는 것에 나는 한숨을 쉬고 걸음을 멈췄다. 키이엘로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이 바다에서 유령선이 나와서 유령의 바다라고 이름 붙었단 것밖에 몰라. 미안해, 로트.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미안할 필요는 없지. 아무렴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입장이니까.”
“몰랐다고? 악명이 대단한 바다잖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데.”
브레딕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바다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애초에 배를 타고 섬 밖으로 나가는 일이 허락되지 않은 여자애에게 바다를 알려주는 것은 시간 낭비였고, 그건 내가 바다새를 데리고 있게 된 이후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애써 바다에서 눈 돌리던 때도 있었으니 바다를 모르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게는 말이다.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자 키이엘로는 브레딕에게 대신 웅얼거리듯 말했다. 모를 수도 있지……. 브레딕은 내 반응이 무지에 대한 수치라고 생각했는지 얼른 어색하게 말을 얼버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다시 본론을 말했다.
“여기 걸으면서 이상하다는 생각 안 했어?”
“여기가? 글쎄.”
“잠깐……. 우리 난간이나 계단하고 마주친 적이 없지?”
키이엘로의 말에 브레딕도 이마를 치며 외쳤다. 맙소사! 내가 그걸 왜 놓쳤지?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다른 선원이랑 마주치는 일이 드문데도 안개 속에서 갑판의 끝을 마주한 적은 없어.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걷는다고 유령선에 오르는 것 같지도 않아…. 만약 그랬다면 머리통이 굳이 우리를 유인할 필요가 없었겠지.”
“그래. 어쩐지 계속 어디론가 데려가려는 것 같은 말을 하더라.”
브레딕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앞서 걷기 시작했다. 일단 걸으면서 생각하자고. 아직 안전한지 모르는 선원들을 유령선에 뺏길 수는 없었기에 나와 키이엘로는 말없이 브레딕을 따라 걸으면서 고민했다. 그때 키이엘로가 검을 내저어 안개를 가르다가 말했다.
“어쩌면 안개에 방향감각을 혼동시키는 게 있을지도 몰라. 왜, 한 번 들어가면 길을 잃어 나올 수 없다는 숲처럼…….”
“그거 일리 있다.”
브레딕이 손뼉을 치자 나는 키이엘로에게 되물었다. 그런 곳이 있어? 그러자 브레딕이 다시 키이엘로를 보았다. 그러게, 그런 곳이 있어? 나는 쓸데없는 추임새를 넣는 브레딕을 한 대 갈겨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키이엘로의 대꾸를 기다렸다. 키이엘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있어. 원리는 모르지만, 이 안개가 그곳과 비슷한 작용을 할 수도 있겠지. 그 말에 나는 흠, 하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대로 갑판 바닥에 꽂은 나는 그들을 재촉했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없는지를 우선으로 찾으며 안개 속을 한참을 헤치자, 꽤 많이 걸었을 즈음 우리 셋은 내가 꽂았던 검과 마주했다. 브레딕이 말했다.
“과연, 키이엘로 말이 맞아. 우리의 행로가 구불구불하게 이어져서 머리통이 이끄는 곳이 아닌 이상 제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야.”
“이제 더 보이는 대가리도 없어. 다른 선원들이 걱정인데…….”
그때 키이엘로가 고개를 번뜩 들었다. 그에 지레 놀란 나와 브레딕이 그를 바라보자, 키이엘로는 안개의 어느 한쪽을 보다가 외쳤다.
“텐?”
“뭐어? 네 늑대?”
브레딕이 당황하는 사이, 그제야 나에게도 머릿속에 웅웅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키이엘로!』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대갈통인가? 내 말에 키이엘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 것 같아. 우리 둘의 말에 브레딕이 한껏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둘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그의 반응에 우리가 들은 텐의 목소리가 진짜라는 것을 깨달았다.
키이엘로가 외쳤다.
“텐! 우리 여기 있어!”
『키이엘로! 이런 젠장!』
텐이 거하게 뭐라고 욕을 하더니 돌연 안개 속에서 튀어나왔다. 우리 셋은 화들짝 놀라 각자 비명을 지르며 요란을 피웠다. 그도 그럴 것이, 목소리는 꽤 먼 것처럼 느껴졌고, 텐이 튀어나온 곳은 소리가 들려온다고 생각했던 방향도 아니었다. 브레딕이 가슴을 부여잡고 헐떡였다.
“지, 진짜 깜짝 놀랐어……. 잠깐, 우투그루!”
브레딕의 말에 나와 키이엘로 역시 텐을 보았다. 늑대에게 우투그루가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업혀있었다.
브레딕이 서둘러 자신과 우리를 잇고 있던 끈을 풀어내고 우투그루에게 다가갔다. 우투그루를 부축해 이리저리 살피던 그는 코트 안쪽을 보고 얼굴을 무섭게 굳혔다. 텐이 컹 짖었다.
『유령선 가까이에 있던 걸 잡아 왔어.』
“뭐…… 브레딕, 우투그루 상태가 안 좋아?”
키이엘로가 숨을 들이켜는 것을 뒤로하고 내가 물었다. 우투그루가 작게 말했다. 헛소리 마. 그러나 브레딕은 자신의 허리춤을 감싼 천을 쥐고 우투그루의 코트 단추를 풀었다.
순간 비린내가 풍겼다. 키이엘로가 주춤거리며 텐을 보았다. 그 시선에 텐이 낮게 말했다. 급하게 피한 것 같지만 부상을 입긴 했어.
우투그루가 작게 콜록대다가 이를 갈며 브레딕의 손길을 피했다. 그냥 긁힌 거야. 그에 브레딕이 상당히 시니컬하게 말했다.
“뭐? ‘그냥 긁힌 거’? 내장이 긁혀나가야 정신을 차리냐?”
우투그루는 포기한 듯 한숨을 쉬고는 비척거리며 일어나 나와 키이엘로를 보았다. 짧게 우리를 훑어본 그는 우리가 별달리 다친 곳이 없자 고개를 설렁설렁 끄덕이고 말했다.
“무슨 농간인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는 별다른 타격이 없는 걸 보면 뭔가 알아낸 모양이지.”
하여간에 눈치 하나는 죽여주는 새끼였다. 나는 부정하지 않고 빠르게 정보를 늘어놓았다. 그에 우투그루는 침착하게 내 말을 듣더니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투그루에게 코르셋이라도 입혀줄 기세로 옆구리 위쪽의 갈빗대를 천으로 꽁꽁 싸매던 브레딕이 대강의 응급처치를 끝낸 것인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안개가 가장 큰 문제야. 머리통만 보여도 서둘러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우투그루, 왜 그래? 설마 독 묻은 칼에 맞은 건 아니지?”
“넌…… 내 허리가 개미 새끼인 줄 아나 보지……?”
급기야 우투그루의 얼굴에서 혈색이 빠져나가자 브레딕은 우투그루의 몸통을 두른 천을 헐겁게 고쳐 묶어야 했다. 그때 내내 무언가 생각하던 키이엘로가 내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를 돌아보자, 키이엘로가 내게 속닥이며 물었다.
“발카는?”
“발카? 발카를 왜?”
“텐은…… 안개에 방해받지 않는 것 같았어. 혹시 발카도 마찬가지라면 텐과 발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카를 떠올렸다. 아직 발카와는 어색했다. 그때 텐이 말했다.
『그 새는 부를 필요 없어. 나는 이런 환경에 익숙한 거야.』
그 말에 키이엘로는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발카를 부른다고 올 수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 말에 나는 내심 안도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것을 느꼈다. 발카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굴 수는 없어. 나는 다짐하듯 생각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우투그루가 우리를 불렀다.
“너희끼리 뭐라고 속닥거리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생각한 방법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말해.”
“…뭐라고 할래?”
“…….”
내가 키이엘로를 툭 쳤으나 키이엘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짙은 고뇌가 돋보였다. 텐을 앞세우자고? 어디로 가라고 하는지 사람 말을 늑대가 알아듣겠는가…….
물론 텐은 알아듣지만, 적어도 브레딕과 우투그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도멤이었다면 ‘우리 텐 무지무지 똑똑해!’ 하면서 헬렐레 좋아했을지 몰라도, 브레딕이나 우투그루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도멤도 걱정인데……. 가뜩이나 이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못 견뎌 하는 마당에 각자 따로따로 떨어졌으니 도멤이 너무 무서워하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우투그루가 말했다.
“무엇보다 너희도 도멤을 찾으려면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아냐? 무슨 헛소리를 하더라도 이번만은 봐줄 테니 일단 말해봐.”
“물론 도멤도 서둘러 찾고 싶지만……. 일단 가까이 있는 순으로 찾아야지.”
내 말에 우투그루는 미묘한 얼굴로 눈썹을 휙 들어 올리더니 미심쩍은 듯 아, 그래?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키이엘로가 입을 열었다.
“역시 텐에게 찾으라고 하는 게 낫겠어.”
“네 늑대?”
브레딕이 텐을 힐끔 보았다. 텐은 작게 콧김을 뿜고는 말했다.
『이미 예정된 일이었지.』
그에 우투그루는 묘하게 불신이 섞인 얼굴을 했다.
“네 늑대가 이곳에서 헤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
“……텐이 나와 만나기 전에 지냈던 곳이 딱 이랬어.”
키이엘로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대꾸해주었다. 그러자 우투그루도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턱짓했다. 더 정확히는, 그는 더 말을 잇고 싶지 않다는 태도였다.
“앞장서.”
아까보다 안개가 상당히 옅어졌기 때문에 나와 키이엘로는 서로 묶은 끈을 풀고 움직일 수 있었다. 우리 넷은 서로 가깝게 모여 걸어가며 주변에서 소리가 나는지 살폈다.
그러다 나는 아까 전 키이엘로가 말한 ‘길을 잃는 숲’을 떠올리고 텐을 슬쩍 곁눈질했다. 요컨대 그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었단 거로군. 문득 나는 우투그루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동물에게 찾게 한다는 말에 보통 저렇게 순순히 수긍하나? 심지어 키이엘로는 텐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텐이 그저 앞장서 걷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우투그루를 돌아보았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아차 싶었다. 그러나 우투그루는 별달리 타박하진 않았다. 그저 내게 생뚱맞은 것을 말할 뿐이었다.
“되도록이면 도멤을 먼저 찾자.”
“물론,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 그런데 의외네. 너는 분명 선장님부터 찾자고 할 줄 알았는데…….”
키이엘로가 옆에서 동의한다는 듯 눈을 굴렸다. 우투그루보다 앞장서 걷고 있었기 때문에 뒤의 둘에겐 보이지 않았겠지만 나와 텐은 그걸 보고 키이엘로를 찔렀다. 넌 나나 바짝 따라와, 키이엘로. 텐의 말에 키이엘로는 알겠다는 한숨을 쉴 뿐이었다.
그런데 우투그루가 돌연 미미하게 아까의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와 대화를 하는데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것을 느낀 표정이었다. 우투그루가 쐐기처럼 짧게 말했다.
“너 도멤이랑 친구 아니었냐?”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
“도멤을 이런 곳에 두고, 심지어는 아마 혼자 있을 텐데 ‘빨리 구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진심이야?”
나는 우투그루의 말에 불쾌함보다 앞서 불안감이 안개처럼 퍼지는 것을 느꼈다. 그야 나도 도멤이 이런 것을 못 견딘다는 것쯤은 알았다. 우리도 당연히 도멤에게 서둘러 가고 싶었다. 그의 안색이 시퍼렜으니 마음이 조급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우선순위를 정할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우투그루는 오히려 우리가 도멤만을 찾으려 하면 비난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누구보다 절대다수를 중시할 것 같던 녀석이 왜 이러지? 키이엘로도 의아한 듯 우투그루를 조금 돌아보았지만, 딱히 입을 열지는 않았다.
나는 멋쩍은 기분에 괜히 불퉁한 태도로 말했다.
“나도 물론 도멤을 빨리 찾고 싶어. 하지만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건 의외다. 넌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도멤만을 더 우선시하면 분명 뭐라고 꽥꽥거리겠다고 생각했거든.”
“뭐?”
우투그루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날카롭게 헛웃음을 뱉어내고는 입을 다물었다. 브레딕이 우투그루를 힐끔 보다가 슬쩍 팔꿈치로 그를 찔렀다. 어떻게 알았냐 묻는다면 하필 브레딕이 우투그루의 부상을 찔러 그가 악 소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독침이라도 쏠 듯 브레딕을 한껏 노려본 우투그루는 한숨을 쉬다가 짧게 말했다.
“적어도 너희 둘이 아직 도멤에게 이야길 못 들었다는 것만은 알겠다.”
“무슨 이야길…….”
그때 텐이 컹 짖었다.
『전방에 선장놈!』
왜 그렇게 부르는 거야! 키이엘로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얼굴로 텐을 한 번 보고 뒤돌아 우리에게 말했다. 누굴 발견했나 봐. 구체적으로 선장님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그가 외치자, 브레딕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이엘로가 안개를 헤치자 가까이에서 누군가 킬킬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우리 넷은 모두 얼음을 뒤집어쓴 것처럼 굳었다. 그러나 텐이 킬킬 웃는 머리를 콱 물자, 이내 머리통이 으깨지며 안개를 걷어냈다. 아니나 다를까 걷어진 안개 사이로 클루스도가 검을 든 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너희들이었구나.”
우투그루가 안도하며 부르자, 클루스도는 한숨을 쉬며 곡도를 허리춤에 갈무리했다. 나는 아직도 팔뚝에 올라온 소름을 문질러 떨쳐냈다.
머리통이 내던 웃음소리는 우홉피아주 선장의 것이었다. 하지만 선택이 좀 잘못된 것 아닌가? 클루스도가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순순히 유인될 리가 없다.
호승심을 건드려 덤벼들게 하려는 건가? 그럴듯했다. 나도 비슷한 소리를 들었으니까 말이다. 클루스도가 검을 꺼내 들고 있던 것을 보면 맞을지도 몰랐다.
합류하게 된 클루스도에게 우리가 모은 정보를 설명해주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서로 갈라져 다른 이들을 찾기로 했다.
텐이 없긴 하지만 목소리와 안개의 정체를 알아냈으니 무작정 뭉쳐서 다니는 것보다 여러 팀으로 흩어져 수색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일리 있는 말에 결국 다시 키이엘로와 나, 텐만 남게 되자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좋아, 이제 어쩌지?”
“다시 찾아야지. 텐, 혹시 냄새를 맡을 수 있어?”
『희미해. 아까 물었던 머리통 때문인지 입안에도 온통 비린내뿐이야.』
그 말에 나와 키이엘로는 미약하게 실망해 어깨를 늘어뜨렸다. 키이엘로가 말했다. 아무래도 도멤이 걸려. 그건 나도 그랬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며 물었다.
“텐, 도멤의 냄새는 안 맡아져?”
『모르겠군. 사실대로 말하자면 선원들이 오죽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건지 냄새가 이리저리 뒤섞여서 도움이 안 돼.』
그 말에 키이엘로가 입가에 주먹을 맞대고 생각에 잠겼다. 우투그루가 도멤을 계속해서 강조한 점이 걸렸다. 도멤이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것……. 나는 해적 마을에서의 폐가를 떠올리고 작게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그때 키이엘로가 말했다.
“어쩌면…… 우투그루 녀석이 도멤을 걱정한 이유가 유령선으로 쉽게 유인될 것 같아서라면…….”
“잠깐, 더 말하지 마.”
“유령선이 있는 방향으로 가서 찾아보는 건…….”
젠장, 말하지 말랬잖아! 나는 그에게 꿀밤을 놓고 싶은 것을 참다가 결국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방법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긴 해. 내 말이 끝나고 나와 키이엘로는 텐을 물끄러미 보았다.
텐은 떫은 감을 씹을 얼굴로 인간 둘을 보다가 귀를 파닥이고는 말했다.
『좋아, 따라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