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90)
바다새와 늑대 (89)화(9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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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내 갈빗대를 열어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분명 심장 대신 바다가 있겠지.
그 바다는 한 번도 잔잔하고 평화로운 적이 없는, 벼락이 내리고 모래폭풍처럼 몰아치는 파도가 채찍질하는 쪽빛의 사막이리라.
그래서 나는 이빨처럼 휘어진 파도 위의 분노에서만 살았다.
* * *
작은 섬마을의 새벽 공기는 항상 맑았다. 상쾌하고, 약간의 짠 냄새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
한낮이 되면 마을 안의 어머니들은 직물을 짜며 노래를 불렀다. 어부의 노래임에도 아녀자들은 일할 때 똑같이 불러댔다. 이따금 친한 옆집 아주머니가 와서 동생들에게 꿀에 절인 호두를 주었고, 우리는 어머니 몰래 고개를 숙여 호두를 먹으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말 꼬랑지처럼 흔들리는 머리카락, 색색의 머리카락들을 꾸민 크림색의 바닐라 꽃, 물결 소리처럼 울리는 웃음소리들이 가득한 바른 낮과 밤은 그리 분주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영을 하거나, 모래사장에 의미 없는 글과 그림을 끄적이다가 바닷물이 빨갛게 물들며 타들어 가는 불씨처럼 검게 변할 때쯤, 그 찬란한 노을을 뒤로하고 아버지들이 오신다. 뱃사람의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의 그물은 채우지 못하네
바다가 넓으니 어찌 채우리!
우리의 그물은 채우지 못하네
바다가 깊으니 어찌 채우리!
태양에 그은 피부여 굳은살 박인 이 손이여
바다와 싸우라, 푸른 눈을 찌르라
바다와 싸우라, 검은 물을 헤쳐라
바다의 주인을 찌른 마녀, 땅을 삼키는 바다
마녀를 죽여라, 바다에 피를 담가라
소금 바람의 피부여 바다를 가르는 손이여
기다리는 가족에게 돌아가리라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이는 저 노래가 싫었다. 아이는 푸른 눈과 검은 머리칼을 가졌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푸른 눈을 찌르라, 검은 물을 헤쳐라, 하며 노래를 불러댔다.
그래서 아이는 다 같이 저 노래를 부를 때면 혼자서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은은하게 주변을 밝히는 고래기름 등 아래서 가족들은 웃으며 오늘 하루 무사히 돌아온 것에 안도했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푸는 것은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못할 순간순간들이었고, 내일이면 반복될 일상이었다.
일상. 그 일상에서 아이는 언제나 섬에서만 있고, 재잘대는 여자아이들과 하얀 천에 둘러싸여 있었다. 죽은 조개를 말려 내걸어 둔 조개 풍등처럼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기만 할 뿐이었다.
아득하게 어릴 때는 분명 남자애 여자애 할 것 없이 해변으로 뛰쳐나가 백사장을 뒤엎고 파도에 몸을 내던지며 놀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가만히 앉아서 자질구레한 일을 배워야 했다.
아이는 직물에 자수를 두다가 또래의 남자애들이 밖에서 낄낄거리며 나뭇가지로 칼싸움하는 것을 보았다. 여자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집 밖에서 굳이 칼싸움하며 노는 것은 일종의 과시였다.
조용히 모여 앉은 여자애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남자애들은 소리 높여 서로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들은 좀 더 나이가 차면 검을 배워 기사가 될 것이라며 큰소리를 치고는 했다.
그러나 아이가 보기에, 아직 제대로 된 칼싸움도 구경한 적 없는 그들의 실력은 형편없다 못해 정말 그저 유치한 애들 놀이였을 뿐이었다.
아이가 말했다.
“쟤네는 시끄럽게 왜 저래?”
“남자들은 애라잖아.”
어디서 들은 말을 생각 없이 주워섬기며 열심히 흰 천에 바늘을 찔러 넣는 여자아이를 한 번 흘긴 아이는 바늘을 단도처럼 들고 응시하다가 천을 찔렀다.
“내가 하면 저 녀석들보다 더 잘할 텐데.”
그 말에 옆에 앉아 있던 또래 여자아이가 자수를 두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난 못 할 거 같아. 칼날만 보면 무서워서 피부에 소름이 다 돋는다니까? 남자애들은 어떻게 저런 게 재미있다고 하나 몰라.”
“요리할 때도 칼은 쓰잖아.”
“그거랑 검이랑 같니?”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부엌의 식칼로도 사람이 죽고, 검으로도 야채를 가를 수 있다.
쥐고 있던 천을 내려놓은 아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쨌든 난 움직이는 게 더 좋아.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온몸이 쑤신다.”
“쉿, 선생님이 들어. 움직인대도 뭘 하고 움직이게?”
“몰라, 나가서 뛰놀기만 해도 좋아. 수영도 하고 싶고. 나도 검술 배우고 싶다…….”
한탄하는 아이는 창밖의 바다를 내다보았다. 바다를 닮은 새파란 눈이 보석처럼 빛이 났다. 아이가 바다를 볼 때면 그 눈은 항상 그런 빛으로 반짝이곤 했다.
여자아이는 그런 아이를 별난 애처럼 바라보며 바지런히 바늘을 움직였다.
“그런 생각하는 여자애는 너밖에 없는 걸, 로트렐리.”
로트렐리는 조용히 웃었다.
“아냐, 분명 많을걸.”
로트렐리는 일곱 살 꼬마일 적부터 아이들 사이에서는 인기 많은 골목대장이었다. 당차고 쾌활한 아이는 상대가 소심하든 비뚤어졌든 상관하지 않고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성격도 밝았다.
게다가 이곳저곳 쏘다니기를 좋아해서 아이들과 미지의 길을 개척하고 모험하는 놀이를 즐겨 했다. 그럴 때면 항상 로트렐리가 대장이었다.
로트렐리의 새파란 눈을 동네 아이들은 그 애를 ‘아쿠아마린’이라고 불러댔다. 어디서 주워들은 파란 보석의 이름을 붙여 불러대는 것에 어른들은 귀엽게 바라보며 웃어댔지만, 아이들은 퍽 진지했다.
로트렐리가 자신을 뭐라고 부르든 상관하지 않는 것과 달리 아이들은 그럴듯하고 어울리는 이름을 고르는 것에 신중을 기했다.
섬마을의 자랑스러운 아쿠아마린. 맑고 시원한 아쿠아마린. 그런 로트렐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다로 나가 수영을 하는 것이었다.
바다에 잠긴 로트렐리는 마을 아이 중 누구보다도 오래 잠수할 수 있었고, 수영 실력도 단연코 가장 뛰어났다.
모두가 로트렐리 아피나를 사랑했다.
활달한 로트렐리를 이웃 어른들은 유치하고 낯 뜨거운 아쿠아마린 대신 마을의 보석, 복덩이로 불렀으며, 그녀의 부모는 아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