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
1화. 꿈속에서
하늘에는 가는 눈발이 흩날리고 누런 강물은 끝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물속에서 가라앉았다 떴다 하며 있는 힘껏 발버둥 치고 있었다. 뭐라도 잡고 올라가 다시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잡히는 것은 차가운 강물밖에 없었다. 강물이 그녀의 코와 입으로 들어가 폐에 가득 차고 있었다. 마치 만 개쯤 되는 쇠바늘이 폐를 찌르는 것처럼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고 아프다 못해 감각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임근용(林谨容)은 이러한 부침(浮沈) 속에서 처량하게 웃었다.
어쩌면 이건 운명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원래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고, 그건 여지(荔枝)도 마찬가지였다.
그 배은망덕한 인간들이 그녀들을 버리지 않았더라면, 또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비적들로부터 모욕을 당하지 않으려 강에 뛰어들었다.
임근용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가 뭐래도 그들에게 진심을 다해 잘해주었던 그녀가 왜 마지막 순간에 버려지고 만 것일까?
물보라가 쳐오자 그녀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녀는 더 이상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힘이 없었다. 아마 이렇게 끝이 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정신이 흐릿해져 가는 와중에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부를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그저 환청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조차도 그녀를 버리고 상관하지 않는데, 또 누가 그녀의 생사를 신경 쓸까…….
임근용은 화들짝 놀라 악몽에서 깼다. 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옷과 이불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차갑게 식은 비단이불을 움켜쥐고 입을 크게 벌리며 필사적으로 숨을 헐떡였다. 마치 방금 제대로 쉬지 못했던 숨을 전부 쉬려는 것 같았다.
연거푸 열 몇 번쯤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아직도 자기 집의 꽃무늬 조각이 새겨진 작은 침대에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방금 꿈을 꾼 것이고 아직 살아 있었다.
그녀는 긴장으로 뻣뻣해진 손을 풀며 녹초가 된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다급하게 뛰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세어 보았다.
심장이 멈추지 않고 계속 뛰었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제대로 살아있음을 느꼈다. 하늘이 그녀를 가엾게 여겨 그녀를 다시 어렸을 때로 되돌려 보내 준 것이다. 모든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녀에겐 여전히 기회가 있었다.
“아가씨, 또 악몽을 꾸셨어요?”
계(桂) 마마는 조심스럽게 손에 들고 있던 청자등을 탁자 위에 놓았다. 그녀는 반쯤 낡은 푸른 장막을 은 갈고리에 건 뒤 머리를 들이밀고 장막 안의 임근용을 살펴보았다.
임근용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고 얼굴에는 놀라고 망연자실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이 붙어 있었고 원래도 하얗던 달걀형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계 마마는 그녀의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악몽을 꾸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마는 손으로 더듬더듬 만져본 뒤 익숙한 듯 그녀의 젖은 옷을 벗기며 밖에서 멍하게 있던 여지를 불러들였다.
“여지야, 난로에 데운 뜨거운 물을 좀 가져오너라. 땀에 흠뻑 젖어서 몸을 좀 닦아드려야겠구나.”
여지는 겉옷을 걸치고 나가더니 이내 뜨거운 물을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황동 대야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우고 향기가 나는 수건을 꺼내 담갔다. 그리고 계 마마를 도와 임근용의 몸을 닦고 옷을 갈아 입혔다.
임근용은 순순히 일어나 앉아 그녀들이 자신의 옷을 벗기고 몸을 닦아주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뜨거운 수건으로 몸을 문지르자 편안한 느낌이 들면서 조금 상쾌해졌다. 그녀는 떨림이 점점 잦아들었고 심장 박동도 평온해졌다.
계 마마는 임근용의 식은땀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물었다.
“아가씨, 방금 무슨 꿈을 꾸셨어요? 이렇게까지 놀라다니 딱하기도 해라.”
임근용은 한참 동안 연홍색 입술을 다물고 있다가 이윽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밤에 꿈 이야기를 하면 안 되잖아.”
여지와 계 마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여지는 고개를 숙이고 임근용의 속옷 끈을 매준 뒤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아가씨, 마마한테 옛날이야기 해달라고 하세요.”
사실 이건 임근용이 다시 악몽을 꿀까 걱정이 되어 그녀가 계 마마와 함께 자게 하려는 것이었다.
다만 임근용이 원래 체면을 중시하는 편이고 임씨 가문의 규율 또한 엄격해서 네 살 때부터 유모가 그녀와 함께 자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완곡하게 돌려서 표현한 것뿐이었다.
임근용이 아주 복잡한 눈빛으로 여지를 바라보았다.
여지는 그녀보다 두 살 많았는데 입이 무겁고 진중했으며 희고 말쑥한 살결에 곧은 코가 아주 예뻤다.
임근용의 기억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여지는 줄곧 그녀의 곁에 있었고 그녀의 놀이 친구이자 시녀였다.
후에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떠났을 때도 여지만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옆에서 모셨다. 여지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강에 뛰어들어 죽을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여지는 임근용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조금 난처해했다. 그녀는 웃으며 자신의 볼을 만지작거리더니 임근용의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넷째 아가씨 뭘 보고 계시는 거예요? 설마 아직도 잠이 덜 깨서 노비를 못 알아보시는 건 아니지요?”
임씨 가문의 아가씨와 공자들은 집안에서 순서가 있었기 때문에 임근용은 삼남가의 차녀였지만 순서에 따라 넷째 아가씨라고 불렸다.
그녀가 어찌 못 알아보겠는가? 그녀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여지야, 내가 너한테 정말 잘할게. 이번 생에는 절대 그런 고생 안 시킬 거야.’
임근용은 시선을 거두고 엷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잠자코 모로 누워 베개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한 뒤 가볍게 말했다.
“내일 할머니 생신이라 모두들 바쁠 거야. 소홀하게 하면 안 되니 너희들도 어서 가서 자. 등불 하나만 남겨놓고 가면 돼.”
계 마마는 다시 한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여지와 눈을 마주치고는 슬쩍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는 보름 전에 그 병을 앓고 난 후, 밤이면 늘 악몽을 꾸며 큰 소리로 울거나 소리를 질렀고 불을 켜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그녀가 점점 나아지는 줄 알고 삼부인의 뜻에 따라 불을 꺼두었는데, 그녀가 바로 또 악몽을 꿀 줄 어찌 알았으랴.
임근용이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나 어린애 아니야. 다 생각이 있어.”
그녀는 비록 겨우 열두 살이었지만, 확실히 어린아이는 아니었다.
계 마마는 하는 수 없이 등불을 남겨두고 장막을 내린 뒤 여지와 함께 조용히 물러났다.
문을 닫은 뒤 계 마마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어. 아가씨 눈 밑이 점점 더 까매지고 정신도 더 흐려지는 것 같아. 내 생각엔 그날 너무 놀라서 그런 것 같은데 아무래도 삼부인께 말씀드려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구나.”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낮은 소리로 몇 마디 악담을 퍼부었다.
“이(二)부인도 정말 그러시면 안 되지! 백주 대낮에 그런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고 제대로 숨기지도 못해서 괜히 우리 넷째 아가씨나 놀라게 만들고 말이야.”
임근용의 눈꺼풀이 살짝살짝 움직였다.
계 마마가 말하고 있는 것은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차남가(二房)의 사공자(四少爷)였다. 그녀의 넷째 사촌 오라버니는 이부인 곁에서 시중드는 시녀를 건드려 배가 불러오게 만들었고 이부인은 약을 먹여 아이를 없애 버렸다. 하지만 깨끗하게 처리하지 못해 하필이면 임근용이 그것을 보고 말았고 그로 인해 그녀가 몹시 놀라게 되었던 것이다.
전생에서 그녀는 거의 한 달 동안 정신이 혼미해 가문에서 의원을 부르고 굿을 한 뒤에야 괜찮아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일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런 사건은 그녀가 나중에 만날 그 사건들과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비적들의 난을 직접 목도한 그녀는 생명이라는 것이 한 줌의 지푸라기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여지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부인께서도 힘드시겠지요, 어르신께서 전혀 관심이 없으시잖아요.”
임근용의 친부인 임 삼노야(三老爷)는 신선놀음이나 하는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넷째 아가씨가 놀라서 이런 꼴이 되었는데도 그는 억지로 두어 번 들여다보더니 그마저도 그만둬버렸다.
삼부인(三太太)인 도(陶)씨는 성격이 강직해서 목에 칼이 들어온 대도 고개를 숙이거나 복종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두 부부는 원수 같은 사이라 함께 있으면 대화가 채 열 마디도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일 때문에 두 사람은 또 심하게 한바탕 싸웠고 보름이 지났는데도 아직 말을 섞지 않고 있었다.
계 마마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잠시 침묵하다 다시 흥분하며 여지에게 말했다.
“들었니? 육 부인도 내일 돌아오실 거라던데.”
그녀가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그 입양한 공자는 잘 키우셨나 모르겠네. 그 아이가 양자로 들어갈 때 나이도 제법 많았잖니.”
“아무리 나이가 좀 있었다고 해도 아이일 뿐이잖아요. 벌써 떠난 지 육칠 년은 되지 않았나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정이 있게 마련이니 고모님께서 잘해주시기만 했으면 지금쯤은 아마 익숙해졌겠지요.”
여지가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대답했다.
임근용이 아주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아니, 육함(陆缄)은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거야. 그 사람 마음속에는 자기 자신과 친부모만 있고, 다른 사람은 없거든.”
임근용은 육함을 떠올리면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그 이름을 비롯해 그 이름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낡고 투명한 장막을 통해 책상 위에 놓인 청자등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려 했다. 그녀가 더 어렸을 때 집에서 쓰던 것은 구리등이나 촛불이었다. 할아버지께서 관직을 그만두고 난 이후로 아버지 세대에 뛰어난 사람이 없어 명성은 있었지만 관직에 나가지 못했고 돈을 벌지도 못했다.
전부 먹고 마시고 놀 줄만 아는 사람들뿐이라 집안에는 지출만 있고 수입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 세대에는 형제자매가 아주 많았다. 세인들의 결혼이란 재물을 논하는 것이라 몇 번의 경사를 치르고 나자 집안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방을 제외하고는 위아래를 불문하고 구리등보다 기름을 절반이나 절약할 수 있는 청자등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세대가 내려갈수록 전보다 못했다.
그래서 그때, 그녀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을 때, 가문의 자매들은 부러워서 눈을 번뜩였고 그녀 역시 좋은 인연이라고 착각했었다……. 아름다운 인연이라, 쳇…… 이게 왜 또 생각이 났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조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내일 육함도 올 것이다. 그럼 두 사람이 성장한 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내일 일을 생각하자 임근용의 마음속에 갑자기 악의가 치솟았다. 그 바람에 그녀는 이빨로 입술을 깨물었고 통증이 느껴졌다.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은 많았지만 그녀는 역시 아직 어린아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불이 점점 눈에서 어슴푸레 멀어졌고 그녀는 잠에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게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