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7)
바다새와 늑대 (6)화(7/347)
#6화
키이엘로가 입을 꾹 다물고 텐을 힐끔거렸다. 내 앞에서 굳이 티를 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누가 봐도 텐에게 ‘그만해! 왜 그래!’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 수 있었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어이.』
키이엘로가 텐을 흘끔 보았다가 나를 흘끔 보고는 입꼬리를 어색하게 끌어올렸다. 텐……. 키이엘로가 쥐를 쫓는 듯한 말투로 작게 쏘삭이며 텐을 종아리로 꾸욱 밀었다.
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키이엘로는 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텐이 어떤 존재이든지 간에, 그러니까 키이엘로도 조금 특수한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발카가 여기서 말을 한다면 그 목소리도 들을까? 나는 궁금증을 떠올렸지만, 굳이 실험할 생각은 없었다. 시치미는 뗄 수 있을 때까지 떼야 했다. 키이엘로는 여전히 텐을 다리로 밀고 있었다. 그러나 텐은 앞발로 키이엘로를 탁, 치더니 으르릉거리며 나와 발카를 노려보았다. 들리잖아, 새대가리 주인. 텐이 끓는 용암 같은 어투로 짓씹었다.
내가 다시금 뭐라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보다 발카가 빨랐다.
『보신탕이나 끓여 먹을 멍멍이가 말이 많네.』
너랑 말 섞기 싫어하는 거 안 보여? 발카가 싸늘하게 일갈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키이엘로에게 모르는 척을 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내가 입을 꾹 다물고 발카를 보아야 했다. 키이엘로가 입을 벌리고 나와 발카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젠장.
키이엘로의 손에서 유리병이 정처 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유리병 안의 모형 배가 폭풍에 휘말리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그를 불렀다. 야. 그러자 키이엘로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좀 날건달 같은 어투로 말한 것 같기는 했지만, 딱히 미안함은 없었다.
“이 늑대 정체가 뭐야?”
“텐은…가끔, 동물 중에 있는, 오랜 세월을 사는 부류인데. 영물이라고 해. 보통 동물과 달리 나무처럼 오래 살게 되면 사람 같은 지능을 갖게 되고 보통 사람들한테 들리지는 않지만, 말을 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게 생기나 봐.”
“그런데 하필 너한테 들리고, 나한테도 들리고?”
그 말에 키이엘로가 어색하게 웃으려다 내 싸늘한 얼굴을 보고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새끼가 잇몸 보이네? 나는 냉랭한 눈으로 키이엘로를 보다가 어깨에서 텐을 향해 연신 목울음을 하는 발카를 흘끔 일견했다.
텐은 영물이라는 건가. 발카 같은 바다새는 어디에 속하는 거지? 영물에 속하는 건가? 발카도 오래 산 동물이긴 하니까. 근데 키이엘로는 어떻게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나는 왜 텐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지?
애초에 바다새는 환상의 동물 취급을 받았다. 그러니 독특한 파란 새가 배에 올라도 다들 그냥 특이한 파란 새인가 보다 하고 말았다. 사실 선원들의 지능을 의심하긴 했었지만 의외로 사람이란 자기 일이 아닌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는 그런 생각도 관뒀다.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꼴이 될지 누가 아는가.
그리고 내가 바다새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다른 평범한 동물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적도 없었다. 눈앞의 늑대만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키이엘로에게 의구심이 들었다. 발카야 바다새니까 그렇다 쳐도 저 영물이란 건 바다새 같은 존재는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와 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 발카의 말까지 들린다고?
키이엘로가 발카를 빤히 바라봤던 것에 이상하다 느끼긴 했지만, 텐이 복병일 줄은 몰랐다. 하기야 말하는 늑대인데. 거기다 오래 살았다고 하니 아마 키이엘로가 발카를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텐이 알려준 까닭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문득 다시금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런데……. 다른 선원들은 키이엘로를 그렇게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던데. 혹시 다른 선원들도 텐의 정체와 키이엘로가 그와 대화할 수 있는 걸 모르고 있다면?
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키이엘로를 살피다가 텐에게 물었다.
“그래서, 텐. 뭘 바라는 건데?”
『개인적인 궁금증이고 앙금이야. 난 바다새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앙금?”
키이엘로도 처음 듣는다는 눈치였다. 텐은 한 번 콧김을 크게 내쉬고는 말했다.
『바다새가 왜 아직도 존재하지? 벌써 수백 년 전에 모조리 사라졌었어.』
『내가 그걸 왜 너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발카의 말이 틀리진 않지. 나는 텐을 보다가 발카와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작은 조각배를 몰고 나온 푸른 바다에서 들려왔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했다. 오팔처럼 반짝이는 알을 감싸고 있던 선홍빛 산호초 같은 것들이 기억을 스쳤다. 어쩌면 키이엘로과 텐도 그런 일을 겪었을까?
나는 흐르는 생각을 잠시 멈추고 텐을 보았다.
“바다새가 존재한다고 해서 너한테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지. 나는 바다새가 싫어. 바다새 이전에 조류도 싫다. 그런데 바다새가 멸종한 게 아니라 아직도 존재한다면 나에겐 최악이지.』
“어차피 만날 일 별로 없지 않을까. 텐?”
키이엘로의 말에 텐이 으르렁거렸다.
『네가 바다새들이 기승을 부리던 때를 못 봐서 그래. 배에 오르면 한 명쯤은 꼭 푸른 새를 데리고 있었지.』
“적어도 지금은 아니잖아.”
내 말에 텐은 말없이 발카를 노려보았다. 그건 지금부터 봐야겠지. 늑대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나는 텐이 발카를 시작으로 바다새가 부활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앙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지간히도 새를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발카가 날카롭게 일갈했다. 남은 바다새는 나뿐이야. 그러나 텐은 그다지 신뢰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나는 텐과 대화하는 것을 관두고 키이엘로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겸연쩍어하는 기색으로 텐과 우리 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덩치도 큰 놈이 왜 저렇게 소심하단 말인가. 하긴 덩치 크다고 소심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편견에 사로잡혀 버렸군요, 반성하겠습니다…….
가볍게 생각한 나는 키이엘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 발카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거야?”
나는 내가 물어보면서도 슬쩍 긴장했다. 항해를 위해 바다새가 유용하다는 것은 전설이라 해도 유명한 얘기였고, 그는 허울뿐인 것 같기는 해도 간부진의 일원이었다. 게다가 발카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 나를 없애고 바다새를 차지하려 들 수 있었다. 좀 미심쩍은 점이 있다고는 해도 나는 거의 기대하지 않고 주먹을 그러쥐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떠벌리려고 한다면 아가리 좀 털어 협박해야지. 물론 내 아가리가 아니라 저놈의 아가리를 물리적으로 털어준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키이엘로는 약간 얼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굳이.”
“그래?”
의외였지만 사양하지는 않았다. 주먹 쓸 일 좀 덜었군 싶었다. 나는 주먹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같은 말을 덧붙이진 않았지만, 키이엘로는 충분히 내가 삼킨 말을 추측했는지 기묘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더니 나에게도 비슷한 걸 물었다.
“너도 내가 텐과 대화하는 걸 말하진 않을 거지?”
“……굳이?”
굳이 네가 텐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려서 동물에 대한 경계심을 높일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가 키이엘로도 나와 비슷하게 눈에 띄는 사항을 알리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키이엘로를 보았다.
나야 긴장할 거리가 있다지만 그는 이미 부선장이고, 심지어 선장인 클루스도의 아들이었다.
그가 텐과 대화할 수 있다고 하면 놀라기야 하겠지만 그저 그뿐이다. 말하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었나? 나의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키이엘로는 눈을 피하다가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
뭔 주인공이 힘을 숨김 같은 소리 하냐. 나는 좀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키이엘로를 보았다. 나는 사정이 있어 발카의 정체를 감추고 있다지만 만약 그것을 밝혀서 보는 피해가 없었다면 당당하게 밝혔을 것이다.
그럼 항해사 자리 정도는 간단하게 얻겠지.
하물며 이미 한 자리 차지한 키이엘로는 오죽하겠는가. 영물이라면 보통 동물보다는 튼튼하고, 나름 연륜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텐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 우투그루를 제치고 선장 후보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키이엘로는 선장 후보였지만, 이 배에서 지낸 짧은 시간만으로도 모두가 키이엘로보단 우투그루가 다음 선장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니면…… 선장 자리를 원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왜? 이 배를 요람이라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 같던데. 키이엘로의 손에 들린 유리병을 한 번 본 나는 이 해적단도 좀 콩가루라는 생각을 하며 의문을 애써 털어냈다.
궁금해하지 말자. 어차피 우홉피아주에게서 동생을 구해내면 더는 볼일 없는 해적단이다. 나는 텐을 돌아보았다.
“네가 바다새를 싫어하는 건 알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날 내쫓거나 네가 내리거나 둘 모두 불가능한 일인 건 알지?”
『알아. 나도 확신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진짜 바다새가 맞는지 말이야. 확실해졌으니 됐어. 그리고 키이엘로와 나에 관해선 말하지도 않겠다고 하니 완벽하지. 적어도 가까이 오지 마. 홧김에 그 새 모가지를 물어뜯을 수도 있으니까.』
그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나부터 그들과 엮이는 것은 사양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면전에서 그런 소릴 들은 발카는 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었다.
『웃기고 앉았네. 하지도 못할 거면서 허세나 부리는 새끼.』
오……. 발카……. 욕을 얻어 처먹은 텐도 가만히 있는데 키이엘로가 오히려 긴장한 얼굴로 입술을 사려 물었다. 나는 눈썹을 휙 치켜뜨며 키이엘로를 보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음, 발카가 입이 좀…… 험해. 내 말에 키이엘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무렴 우리와 서둘러 대화를 끊고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가 사람―동물 포함―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현재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럼 텐은 발카의 정체를 확인했고, 키이엘로 너와 나는 서로의 특이점을 발설하지 않을 것이고. 맞지?”
“…그래.”
“좋아. 그리고 네 장난감도 돌려받았지. 그럼 이제 서로의 일은 끝났어.”
내가 ‘장난감’이라고 언급하자 키이엘로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유리병을 꽉 쥐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금 후련해진 기분으로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발카가 부리를 딱딱거리며 떨떠름하다는 듯 말했다.
『이상한 일이네. 바다새는 원래 영혼의 짝을 찾는 종족이라곤 해도 영물이 짝을 만드는 일은 들어본 적 없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