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1
11화. 혈육 (1)
일행은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임 노부인의 거처인 화락당(和乐堂)에 도착했다. 점잖게 차려입은 시녀들이 각양각색의 물건을 들고 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희색이 만면했고 화락당 안도 즐거운 웃음소리로 매우 떠들썩했다.
오씨가 도씨를 보며 걱정했다.
“우리가 늦은 건 아니겠지요?”
노부인의 생일잔치라 손님이 아주 많았다. 오씨는 도씨가 곁에서 시중들며 며느리 노릇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늦게 왔으니 다른 이유가 있다 해도 남들이 흠을 잡을까 걱정이 되었다.
도씨는 오래전부터 홀대받는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에요, 이 정도면 이른 편이에요. 더 늦게 오는 사람도 있어요. 게다가 올케는 멀리서 온 귀한 손님이잖아요. 제가 시어머니한테 먼저 인사하고 옷도 좀 갈아입은 뒤에 간다고 미리 말씀드려 놨어요. 맨 마지막에 가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할 거예요!”
임근용이 낮은 목소리로 오씨에게 설명했다.
“아마 작은 어머니께서 더 늦으실 거예요.”
보통 황가에서는 장남을 좋아하고 백성들은 막내를 좋아했다. 하지만 임씨 가문에서 가장 총애를 받는 사람은 막내인 임 삼노야가 아니라 말을 예쁘게 하는 임 이노야(二老爷)였다.
게다가 임 이부인 라씨는 노부인의 생질녀로 늘 자기보다 낮은 사람은 짓밟고 높은 사람은 치켜세우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첨하는 사람이었다. 도씨처럼 이렇게 완고하게 고집을 부려대지 않으니, 총애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꼴찌는 따로 있으니 도씨가 욕을 먹을 염려는 없었다. 안 그랬으면 친정 식구인 오씨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임 노부인의 시녀인 청리(青梨)가 멀리서부터 웃으며 다가와 그녀들을 맞이하고 인사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노부인께서 부인 생각을 하고 계셨는데, 공교롭게도 딱 맞게 도착하셨네요.”
오씨가 웃으며 대답하려는데 방안에서 갑자기 지붕을 뒤흔들 만큼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씨가 청리에게 물었다.
“다들 도착했느냐? 뭐가 이리 즐거운 게냐? 어머님께서 이리 기뻐하시는 게 참 오랜만인 것 같구나.”
청리가 웃으며 말했다.
“대부인께서는 밖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계시고, 이부인께서는 일이 좀 지체되어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아가씨께서 남쪽 지방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노부인께 들려 드리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친척 그리고 친한 부인들과 아가씨들께서 다 같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방에 가까워질수록 말소리도 점점 또렷해졌다. 한 여자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다들 아마 본 적 없을 거예요. 남쪽 지방의 수상 곡예는 정말 최고예요. 사람들이 물속에서 큰 채색 깃발을 들고 나와 백 번을 움직이는데도 깃발의 꼬리가 조금도 젖지 않는다니까요. 백여 명이 일제히 춤을 추는 걸 보면 정말 장관이 따로 없어요…….”
임근용은 이 목소리를 듣고 눈꺼풀이 절로 꿈틀거렸다. 이건 바로 임씨 가문의 딸이자 육씨 가문 장남가의 맏며느리, 육함의 양모, 그리고 전생의 친고모이면서 시어머니인 임옥진의 목소리였다.
‘역시 일관되게 안하무인이네, 육건신을 따라 남방에서 몇 년 동안 지주(*知州: 주의 수장) 부인 노릇을 했던 것 아니었어? 평주 여자들이 하나같이 세상 물정도 모르는 촌년으로 보이는가 보지?’
임씨 가문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긴 했지만 가족들과 친척, 친구 중에 육건신보다 관직이 높은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임옥진이 하는 짓은 스스로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임근용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한 소녀가 애교 섞인 오(*吴: 장쑤성 남부와 저장성 북부 일대)지역 사투리로 말을 끊었다.
“어머니……. 그 말은 하지 마세요. 여기 계신 소저들과 부인들도 지겹게 들으셨을 거예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너도나도 아첨했다.
“아니야, 아니야, 오랜만에 외출해서 그런지 듣기만 해도 아주 재밌어.”
임 노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 계집애야, 어미 말을 자르지 말거라. 그럼 네 어미가 민망하잖니. 여기 있는 손님들이 다 비웃는대도 상관없어. 이 할미가 7, 8년 동안 딸을 못 봐서 그런지 딸이 무슨 말을 해도 다 재밌구나.”
노부인은 딸을 아끼는 마음에 손님들이 비웃을까 걱정되어 일부러 끼어들어 원만하게 수습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맞는 말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모녀가 7, 8년 동안 만나지 못하다 서로 만났으니 할 말이 끝도 없는 게 당연하겠지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 일을 입에 올렸다.
소녀가 간드러지게 웃었다.
“외할머니, 어머니만 이렇게 아끼지 마시고 외손녀도 좀 아껴주세요. 우리도 7, 8년 동안 못 만났잖아요.”
주렴 밑까지 걸어온 임근용은 이 목소리를 듣고 절로 미소를 지었다. 이 소녀가 바로 임옥진의 유일한 친딸이자 육씨 가문의 셋째 아가씨인 육운(陆云)이었다.
이 아가씨는 비록 연약하긴 했지만 온화하고 영리한 편이었다. 전생에 임근용에게 아주 잘 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쁘게 대하지도 않았다. 때로는 그녀를 곤란한 상황에서 구해주기도 했기 때문에 임근용은 그녀를 싫어하지 않았다.
어린 시녀가 주렴을 걷자 도씨와 오씨가 안으로 들어갔고 임근용도 그 뒤를 따랐다. 방금 전에 육함을 갑자기 만나 불안과 긴장, 분노를 느꼈을 때와 달리 지금의 그녀는 담담하게 웃음 지으며 안정적으로 걷고 있었다. 그녀는 침착한 눈빛으로 이 임씨 가문에서 가장 화려한 집과 방에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정 중앙에 사각 평상이 놓여 있었고 전면에는 작은 발판이 있는 자단(紫檀)목 침상이 있었으며 뒤에는 산수화가 그려진 자단목 병풍이 놓여 있었다. 왼쪽의 장식 탁자 위에는 동으로 만든 오래된 제기가 놓여 있었고, 국화 중에서도 가장 희귀하다는 짙은 황금빛의 제당국(棣棠菊) 몇 송이도 놓여 있었다.
6면을 여의(*如意: 장식물의 일종) 무늬로 장식한 둥근 돌의자가 사방에 놓여 있었고, 차나 과자를 놓는 작은 탁자도 몇 개 놓여 있었다.
그리고 여자 가족들이 각자 돌의자 위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과일을 먹고 있었다. 임씨 가문의 노부인은 침상 위에 앉아 자단목 탁자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다. 그녀는 진홍색에 금박으로 부귀와 장수를 기원하는 무늬를 입힌 저고리를 입고 있었는데 당당하고 혈기왕성해 보였다.
짙은 노란색 비단으로 만든 좁은 소매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임근용과 똑같이 양쪽으로 머리를 뿔처럼 틀어 올린 육 삼 소저가 자단목 침상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임 노부인의 다리를 토닥이며 고개를 들고 천진난만하게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한편, 임씨 가문에서 가장 형편이 좋고 총애를 받는 임옥진은 세밀하게 다듬어진 옥관을 쓰고 임 노부인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희고 매끈한 손끝으로 월주(越州) 도자기 찻잔을 들어 가볍게 마셨다. 손목에는 품질이 좋은 비취팔찌를 차고 있었는데 가슴 앞부분 깃에 장식된 여러 가지 꽃무늬가 팔찌에 반사되어 아주 휘황찬란했다.
임근용이 눈길을 거두자 임옥진이 이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느릿느릿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켜 도씨에게 인사했다.
“셋째 올케.”
임옥진과 도씨는 예전부터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았다. 도씨는 임옥진의 교만하고 오만한 태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네가 잘 사는 건 너한테나 좋은 일이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내가 너한테 뭘 부탁하지도 않는데 어디 내 앞에서 오만하게 굴어?
서로 오랫동안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아가씨가 먼 길 오느라 고생했겠네요.”
도씨는 바로 임 노부인에게 인사를 하고 오씨를 임 노부인과 집안의 다른 가족들에게 안내했다.
임 노부인에게 덕담을 한 후, 임근용은 전생에서보다 훨씬 젊지만 여전히 익숙하고도 밉살스러운 임옥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음의 동요를 억누르며 웃는 얼굴로 임신지를 데리고 가 인사했다.
“조카가 고모님께 인사올립니다.”
임옥진은 오히려 도씨보다 그녀에게 더 다정하게 대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손을 뻗어 두 남매를 붙잡고 훑어보더니 상냥하게 말했다.
“근용이랑 신지 맞지? 고모가 계속 멀리 있어서 그런지 우리 가족들 얼굴이 다 낯설구나.”
임근용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회를 봐서 임신지를 데리고 구석으로 도망가려 했다.
그녀는 임옥진이 그녀에게 왜 이렇게 다정하게 구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임옥진이 이번에 남편과 첩들을 내버려둔 채 자식들만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육함이 고향에 돌아와 과거에 응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육함이 어른에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임옥진은 친정의 조카딸 중에서 며느리를 뽑아 육함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기의 친자식이 아니고 아이의 친부모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세 번째는 친딸 육운 역시 멀리 시집보내고 싶지 않아 고향에서 좋은 혼처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임옥진은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육씨 가문 장남가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임옥진은 세대마다 혼인을 하기로 한 약속에 따라 육씨 가문의 장남 육건신에게 시집을 갔다.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라 결혼한 후에 애정이 넘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부간에도 깍듯하게 서로 존중했다.
육씨와 임씨 두 가문은 대대로 혼약이 있었고 임씨 가문이 그때까지는 아직 권세와 재력이 있었기 때문에 임옥진은 혼수를 넉넉하게 챙겨갈 수 있었다. 임옥진의 시부모도 그녀를 매우 정중하게 대해서 임옥진의 생활은 아주 편안했다.
달이 차면 기울고 물도 차면 넘친다고 그녀는 자식과 인연이 박했다. 연년생으로 아들과 딸을 하나씩 낳았지만 모두 몸이 허약해 채 돌도 채우지 못하고 요절해 버렸다. 그녀는 어렵게 아들을 하나 더 낳았고 온 집안이 정말 조심스럽게 아이를 보호했다. 아이가 건강한 몸으로 무사히 돌을 넘기자 온 집안에 경사가 날 정도였다.
어느 날 자식을 아끼던 육 대노야가 아이를 데리고 바깥뜰에 놀러 나갔다가 아이가 졸려하는 바람에 아이를 서재에서 재우게 됐다. 그런데 하필 그때 어린 하인 녀석 하나가 이유도 없이 마당에서 맹렬하게 징을 쳐댔다.
아이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 쉬지 않고 울어댔다. 그는 심지어 젖과 음식도 먹지 않았다. 육, 임 두 가문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아이는 결국 그렇게 요절해 버렸다.
임옥진은 충격을 받아 거의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산 채로 맞아 죽은 하인 녀석의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이가 죽게 된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누군가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자신의 친아들을 해쳤다고 생각하며 하루 종일 울부짖었다.
그러는 동안 육씨 가문의 차남가와 삼남가 그리고 그 집 아이들은 감히 그녀의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