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73)
바다새와 늑대 (72)화(73/347)
#72화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키이엘로와 도멤을 번갈아 보았다. 결국 완전히 까먹고 있었던 거로군……. 나직하게 읊는 내 말에 도멤이 아냐, 하며 횡설수설 변명을 했다.
사실 그를 탓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말마따나 도멤의 이야기는 무거운 주제였고, 그런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봤자 좋을 건 없었기에 환기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나는 뭐라고 말하며 화제를 전환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키이엘로가 적당한 말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도멤의 동생을 구했다는 부분을 들을 때 키이엘로가 보인 반응으로 보면 그는 아예 그때의 일 자체를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 일을 까맣게 잊는 저 녀석도 하여간 보통은 아니지.
도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략된 것도, 얼버무린 것도 있었다. 나는 뒤늦게 키이엘로에게 그때 고마웠다고 말하는 도멤을 보다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넌 유령의 바다에서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한 거구나.”
“음……. 정확히는 동생의 목소리였어. 우투그루는 마을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나에 대해서도 너희한테 그렇게 말한 거겠지.”
도멤이 어색하게 대꾸하는 것에 나는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머리통들은 사람을 유인하거나 패닉 상태에 이르게끔 목소리를 골라 흉내 내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르진 않네, 나도 동생 목소리를 들었거든. 기분 더러웠지.”
“오…….”
도멤이 떨떠름하게 눈을 굴리다가 손가락을 움츠렸다. 나는 그의 답지 않게 소극적인 모습에 잠시 눈을 깜빡였다. 나는 할 말을 고르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도멤에게 예전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던 이유는 도멤의 행동을 납득하기 위해서였다.
적어도 도멤이 정확히 무엇에 취약했기 때문에 우투그루가 우리에게 그런 태도를 보인 건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막상 듣고 보니 생각보다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였고, 또…….
또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인 것 같았다. 나는 막상 벌려둔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키이엘로가 말했다.
“그 머리통은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어머니의 소리를 들었거든.”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유령선으로 이끌리긴 할까?”
“…….”
내 말에 키이엘로는 말없이 쓴 미소만 짓고 있었다. 나는 조금 말을 잘못한 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른 입을 다물고 어깨를 으쓱였다.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
나는 뒤늦게 안개 속에서 마주쳤던 키이엘로가 눈물을 보였었단 걸 떠올렸다. 정말로 말을 잘못 고른 것 같아 애석해졌다.
도멤은 조금 처진 기색으로 가만히 있다가 우리가 모두 한숨만 쉬며 조용히 있자 입을 열었다.
“……역시 좀 우울한 이야기지? 말하면서도 계속 걸렸는데.”
“아냐. 절대 아냐.”
나는 곧바로 부정했다. 생각해보면 도멤은 항상 섣부르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다. 싫다는 이야기도 그다지 표현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 행동이 그저 도멤이 무른 놈이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보다 명확하게 보였다.
도멤은 그저 후회할 짓을 더는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는 나무처럼 굳건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런 결심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바꾸게 한다. 나는 잠시 도멤을 보다가 말했다.
“네 이야기를 들은 걸 후회하지 않아. 듣고 우울해지지도 않았어.”
“그렇게 말해주니까 고맙지만…….”
“도멤. 우리는 그저 너에 대해 전보다 더 알게 된 것뿐이야. 너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지. 애초에 그걸 위해 네 이야기를 들은 거야.”
내 말에 도멤이 입술을 다물었다. 그는 생경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 표정이 무슨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인지 나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키이엘로가 텐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나는 그때 내가 네 동생을 구했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는걸. 말해줘서 고마워. 여태 난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네.”
키이엘로는 자기가 그렇게 말하고는 새삼 놀란 얼굴로 도멤을 보았다.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는데도 몰랐어. 그에 도멤은 입꼬리만 비죽 올리고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너 원래 사람한테 관심 없잖아.”
키이엘로는 밉지 않게 도멤을 흘기고는 텐을 쓰다듬던 손을 떨어트렸다. 나는 와중에 조금 복잡해졌다. 굳이 입을 열게 종용해서 이야기를 들었다만 이렇게 말해준다고 도멤이 마음이 놓일까?
누군가에게 숨겨오던 것이나 말하지 않던 것을 털어놓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해본 적이 없었다.
요컨대 신뢰의 문제였다. 오는 것이 있다면 가는 것도 있어야 맞지 않나? 도멤은 자신의 이야기를 했는데도 아직도 나는 감추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슬쩍 발카에 관해 생각했다. 그리고 돌연 아주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말이야.”
나는 내가 말을 꺼내고는 아차 했다. 그러나 충동적으로 흘린 말을 다시 주울 수는 없었다. 도멤과 키이엘로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나는 둘을 보다가 텐을 보았다. 누구나 비밀이 있잖아. 무언가를 눈치챈 듯 키이엘로가 눈을 크게 떴다.
도멤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렇지, 당연히?
“……나도 감추던 게 있거든.”
“잠깐, 굳이 말 안 해줘도 돼.”
도멤이 얼른 막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마음이 약해졌지만 동시에 이것이 우리 사이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상태로는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생각 이전에 나는 인정해야 했다.
친구를 사귀는 것에 있어서는 거짓 없이 부딪치는 게 낫지 않을까?
“아주 큰 문제는 아냐, 그러니까, 네가 나름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해준 것에 대한 신뢰의 보상이랄까.”
“그……, 그렇게 큰 문제는…….”
도멤이 머뭇거리자 나는 그를 빤히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도멤은 곧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야 사양할 이유는 없지.
나는 키이엘로를 힐끔 보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발카 말이야. 바다새가 맞아.”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했을 때, 도멤이 얼빠진 얼굴을 하더니 대뜸 손을 들어서 내 말을 막았다.
“잠깐, 잠깐만.”
나는 눈썹을 휙 치켜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키이엘로는 당황한 눈으로 나와 도멤을 번갈아 보았다.
도멤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리더니 다시 물었다.
“발카가 뭐라고?”
“바다새라고.”
“바다새? 내가 아는 바다새가 맞아? 농담이지?”
도멤의 말에 키이엘로가 텐을 다시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키이엘로는 자신의 늑대를 빤히 보다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로트 말이 맞아. 그리고 텐은 영물이고.”
“얘들아, 잠깐만.”
도멤은 나와 키이엘로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한숨을 쉬며 머리를 쥐어 싸매더니 다시 고개를 들 때는 훈훈한 웃음이 얼굴 가득 걸려있었다.
그 표정에 묘한 불안감이 든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도멤은 마치 작은 동생들의 재롱을 보는 큰형처럼 코밑을 쓸며 말했다.
“이 녀석들……. 형이 그렇게 걱정되었어? 굳이 그런 이상한 말을 할 필요 없어 애들아…….”
나는 대번에 주먹을 들어 보였다. 키이엘로가 얼른 내 팔을 붙잡았다.
“뒤질래? 누가 형이야? 이게 기껏 말해줬더니…….”
“도멤, 농담 아냐.”
키이엘로까지 침착하게 말하자 도멤은 다시 머리를 싸맸다. 그러더니 한숨을 쉬더니 다시 우리를 보았다. 그러더니 자리에 있는 텐을 빤히 보더니 말했다.
“알았어, 좀…… 당황스럽지만 아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거든.”
그 말에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치챘었다고? 내 물음에 도멤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 동물들이 아무리 너희를 잘 따라도 이렇게 별문제 없이 얌전히 있는 거나, 너희가 가끔 혼잣말을 누구랑 대화하는 것처럼 한다거나……. 좀 미묘하게 수상한 말을 하긴 했지만, 물론 그렇다고 발카나 텐이 그런 특이한 생물이라고 생각한 게 아냐. 차라리 너희가 그냥 동물이랑 대화하는 능력이 있는 줄 알았지!”
상식적으로 양쪽 다 쉽게 생각해낼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평범한 짐승의 모습을 한 텐과 발카를 보았을 때 도멤의 추측이 평범하긴 했다. 나와 키이엘로는 어색하게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다시 도멤을 보았다.
도멤은 아직도 얼떨떨한 듯 텐을 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텐, 내 말 알아들어?”
『알아들으면 어쩌게, 내 목소리도 못 듣는 멍청이 주제에.』
“……어차피 넌 자기 목소리 못 듣지 않냐고 하는데?”
완곡한 통역에 나는 슬쩍 키이엘로를 보았다. 이 자리에 발카가 있었다면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았으리란 생각에 시선을 돌렸을 뿐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도멤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럼 이상한데. 바다새인 발카가 이번 폭풍을 예견하지 못한 거야? 물론 네가 숨기려 한 거라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도멤은 그렇게 말하더니 무언가 생각하다가 입을 딱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그때 묘한 말을 한다 했지…….”
그가 말하는 그때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일단 나는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
“나도 몰라, 딱히 숨기려고 발카가 예견한 폭풍을 알리지 않은 게 아냐. 이번 폭풍은 발카도 알지 못했어.”
“음, 바다새도 만능은 아니구나.”
“그건 또 아냐, 이번이 좀…… 특수한 경우 같으니까.”
묘하게 울컥한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도멤은 허허 웃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특수한 경우가 다 있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몰라.
그러자 키이엘로가 텐의 털을 쓰다듬으며 끼어들었다.
“평소랑 뭔가 다른 점이 있진 않았어?”
“평소랑 다른 점?”
“왜, 전에……. 발카가 날씨를 읽는 걸 봤을 때 말이야. 그때 발카는 뚜렷하게 날씨를 읽었잖아. 그러니까… 지금 날씨를 읽었구나, 하고 보이는 때가 있었지.”
키이엘로의 말에 도멤이 작게 감탄했다. 그거 멋지다! 그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무시하고 나는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했다. 이번 폭풍이 오기 전…….
“그러게. 원래라면 베제가 대뜸 달려와서 발카가 바다새냐고 물어볼 때쯤엔 날씨를 읽고도 남았어야 한단 말이지……. 잠깐.”
“왜 그래?”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어.”
도멤의 안색이 허옇게 변했다. 나는 그의 팔뚝을 찰싹 때렸다. 무서운 이야기 하는 거 아냐. 도멤은 서글픈 얼굴로 팔뚝을 문지르다가 이내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내가 들었던 목소리와 웃음소리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그러자 키이엘로와 도멤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그치만 망망대해에서?”
“나도 모르지. 무슨 대화를 하던 중에 그 목소리가 들렸는지는 까먹었지만, 여하튼. 그걸 들은 이후에 베제 놈이 쳐들어와서 헛소리했고, 바로 폭풍이 왔어.”
“만약 폭풍이 이미 항로에 있었다면 발카가 그때 날씨를 읽었을 거야.”
“그런데 못 읽었지.”
도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기묘한 목소리에 뭔가 있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도멤이 물었다.
“그 목소리, 혹시 초월자였던 거 아닐까?”
“글쎄…… 초월자가 그렇게 할 일이 없나?”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로트 넌 에르노리가 관심을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 말을 듣자 나는 퍼뜩 루루미가 떠올랐다. 바다의 마녀……. 하지만 그들이 왜? 키이엘로도 같은 것을 고민했는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초월자가 심심했나? 왜 굳이? 그리고 그걸 로트가 들을 이유가 있나?”
“그러게. 음…… 모르겠다! 그런 건 평범한 필멸자인 우리가 고민하지 말자고!”
“서러운 필멸자라 초월자 변덕에 유령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나 하고 말이지.”
내 말에 도멤의 얼굴이 도로 핼쑥해졌다. 너무했다, 초월자……. 하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가 고민해서 뭘 하겠는가?
어쨌든 발카와 텐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된 도멤이 조금 편안해진 얼굴로 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거면 됐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도멤과 키이엘로도 마찬가지였는지 서로 고민하느라 앞으로 모였던 몸을 뒤로 편하게 기댔다.
“발카랑 텐이 그런 애들이었다니 신기하다. 내가 전에 누누이 말했지만…….”
“동물하고 교감하는 게 꿈이라고? 귀에 딱지 앉겠다.”
“좀 앉으면 어때서!”
도멤이 장난스러운 소년처럼 웃는 모습에 나는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를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직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하나를 털어놓자 좀 더 짐을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하지만 이건 키이엘로도 모르는 이야기인데.
나는 잠시 목덜미를 주무르다가 벽에 등을 기대고 바닥을 뚫어져라 보았다. 무언가 고민하는 기색인 나를 보고 키이엘로가 의아하게 물었다. 왜 그래?
나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그러자 눈만 깜빡이던 키이엘로는 점점 부담스러웠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왜…… 왜 그러는데, 로트?”
“사실 말이야. 아직 말 안 한 게 더 있는데.”
내 말에 키이엘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멤도 치료받은 어깨를 피해 몸을 기대던 것을 도로 세우며 나를 보았다.
나는 순간 지금이 마치 키이엘로와 내가 도멤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던 때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과연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들고 그들을 보았다.
“사실…….”
그때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이게 미쳤나! 니 뭐꼬! 고래고래 외치는 요한의 사투리 섞인 억양에 퍼뜩 놀란 우리는 선실과 우리를 갈라놨던 칸막이를 걷고 밖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요한이 사냥감을 낚아챈 매처럼 누군가의 뒷덜미를 잡고 있었다.
“뭐…… 무슨 일이지?”
당황한 도멤의 말에 키이엘로가 내 어깨를 짚었다. 로트, 나중에 천천히 말해줘. 나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요한 쪽을 보았다.
그리고 곧 우리 셋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헤더?!”
요한의 손에 잡힌 사람은 섬마을에 있어야 할 헤더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