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우연한 만남
그녀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데 도봉상이 그녀를 끌어당기며 가게 앞에 진열된 유리비녀를 보여 주더니 말했다.
“이거 봐, 다른 곳보다 훨씬 싸. 좀 사다가 선물로 줘도 좋을 것 같은데?”
이렇게 외출을 나오면 돌아갈 때 반드시 선물을 사 가지고 가야 했다. 임근용이 고개를 숙이고 비녀를 고르자 도봉상은 채색 유리잔을 마음에 들어 하며 가게 주인에게 가져와 보라고 소리쳤다.
오상은 한가로이 돌아다니다 임근용 옆에 서서 말했다.
“넷째야, 내 것도 몇 개 골라 주라. 가져가서 우리 어머니와 숙모, 큰형수랑 사촌 여동생들한테 선물로 주게.”
임근용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취향에 따라 시원스럽게 몇 가지를 골랐다.
“오상 오라버니, 이거 어때요?”
오상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사람을 불러 포장해 달라 했다.
“난 네 안목을 믿어. 네가 안 예쁘게 하고 나온 걸 본 적이 없거든.”
임근용은 대답 없이 웃으며 계속 비녀를 골랐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담담하게 비녀만 고르자 오상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복잡해져 머뭇거렸다. 자신이 아는 여자아이들 중 양미를 제외하고 그와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바로 임근용이었다. 특히 고훈을 불 때면 지음(知音)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고 다도 기술에서도 그녀와 토론하며 가르침을 청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오상은 임근용에게 자신은 임 삼노야를 겨냥한 것이지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는 그건 별개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입가에서만 맴돌 뿐 도무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상자에서 짙은 남색의 유리비녀를 골라서 임근용에게 건네주며 웃었다.
“이 남색 비녀는 고모님한테 어울릴 것 같아.”
그는 초록 비취색 비녀를 하나 더 골라 건네주며 말했다.
“이건 오늘 네가 입고 있는 옷하고 잘 어울리네.”
임근용은 오늘 옥색 비단 상의에 비취색 긴치마를 입고 있어서 색깔이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이런 물건을 쓸 수 없었다. 임근용은 오상의 체면도 세워 주지 않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나한테 안 어울려요. 너무 노티가 나잖아요. 우리 할머니한테나 드리는 게 좋겠어요.”
공 마마는 옆에서 지켜보다 잠시 미소를 짓더니 계속해서 송 마마와 수다를 떨었다.
역시 미움을 심하게 샀구나! 오상은 절로 멋쩍어하며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가 비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 오씨 가문 둘째 공자께서 언제부터 비녀를 파는 걸로 직업을 바꾸셨어?”
임근용은 이 목소리를 듣고 온몸이 굳는 것 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보니 역시나 육함이 장수를 데리고 가게 입구에 서서 담담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약간 비웃는 듯한 눈길로 그녀와 오상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이 사람은 태명부에 있다가 임옥진이 사람을 보내 집으로 데려간 게 아니었나? 어째서 여기에 와 있는 거지? 떼어내려 해도 정말 끈질기게 떨어지지도 않네. 임근용은 냉담하게 고개를 돌리고 다시는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공 마마와 여지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사촌 공자께서 왜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
오상도 놀란 나머지 입을 크게 벌리고 손으로 육함을 가리키며 말을 잃었다.
“너, 네가 왜 여기 있어?”
“너도 오는데 난 오면 안 돼?”
육함은 담담하게 웃는 얼굴로 공 마마와 여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하며 인사했다. 그는 장포 자락을 휘날리며 임근용을 향해 걸어가더니 그녀 앞에 있는 유리비녀를 가볍게 만져보고 경멸하듯 손을 거뒀다.
“난 또 뭔가 했네. 이것도 나쁘진 않지만 저 앞에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있어.”
임근용은 그를 보자마자 화가 났다. 그녀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어쩜 이리 뻔뻔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는 기를 쓰고 다가오려 했다. 그녀는 냉담한 표정으로 푸른 비녀와 다른 몇 가지를 들고 낭랑하게 말했다.
“주인장, 이것 좀 싸 주게. 이거 다.”
육함은 임근용이 얼굴 가리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음에도 본능적으로 그녀가 자신을 냉담하게 배척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그녀에게 다시는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오상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밖에서 염묵이가 보이길래 들어와 봤더니 역시나 네가 여기서 비녀를 팔고 있더군.”
그는 장포 소매를 휘둘러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임근용 앞에 있는 유리비녀를 건드려 떨어뜨렸다.
“어머!”
임근용은 육함이 이렇게까지 파렴치하게 굴 줄은 몰라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그녀는 깜짝 놀라 급하게 손을 뻗어 잡으려 했고 공 마마도 얼른 달려와 도우려 했지만 둘 다 역부족이었다. 유리비녀 한 상자가 바닥에 떨어져 가루가 되려는 찰나 육함이 얼른 몸을 굽히고 손을 뻗어 장포 자락을 끌어당기더니 단번에 그 유리비녀가 담긴 상자를 낚아챘다.
이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 임근용은 아직도 얼떨떨했다. 육함은 벌써 유리비녀가 담긴 상자를 진열대 위에 안전하게 올려놓고 비녀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깨진 비녀 두 개를 골라 한쪽으로 빼놓고 가게 주인에게 사과한 뒤 큰 오라버니로서의 위엄을 부리듯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여전히 덜렁대는구나.”
방금 그가 했던 장난질은 너무나도 은밀해서 임근용에게만 보였다. 오상이나 다른 사람들도 가까이 있었지만 아무도 이를 보지 못했고 그들은 임근용이 부주의하게 상자를 건드려 떨어뜨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육함의 말에 찬성하는 동시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상이 말했다.
“놀라긴 했어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네. 넷째야, 사촌 오라버니한테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는걸.”
“…….”
임근용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나랑 언제부터 친했다고? 여전히 덜렁댄다니, 무슨 여전히야? 내가 왜 저 사람한테 고마워해야 하는데?
“아유, 깜짝이야!”
도봉상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가오더니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잖아!”
그러더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육함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세요? 손이 아주 빠르시네요. 고마워요!”
유리비녀는 비취, 옥석, 수정보다 비싸진 않지만 이렇게 큰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수량이면 적지 않은 값이 나갔다. 제일 중요한 건 가게에서 이걸 빌미로 사기를 쳐 사람들의 기분을 망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육함은 임근용을 보며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할 필요 없어. 아용이 사촌 오라버니인데 당연히 도와야지.”
아용? 임근용의 표정이 점점 더 구겨지며 눈빛에 광기가 어렸다. 누가 너더러 날 그렇게 부르래? 날 돕는 게 당연하다고? 세상에 어쩜 저리 파렴치할 수가 있지? 남한테 모함을 당했는데도 그 사람한테 설교를 듣고 감사 인사나 해야 하다니, 더구나 누구한테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임근용이 꾸물거리며 대답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본 도봉상이 의아해하며 웃었다.
“우리 근용이가 많이 놀랐는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네.”
그녀는 장난스럽게 임근용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근용아, 정신 차려!”
그러더니 곁눈질로 육함을 보고 말했다.
“오라버니가 그 2등한 사람이죠? 오라버니나 우리 사촌 오라버니나 정말 대단해요. 요 며칠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오셨던 선생님들께서 계속 두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육함의 얼굴에 갑자기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심오한 눈빛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네.”
임근용은 마음을 추스르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육함 오라버니, 이등도 잘한 거죠! 부끄러울 게 뭐 있어요? 당연히 칭찬받을 만하죠!”
그녀는 육함이 못 알아들을까 봐 ‘이등’이라는 글자를 아주 강조하며 말했다. 임근용은 그를 못 본 척하려 했지만 그가 일부러 와서 이렇게 화를 자초했으니 그녀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육함은 역시나 알아듣고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도봉당 일행이 소리를 듣고 달려와 주변을 둘러쌌다. 도봉당과 임세전은 육함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급하게 서로 인사했다. 인사를 끝내고 도봉당이 물었다.
“여기 뭘 사러 왔어? 내가 뭐 도와줄 건 없고?”
임근용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도봉당의 성격이라면 이다음에는 육함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집에서 묵게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철면피인 육함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임근용은 육함이 입을 열지 못하게 먼저 선수를 쳤다.
“큰 오라버니, 사촌 오라버니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냥 돌아다녔대요. 사긴 뭘 사겠어요? 우리는 계속 구경하러 가요. 오라버니한테 부탁할 게 좀 있어요. 얼른 가요. 괜히 남 기분 전환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육함은 눈을 내리깐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수는 임근용을 매섭게 노려보며 어째서 갈수록 더 밉살스러워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도봉당은 육함과 임근용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이런 무례한 행동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특히 육함이 이렇게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 도봉당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엄한 눈길로 임근용을 힐끗 째려보고 육함을 향해 웃는 얼굴로 공수하더니 말했다.
“동생이 모처럼 여기까지 왔네. 여긴 내 고향이라 이 동네는 전부 다 익숙해. 너만 괜찮다면 우리랑 같이 구경해도 좋을 것 같아. 그게 이 동네 출신으로서의 도리지.”
“그게…….”
육함은 난처한 눈빛으로 임근용을 쳐다보았고 임근용은 얼굴을 돌려 그를 못 본 척했다.
임세전도 임신지를 데리고 와 육함에게 인사를 시켰다. 임세전이 임신지에게 귓속말로 뭐라 말을 하자 임신지가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가더니 육함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둘째 사촌 형님 우리랑 같이 놀아요.”
육함이 미소를 지으며 임신지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고 그를 칭찬했다.
“신지는 정말 예의가 바르구나.”
이 말에는 임근용이 예의가 없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육함에게 미움을 사거나 그를 공격하는 건 나쁘고 그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임근용은 잠시 멈춰 서서 차갑게 웃었다.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그런 생각은 처음엔 아주 구리고 악취가 난다고 생각해놓고 오래 맡다 보니 익숙해져 그것이 악취라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면 그만일 것을, 저런 인간 때문에 자신의 평판까지 망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건 득보다 실이 컸다.
일행은 구매한 유리비녀를 들고 모두들 차례로 가게를 빠져나갔다. 오상은 육함을 끌고 뒤쪽으로 빠져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집에서는 알아?”
육함이 담담하게 말했다.
“몰라. 그러니까 돌아가면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마.”
오상이 잠시 조용해졌다 말했다.
“태명부에서 바로 온 거야? 평주로 안 돌아가고?”
육함은 긍정하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