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72)
바다새와 늑대 (71)화(72/347)
#71화
하루걸러 다시 있게 된 장례식은 도미나 때보다 어수선했다. 마을의 모두가 당혹스러워하고, 수군거리고, 안타까워하고, 혀를 찼다.
도미나와 바트릭은 모두 집 앞에 묻혔다.
도멤은 이번엔 울지 않았다. 그가 울어봤자 아무 소용없었다. 지나치게 길게 느껴지는 장례식 내내 도멤은 어젯밤 자신이 외쳤던 말을 곱씹었다.
아버지가 제일 끔찍해요, 우홉피아주도 뭣도 아니고, 아버지가……. 아버지 때문에 도미나가 죽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온전히 아버지 탓이란 말인가?
아버지가 부재한 것이 도멤과 도미나에게 서러움과 불행으로 다가왔을 수 있을지언정 그들을 직접적으로 해하고 끔찍한 상처를 남긴 것은 결국은 우홉피아주였다.
아니, 우홉피아주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곤 해도 거기에 도멤 자신의 잘못이 하나도 없을까? 정말로 하나도 없겠는가?
그날 도멤이 화가 나서 뛰쳐나가지 않았다면……. 그가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었다면……. 끔찍해. 다른 무엇도 아니고 내가 너무 끔찍해…….
하지만 동시에 지독한 업화에 가슴이 타는 듯했다. 다 우홉피아주 때문이야.
그 자식들이 아니었다면 도미나와 나는 무사했을 거고, 아버지와 당장은 해결할 수 없었다고 해도 적어도 지금처럼 대화할 기회마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미약하게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지만, 그것까지 귀 기울이기엔 도멤은 여유가 없었다. 여기서 자신을 더 자책해봐야 아버지처럼 될 뿐이다.
다 그 자식들 때문이야. 도멤은 차가운 것 같기도, 뜨거운 것 같기도 한 분노가 자신의 눈물을 얼리든 증발시키든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그냥 메말라버린 것처럼…….
그는 바짝 말라비틀어진 나무처럼 공허한 얼굴로 장례식을 보냈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났을 때, 그제야.
도멤은 아버지가 집에 남아있기 싫어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집은 너무 암울했고, 가족들이 모두 여기서 죽었으며, 거기에 남은 도멤은 너무 위태로웠기에……. 도멤은 조용한 집 안이 평소와 다르게 너무 기묘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사방에서 벽이 그를 내려다보며 압박하는 것 같았다. 겨우겨우 누워 잠이 들었다가도 도멤은 문득 도미나의 말이 떠올렸다.
내가 죽으면 오빠의 곁에 있을 거야.
바보 같은 도미나, 그게 나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도멤은 오히려 공포에 질렸다. 그는 스스로가 절대 좋은 오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귀신을 두려워했든 뭐든 간에, 도멤은 그냥 지금 이 순간 자체가 너무 끔찍해졌다.
왜 내 곁에 있겠다는 거야. 날 더 괴롭히려고? 아냐, 그런 이유가 아닌 걸 알아, 하지만……. 하지만.
도멤은 갑자기 어두운 방이 견딜 수가 없어졌다. 홀로 있는 이 어두운 곳이 극도로 두려웠다. 초를 켜 방을 밝힌 도멤은 스스로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는 코끝을 스치는 지독한 악취를 맡았다.
도미나의 몸에서 흐르던 고름이나 아버지의 시체에서 나던 악취와 빼닮은 그 냄새는 집 안 모든 곳에서 나고 있었다. 결국 도멤은 결벽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밤새 집을 모조리 뒤엎으며 청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게 너무 끔찍했고, 악취는 온 사방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도멤은 결국 집을 뛰쳐나왔다. 하지만 그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 도멤은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에 한 방향으로 뛰어갔다.
흐드러진 정원이 있는 집에서 그는 문을 두드렸다. 어두운 새벽인데도 안에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왔다.
디겔이었다. 도멤은 로라가 아니라 디겔이 나온 것에 잠시 벙쪘다가, 로라 부인이 우홉피아주의 손에 죽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아차 싶었다.
그러나 디겔은 잠시 도멤을 보다가 몸을 비켜주었다.
“들어 오거라.”
“……감사합니다…….”
디겔의 옷깃에서 약간의 술 냄새가 풍겼다. 아니나 다를까 집 안으로 들어가자 식탁 위엔 술병이 두어 개 올라가 있었다. 디겔은 탁자 앞의 의자에 풀썩 앉고 말없이 주먹으로 턱을 괴었다.
도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의 앞에 앉았다. 디겔이 그를 흘끔 보고는 약간 코맹맹이 같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집에 못 있겠더냐?”
“…….”
“나 참, 바트릭 그 못난 놈…….”
디겔은 그렇게 말하고 술병을 들어 마셨다. 도멤은 그를 보다가 물었다. 이 시간까지 술 마시고 계셨어요? 그 말에 금발의 항해사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아내도 죽고, 친구 놈도 하룻밤 만에 뒈지고……. 이곳저곳이 다 상갓집인데.”
디겔이 코를 훌쩍거렸다.
“나이 처먹은 마당에 꼴사납게 울 수가 없으니 술이라도 마셔야지.”
“우는 게 어때서요?”
“그럼 너는 우는 게 뭐가 어떻다고 네 아비 장례식장에서 안 울고 있어?”
타박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도멤은 일렁거리는 촛불을 보다가 어물어물 대꾸했다.
“그냥, 그냥 눈물이 안 나와서요…….”
그럴 수도 있어. 디겔이 단번에 수긍했다.
“너도 안 우는 장례식장에서 남들이 울어 뭐하겠느냐? 그리고 다들 그런 때가 있어. 그러니 술이라도 마시고 술기운 빌려서 울어야지…….”
“제 탓인가요?”
도멤이 묻자 디겔은 그를 보다가 술병을 내려놓았다. 그게 왜 네 녀석 탓이야? 죽은 건 네 아비인데. 도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디겔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침울한 낯짝 하지 마라. 덩달아 우울해지잖느냐. 그 말에 그는 말문이 다시금 턱 막혔다.
그냥 하는 말일 텐데도 유난히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문제일 것이다. 도멤은 바람에 휘청이는 나뭇가지처럼 시선을 헤매다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디겔이 헤더의 방 쪽을 보며 술을 더 마셨다.
“이제 곧 검은바다도 출항할 텐데 헤더를 두고 가는 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배는 위험한데 이젠 섬도 안전지대가 아니니…….”
“…….”
“그래도 너는……. 원하는 대로 해봐라. 검을 배워도 좋고, 그냥 물고기를 잡든 농사나 짓든 아무거나 좋겠지.”
도멤은 디겔을 보다가 물었다.
“제가 배에 오를 수 있나요?”
그 말이 의외인 듯, 디겔은 눈을 들어 도멤을 빤히 보았다. 그는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안 되겠지만 네가 싸우는 법을 배운 뒤라면 누가 말리겠느냐?”
그 말에 도멤은 당장은 안 된다는 말에 아쉬운 건지 다행인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검은바다에 오르고 싶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영영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마을에서 평생 그 집을 피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로 나가야 했다. 또한 우홉피아주에게도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짙은 악의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디겔은 도멤이 이런 시간에 찾아왔을 때부터 알아차린 듯, 그에게 방을 내주었다. 내가 있을 때까지만 여기서 지내라. 그렇게 말한 디겔은 자신이 출항하게 되면 그때는 헤더에게 따로 물어보라며 조건을 뒀다.
이제는 딸만 있게 된 집이니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말이라는 걸 깨달은 도멤은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딱히 디겔의 집에서 내내 신세 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는 낯선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분명 남의 집인데도 자신의 집에 있을 때보다 편했다.
디겔은 거실에서 계속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도 우울해서 술을 마셨겠지. 도멤은 그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왜 그렇게 홀로 가버려야 했던 걸까? 나와 더 대화해보면 안 되었던 걸까? 내가 했던 말이 그렇게까지 슬프고 가슴 아픈 말이었을까? 도멤은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우울하기만 한 밤이었다.
그 뒤로 도멤은 며칠간은 디겔의 집에서 밤을 보냈다. 헤더는 한동안 우울했지만 금방 다시 기운을 차리고 정원을 돌보기 시작했다. 디겔은 우두커니 서서 헤더를 바라만 보았다. 아직 어린 소년은 나이 들고 있는 항해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지 못했다.
도멤은 이제 낮에는 검 쓰는 것을 배우고, 밤에는 디겔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검은바다가 출항하자, 그는 노는 것을 핑계로 친구들의 집에서 밤을 보내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마을의 창고에서 몰래 잠을 잤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도미나가 집에 있을 때는 동생을 돌보는 것이 싫어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정작 집에 아무도 없게 되자 이번에는 그것이 싫어서 집에 가지 않았다.
어쩌면 그 집이 정말로 문제인 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더더욱 그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도 도멤은 바쁜 나날을 보내며 자신이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어두운 밤이 되면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났지만, 집에 가지 않게 되자 그런 것도 점점 흐려졌다.
그 대신 그는 일상을 되찾았고, 그러다 문득 키이엘로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날 키이엘로가 도미나를 구해줬지. 고맙다는 말을 해야 했는데 지금까지 정신이 없어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도멤이 뒤늦게 키이엘로를 찾았을 때, 그는 이미 검은바다와 함께 출항한 상태였다. 열네 살밖에 안 됐는데 출항이라고?
그러고 보니 예전에 클루스도가 키이엘로를 데리고 간다고 했던가. 우투그루가 말했던 것을 떠올린 도멤은 그냥 나중에 마주치게 되면 그때 인사하자고 결론짓고 검을 배우러 걸음을 옮겼다.
그에게 꽤 큰 기대를 했던 마을 선생에게는 미안하지만, 도멤의 검을 다루는 실력은 지극히 평범했다.
계속 배운다면 출항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그가 작은 전투에서도 꽥 죽을까 걱정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도멤은 별생각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는 점차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아주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집에 가지 않았고, 때때로 지독히 우울감을 느꼈다. 그리고 적어도 그는 그런 걸 때로 솔직하게 드러냈다. 친구들의 집에서 놀다가도 왜 집에 가지 않느냐는 물음을 듣거나, 그냥 이유 없이 우울해지거나, 뭐 그런 때에 말이다.
도멤은 그럴 때마다 머뭇거리다가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우울하고, 집은 이래서 싫고, 아버지는 어땠고, 도미나는 어땠고…….
“그건 알겠는데, 그만 우울해하면 안 돼?”
어느 날 그런 소릴 들은 건 딱히 원하지 않은 일이었다. 도멤은 난감해하는 친구의 얼굴을 멀거니 보았다.
“그냥, 네가 힘든 건 알겠는데 솔직히,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너도 그만 털어내고 평범하게 살아.”
“……그러게, 그래야 하는데.”
도멤은 애써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너 때문에 나까지 우울해지잖아.”
그 말에 도멤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나 때문에 우울해진다고? 그게 내 탓이야? 내가 힘든 게 내 탓이야? 네가 나 같은 일을 겪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때문에 우울해지면 뭐가 어떻길래? 왜? 나는 이런 기분을 말하는 것도 안 돼?
너도 아버지처럼 죽고 싶어지기라도 했어?
도멤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앞의 친구가 께름칙한 걸 마주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야, 넌 왜 그렇게 심사가 꼬였냐? 친구는 그렇게 비아냥거렸다. 그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 것 같은가? 분노, 슬픔, 수치심, 억울함, 뭐 그런 것들이 도멤의 안에서 털실처럼 뭉쳐졌다.
결국 그는 친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둘 다 마을에서 검을 배우던 놈들이라 그것이 칼싸움으로 번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우투그루가 둘을 말려서 떼어놓을 때까지 둘은 치고받고 싸워댔다. 결국 둘은 검을 압수당했으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도멤은 자신의 우울이 잘못인 것 같았다. 그가 고통에 파묻혀있던 것이 그의 모든 후회의 근원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무엇을 더하란 말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괴로운 것을 말해봐야 그들까지 우울해질 뿐이었다.
그가 함부로 화내고 막무가내로 굴어봤자 바로 이후에 어떤 후회할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이 다 서러웠다. 어딘가에 풀어놓지 못하는 서글픔, 눈물, 후회…….
그러나 도멤은 더 이상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상처 입힌 사람은 동생과 아버지로 족했다. 내가 더 너그러웠다면, 내가 더 무던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다면.
더는 자신의 멍청한 짓으로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 * *
“……그게 다야.”
도멤의 말이 끝났을 때, 로트와 키이엘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조용한 공백에 도멤은 다시금 후회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또 누군가를 우울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남에게 감당 못 할 감정까지 떠넘기게 된 것은 아닌가? 역시 그는 아직도 부족해서 나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 키이엘로가 입을 열었다.
“너…….”
도멤은 몸을 흠칫 떨었다. 키이엘로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너 나한테 고맙다고 한 적 없어…….”
“…….”
이번엔 도멤이 넋 빠진 얼굴을 했다. ……안 했던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