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70)
바다새와 늑대 (69)화(70/347)
#69화
“도미나?”
도멤은 이리저리 어질러진 집 안의 모습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무리 해적 마을이라 폐쇄적이라고는 하지만 간혹 바깥사람이 들어와 물건을 사고파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드물지만, 마을 안에서 범죄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도멤은 설마 하는 마음에 집 안을 미친 사람처럼 뒤졌다.
어질러진 종이 쪼가리를 밟으며 집을 뒤지던 그는 몇 번이고 도미나를 불러댔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집 안은 그에게 커다란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도미나!”
도미나의 방에서도 아무것도 찾지 못한 도멤이 자신의 방에 들어간 순간, 갑자기 옷장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왁!”
“으악!”
벌컥 튀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도미나였다. 도멤은 꽥 소리를 질렀다가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제 동생을 보았다.
도미나는 도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도 모르고 연신 히히 웃으며 폴짝폴짝 뛰었다.
“오빠! 놀랐지? 놀랐지?”
도멤은 넋이 나간 얼굴로 동생을 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었다. 꾸역꾸역 눌러왔던 마음이 파리떼처럼 가슴에 드글드글 들어차기 시작했다.
도미나가 웃으며 외쳤다.
“생일 축하해, 오빠!”
결국 그 말에 도멤은 폭발해서 버럭 소리쳤다.
“오늘은 내 생일이 아냐!”
그의 말대로, 가까운 일자에 그의 생일 있는 것은 맞았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었다. 도미나가 날짜를 착각했든 다른 사람에게 잘못 들었든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해주기엔 도멤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였다. 난데없이 무슨 생일이란 말인가? 도멤은 깜짝 놀란 동생에게 연신 소리쳤다.
“너 이게 다 뭐야? 내가 집 청소하는 거 몰라? 이렇게 어질러놓고, 몇 번을 불러도 안 나오고! 너, 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알아? 혹시라도 무슨 일 있는 거면 어쩌나 내가…….”
도멤은 숨을 헐떡이다가 동생의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 울먹이는 것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도미나는 눈가가 벌겋게 변해서는 연신 훌쩍이다가 이내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우는 동생을 우두커니 선 채로 보고 있다가 집을 뛰쳐나왔다. 그는 어둡게 변한 하늘 아래를 쏜살같이 뛰어가며 숨을 헐떡였다.
지친다. 다 떨쳐내고 싶어. 너무 피곤해. 하지만 도미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지금도 울고 있는 걸 달래줘야 하는데.
하지만 왜 내가? 왜 나만? 아버지는 어디 있는데? 왜 나 혼자 해야 하는데? 다시 돌아가면 동생을 달래고 집도 치워야 해. 아, 싫다……. 집 치우는 거 너무 귀찮단 말이야. 나도 가끔은 늦잠 자고, 아침도 거르고 싶은데…….
도멤은 해변에 도착하자 넘어지듯 백사장에 주저앉았다. 이런 저녁에 집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면 이웃들이 또 뭐라고 생각할까.
로라 부인이 했던 오해는 정말 오해로 끝나야 하는데. 사람들이 오해하면 곤란한데. 하지만 난 노력했어. 나처럼 도미나를 열심히 챙긴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다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는 훌쩍이면서 손으로 눈가를 닦았다. 펑펑 울고 있을 것 같았는데 닦여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멤은 까맣게 반짝이는 바다를 보다가 물기 섞인 숨을 내뱉었다. 별수 없어. 도멤은 한참 동안, 도미나를 챙겨야 한다는 처음의 마음가짐을 상기하려고 애썼다.
나중에……. 내가 더 크면 다른 사람에게도 도미나를 맡길 수 있을 거야. 그럼 난 배를 타고 공부도 하고, 칼 쓰는 법도 배우고, 그걸로 도미나를 지켜주면서 모르는 것들도 알려줘야지.
할 수 있어, 해야 하고. 도멤은 무릎을 끌어안고 그렇게 생각하다가 당장은 도미나를 달래야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갑자기 의욕이 뭉텅이로 깎이는 기분이었지만 도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도미나가 더 울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소란을 일으키는 거나 힘들어서 아프게 되는 것도 큰일이었다.
그는 다시 서둘러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과나무밭 어귀에서, 도멤은 마을이 소란스러운 것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도미나가 마을 사람들을 다 깨운 모양이야…….
그러나 그 생각은 곧 깨졌다. 마을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비명이었다. 우홉피아주가 습격한 것이다.
마을은 아수라장이었다. 사방에서 고함과 비명이 울리고 우당탕 무언가 허물어지는 소리가 울려댔다. 도멤은 집을 향해 달려가며 수십 번 칼을 맞을 위험을 피했다.
우홉피아주와 맞서는 어른들의 도움 덕에 간신히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으나 워낙 혼란한 사방 때문에 좀처럼 마을에서 집을 향해 갈 수 없었다.
도멤은 덜덜 떨리는 다리를 애써 주먹으로 두드리며 숨을 헐떡였다. 우홉피아주는 보이는 족족 마을 사람들을 향해 칼부림하거나 집 마당에 놓아둔 물건이나 식량 따위를 갈취해댔다. 심지어는 집에 불을 붙여 안에서 튀어나오는 주민들을 찌르기도 했다.
도멤을 발견한 마을 사내가 그를 보호해주며 그가 향하는 곳으로 함께 나아가주었지만 좀처럼 진척이 없었다. 사방이 소란스러웠다. 도멤은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몇 번 선뜩한 칼질에 베일 뻔해도 도멤은 목청껏 외쳐댔다.
“도미나! 도미나!”
이렇게 시끄러운 와중에도 동생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는 습관적으로 동생을 불렀다. 그러면 마법처럼 동생이 눈앞에 나타날 것 같았다.
해적들이 낄낄 웃는 소리가 시끄러운 와중에도 선명하게 들렸다. 그러던 중 누군가 도멤을 보고 외쳤다. 바트릭 놈의 아들이다!
도멤은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주욱 흐르는 기분을 느꼈다. 우르르 몰려오는 해적들을 보고 도멤을 지켜주던 사내가 외쳤다.
“도멤, 뛰어! 빨리!”
도멤은 제 등을 떠미는 손과 함께 반사적으로 두어 걸음 뛰었다가 이내 전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적들은 사방에서 우르르 몰려들었고, 마을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며 그들을 막으려 했다. 도멤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다리를 멈출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고꾸라질 것처럼 발목이 욱신거렸고, 허우적거리는 팔은 경련하듯 덜덜 떨고 있었으며, 다리는 물속에서 휘젓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입이 바짝 말랐으나 그는 가슴이 터질 것처럼 커다랗게 숨을 몰아쉬느라 그것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그때 선뜩한 느낌과 함께 등짝이 불이 붙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살갗이 갈라지는 느낌 사이로 따갑고 쓰라린 고통이 올라왔다. 악, 하고 비명을 지른 도멤은 앞으로 엎어졌다.
더듬더듬 어깨 뒤로 손을 뻗어 등을 만지던 그는 헉 숨을 삼키며 몸을 옆으로 굴렸다. 그가 있던 자리로 칼이 박혀 들었다.
“쥐새끼 같은 놈!”
해적이 지르는 욕지거리를 들은 도멤은 등을 더 더듬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냉큼 일어나 다시 달렸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이 가는 쪽이 집이 있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온통 싸우는 사람들뿐이었다. 누가 마을 사람이고 누가 해적인지도 구별하기 어려웠다.
도멤은 물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숨을 몰아쉬다가 기침을 몇 번 하고, 다시 후들거리는 다리로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도, 도미나. 도멤은 소리치는 건지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동생을 불렀다.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우홉피아주는 난장을 피워놓다가, 점점 마을 사람들이 침착하게 무기를 꺼내 들고 대처하기 시작하자 약 올리는 것처럼 발을 뺐다. 그들은 마을의 물자를 약탈하며 이리저리 펄쩍펄쩍 뛰어댔다. 미친 사람들 같았다.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 같기도 했다.
도멤은 남은 해적들이 지독하게도 그를 공격해대는 것을 피하며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 짐승 같은 작태를 노려보았다.
우홉피아주의 잔당들이 배에 올라 출항하기 시작하자, 그쪽을 향해 활을 쏴대는 사람들의 틈새로 그는 겨우겨우 집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도멤은 집 앞에서 숨을 턱 멈추었다. 짙은 화마가 그의 집을 삼키고 있었다. 까맣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놀란 마을 사람들이 양동이로 물을 퍼다 붓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도멤은 비척비척 집에서 뒷걸음질 치다가 이내 퍼뜩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폈다. 마을 사람들 사이로 저와 닮은 갈색 곱슬머리와 주근깨를 가진 여자애가 있는지 살피던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집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러자 기겁한 사내들이 도멤을 붙들고 소리쳤다.
“도멤! 무슨 짓이야!”
“도, 도미나! 도미나! 어디 있어!”
도멤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집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자 그를 붙든 사내들이 진정하라며 말렸으나, 그 순간 그는 귓가를 거세게 때리는 소음 사이로 아주 작은, 정말로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는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동생이 집 안에 있었다! 불타는 집에 갇혀있는 것이다!
그는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도미나가 집에 있어! 놔! 놔줘! 물을 부어대던 사람들이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포기하고 허망한 얼굴로 집과 도멤을 보았다.
도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멍하니 있는 거야? 더 노력해봐. 불이 꺼질 수도 있잖아. 내 동생이 저 안에 있다고 했잖아.
아니면 차라리 나라도 놔줘. 저 안에 내 동생이 있다고 했잖아. 날 기다리고 있다고. 도미나는, 도미나는 항상 나를……. 도멤은 일순 모든 것이 슬퍼졌다.
도미나는 나를 기다리는 것밖에 못 한단 말이야…….
그때 그의 옆을 누군가 스쳐 지나갔다. 도멤은 눈을 크게 뜨고 그 뒷모습을 보았다.
이미 깜깜한 밤인데도 불길에 비친 그 뒷모습은 석양처럼 선명했다. 누가 막을 새도 없었다. 애초에 그가 뛰어들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키이엘로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모두 얼이 빠져 있다가, 이내 소란을 피우며 발을 굴렀다. 도멤은 자신이 미친 건가 생각해보았다.
도멤이 아니면 누가 저 안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누가 그 남매를 위해준단 말인가. 아무도 그렇게 못 해줬는데…….
그러나 소년은 불타는 집 안으로 들어갔고, 마을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긴 했으나 다시 아무도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정말 놀랍게도 키이엘로는 멀쩡하게 집에서 나왔다. 품에 도멤의 동생을 안은 채였다.
도멤은 다시 가슴이 철렁해서 그를 붙들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 소년에게로 뛰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소년을 힐끔거리며 웅성거렸으나 도멤은 그것보다 도미나가 더 급했다.
도미나는 울다 지쳐 힘도 없는지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온몸에 붉은 화상을 입은 도미나는 눈도 뜨지 못하고 잇새로 가늘게 숨만 쌕쌕 쉬었다.
도멤은 손을 덜덜 떨면서 소년에게서 동생을 받아 안았다. 닿는 모든 곳이 아픈지 도미나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목울음만 내고 있었다.
급하게 달려온 의사에게 도미나를 보이며 도멤은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의사는 도미나의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도멤에게 동생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알려주고, 혀를 끌끌 차며 도멤까지 치료해주고 물러났다.
도멤은 자신의 등에 그렇게 큰 상처가 났었는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끝없이 탈 것 같았던 집도 까맣게 변해 불이 잦아들고, 급한 대로 집을 대강 수리해준 마을 사람들 덕에 까맣게 그을린 집은 그나마 안에 들어가 있을 수는 있었다.
그는 뒤늦게, 우홉피아주의 손에 로라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헤더가 미친 듯이 울면서 정원을 기고 헤맨다는 소리도 들었다.
도멤은 침대에 누운 도미나를 보며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되었지?
몸은 기계적으로 도미나의 붕대를 갈아주고, 물에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고, 죽을 먹여주고 있었지만, 도멤은 여전히 자신의 정신이 그날 밤에 멈춰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에 집에 들어가다가 고꾸라져 머리라도 부딪힌 것이 분명했다. 아니, 사실 지금이 현실인 건 도멤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지금은 내가 도미나를 돌보고 있지만, 사실은 도미나와 로라 아주머니가 정신을 못 차리는 날 돌보고 있는 거지. 도멤은 그렇게 생각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도미나에게 죽을 주던 중에 그렇게 멍하니 있었지만 도미나는 오빠를 보채지도 않았다. 봐, 도미나가 이렇게 얌전할 리가 없어.
역시 꿈을 꾸고 있나 봐. 그러나 도멤은 알고 있었다. 그는 꿈 따위를 꾸는 게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일들은 모두 현실이었고, 도미나가 보채지 않는 건 그저 그럴 힘도 없기 때문이고,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인데다 아버지는 멀리 있어 이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으며, 그는 머저리처럼 굴고 있었고, 망할 우홉피아주가 하룻밤 만에 그의 평범하게 불행하던 생활을 더 큰 불행으로 지져버렸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이게 전부 사실일 리가 있나? 도멤은 그때의 불길과 비슷한 온도의 무언가가 눈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이 그릇 안으로 떨어졌지만, 그는 그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도멤은 결국 도미나의 침상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왜 모든 것이 그를 평범한 남자애로 자라지 못하게 한단 말인가? 그의 동생은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가? 왜 지금 이 순간조차 아버지는 남매의 옆에 있지 않은가?
도미나는 제 옆구리에 엎드려 우는 오빠를 붕대 사이로 끔뻑끔뻑 보다가 느리게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도멤은 그 손길에 더 서럽게 울었다. 누군가 울 때 이렇게 토닥이는 것을 도미나는 도멤에게 배운 것이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닌 그에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