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87)
바다새와 늑대 (86)화(87/347)
#86화
“처형이라니……. 아직 눈물의 바다 안이에요!”
“안다! 하지만 갑자기 피를 토한다는 소릴 들었잖느냐.”
디겔은 험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매서운 소리가 마치 채찍질처럼 느껴졌다. 병이 돌지도 모르는 한 늑장 부려선 안 돼.
그의 말에 키이엘로가 반박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항해하는 중에 전염병이란 곧 몰살까지 갈 수 있는 재앙이었다. 만약 디겔의 말마따나 로트가 전염성을 가진 병을 앓고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
일순 탈색된 머릿속을 흔들어 일깨운 키이엘로는 급하게 말했다.
“세운은 로트가 병에 걸린 건 아니라고 했어요.”
“말이 되느냐! 그럼 왜 피를 토한단 말이야!”
디겔이 호통을 치며 키이엘로를 보았다. 키이엘로는 의사는 세운이지 않느냐며 반론했지만, 항해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키이엘로를 쳐다봤다. 부선장에 클루스도의 아들인 그가 내통자에 더해 배에 병을 옮길지도 모르는 자를 변호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는 듯했다.
디겔이 급기야 벌겋게 화가 난 얼굴로 뭐라고 외치려 하는데, 돌연 우투그루가 그를 막고 입을 열었다.
“언제 진행하시게요?”
“준비되는 대로!”
“그건 안 돼요. 눈물의 바다는 위험하니 적어도 눈물의 바다를 거의 벗어날 때 해야 해요.”
우투그루의 침착하고 냉정한 말에 디겔도 조금 진정한 것 같았다. 키이엘로는 아직도 울컥 울분이 치솟았지만, 가까스로 그것을 억눌러 삼키고 디겔의 말을 기다렸다.
디겔은 마뜩잖은 듯 숨을 크게 내쉬었지만, 우투그루의 의견에 불합리한 점은 없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눈물의 바다가 위험한 건 나도 알지. 하지만 처형을 미루기엔 상황이 좋지 않다. 그놈이 여태 멀쩡히 있다가 갑자기 피를 쏟은 것이 병이 아니라면 독일 수도 있어. 따지면 그쪽이 더 일리가 있지. 어느 쪽이든 자기 혼자 죽는 게 아니라면 우리에겐 위험한 상황이다.”
“하지만 로트는…….”
“키이엘로! 그만해라! 어떤 병이든지 독을 썼든지 의사도 밝혀내지 못할 때도 있고, 세상에 병과 독은 수만 가지야! 우리는 항상 최악을 상정해야 한단 말이다!”
키이엘로가 끼어들려 하자 역정을 낸 디겔이 씩씩대었다. 그의 땋은 수염이 거친 숨소리를 따라 부들부들 떨렸다. 우투그루는 디겔의 어깨를 가볍게 막으며 진정시켰고, 키이엘로를 흘겨봤다.
그 시선에 잠자코 입 좀 닥치라는 욕이 그득 들어차 있어 키이엘로는 다시 짜증이 솟구쳤지만, 어쨌든 그가 우투그루보다는 디겔에게 신뢰를 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디겔은 걸걸한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처형 준비는 해둬라. 그에 키이엘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갑자기 우투그루가 끼어들어 입을 열었다.
“그건 키이엘로한테 준비하라고 해요. 전 그 녀석한테……. 심문을 좀 해볼게요.”
그 말에 이번엔 디겔은 의뭉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는 우투그루의 속셈을 가늠하려는 것 같다가 이내 우투그루가 다른 짓을 할 리는 없다고 여겼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키이엘로 역시 미심쩍은 눈으로 우투그루를 보았다.
우투그루는 그런 그의 시선을 불쾌하단 얼굴로 떨쳐내고 걸음을 옮겼다. 디겔이 키이엘로를 재촉하자 결국 그도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우투그루는 그들을 뒤로하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선실 내에서 눕듯이 앉아 쉬고 있던 브레딕이 그를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브레딕은 비교적 빠르게 회복해서 이제 적당히 움직이는 것에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
우투그루는 새삼 세운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의사가 없었다면 브레딕은 아마 자신의 부상을 스스로 치료해야 했을 것이다.
우투그루는 잠시 걸음을 틀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몸은 좀 괜찮아?”
“어디 가?”
“…….”
“……같이 가줘?”
뭐? 우투그루는 황당하단 얼굴로 브레딕을 보았다. 그는 우투그루가 누굴 만나려는 건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우투그루는 자신의 얼굴에 표정이 잘 드러나는 편이었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브레딕은 우투그루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흔들리지 마. 무엇에? 우투그루는 되묻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에게 쉬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트가 갇힌 창고로 간 우투그루는 잠시 머리를 짚었다가 이내 얼굴을 굳히고 빗장을 풀어냈다. 문지기라도 하고 있었는지 나무상자 위에 앉아 있던 선원 하나가 말없이 일어나 우투그루를 잠시간 보았다.
우투그루 역시 그를 보았다. 평범한 선원 중 하나였고, 특별히 수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투그루는 습관처럼 짧게 그를 훑어 살피고 빗장을 문 옆에 세워두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까만 머리카락이 보였다. 우투그루는 창고 안에 시취처럼 남은 약간의 피비린내를 맡고 이맛살을 구겼다가 곧 평온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갔다.
침착을 가장한 얼굴 아래로도 그는 절망의 냄새를 맡았다. 문을 닫자 창고의 귀퉁이에 철장이 밀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우투그루는 기운 없이 누워있는 바다새를 힐끔 보았다가 문에 등을 대고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곧장 파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우투그루는 내심 흠칫 놀랐으나 능숙하게 감추고 헛기침을 했다.
“뭐 하러 왔어.”
“……심문.”
로트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우투그루는 잠시 문밖의 기척을 살폈다가 입을 열었다.
“곧 네가 처형되는 건 알아?”
“눈물의 바다를 벗어나면 처형되겠지.”
“안타깝지만 아냐. 눈물의 바다 경계 부근에 도착하면 시작될 거야.”
우투그루는 로트가 무언가 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는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우투그루의 까만 눈과 시선을 맞추고 응시했다. 우투그루는 그 눈을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
새파란 눈은 불타는 것 같기도 했고 정반대로 얼어붙은 것 같기도 했다. 마치 파란 불꽃이 그대로 얼어붙은 모양새였다. 까만 머리카락이 절망처럼 그 푸른 눈동자 위로 드리워졌다.
우투그루가 아무 말도 잇지 않는 틈에 로트는 짧게 물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네가 처형당하기 싫다면 할 일은 하나지. 네 결백을 증명하거나, 아니면…….”
“내 결백?”
로트는 날카롭게 응수했다. 우투그루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보았다.
“……그래.”
그러나 그의 짤막한 대꾸에도 불구하고 로트의 입은 다시 굳게 닫힐 뿐이었다. 우투그루는 자신이 여길 왜 왔는지 잠시 회의감에 빠졌다. 하지만 그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느리게 기우는 선체처럼 그의 말이 미끄러지듯 로트의 발치에 닿았다.
“네가 결백을 증명한다면 내가 다른 이들을 설득할 수 있어.”
“증명할 방법이 뭐가 있는데?”
로트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묻는 것 같지 않았다. 자조 어린 말투는 오히려 우투그루가 어리석다고 질책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투그루는 울컥하지 않고 로트를 보며 물었다.
“신문의 내용을 반박할 만한 물증이 있어?”
“신문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도 모를뿐더러, 물증 따위 없어.”
“그렇군.”
그의 대답은 싱거웠다. 로트는 전에 없이 지독하게 지친 얼굴이었다. 우투그루는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응시하다가 문가에서 기척이 사라지자 조급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어쩌면 내가 탈출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 말에 로트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짙은 불신에 덮여있었다.
우투그루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불신인지, 혹은 그저 그의 말을 안 믿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금발의 부선장은 침착하게 로트의 푸른 눈을 응시했다.
그는 구석에서 늘어져 있던 바다새도 고개를 들었음을 알아챘다. 우투그루는 저 새가 정말로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깨닫고 묘하게 꺼림칙한 기분이 되었다.
그가 떨떠름한 기분인 와중에, 로트는 당황과 불신이 섞인 눈으로 그를 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바싹 마른 입술은 물에서 건져진 물고기의 비늘처럼 창백했다.
“……네가 날 돕는다고?”
“그래.”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무슨 꿍꿍이야?”
우투그루는 그때까지도 신중하게 로트를 보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이 심연처럼 깊었다. 로트는 옅게 기대감에 찬 숨을 내쉬다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다시 지친 얼굴이 되었다. 난 널 못 믿어.
그러나 우투그루는 로트의 말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넌 이 해적선을 위해서는 뭐든 하잖아. 브레딕도 의심했다는 네가 나에게 믿음을 줄 거란 생각 안 해.”
“……. 맞아.”
우투그루는 순순히 긍정했다. 문답이 끝났다고 생각한 로트는 깊은 바다처럼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때 갑자기 우투그루가 입을 열었다.
“이제 좀 확신이 서는군.”
“뭐?”
“너 이 바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무슨 소리야?”
우투그루는 당황한 로트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기분 탓으로 넘길 수 있었지만 말이야. 뭔가 이상한 점이 많았단 거지.”
“무슨 소리냐니까?”
“이 바다에 있는 내내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아? 그러니까…… 괴물들과 마주친 이후로 더욱.”
로트는 인상만 찡그렸다. 냄새가 난다고? 우투그루는 문 뒤의 기척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네 말대로 난 널 탈출시키기까진 못해. 사실 그럴 생각도 여기 왔을 때 절반보다 더 적었어. 그의 검은 눈이 창고의 흐린 불빛에 일순 호박빛으로 보였다.
“추측이지만, 이 바다의 무언가가 사람 마음을 극단적으로 튀어 나가게 만들어.”
“……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가 너한테 내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의심이 들었지. 내가 너한테 그런 얘길 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했다고. 이상하지 않아? 키이엘로와 싸운 거야 그 새끼는 얼굴만 보면 짜증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왜 너에게 내가 내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고작 네가 내…… 집안 사정 조금 안다는 것을 이유로? 난 그렇게 입 가벼운 놈이 아냐.”
우투그루는 제 턱을 감싸 쥐고 검지로 뺨을 두드리며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최대한 이성적이게 들리게끔 노력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디겔 아저씨가, 물론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갑자기 이렇게까지 화내는 이유도 미심쩍었지. 처음에는 역으로 그를 의심했는데, 그런 기미는 안 보이는 데다 검은바다의 시작 전부터 함께한 그가 내통자일 리는 없어. 게다가 그는 우홉피아주에게 로라 부인을 잃었으니 절대 그럴 수가 없지.”
우투그루는 말을 잇는 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금껏 다른 생각으로 흐르는 머리를 이것에 붙들어둔 것처럼, 수십 번씩 생각하며 정리한 것 같은 내용이었다. 로트는 그제야 코를 찌르듯 역하게 올라오는 시취를 맡았다.
세이렌과 인어가 뿌리던 그 검은 액체의 악취와 닮아있었다. 왜 방금까지만 해도 맡지 못하고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선원들이 너무 빨리 선동되기도 했어. 보통 내통자가 나오면 조금이라도 친하게 지내던 자들이 변호하거든. 물론 너도 헤더나 키이엘로가 변호하긴 했지만, 말하자면. 너무 순식간이었단 거야.”
“네 말은…… 냄새가 감정을 부채질한다고?”
“추측이지만. 어쩌면 다른 요인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여럿을 살펴봤는데, 대부분은 답지 않게 감정적이더군. 키이엘로도 말이야. 그놈은 화를 잘 안 내는데…….”
로트가 우투그루의 마지막 말에 눈썹을 치켜올렸으나 우투그루는 생각을 잇느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도멤 녀석도 그래. 그놈은 물러 터져서 지금쯤 다른 사람 붙들고 시끄럽게 굴어야 하는데 조용하단 말이야.”
“그건…… 역으로 이성적인 상태 아냐?”
“이성적이었다면 평소 하던 대로 다른 놈 붙잡고 칭얼대면서 제 의견을 피력하지, 자기 생각도 확실히 정하지 못해서 갈팡질팡하진 않아.”
우투그루의 말은 꽤 신빙성이 있었다. 로트는 선원 개개인의 성향이나 습관 따위 알지 못했지만, 반면에 우투그루는 그들을 손바닥 내보듯 훤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냉철한 눈으로 로트를 보았다.
“너도 그래.”
“뭐?”
“네가 내통자든 아니든, 아니……. 그래, 솔직히 아까의 문답은 널 떠본 거였어. 네가 배반자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내 가설이 틀렸으면, 너는 내가 탈출을 제안했을 때 당장에 나섰을 거야. 기회가 생겼을 때 달려들었겠지. 혹시 좀 무모하더라도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것에 가까운 편이라면 오판해서 미안하다.”
“잡소리 말고 마저 설명해.”
“그래. 어쨌든……. 넌 처음 들어왔을 때도 내가 예상한 반응이 아니었단 말이지. 속단한다고 생각하면 유감이지만, 너는 아마 누가 여길 들어오든 의연하게 괜찮은 척을 했을 거야.”
그의 정곡을 찌르는 의견에 로트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우투그루가 자신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거부감인지 반가움인지 모를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로트는 모두에게 비슷한 지적을 들어왔다. 항상 괜찮다고만 한다고……. 우투그루는 파도치듯 일렁이는 눈동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보기 좋게 빗나갔지. 평소처럼 괜찮은 시늉을 하거나 내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그런 것을 모두 하지 않았단 뜻이야. 왜겠어? 네가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고 말할 셈이야? 네 이성 판단은 ‘어쨌든 가능한가’의 여부에 따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냐?”
“…….”
“게다가 넌 네 처형 소식을 듣는 순간 내 칼이라도 뺏어서 아무나 인질 삼으려 들었을걸. 이 배에 처음 탈 때 했던 행동을 지금이라고 왜 못하겠어?”
로트는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우투그루를 보았다. 그녀는 매서운 눈매로 우투그루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희미하게 말했다. 너 내 동생이랑 죽 잘 맞겠다…….
그러다가 로트는 인상을 찌푸리고 물었다.
“이걸 막을 수 있어?”
“아니. 사실 지금 내가 이걸 또 너에게 말한 것도 충동으로 한 거야.”
“……. 그럼 역으로……. 오히려 지금이 더 솔직한 편인 것 아냐?”
“그럴 수도 있지만, 마냥 곱게만 보기엔 네가 처한 현실이 똥통이지. 그리고 단순히 솔직한 것과 감정에 충동질을 당하는 건 궤를 달리하는 일이야.”
우투그루는 거기까지 말한 뒤 침착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난 의식적으로 굴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 말에 로트는 자신도 의식적으로 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어디부터가 자신의 진심이고 어디부터가 충동질인지 인지할 수 없었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진심을 감추고 살아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문밖에서 기척이 다시 돌아오자, 우투그루는 목소리를 작게 낮춰 말했다.
“안타깝지만 난 아직도 널 반신반의하고 있어. 하지만 네가 피를 토한 건에 관해서는 굳이 묻지 않을게. 세운의 진단을 믿으니까. 결과적으로는 내가 널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너, 그냥 네 가설이 옳은지 살펴보기 위해 온 거였어?”
“맞아. 매정하다고 생각한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우홉피아주와 관련된 모든 걸 증오해.”
우투그루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낮게 휘둘리는 램프의 불빛을 보다가 로트를 보았다.
“그냥, 알아두라고. 네가 눈물의 바다를 벗어날 때까지 살아있다면 재고의 소지가 나올 수도 있지.”
하지만 결국 잔인한 희망 고문밖에 되지 않았다. 그걸 그도 잘 알고 있는 듯, 우투그루는 문을 열고 나서며 다시 읊조렸다.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