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71)
바다새와 늑대 (70)화(71/347)
#70화
며칠이 더 지나고, 마을의 대부분이 다시 원래의 궤도로 올라온 것처럼 느껴질 때 검은바다가 회항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홉피아주가 마을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닿아 검은바다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도멤은 도미나의 붕대를 갈아주며 자신이 무슨 기분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는 며칠간 동생을 간호하느라 진이 다 빠져 있었다. 가만히 있는 환자를 돌보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도미나는 얌전하기만 하지도 않았다.
아픈 사람들이 어떻게 초연하고 침착하기만 할 수 있을까. 심지어는 도미나처럼 어린아이가……. 도멤은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힘들었다.
언제는 도미나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동생이 혼났다는 사실과 화상의 고통에 서러워서 울기 시작하면 도멤은 금방 후회했지만 때때로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도멤은 그럴 때마다 자기 자신이 싫어졌다. 왜 아픈 애한테 화를 내는 거야. 도미나는 어리고, 화상은 심각했고, 좀처럼 낫지도 않고, 이젠 점점 상처에서 이상한 냄새도 났다.
지금 누구보다도 힘든 건 동생을 간호하는 자신이 아니라 산 채로 썩어가는 제 동생이었다. 그러나 그게 어떻다고. 사람은 남의 베인 상처보다 제 손가락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었다. 도멤은 아파서 울고 난동을 부리는 동생을 진정시키고 재운 뒤엔 우두커니 앉아서 생각했다.
이게 끝이 나긴 할까? 나는 평생 이렇게 동생을 돌보며 살아야 하나? 어쩌다 상태를 봐주러 오는 늙은 의사는 도미나를 볼 때마다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도멤을 데리고 도미나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나직하게 말했다. 화상이 너무 심하다… 죽는 걸 미룰 수는 있어도 피하진 못할 거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도멤은 도미나가 죽는다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하다가도 동생을 돌보다가 문득 생각하는 것이었다.
죽는다면서, 대체 언제 죽는 거지? 아, 차라리 빨리 다 끝났으면…….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정말 끔찍한 놈이구나. 누군가가 알면 나에게 말하겠지. ‘저열한 악귀 같은 놈, 동생이 죽길 바라다니. 네가 대신 뒈져라!’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몰아치는 감정은 하늘에서 떨어지듯 섬뜩하고, 그대로 곤두박질쳐 곤죽처럼 으깨지고, 그 상태로 바닥을 기는 것처럼 지리멸렬했다. 누가 듣는다면 이렇게 되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니었기 때문에 도멤은 더욱 자신이 끔찍했다…….
이윽고 검은바다가 섬에 닿고,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집안은 며칠간 청소를 못 해 불에 탄 부분에서 떨어진 잿더미와 먼지가 쌓여있었고, 도미나의 몸에서 나는 고름 냄새가 풍겼다.
바트릭 렌카로는 제 아들과 딸을 절망스럽게 보았다. 바트릭은 크게 후회하며 도멤을 끌어안고 검은바다가 온 그날 내내 울었다.
도멤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정수리로 떨어지는 뜨거운 눈물을 맞으며 생각했다. 안심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어떤 안락함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의사가 말한 것을 모두 말했다.
“도미나는 오래 못 살 거래요. 지금도 나날이 온몸에서 고름이 나와요.”
“그래…….”
바트릭은 다시 눈물을 흘렸다. 도멤은 계속 화가 나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잠든 동생을 조심조심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대체 왜 우리만 남겨뒀어요?”
“내가 그래선 안 됐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그게 다예요?”
도멤은 헛웃음을 지으며 대화하는 것을 관뒀다.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검은바다가 마을을 도와 정비하는 동안 바트릭은 집을 정리하고 도멤과 함께 도미나를 돌봤다. 집에는 도미나를 문병 오는 사람들이 가끔 들어왔고, 도멤에게 여러 덕담과 걱정을 해주며 나갔다.
아주 조금씩 도멤은 혼자서 도미나를 돌볼 때보다 자기 자신을 되찾았다. 망가지는 것은 그렇게 빨랐는데 수복되는 것은 이렇게 더디다니 한탄할 일이었지만 어쨌든 도멤은 다시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느리지만, 언젠가는 다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도미나가 말했다.
“있지. 오빠…….”
“힘드니까 말하지 마. 죽 먹어야지.”
“누가 그랬는데…… 사람이 죽으면 유령이 된대…….”
도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미나는 이제 거의 힘이 없어서 말하거나 누군가에게 기대앉는 것 외에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다 꺼낸 말이 어째 으스스한 이야기인 것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아냐, 인간은 죽으면 다시 태어난댔어.”
“아냐, 난 유령이야…….”
“왜 그런 말을 해?”
도미나는 도멤이 먹여주는 죽을 꾹 삼키고는 말했다.
“내가 죽으면…… 오빠하고 있고 싶어서…….”
의도는 알겠지만 그에게는 상당히 무서운 말이었다. 도멤은 떨떠름했지만 그래도 동생이 좋은 뜻으로 해준 이야기임을 알고 미미하게 눈을 누그러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해. 그때 갑자기 바트릭이 도멤에게 외쳤다.
“동생이 죽는다는 소리를 하는데 거기에 맞장구를 치느냐!”
도멤은 갑작스러운 날벼락에 화들짝 놀라서 죽 그릇을 엎었다. 도미나에게 튀었을까 놀란 도멤이 허둥지둥 치우고 있자, 바트릭은 그걸 도와 치우며 한숨을 쉬었다.
어째 그 작은 한숨 소리가 너무 커다랗게 가슴에 박혀 들었다. 도멤은 바닥에 묻은 죽을 닦던 손을 조금 움츠리다가 꿋꿋하게 얼굴을 굳히고 마저 치웠다.
검은바다는 우홉피아주가 마을을 습격한 것에 큰 충격을 받은 건지 대비책을 세우기 위해 섬에 좀 더 오래 정박하게 되었다.
그동안 바트릭이 도멤과 함께 도미나를 간호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매우 평화로웠으나, 도멤은 서서히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란 기대가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에는 바트릭과 도멤이 서로 목청껏 싸우고 도미나는 누워서 엉엉 울기도 했다. 아버지가 한숨을 쉬면 도멤은 화를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버리곤 했다.
그런 날엔 모든 게 다 엉망이었다. 그는 자신의 노력을 모두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그 한숨 소리가 진저리나게 싫었다.
가끔은 도멤은 도미나를 돌봐주다가 그 애를 챙겨주는 손을 퉁명스럽게 할 때도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며 금방 관두긴 했지만 그럴 때면 도미나는 평소처럼 칭얼대지도, 말을 걸지도 않고 조용히 있었다. 그게 마치 바늘처럼 도멤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우홉피아주가 습격했던 날로부터 한 달이 넘고 일주일째 되던 때에 결국 도미나는 열한 살이라는 짧은 생을 마쳤다. 검은바다가 출항하기 며칠 전의 일이었다.
도멤은 장례식 내내 울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위로하며 안타까워했다. 그중에는 그만 울라며 타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크게 나무라지 못하고 한숨만 쉬었다.
도멤은 울다가 지쳐 이른 선잠이 들었다. 그러다 그날 밤 술을 거하게 마신 아버지가 들어와 술주정을 부리자 결국 서럽고 화가 나서 외쳤다.
“아버지는 대체 뭐가 문제예요? 아버지는 이런 날에도 술을 마실 생각이 드세요? 우릴 조금이라도 생각해서 출항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 것 같아요?”
“너 아버지에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도미나가 죽은 거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으세요? 제가 아버지가 없는 동안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긴 하세요?”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인지 화가 나서인지 분간할 수 없는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네가 뭘 몰라서 그러지! 내가 왜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못 버텼는지 어린 네가 알겠느냐?”
도멤은 그 말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바다가 좋았으면 저희를 왜 낳으셨는데요? 괜히 짐만 된다고 생각하면서 챙기지도 않을 거면 왜 낳았냐고요! 도미나가 겨우, 겨우 열한 살에 고통스럽게 죽는 걸 보고 싶었어요?”
그 말에 바트릭은 숨이 턱 막힌 얼굴로 도멤을 보았다. 도멤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아버지는 마치 엄청나게 끔찍한 소릴 들은 것처럼 도멤을 보다가 어물어물 흐느끼며 말했다.
“네가 어찌 그렇게 말한단 말이냐……. 나는 네 어미를 잃고 버틸 수가 없었어……. 이 집에서 버틸 수가 없었어……. 기어코 네 동생까지 여기서 죽었는데 나보고 여기를…….”
“그럼 저는요?”
도멤은 허망하게 바트릭을 보았다. 그는 그럼 돌아가신 어머니만 보이고 남겨진 자신들은 보이지 않았단 말인가? 자기 마음이 더 중요해서 그렇게 우릴 방치하고 떠났단 말인가?
도멤은 서늘한 분노가 가슴을 덮어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아버지는 어린 자신들보다 자기 자신의 처량함만 중요했단 뜻이었다. 그가 책임져야 할 어린 자신들보다!
“저는 여기에 두시려고요.”
“나는…….”
“그거 아세요? 제가 지금 제일 끔찍하게 여기는 건 이 집도 우홉피아주도 아니에요.”
저는 아버지가 제일 끔찍해요. 가장 원망스러워……. 도멤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고 눈가를 닦았다. 아들이 훌쩍이는 것을 보던 바트릭은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이 기분을 잊으려고 술을 마셨는데 네 말을 들으니 도로 우울해지는구나. 그래, 내가 죽일 놈이지.”
도멤은 그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홱 돌아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너무 피곤했다. 그는 좀 쉬고 싶었다.
그러나 도멤은 자리에 눕자 뒤늦게 모든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러웠지만 그래도 그는 아버지였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가족은 정말로 그밖에 없었다.
도멤은 누워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일, 어색하겠지만 그와 아버지 모두가 진정하면 다시 대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둘 다 너무 격양되었고, 아버지는 술을 마신 상태였고, 처한 현실은 모두에게 힘겨웠으니까. 그러니까 내일 다시 침착하게 대화해야 했다.
그러나 그날 새벽에 도멤은 왠지 모를 기이한 예감에 잠에서 깼다.
집이 너무 조용했다. 어차피 아버지와 자신 단둘만 있으니 조용한 것이 당연했지만 그와 상반되게 괴이쩍은 직감이 도멤의 신경을 긁었다.
왜 이 시간에 일어났지? 도멤은 누운 채로 눈을 깜빡이다가 창밖이 아직 푸르스름한 것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도멤은 침대에서 내려와 문고리를 잡았다. 차가운 문손잡이가 음산하게 느껴졌다. 도멤은 이상하게 긴장한 자신의 태도가 어두운 것에 대한 공포라고 생각했다.
문을 열었는데 귀신이 튀어나온다든지……. 그런 게 두려워서 이러는 거야. 불안하게 들끓는 생각을 애써 고개를 내젓는 것으로 떨친 도멤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차라리 귀신이었던 게 나았을 것이다.
도멤은 천장에 매달린 아버지와 마주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