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66)
바다새와 늑대 (65)화(66/347)
#65화
세운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도멤의 부상은 다행히 치명적이지 않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세운 대신 원이 지혈을 돕고 도멤의 어깨와 가슴에 약초를 바르고 있었다.
도멤은 추위 때문인지 출혈 때문인지, 혹은 유령선의 후유증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창백하게 질린 상태였다.
나와 키이엘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멤의 옆을 지켰다. 보통이면 너스레를 떨었을 도멤은 어색하다는 듯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멋쩍은 공기 속에서도 원은 꼼꼼하게 도멤의 상처에 약을 바른 뒤에 작고 조금 어눌하게 말했다.
“마취가 되는 겁니다. 효과가 도는 것 같을 때 불러요, 꿰매야 하니까.”
키이엘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원은 세운을 돕기 위해 다른 선원에게로 가버렸다. 도멤은 자신의 어깨를 흘끔 보며 짙은 갈맷빛의 약초 가루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내가 건들지 마, 하고 말하자 그는 얼른 손을 무릎 위로 내려두었다. 혼날 것 같아 괜히 딴청 부리는 어린애 같았다.
그때 선실로 아까의 어리바리하던 주황 머리, 클레인스가 부축받으며 들어왔다. 그의 상태는 꽤 엉망이었는데, 무덤덤한 얼굴과 다르게 옷부터 피에 젖지 않은 부분을 찾기 힘들었다.
세운이 깜짝 놀라 그에게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본 키이엘로가 말했다.
“역시 유령선원들이 아래에서부터 솟아오를 때 함저 구역부터 역순으로 올라온 것 같아.”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우리야 모르지…….”
키이엘로는 그렇게 말하며 클레인스를 조금 걱정스럽게 보았다. 그래도 클레인스 덕분에 피해가 크진 않았나 봐. 그 자신은 많이 다친 것 같지만. 나는 턱을 괴고 엉망인 클레인스를 보다가 물었다.
“저 녀석 실력이 괜찮아? 좀 어리바리하게 굴던데.”
“클레인스는 앞이 거의 안 보여.”
키이엘로의 말에 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주황색 머리칼에 덥수룩하게 가려진 눈을 보려던 나는 관두고 물었다.
“어느 정도로 안 보인다는 거야? 그냥 단순히 시력이 안 좋은 걸 말하는 거야?”
“글쎄. 그것보단 조금 심한 편이지. 시각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청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더 익숙할 정도로?”
그 말을 듣고 나자 나는 순수하게 감탄만 했다. 정말 대부분이 잘 안 보이는 상태에서 싸운 것이라면 상당한 실력이었다. 그가 왜 나와 유령선원을 잘 구별하지 못했는지도 이해가 갔다. 키이엘로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클레인스는 우리 배에 오를 때부터 그랬어.
그렇다는 것은 클레인스의 눈은 우홉피아주와 무언가 관계가 있는 것일 터였다. 나는 깊게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쓰다가 여태 조용히 있는 도멤을 보았다. 도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또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마취는 어때?”
내 물음에 도멤은 고개를 끄덕였다. 된 것 같아……. 나는 애써 아무것도 모르는 척 도원을 불렀다. 그가 금방 다가와 도멤의 상처를 꼬매는 것을 보다가 나는 키이엘로와 눈을 마주쳤다. 키이엘로도 도멤의 태도가 신경 쓰이는 듯 나에게 무언의 눈짓을 했다.
원이 상처에 모든 처치를 하고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줬다. 나는 일전에 억양이 강해 말을 잘하지 않는다던 세운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세운의 말대로 원은 그들의 억양이 묻어있긴 했지만 알아듣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제국어가 통용되는 지금, 지역에 의한 억양 차이는 방언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원이 단지 억양이 다르단 이유로 소심하게 말을 아낄 성격도 아닌 것 같았으니 어쩌면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잠시 후 원이 떠나자 나는 주변을 살피다가 접이식 칸막이를 당겨 바쁜 선실과 우리의 자리를 갈랐다. 그러자 칸막이로 선실의 소음이 그나마 가려졌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도멤을 불렀다.
“도멤.”
“…….”
도멤이 거즈가 붙은 어깨를 살피며 셔츠의 앞섶을 여미던 손가락을 멈췄다. 그는 눈을 들어 나를 보았다. 도멤의 녹색 빛에 내가 입을 열려는데, 도멤이 한발 먼저 말을 가로챘다.
“미안해.”
“뭐?”
“아까 내가 너희한테 꺼지라고 했잖아…….”
나는 조금 당황하며 자리에 앉고 눈을 굴렸다. 음, 근데 그건 나도 평소에 엄청 많이 하지 않니? 내 말에 키이엘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트가 자주 하는 말이지. 때에 맞지 않게 키이엘로를 한 대 갈길까 생각하다가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말했다.
“많이 무서웠어?”
“아니, 괜찮아……. 그냥 좀 놀라서 그런 거고, 아무 문제 없어! 원래 사람이 좀 놀라면 앞뒤 경황없이 혼비백산 하니까.”
“도멤.”
“걱정시켜서 미안해. 근데 정말 괜찮아. 유령의 바다도 벗어났겠다, 이제 나도 쌩쌩해지겠지!”
“도멤.”
“계속 왜 그래? 나 정말로 괜찮아, 얘들아. 그나저나 우리 다음 바다는 어디로 가는 거래? 들은 거 있어?”
계속 말을 돌리려는 도멤을 보다 못한 키이엘로가 결국 짧게 말했다.
“도멤, 우리가 무슨 말 하고 싶은지 넌 알잖아.”
“…….”
키이엘로의 말에 도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키이엘로가 말한 대로 이런 일은 우리보다 도멤이 더 잘 알았다. 우리가 왜 굳이 그를 부르는지 그가 가장 잘 알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 싶은 것을 눌러 참고 도멤을 보았다.
“도멤, 우투그루가 우리한테 왜 너를 먼저 안 찾냐고 하더라.”
“그야 난 정말 괜찮았으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널 아예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냐. 우리는 되도록 널 빨리 찾고 싶었어. 그런데 상황이 안 되니까 그냥 그렇게 희망만 했을 뿐이지. 그런데 우리한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우투그루가 뭐라고 했다니까? 그런데 그게 우리가 널 몰라서 일어난 일이잖아…….”
내 말에 도멤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불편한 공기가 우리 사이에 흐르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도멤이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는 침착하게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그중에서 가장 어려울 때는 내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분위기일 때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모든 공기가 내 입을 틀어막는 것 같은 압박감을 난 알고 있었다. 용기를 낼 시간이 필요한 때가 분명 있어. 나는 몸을 조금 편하게 뒤로 물리고 말했다.
“하나만 알려줘. 말하기 싫은 거야? 그것만 아니라면 뭐든 괜찮아. 우린 그냥 너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 우투그루가 그렇게 굴었던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나는…….”
도멤은 나와 키이엘로를 보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텐이 키이엘로의 발치에서 콧김을 뿜었다. 거참 질질 끄네. 나는 도멤이 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키이엘로가 텐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도멤, 우투그루는 네 상태가 좋지 않을 거라고 했어. 음, 그러니까, 네가 지금 네 말대로 괜찮은 상태라고 해도, 우투그루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것에 대해서라도 말해줘. 그거면 될 것 같아.”
나는 키이엘로가 저 말을 하면서 속으로 얼마나 난리를 피웠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키이엘로, 사회성이 많이 늘었구나. 그런 생각이 머리 한 곳에 스쳤으나 당장 급한 것은 도멤이었다. 나는 무겁고 숨 막히는 공기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하려고 부러 대수롭잖게 말했다.
“그래, 편하게 말해. 네가 키이엘로처럼 별것 아닌 말로 5분씩 소요해도 우린 다 이해할 수 있어, 알잖아?”
키이엘로가 날 흘기며 팔꿈치로 슬쩍 찔렀다. 도멤은 우릴 보며 애써 내 의도에 따라주려는 것처럼 작게 웃다가 이내 입술을 사려 물었다.
도멤의 녹색 시선이 나무 바닥을 굴렀다. 찰나의 시간이 아주 느리게 느껴졌다. 도멤은 일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침착한 표정을 갖추며 말했다.
“나는 그냥, 원래부터 무서운 걸 못 견뎌 해.”
그거에 거창한 이유는 없어, 아마도.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뭔가 무서워하는데 꼭 이유가 있으란 법은 없었다. 도멤이 이어 말했다.
“그래서 아마 우투그루도 걱정했던 거겠지. 이 배의 누가 내가 그런 걸 못 견뎌 한다는 걸 모르겠어?”
도멤은 다시 말을 멈췄다. 그는 아주 잠시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분명 무언가 더 말할 것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캐묻는 것은 불편했다. 나는 짧게 생각하다가 물었다.
“우투그루가 너한테 싹바가지 없는 말을 했던 것과 연관이 있어?”
“싹바가지 없는 말?”
“너 때문에 자기까지 우울해진다고…….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해?”
도멤은 내 말에 시선을 갈팡질팡 헤매다가 물었다.
“넌 안 그래? 누가 너한테 우울한 이야기를 하면 말이야…….”
“그것과 경우가 달라. 누가 나한테 우울한 이야기만 해댄다면 나도 그건 싫을 거야. 하지만 넌 그때 너무…… 혼란스러워 보였어.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고. 그런 사람한테 우울해지니까 그만두고 정신 차리라니. 물론 네가 내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냥 무시하고 갈 길 갔겠지만 적어도 그런 말은 안 했겠지.”
“맞는 말이야.”
키이엘로가 짧게 동의했다. 도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도멤은 내가 뭐라고 말을 걸기 전에 스스로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은 상당히 불안해 보였지만 동시에 약간의 결심이 선 얼굴이었다.
“맞아.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지…….”
도멤의 녹색 눈이 촛불처럼 반짝였다.
“……나는 안개 속에서 내 가족의 목소리를 들었어.”
* * *
도멤의 아버지는 검은바다가 우홉피아주로부터 분열되기 전부터 클루스도와 함께했던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병으로 죽었다.
남은 가족은 같은 병에 걸렸다가 지금은 완치한 동생과 항상 해적질에 바쁜 아버지뿐이었다.
도멤이 열네 살이 되던 때, 우홉피아주는 분열되어 클루스도가 이끄는 무리는 검은바다라는 이름을 달고 항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적당한 섬에 터를 잡았고, 검은바다는 그때까지만 해도 우홉피아주를 그저 마주치기 싫은 옛 인연 정도로 여겼었다.
그것이 뒤바뀐 것은 같은 해, 검은바다를 습격한 우홉피아주와 한바탕 전투를 치른 이후였다.
어른들이야 이를 득득 갈며 우홉피아주에게 꽂을 칼을 벼렸지만, 도멤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당시 전투로 죽은 선원들을 위한 장례식이 그가 기억하는 첫 장례식이라는 것, 전투 이전에 배에 올랐던 키이엘로라는 소년에 관한 소문이 마을에 돈다는 것 정도만 남았다.
그때의 도멤은 우홉피아주니 검은바다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의 동생이었다.
“도미나, 밥 먹었어?”
도멤은 가방에 가득 따온 산딸기를 내려두며 어색하게 동생을 불렀다. 그러나 도미나는 도멤과 똑같은 갈색 머리칼 사이로 고개를 파묻고 인형만 흔들며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의 여동생은 어머니와 같은 병을 앓았다가 완치한 이후로 사고가 ‘느렸다’.
아주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다른 또래는 다 뗀 덧셈 뺄셈을 한참 시간을 들여 풀어야 한다든지, 대화할 때 어휘가 부족해 어린아이처럼 군다든지 하는 일이 있을 뿐이었다.
도멤이 다시 크게 물었다.
“밥 먹었어?”
도미나는 도멤을 흘끔 보고 금방 다시 관심을 거뒀다. 도멤은 짜증도 나고 속도 상했지만, 별수 없었다.
이건 전적으로 도멤의 잘못이었다. 어렸을 때 모자란 동생이 창피한 것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였지만 그렇다고 옳은 일인 것도 아니었다.
도멤은 최근에야 그걸 알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했지만, 어쨌거나 그렇다고 인제 와서 도미나가 도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둘 사이의 공백이 컸다. 도멤은 결국 끝까지 자신을 보지 않는 여동생을 향해 툴툴대며 식탁을 보다가 포크를 조금 쓴 흔적을 보고 기분을 풀었다.
도멤은 도미나의 옆에 앉아 물었다.
“밖에서 누가 안 괴롭혀?”
“……응.”
“괴롭히면 말해. 오빠가 혼내줄게.”
도멤의 말에 도미나는 뚱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전혀 못 믿는다는 눈이구만……. 도멤은 민망스러운 얼굴을 하다가 도미나가 인형 놀이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미나는 몸을 틀어 다른 곳을 보고 인형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도멤은 다시 머쓱해졌다.
보는 것도 싫어? 그렇게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어쨌거나 도멤은 네 살 터울의 여동생을 배려해 자리를 비켜주고 가져온 산딸기를 정리해 보관하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아직 가족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도멤은 생각했다. 누가 죽는 건 그렇게나 슬플까? 가끔 보던 옆집 아저씨도 우홉피아주의 습격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안타깝다고 느낄 뿐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물론 이제는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친 그와 인사하는 일도, 그 집에 갔을 때 그 아저씨가 반겨주는 일도 없었지만, 딱 그 정도의 일이었다.
그보다 도멤은 다른 생각을 했다. 배에 몰래 올라서 아버지에게 무진장 혼났던 일이나, 처음으로 사람이 죽고 다치는 걸 본 일이나. 영웅처럼 나타나서 자신을 구해준 멋진 늑대의 일이나.
그러고 보면 도멤은 그 뒤에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혼나느라 소문의 그 소년과 늑대를 다시 만날 일이 없었다. 마을에서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숲에 사려나? 도멤은 그런 생각을 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고민해 뭐 하나 생각한 탓이었다.
다음날 도멤은 동갑내기 친구들 사이에서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진짜?”
“그래! 트라페 부인이 완전 난리 났던 이유가 그거래. 클루스도 아저씨가 다른 자식을 뒀던 거야.”
“유난스럽다. 클루스도 아저씨쯤 되는 사나이는 여자들 좀 거느려도 문제가 없다고.”
있는 척 허세 부리는 목소리 사이로 도멤은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하고 생각했지만 현명하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소년들은 어른들이 쉬쉬하며 감추는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었다. 뭇 소년들의 꿈인 클루스도는 마을 소년들에게 쉬이 옹호되는 인물이었다.
도멤은 그런 것에 대해 더 이야기하는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럼 우투그루는 걔에 대해 알겠네?”
“그러겠지? 몰라, 사실. 우투그루는 요새 마을에서 잘 안 보이잖아.”
소년들은 수다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다가 우르르 낮은 절벽으로 가 수영을 하기도 하고, 사과를 따서 몇 입 안 먹고 버리기도 했다.
도멤에게는 그들과 어울리다가 어둑해질 즈음 집에 돌아가 동생과 식사한 후 잠드는 것이 흔한 일상이었다.
항상 똑같았기에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는 하루하루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