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65)
바다새와 늑대 (64)화(65/347)
#64화
키이엘로가 텐의 뒤를 따라가며 안개를 살폈다.
“안개가 점점 옅어지는 걸 보면 다들 조금씩 머리를 부수고 있는 것 같아.”
“아무것도 못 알아차릴 만큼 선원들이 멍청이는 아니겠지…….”
그의 말대로 안개는 전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자욱한 것은 변함이 없었다. 우리는 텐을 따라가며 검을 빼 들었다. 삐끗하면 안개 틈으로 늑대를 놓칠 것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집중해서 서로 가까이 붙어 걸어야 했다. 무슨 공격이 언제 갑작스레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키이엘로가 말했다.
“안개가 있기 이전엔 유령선이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았잖아. 그런데도 우투그루가 부상을 입었다면 단순히 안개 때문일까?”
“글쎄. 하지만 확실히 안개로 시야가 좁은 게 불안하긴 하지만……. 우투그루가 고작 그 정도로 당할까?”
“……나한테 객관적인 평을 기대하지는 마.”
“말을 말자.”
떨떠름하게 키이엘로에게 대꾸하는 그때, 텐이 컹 짖었다. 뭔가 다가온다! 그 말에 나와 키이엘로는 동시에 손에 쥔 검을 똑바로 들며 긴장했다.
순간 키이엘로가 휘청거렸다. 그가 짧게 소리치고는 발을 홱 내저어 무언가를 걷어찼다. 뼈다귀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솟아난 해골의 팔뚝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바닥을 보다가 말했다.
“바닥에서 나온 건가? 그러면 갑판 위뿐만 아니라 선실도 위험하겠어.”
“빨리 서두르자. 이렇게 예상 못 한 곳에서 튀어나온다면 도멤도 위험할 거야.”
우리는 걸음을 빠르게 재촉해 텐을 따라갔다. 텐이 다시 짖었다. 이 앞이야. 아니나 다를까 많이 옅어진 안개 사이로 판자가 갑판의 난간에 걸쳐진 것이 보였다. 건너편에 있을 유령선은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내가 먼저 판자에 발을 올렸다.
키이엘로가 뒤에서 긴장한 채 나를 걱정했다. 조심해, 로트. 나는 그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판자 위를 느리게 걸으며 검을 고쳐 쥐었다. 안개 앞에서, 나는 문득 판자를 디딘 내 발의 주변에 혈흔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발로 슬쩍 문질러보자 금방 주변으로 번졌다.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이거 우투그루의 흔적인가? 그때 키이엘로가 내 목덜미를 잡고 뒤로 당겼다. 셔츠에 목이 졸려 욕지기가 튀어나올 뻔했지만 내가 있던 곳을 찌르는 창을 본 나는 키이엘로가 당긴 대로 그의 뒤로 자리를 옮겨 난간에 걸쳐진 판자에 검을 꽂아 단단히 고정시켰다.
키이엘로가 회수되는 창을 잡아 쥐고 당겼으나 상대가 창을 놓은 듯 아무것도 딸려오지 않았다. 키이엘로는 얼굴을 굳히고 창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도멤의 창이야.”
그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명확했다. 도멤이 유령선에 있거나 무기를 뺏긴 것이다. 나는 키이엘로와 시선을 교환하고 걸음을 옮겼다. 텐이 몸을 낮춘 채로 안개 가까이 갔다가 불시에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안개 속에서 몇 번 부러지고 부딪히는 소리가 난 뒤에 우리는 안개를 헤치고 들어갔다.
그러자 텐의 주변으로 쌓인 잿더미와 무기를 들고 텐을 경계하는 유령선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나와 키이엘로가 안개를 헤치고 들어오자마자 곧장 우리에게도 시선을 돌려 공격해왔다. 나는 가장 앞의 선원을 찌르고 주변을 급히 살폈다.
안개는 벽처럼 검은바다만을 감싸고 있었는데, 우리가 나온 쪽에 남은 혈흔 말고도 점점이 이어진 다른 혈흔이 보이자 나는 빠르게 그것을 눈으로 훑었다.
우투그루는 공격은 당했어도 텐에게 구조되었으니 이 유령선 안까지 그의 흔적이 남았을 리는 없었다. 그럼 다른 선원의 혈흔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나는 내게 칼을 꽂는 선원을 찔러 치워내고 핏방울을 따라 나아갔다. 내 뒤를 키이엘로가 따라오며 나머지 해골들을 처리했다.
나는 곧 기겁해서 핏방울의 궤적을 따라 뛰어갔다.
“도멤!”
도멤이 칼에 찔려 난간 쪽에 몰려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칼을 손으로 잡아 막고 있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의 녹색 눈이 선명한 공포를 담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도멤을 찌르고 있는 유령선원을 발로 찬 뒤 머리를 검으로 찍었다.
키이엘로가 그 옆에 있는 유령선원의 턱주가리를 후려치는 것과 동시에 남은 해골바가지가 도멤을 끌어안듯 붙들고 난간 너머로 몸을 던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 선원을 잡으려 몸을 날렸다. 검을 찍어 넣자 유령선원은 금방 재가 되었지만, 도멤의 몸은 이미 난간을 넘어간 상태였다.
“로트!”
키이엘로의 외침에 도멤이 눈을 질끈 감다가 곧 크게 뜨며 나를 보았다. 나는 유령선원이 그랬던 것처럼 그를 단단히 붙들고 시선을 마주쳤다. 도멤의 녹색 눈이 내 눈과 뚜렷하게 부딪쳤다.
나는 흉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숨 참는 게 좋을걸!”
곧 도멤과 나는 풍덩 소리를 내며 바다에 빠졌다. 빠지기 전, 몸을 돌려 내가 먼저 떨어져서인지 등이 얼얼하게 아파 왔다. 누가 채찍질이라도 한 것 같았다.
도멤은 밀려오는 바닷물에 인상을 찌푸리다가 뭔가 말하고 싶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보다 도멤의 상처에서 선명하게 퍼지는 핏물이 더 중요했으므로 서둘러 그를 붙들고 위로 올라갔다.
수면에 닿자 나와 도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숨을 들이켰다. 청량한 내음보다 물비린내가 짙게 나는 바다였다. 나는 위를 보며 키이엘로가 우리를 확인하고 안도하는 것을 확인하고 유령선을 살폈다. 밟고 올라갈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우리를 눈치챈 듯, 키이엘로는 위에서 빠르게 외쳤다.
“둘 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뭐라도 찾아볼게!”
나는 알겠다는 의미로 팔을 저어 보이고 도멤을 보았다. 도멤은 수온이 차가운지 잘게 떨고 있었다. 출혈이 걱정이었다.
유령의 바다에도 상어가 있나?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면 골치인데. 그때 도멤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파랗게 질린 입으로 말했다.
“왜 그렇게 봐?”
“뭐? 무슨 소리야.”
도멤은 피가 빠져나가서인지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푸르게 질린 안색이었다. 그것이 갈라지기 전 두려움에 떨던 안색보다 심각해 보여서 나는 키이엘로와 나를 묶었던 천을 다시 풀어 도멤에게 내밀었다. 도멤은 멍하니 그걸 보다가 나를 보았다.
“너 피가 너무 많이 난다. 좀 지혈해.”
“아, 난 또…….”
“뭐라고 생각한 거야?”
“별 건 아냐. 그냥…….”
도멤은 내게 받은 천으로 어깨를 감싸다가 퍼뜩 고개를 들어 유령선을 보더니 내게 말했다.
“그, 그런데. 혹시 다른 사람 본 적 없어?”
“저 시체 선원들을 사람이라고 친다면 많이 봤지.”
도멤은 약간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안개를 뱉는 머리의 존재를 알려줘야 할까 생각했지만, 위에서 키이엘로가 우릴 부르는 것이 더 빨랐다.
키이엘로가 던져준 밧줄을 타고 유령선 위로 올라가자, 안개에서 벗어난 검은바다가 보였다. 갑판 위의 유령선원은 키이엘로가 전부 해치운 것 같았다.
우리는 서둘러 도멤을 데리고 검은바다로 돌아갔다. 판자에 꽂아둔 검을 다시 뽑아내는데, 유령선의 갑판에서 또다시 유령선원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잔당이 더 있다! 내가 외치자 옅은 안개 사이로 클루스도가 외쳤다.
“유령의 바다를 벗어난다!”
검은바다가 속력을 높이는 사이, 남은 선원들은 안개를 헤쳐 머리통을 찾아내는 것에 열중했다. 그때 도멤을 데리고 세운을 찾으려던 우리 사이로 머리통이 데루룩, 굴러왔다. 그것을 보고 도멤이 질색하는 얼굴을 하는 것에 나는 얼른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머리통이 한 발 더 빨랐다. 돌연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상황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천진난만한 목소리였다.
“많이 보고 싶었어.”
히히. 그렇게 웃는 소리가 더 나기 전에 나는 검으로 머리를 내리찍었다. 내가 검을 거두자 키이엘로는 서둘러 발로 머리통을 멀리 차내며 도멤을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키이엘로는 당황해서 도멤을 불렀다. 나도 그를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도멤의 얼굴은 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살아있는 나무가 칼에 찔려 줄기를 뒤틀어버린 것처럼 일그러진 표정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의 여러 표정을 봤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저런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도멤? 괜찮아?”
“걱정 마, 도멤. 저건 그냥 목소릴 흉내 내는 머리통일 뿐이고…….”
일단 너 빨리 선의에게 가자. 심상치 않은 기색에 서둘러 말하는데 돌연 도멤이 난간 쪽으로 달려갔다.
몸도 성치 않은 놈이 갑자기 달려가니 깜짝 놀란 나와 키이엘로가 도멤의 뒤를 쫓아가자, 도멤이 새되게 외쳤다.
“저리 가!”
“도멤!”
도멤은 난간으로 허리를 숙이더니 곧 심하게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에 당황한 나와 키이엘로가 서둘러 도멤의 등을 두들겨주는데, 도멤이 숨을 헐떡이다가 우리의 팔을 밀어내며 다시 외쳤다.
“꺼져!”
“도멤, 진정해…….”
도멤은 몇 번을 더 헛구역질하다가 등을 들썩이며 거칠어진 숨을 고르더니 난간에 이마를 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게 들리는 가쁜 호흡 사이로 흐느낌이 섞이자 그제야 우리는 도멤의 상태가 정말로, 생각보다 더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키이엘로는 잠시 서로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우리 둘은 이런 일엔 서툰 편이었고, 오히려 도멤이 이런 쪽에서 나서는 편이었기 때문에 반전된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나는 어색하게 도멤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
“도멤. 다 괜찮아. 일단 부상부터 치료하자.”
그러자 도멤은 잠시 고개를 들고 바다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의 녹색 눈이 불에 타는 수풀처럼 고통스러운 빛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그게 괜찮을 수 있겠어?’ 그렇게 소리치는 것 같은 눈이었다. 나는 그를 뭐라고 더 달래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검은바다가 유령선을 피해 빠르게 속력을 올리기 시작하자, 선원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갑판 아래에서는 다른 일이 없었는지, 남은 머리가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동시에 브레딕에게 부축받아 선의에게 가려던 우투그루가 우리와 도멤을 보고 브레딕과 함께 가까이 다가왔다.
“도멤, 도멤! 괜찮아?”
우투그루는 도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물어보더니 한숨을 쉬고는 난데없이 발로 도멤을 걷어차 난간에서 떼어냈다.
나와 키이엘로는 기겁하며 놀라 도멤이 넘어지지 않게 잡고 황당한 눈으로 우투그루를 보았다. 그는 움직인 것으로 상처가 아팠는지, 앓는 소리를 내다가 우리를 보고 뭐, 하고 을렀다.
그러더니 우투그루가 이어 말했다.
“도멤, 정신 차리고 선의한테나 가.”
도멤은 걷어차인 것 때문인지 얼떨떨한 얼굴로 우투그루를 보았다. 그러자 우투그루는 입꼬리를 비틀다가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꼴사납게 굴지 좀 마! 너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심란하게 만들어야 겠어?”
그 말에 나는 당장에 인상을 구겼다. 저게 무슨 망언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 말에 도멤은 정신이라도 번쩍 든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나는 이젠 더없이 황망해졌다. 키이엘로도 당황한 얼굴로 우투그루와 도멤을 번갈아 보다가 우투그루가 미련 없이 브레딕과 함께 떠나자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도 난감한 낯으로 어깨만 으쓱였다. 나라고 별달리 무언가를 하겠는가? 나는 문득 의문이었다. 우투그루가 그런 말을 마구잡이로 할 만큼 사람을 모르는 녀석도 아닌데 왜 저런 말을 한단 말이야?
그러나 어쨌거나 나는 도멤을 살피다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세운에게 가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