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94)
바다새와 늑대 (93)화(94/347)
#93화
“이건 불공평해.”
한 여자아이가 속닥였다. 로트렐리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팔에 힘을 주고 있었다. 다른 여자아이들이 괜히 나섰던 아이들을 쏘아보며 말했다.
“너희 때문에 우리까지 벌 받잖아.”
여자아이들은 모두 수업을 듣던 방에서 손을 들고 꿇어앉아 있었다. 로트렐리의 말에 불같이 치솟는 화를 참지 못한 선생이 깔끔하게 올려 묶은 머리가 헝클어질 정도로 치를 떨다가 그 자리에 있던 여자아이들에게 모두 벌을 준 것이었다.
그 언쟁에 끼지 않았던 여자아이가 툴툴 대자, 내내 선생과 맞서던 아이가 말했다.
“그게 왜 우리 탓이니? 벌을 준 건 선생님인데. 우리의 주장은 옳았어. 선생님은 우리 말을 잘못 이해한 게 분명해. 우리가 원한 건 어떤 것이든 배울 수 있는 자유였지, 단순히 빈둥대고 싶은 핑계가 아니었단 말이야.”
“어쨌거나 우리까지 벌 받고 있잖아!”
“너희는 화도 안 나니?”
그 말에 내내 툴툴대던 아이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엘레나! 그만 좀 해! 그러는 네 큰 언니도 귀족 가문에 시집갔잖아! 난 내가 배우는 거에 별 불만 없어. 무엇보다 난 바느질도 잘하고, 나름 예쁨 받고 있어서 좋은 남편감을 만날 수 있을 거라구.”
“그게 이상하지 않아?”
로트렐리가 입을 열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로트렐리는 묘하게 자신에게 거리감과 어색함을 느끼는 여자아이들을 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남편감을 잘 만나는 일만이 네 삶의 중요한 일은 아닐 거 아냐. 다른 일에 대한 선택지를 주지 않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
“로트렐리. 순진한 소리 마.”
여자애가 혀를 찼다. 로트렐리는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가슴이 뜨끔 찔리는 기분을 느꼈다. 아이는 로트렐리를 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세상 모두가 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줄 아니? 돈 없는 사람들이나 능력 없는 사람들까지 우리가 포용할 수는 없어.”
그러자 엘레나가 비아냥거렸다.
“궤변이야. 아무런 대가 없이 물건을 가져가는 일은 없어야 옳지만, 능력이 없단 이유로 자유와 선택에서 내쳐질 필요는 없어. 권력을 가진 자들이 더 능력 있기 쉬운 걸 몰라? 네가 그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단지 그것만 주어진 것을 구별할 수 있어? 한정적인 환경 때문이라곤 생각하지 않아?”
어느새 여자아이들은 벌서던 손을 내리고 각자 소곤대며 떠들고 있었다. 누구는 상관없다는 여자아이 편을 들었고, 누구는 엘레나 편을 들었고 누구는 로트렐리를 걱정했다.
엘레나가 말했다. ‘로트렐리는 심지어 능력도 있어! 적성에 맞는 일을 하겠다는데 왜 그래?’ 로트렐리는 자신을 두둔하는 엘레나가 고마웠지만 동시에 미약하게 회의감이 들었다.
자신이 정말로 뱃일이나 검술에 소질이 있을까? 나는 그냥 그게 즐거울 뿐인 건데……. 즐겁단 이유만으로는 안 되는 건가?
물론 굳이 입 밖에 그 말을 꺼내 엘레나의 논리를 불리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로트렐리는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엘레나의 말에 툴툴대던 아이가 버럭 외쳤다.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니까!”
그때 그들 사이로 얇은 목소리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난 상관없지 않아!”
그 소리에 의기소침해져 있던 로트렐리도 고개를 들고 소녀를 보았다. 희게 질린 소녀는 거의 울상이 되더니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듯 웅얼거렸다. 난 괜찮지 않단 말이야…….
그에 내내 마음씨 좋게 로트렐리나 여자아이나 엘레나를 걱정하던 아이들이 그 애의 등이며 어깨를 쓸어주며 달랬다.
“난 곧 시집을 가게 될 거야. 나는 가기 싫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듣지 않았어. 어머니도 이게 내게 좋은 일이라고만 해. 당신도 겪었던 일이라고……. 처음엔 싫을지 몰라도 나중엔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여자아이는 크게 훌쩍이며 인상을 찡그렸다.
“어떻게 그게 아무렇지 않아지겠어? 난…… 난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단 말야.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은 아저씨에게 시집가긴 싫어!”
“세상에.”
그 말에 엘레나와 다투던 여자아이도 아연한 얼굴로 그 애를 달래느라 바빴다. 여자아이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그 애를 연꽃잎처럼 감싸고 웅성거렸다. 아버지께 더 강하게 건의해봤어? 어머니를 더 설득해봐. 네 오빠는 뭐 한다니? 이건 옳지 않아……. 대체 누구한테 시집을 가게 된 거야?
훌쩍이는 여자아이는 그 대답에 하나하나 느리게 답하면서도 비통한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그걸 별생각 없이 여기는 것 같아……. 설사 어머니가 생각을 바꾼다 해도 어머니의 말이 아버지에게 무슨 힘이 있겠어? 네가 네 삶에 만족하고 아무것도 안 할 동안 나는 원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그 애가 흐느끼며 말하자 엘레나와 다투던 아이는 황망한 얼굴로 손을 움츠리며 말했다. 난, 내 말은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그러나 감정이 북받친 아이는 더 서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난 아직은 결혼하기 싫단 말이야…….”
그 울음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여자아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에 젖었다. 언젠가 자신도 겪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그 아이를 토닥이며 조용히 있던 여자아이들 사이로, 로트렐리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자.”
“뭐?”
“방법이 있을까?”
다른 아이들이 모두 솔깃한 듯 로트렐리를 바라보았다. 로트렐리는 입에 주먹을 대고 고민하다가 웅얼거렸다.
“네가 그 결혼이 죽어도 하기 싫다는 걸, 의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면 네 아버지도 별수 없겠지. 문제는 너 혼자서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우리 모두가 나서서 도와줘야 해. 그게 옳지 않다는 걸 피력하기 위해선 여럿이 지지해줄 필요가 있잖아.”
“어떤 식으로?”
“……그건…….”
로트렐리는 끙 소리를 내며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그러자 옆에서 엘레나가 거들었다.
“우리가 다 같이 따지는 건 어때?”
“그건 너무…….”
다른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로트렐리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우리 신호를 정하자. 그 말에 다들 동그랗게 뜬 눈으로 로트렐리를 돌아보았다.
“신호?”
“그래. 내가 신호하면 다들 행동으로 보이는 거야. 이왕이면 많은 사람이 알 수 있게……. 행동은 음, 수업 불참을 한다든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크게 써둔 천을 펼친다든가.”
“우와.”
엘레나가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다는 듯 입을 슬쩍 벌렸다. 로트렐리는 머리를 굴렸다. 랄티아가 전에 뭐라고 잘만 떠들었는데. 로트렐리는 ‘연설과 농성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는 시도는 유구하다’라고 말하는 동생을 떠올렸다.
그때 엘레나와 다퉜던 아이가 손뼉을 쳤다.
“곧 연주회잖아! 그때 이 집으로 마을 사람들이 다들 모일 거야!”
그 말대로, 수업을 듣는 여자아이들의 성취를 보여주기 위해 달에 한 번꼴로 선생은 연주회를 열곤 했다. 항상 하는 비슷비슷한 연주와 노래, 춤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자주 오는 편이었다. 특히 남자들이 자주 왔다.
그것을 떠올린 엘레나 역시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러네! 그때까지 이 애의 결혼을 물러 달라고 천에 커다랗게 수를 놓는 거야.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거지! 아, 물론 렐, 넌 안 되겠다. 네가 수를 놓으면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볼걸.”
로트렐리는 엘레나를 보며 입을 비죽였다.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 그 말에 까르르 웃은 아이들은 다시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훌쩍이며 울던 아이도 고개를 들고 희망 어린 눈으로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며칠 뒤지? 일주일? 닷새? 아이들은 다 같이 계획을 짜고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엘레나와 다퉜던 아이가 불현듯 두렵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이거 했다고 혼나면 어쩌지?”
“우리가 우리 의견 좀 말하겠다는데 얼마나 크게 혼내겠어? 혼나면, 뭐. 그것 좀 혼나고 말지.”
엘레나의 말에 그 애는 콧잔등을 찌푸렸다. 우리 이거 하는 거 다시 생각하면 안 돼? 그러나 그렇게 말한 그 애는 곧장 훌쩍이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보고 ‘아냐, 미안.’하고 얼버무렸다.
소녀들은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신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도 정했다. 로트렐리는 이번 연주회에서 춤을 추게 될 차례였다.
선생이 아이들이 준비한 것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면 마지막으로 춤을 추는 로트렐리는 춤을 추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신호가 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무언가 개척하는 감각에 고취되어 주먹을 움켜쥐며 서로 굳건하게 외쳤다.
“우리의 자유를 위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