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82)
바다새와 늑대 (81)화(82/347)
#81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선실 밖으로 한 발짝만 내밀 수 있었다. 그 직후에 선원들의 손아귀에 붙들려 바닥에 꿇어앉아야 했다. 우투그루가 당황해서 디겔을 보았다.
아저씨, 하고 부르는 소리에도 디겔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나는 내 팔을 뒤로 꺾어 억류하는 것을 뿌리치려고 몸을 비틀다가, 작은 철창에 갇힌 발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발카 역시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외쳤다.
『로트, 도망가야 해!』
대체 왜? 무엇 때문에?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발카를 보다가 시선을 올려 디겔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제야 디겔의 손아귀에 신문이 들려있는 것이 보였다.
신문? 나는 다급하게 머리를 굴렸다. 저 신문은, 그러니까. 나는 불현듯 도멤이 헤더와 선원들의 마찰이 불거질 때, 프라세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저것을 쥐여줬던 것이 기억났다.
선원들의 공기가 이상했다. 약간의 공포와 약간의 혐오감이 담긴 시선이 창끝처럼 날카롭게 곤두서 내 신경을 긁었다. 발카가 철장 안에서 연신 불안한 날갯짓을 하며 나를 불러댔다.
로트, 도망가! 도망가! 바다새가 아니라 앵무새라도 된 것 같았다. 나도 알아, 지금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나는 지금 여럿의 손에 팔과 어깨가 눌려 잡혀있는 상태였다.
내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우홉피아주가 섬을 습격해?”
디겔이 내가 말을 다 잇기 전에 불쑥 말했다.
“동생이 납치를 당했다고? 그래서 우홉피아주를 쫓는다고?”
나는 그가 내 사정을 굳이 다시 언급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럽게 시선을 굴리다가 도멤과 눈이 마주쳤다. 도멤은 거의 유령의 바다 때만치 질린 얼굴로 나를 보다가 고통스럽다는 얼굴로 내 눈을 피했다.
옆의 헤더는 나를 경악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네토르는 알 수 없는 얼굴로 날 응시했다. 그리고 베제는 프라세를 품에 넣고 나를 못 믿겠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일순 발밑이 푹 꺼지는 것 같은 현기증이 찾아왔다. 디겔이 이어 말을 이었다.
“남자라고 속이고?”
끔찍한 오한이 척추를 타고 내달렸다. 들켰다! 아니, 숨긴 적이 없는데 들켰다는 말은 부적절하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달리 뭐라고 해야 하지?
나는 순식간에 얼어버린 얼음덩이처럼 굳어있다가 뻣뻣한 혀를 억지로 겨우 움직였다.
“지금 그걸 이유로…….”
“입 닥쳐라!”
호된 고함에 나는 반사적으로 입술을 닫았다. 짙은 배신감과 참혹함이 뇌리를 파고들어 불쾌하게 눌어붙었다. 그런데도 무언가 이상한 기분은 계속 발치를 맴돌고 있었다.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처지가 되었다고? 내가 여자라는 것이 디겔이 들고 있는 신문과 무슨 상관이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발카가 비명처럼 연신 외쳤다. 도망가, 로트! 도망가!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나도 도망가고 싶어! 누군들 이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지 않겠어? 내가 항상 이것을 두려워한 게 이런 일인데.
내 어깨와 팔을 내리누르는 무게가 지독하게 익숙했다. 손에 땀이 찼다. 이 압력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겁에 질린 것을 애써 감추고 이를 갈며 외쳤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애초에 너희가 내 성별을 물어본 적은 없잖아!”
“입 닥치라고 했다.”
“이건 부당해요, 나는…….”
순간 불붙은 것 같은 통증이 관자놀이를 후려치고 지나갔다. 나는 일순 깜깜해졌던 시야를 깜빡이며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디겔이 분노한 목소리를 높였다.
“배반자가 너였던 게지!”
“……뭐라고요?”
나는 황당하게 되물었다. 그러나 내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냐고 물었는데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디겔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고 앞뒤 사정을 물으려던 우투그루가 움직임을 멈추고 크게 뜨인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냐, 나는 모르는 일이야. 나도 이 상황을 전혀 모른다고. 나는 내 얼굴이 그와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디겔이 신문을 구겨 쥐고 분에 차서 부들부들 떨었다.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 바다새가 있는데도 배가 폭풍을 만나질 않나, 이 끔찍한 바다로 흘러들어 오질 않나! 심지어 내 딸이 갑자기 배 한가운데에서 나타나고!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의아했다. 정말로 그 이유를 알고 싶었어!”
나는 거의 넋이 나가서 디겔이 하는 말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대체 내가 우투그루와 대화를 하러 나가 있는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저 신문에 뭐가 적혀있기에 이 모두가 분노와 경악에 휩싸여있단 말인가?
그러다가 나는 하나의 추론을 했다. 저 신문에 적힌 것이 우리 마을의 이야기다.
신문은, 시간 차가 많이 나 정보의 신선도가 낮은 편이라고, 베제가……. 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내가 마을을 나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시간을 계산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충분히 이제부터 신문에 마을의 습격이 담겨도 이상하지 않을만한 시기였다. 나는 다급하게 디겔을 보았다.
“오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다 설명할 수,”
“너에게 입 열 권리 준 적 없다.”
“들어요! 나는―”
“네놈 때문에 배에 헤더가 오르고, 이 바다로 흘러와서 죽는 사람도 생겨났어! 애초에 바다새가 있는데 왜 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단 말이냐? 알고도 말하지 않은 거겠지! 그래, 네가 배반자라면 우홉피아주가 바다새를 왜 밖으로 빼돌리나 고민했다! 우리를 폭풍으로 밀어 넣으라고 하더냐?”
내가 언성을 높여 소리치려 하면 디겔은 더욱 크게 고함을 쳤다. 그 대함에 내 목소리는 파묻혔다. 나를 누르는 손길을 뿌리치려 몸을 비틀었으나 선원들은 그럴수록 더 나를 짓눌렀다.
선장 대리를 맡은 디겔에게 반발하는 선원은 없었다. 혹은 있는데도 내가 못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전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외쳤다. 아니라고 했잖아! 목소리가 찢어지듯 흉한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러나 디겔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말했다.
“눈물의 바다를 벗어나는 즉시 처형한다. 창고에 가둬.”
그 말에 발카가 비명을 지르며 철장에서 마구 날갯짓했다. 나는 나를 붙들고 일으키는 손에 비틀거리며 일어나다가 한 선원이 발카가 있는 철장을 발로 걷어차자 선뜩하게 머리가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 마! 걔를 내버려 둬, 개자식아!”
“닥쳐!”
선원들이 으르렁거리며 나를 붙들고 끌고 갔다. 나는 다급하게 선원들의 틈새에서 도멤이나 키이엘로를 찾으려 했지만 지나치게 흔들리는 시선은 누구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선원 중 한 명이 발카의 철장을 아무렇게나 들고 내 쪽을 따라왔다. 지독한 분노와 공포가 엄습했다. 나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우홉피아주가 내 동생을 잡아갔어! 섬의 일은 몰라, 그저 나는, 나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나는 정말 끔찍하게도, 익숙한 좌절감이 나를 덮쳐오는 걸 느꼈다.
말해도 이들이 믿을까? 내 상황이 나아지긴 할까? 내 말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폭로하고, 언성을 높여도 저들은 나를 조롱하고 무시하고, 나를……. 나를.
나를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을 거야.
마치 예지처럼, 번뜩이며 꽂힌 생각이었다. 이가 저절로 갈렸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익숙했던 곳으로, 진창으로 다시 떠밀린 기분이 되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빌어먹게도 이 모든 상황이 내 수족을 묶고 꼼짝도 못 하게 했다.
나는 선원들의 손아귀에 잡혀 작은 창고에 갇혔다. 철창에 갇힌 발카도 마찬가지로 내 옆으로 우리째로 내던져졌다. 그들은 창고 문을 굳게 닫아 빗장을 걸며 내게 괜한 소란을 일으켰다간 재갈을 물리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누군가 정신머리를 뽑아간 것처럼 멍하니 있던 나는 그들이 문 너머에서 걸음을 옮겨 사라진 뒤에야 고개를 떨궜다.
이게 다 뭐란 말이야. 나는 헛웃음을 짓다가 이내 머리를 짚으며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배반자라니.
나는 에르노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 내가 그 배반자의 누명을 뒤집어쓴 건가? 신문 때문에? 대체 거기에 뭐라고 적혀있기에? 내가…….
내가 배반자라고.
나는 일순 이성이 까무룩 잠드는 것처럼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아무도 날 믿어주지 않고. 아무도……. 비참함과 배신감이 시퍼런 얼음물처럼 머리 위로 쏟아졌다.
내가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지. 하지만 난 억울해. 여태 온갖 위험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았는데 이렇게 억울하게 죽으라고?
절대 그렇게 못 해. 나는 입술을 악 깨물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내가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지? 나는 한참을 머리카락을 싸쥐고 웅크리고만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