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77)
바다새와 늑대 (76)화(77/347)
#76화
그것은 위는 사람의 몸, 아래는 물고기의 몸으로 보였다. 즉 인어란 뜻이었다. 그러나 전설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온통 뒤집어쓴 검은 액체 때문에 그것의 하체가 물고기라는 것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지나치게 깡마른 몸은 성별을 구별할 수 없었고, 사실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오로지 몸뚱이에 붙은 긴 팔과 손가락 따위를 보고 사람의 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손가락은 지나치게 길었고, 갑판을 짚을 때마다 그 갈퀴 같은 손이 부딪혀 따다닥,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것의 얼굴까지도 검은 액체에 뒤덮여 도통 뭐가 뭔지 분간할 수 없었으나 벌어지는 입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키이엘로는 손에 묻은 검은 액체를 털어내며 인상을 구겼다.
“인어야? 저게?”
“젠장, 저것들이 선체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고! 소름 끼쳐!”
베제가 쇠뇌에 볼트를 다시 장전하며 소리쳤다. 그 순간 인어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빠르게 기어 왔다. 도멤이 가냘프게 비명을 지르는 것을 뒤로하고 검으로 그것의 목을 벤 나는 서둘러 뒤쪽을 보았다.
“빨리 이 바다를 벗어나야 해!”
“사수들을 불러!”
베제가 키이엘로의 엄호를 받으며 선체 아래를 향해 쇠뇌를 쏘며 외쳤다. 우투그루는 자신을 향해 선실에서 뛰어오는 브레딕에게 소리쳤다. 사수들을 불러 모아! 선미루에서 세이렌을 베어 넘기던 클루스도가 우투그루의 외침을 듣고 우리 쪽을 살폈다.
그 순간 확인 사살을 한 우투그루에 의해 인어가 주욱, 하고 검은 물로 변해 퍼졌다.
클루스도는 선장의 노련함으로 금방 무슨 상황인지 파악했다. 그가 선원들에게 들리게 쩌렁쩌렁한 소리로 외쳤다.
“사수들은 모두 선체에 붙은 인어를 쏜다! 다른 인원은 모두 사수를 엄호하라!”
그 말에 선실에서 사수들이 각자 쇠뇌나 활 따위를 들고 튀어나왔다. 칼을 든 해적들이 그들을 엄호하며 세이렌을 상대하고 사격수들은 인어를 상대했다.
우리 역시 베제와 합류한 다른 사수를 엄호했다. 사수들이 선체에 달라붙은 인어를 쏘기 시작하자 무언가 바다에 빠지는 소리와 인어들이 지르는 비명이 울렸다.
그러나 배가 좀처럼 앞서 나가지 못하는 것에 반해 세이렌과 인어는 끝이 없었다. 조금 해치웠다 싶으면 또 다른 세이렌과 인어가 나타나 공격했다. 인어는 선체를 빠르게 기어올라 사수들을 물거나 할퀴었고, 갑판까지 올라와 물고기 꼬리로 선원들을 밀어냈다.
심지어 누군가 세이렌에게 당해 갑판 위로 쓰러지면 벌떼처럼 인어들이 모여들어 시체를 파헤쳤다. 더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때 쇠뇌를 쏘던 베제가 윽, 하고 욕을 내뱉었다. 그의 모노클에 검은 액체가 튀어 일순 시야가 막힌 것 같았다.
그 틈을 타 공격하는 세이렌을 쳐낸 키이엘로가 베제의 목덜미를 잡아 뒤로 당기고, 난간을 붙잡는 인어를 후려쳤다. 나는 그것을 보며 다급한 와중에도 저놈은 역시 검을 쓰는 것보다 주먹을 쓰는 게 효율이 높군, 하고 생각했다.
순간, 도멤의 위로 또 세이렌이 내려앉았다. 어깨가 짓눌리는 고통에 짧게 소리를 지르는 도멤에게 세이렌이 쑥 고개를 숙였다.
세이렌이 도멤의 목줄기를 뜯기 전에 검을 끼워 넣자, 세이렌은 내 검을 콱 물었다. 그것이 잘근거리는 것이 검신을 타고 전해졌다.
목숨이 그 짧은 찰나에 오갔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급하게 세이렌을 베어낸 내가 온몸에 튄 검은 액체를 닦을 새도 없이 외쳤다.
“수가 너무 많아! 어떻게 알고 오는 거지?”
“아까의 무리를 부르는 소리로 왔다고 보기엔 지나쳐.”
우투그루가 숨을 몰아쉬며 말하고는 인상을 찡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도멤은 식은땀에 젖은 얼굴로 허리를 숙이려다가 어깨 쪽을 붙들고 창을 고쳐 쥐었다.
그가 입은 일전의 부상은 어깨와 쇄골 쪽 앞가슴이 이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도로 벌어진 모양인지 셔츠가 이미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가 틈틈이 도멤을 신경 쓰자 그는 손을 내저었다. 나 괜찮아!
괜찮을 리가! 그러나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세이렌이나 인어의 움직임을 좀처럼 예상할 수가 없었다. 코앞에 있는 사람을 공격하는가 하다가도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기척을 읽고 대처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뒤를 잡아 공격하는 건 쉬운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유동적인 움직임에, 수가 많고 빠르기까지 해서 좀처럼 흐름을 잡을 수 없었다.
그때 브레딕과 네토르가 함께 우리 쪽으로 합류했다. 그들은 사수는 없고 둘 뿐이었는데, 옷에 온통 까만 액체와 피가 묻어있었다. 사수를 잃었거나 안전한 곳에 옮겨둔 것 같았다.
브레딕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와 소리쳤다.
“인어를 조심해! 인어에게 독이 있다! 물리지 마!”
그 말에 도멤이 침음을 뱉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그 순간, 쾅 하는 포성이 울리더니 배가 흔들렸다. 선체에서 포문을 열어 인어를 쏜 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갑판 위에 있던 세이렌과 인어들이 포성이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들고는 일제히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무언가 뇌리를 스쳤다. 세이렌과 인어의 예측 못 할 움직임과 지금의 상황이 순식간에 상기되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듯, 자신을 지나쳐 가는 세이렌을 공격하던 네토르가 퍼뜩 놀라 중얼거렸다.
“소리…….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거였나?”
그 말에 우투그루가 소리쳤다.
“발포 금지! 당장 그만둬!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거다!”
그러나 이 난리 통에 그의 외침이 전해질 리가 없었다. 세이렌과 인어들이 열린 포문을 향해 빠르게 기어가자 그 물결에 선원들이 이리저리 치였다. 갑판 위에 흐르는 검은 액체도 문제였다.
선원들은 검게 칠해진 바닥에 미끄러지다가 세이렌과 인어에게 밀쳐지기도 했다. 칼을 휘둘러 그들을 잡기도 하고 사수들이 그것들의 머리를 쏴 맞추기도 했지만, 수가 많아서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소리를 지른 우투그루의 목소리에 가까이 있던 세이렌과 인어가 방향을 바꿔 덤벼들었다. 급하게 브레딕이 빠르게 기어 오는 인어를 베었다.
그러나 그 틈에 세이렌이 브레딕을 발로 찍어 내렸다. 브레딕이 비명을 지르려다가 입술을 깨물며 참자, 우투그루가 검을 들어 세이렌을 베어냈다. 그가 브레딕을 살피려 하는 순간 또 다른 인어가 뛰어들며 우투그루의 옆구리를 할퀴었다.
“우투그루!”
도멤이 급하게 부르며 우투그루를 붙들었다. 브레딕이 인어를 찔러 밀치고 그들을 돌아보았다.
일전의 부상이 터진 듯 우투그루의 허리춤으로 피가 검은 액체와 함께 흘러내렸다. 네토르가 서둘러 도멤과 함께 그를 부축하고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
이번만큼은 우투그루도 고집을 부릴 수 없었는지 몸을 일으켰다. 브레딕이 도멤 대신 우투그루를 부축하는데, 또 다른 세이렌이 덤벼들었다. 내가 칼을 들어 세이렌의 입에 꽂아 넣으며 낮게 말했다.
“최대한 조용히 가! 소리 내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서 모두에게 알려.”
그때 다시 한번 포성이 울렸다. 포문을 통해 몰려든 세이렌과 인어를 무찌르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소리에 무리가 더 몰려들기 시작했다.
네토르 대신 베제가 우투그루를 부축하게 하고 우리는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그 순간 우투그루를 부축하는 브레딕을 세이렌이 낚아챘다.
그것에 떠밀려 악, 하며 나동그라진 베제와 우투그루의 앞으로 브레딕이 세이렌의 발에 짓눌렸다. 브릭! 우투그루가 외치는 소리에 세이렌이 고개를 돌리려 하자, 브레딕이 왁 소리를 지르며 허리춤에 넣었던 검을 꺼내려 했다.
그 순간, 세이렌이 고개를 숙이는 것과 동시에 브레딕의 검이 세이렌의 목으로 들어갔다.
브레딕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일순 힘이 풀렸던 손이 검을 단단히 붙잡고 목을 완전히 베어내자 세이렌은 검은 액체가 되어 터져나갔다. 네토르가 타이밍 좋게 브레딕의 옷깃을 잡아당겨 그것에 뒤덮이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브레딕의 부상이 심각했다.
우투그루의 안색이 브레딕과 비슷할 정도로 하얗게 질렸다. 브레딕은 세이렌에게 갈빗대 쪽의 살점을 뜯긴 상태였다.
피가 흐르기 시작하자 네토르는 서투르게 브레딕의 코트를 벗겨 지혈하며 낮게 외쳤다.
“서둘러!”
그러자 베제가 얼른 일어나 다시 우투그루를 부축하고, 네토르가 브레딕을 부축했다. 그 빈틈을 노리고 날아드는 인어를 붙잡아 내던지는 키이엘로의 손은 이미 검은 액체가 잔뜩 묻어 검은 장갑을 끼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키이엘로가 갑판 위의 해적들을 향해 소리쳤다.
“소리에 반응한다! 소리치지 마!”
그의 외침에 득달같이 달려든 인어의 뒤통수를 가격해 터뜨린 키이엘로는 손을 털어내며 우리에게 작게 물었다. 다친 곳은 없어? 그에 도멤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그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 말했다.
“이 자식 상처 도로 터졌어.”
“로…… 트! 아파!”
도멤이 꽥 소리치려다가 간신히 소리를 줄이고 속삭이듯 외쳤다. 우투그루처럼 안에 들어갈 것이지 왜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혀를 차고 잠시 짬이 생긴 것을 틈타 검을 털어냈다.
갑판에 검은 액체가 후두둑 튀었다. 원래도 까만색의 배였지만 검은 액체가 묻은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젠 원래의 먼지 낀 검은 나무 갑판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갑판 위에 있던 선원들은 우투그루와 키이엘로가 외치던 것을 들었는지 전보다 조용해졌다. 그러자 포문이 아닌 갑판에 남아있던 인어는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온통 까만 액체에 뒤덮여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남은 건 세이렌이었는데, 소리가 작아지자 세이렌들은 얼굴을 울룩불룩거리며 바꾸거나 우는 소리를 내며 누군가 소리를 내길 기다렸다. 그러나 세이렌은 적어도 앞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 듯 그 뒤부터는 눈에 보이는 선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우리라고 여유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검을 마저 털어내고 조금 전 키이엘로의 외침에 모여든 세이렌을 베었다. 도멤은 다친 어깨와 다른 쪽의 손으로 창을 쥐고 세이렌과 인어를 몰아냈다. 키이엘로는 행동이 제한된 인어들을 붙잡아다 바다로 내던지고 있었다.
갑판 위가 조용해지고, 포성도 더 들려오지 않자 상황은 좀 나아졌다. 키이엘로가 인어를 치우고 남은 세이렌은 상황이 좋지 않게 느껴졌는지 배에서 뛰어내리는 놈들도 있었다.
그때 도멤이 세이렌의 입에 창을 찔러 넣다가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무언가에 떠밀렸다. 반사적으로 다리를 옮겨 디뎠지만, 갑판 위의 검은 액체 때문에 순간 발이 미끄러지며 몸이 휘청였다.
그대로 앞으로 엎어진 나는 질척이는 액체 위에서 서둘러 몸을 뒤집었다. 곧바로 세이렌의 얼굴이 훅 다가왔다. 검으로 입을 막고 밀쳐내려 하는 순간, 세이렌이 돌연 내 배를 밟았다.
장이 짓눌리는 느낌과 함께 저절로 악 하는 비명이 나왔다. 내 소리가 새어 나가자마자 인어들이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보았다.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팔뚝이 선뜩해졌다.
그때 발카가 날아들어 세이렌의 얼굴을 발톱으로 긁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이렌의 머리를 베어내며 옆으로 굴렀으나, 몸 위에서 터져 나온 검은 액체가 머리 위를 뒤덮였다.
지독한 악취에 내가 헛구역질을 하는 사이 키이엘로와 도멤이 빠르게 기어 오는 인어들을 찔렀다. 내가 잠시 배를 팔로 감싼 채 다른 손으로 검은 액체를 대충 훔쳐내는 동안 인어들을 막아낸 키이엘로가 내 팔뚝을 잡아 다른 쪽으로 이끌었다.
우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을 본 도멤도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인어들이 그대로 우르르 몰려와 내가 있던 갑판을 뒤덮고 난간까지 넘어갔다.
몇몇 인어가 속도에 못 이겨 바다로 빠지고, 남은 인어들은 다시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멍하니 있다가 주변을 두리번대며 손으로 더듬었다.
드드득, 바닥을 막무가내로 긁고 짚는 소리와 함께 갑판에 까만 손자국이 빼곡하게 찍혔다.
그때 선실에서 나온 네토르가 팔을 크게 저으며 선원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가 선실을 가리키며 몇 가지 동작을 하자, 키이엘로가 가쁜 숨을 길게 내쉬며 우리에게 고갯짓했다. 가자. 도멤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선실로 조용히 들어갔다.
길었던 전투는 흐지부지하게 일단락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