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원한을 품다 (2)
잘 있다가 왜 또 싸우는 거지? 공 마마는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급히 밖으로 나가 일부러 꾸며댔다.
“송 마마, 무슨 일이에요? 부인과 삼노야께서 지금 대화 중이세요.”
임 삼노야는 그제야 자신이 큰 형님 집에 있다는 걸 떠올리고 얼른 자리에 앉아 팔을 걷어 올리고 분노를 억누르며 목소리를 낮췄다.
“어쨌든 그 아가씨는 안 되오! 난 동의할 수 없소!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오!”
도씨가 급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녀는 가볍게 말했다.
“그래요, 돌아가서 다시 이야기해요. 어머님께 맡기든지요.”
그리고 큰 소리로 공 마마를 불렀다.
“공 마마, 큰 올케한테 가서 말 좀 전해. 손씨 가문에 가서 얘기할 필요 없다고! 그리고 이제 신경 안 쓰셔도 된다고 전해, 우리 다섯째 공자는 공주님을 원하셔서 안 될 것 같다고 말이야.”
“당신……!”
임 삼노야가 분노해 도씨를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도채령, 선 넘지 마시오. 모든 일은 다 어머니께서 주관하시는 거요. 당신은 적모라면서 대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이오? 당신한테는 든든한 친정이 있다 이거요? 알겠소, 이 못된 여편네 같으니! 언젠가 당신도 나한테 부탁을 해야 할 날이 있을 거요! 이 일은 더는 당신이 상관하지 마시오!”
그러더니 소매를 뿌리치며 밖으로 나갔다.
공 마마가 급히 나와 중재하려는데 임 삼노야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함만 질렀다.
“넷째하고 일곱째한테 물건을 정리해서 바로 평주로 돌아가자고 해라! 안 따라올 거면 영원히 돌아올 생각하지 말라고 해!”
도씨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 삼노야가 전에 이런 위협을 했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눈빛이 지금처럼 흉흉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친정 가족들 앞에서 이렇게 사납게 군 적도 없었다. 그녀는 살짝 후회가 됐지만 더 체면이 상할까 봐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부인은 대체 어쩌려고 이런단 말인가? 이렇게 중요한 일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좀 참는 게 뭐가 대수라고? 그녀도 전에 그러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삼노야가 잠시 반대한다 해도 그게 이상할 건 없지 않은가? 한 번 거절했어도 다음을 기약하고 사람을 만나보게 한 후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설득하고 하면 얼마든지 마음을 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씨가 이렇게 시비를 거는 통에 이 일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공 마마는 한숨을 내쉬며 뻔뻔하지만 오씨를 찾아가 중간에서 중재해 주길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 *
오씨는 처음부터 범씨와 손씨 두 가문의 아가씨를 비교해볼 생각이었고 보다 보니 이 손 소저가 정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교양이 없는 것도 아니고 모든 면에서 다 적당한 것 같아 몇 마디 거들며 권했던 것인데 일이 어찌 이렇게 됐단 말인가?
오씨는 아주 답답해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임 삼노야를 찾아갔다. 그녀는 좋은 말로 구슬리며 도씨에게 나쁜 마음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오씨는 자기가 너무 많은 말을 하는 바람에 부부 사이의 불화를 야기했다고 자책하며 그들 부부가 이로 인해 서로 감정이 상한다면 그녀가 죽어서도 도 노부인을 뵐 면목이 없다고 호소했다. 도씨를 향해서는 임역지에게 더 좋은 짝을 찾아 줄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며 타일렀다. 임 삼노야에게는 도순흠이 돌아오면 다시 얘기하자고 설득했다.
저녁에 도순흠이 돌아와 임 삼노야를 데리고 한밤중까지 술을 마셨다. 그는 원래 여동생이 말을 예쁘게 할 줄 모른다며 비난하고 임 삼노야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그에게 이틀만 더 놀다 가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다. 임 삼노야는 그제야 자신의 체면이 좀 섰다고 생각해 가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점점 더 도씨가 미워져 오로지 그녀의 기세를 꺾을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도씨는 임 삼노야가 더는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걸 보고 다 풀어진 줄 알고 마음을 놓았다. 그녀는 안심하고 임세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향약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았다.
임근용은 부모님이 또 싸웠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괴로웠다. 그녀는 내심 자신이 너무 순진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달리 무슨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간섭으로 어떤 일들에는 확실히 조용한 변화가 있었고 이런 변화로 인해 주변 사람들도 변했다. 하지만 도씨의 성질머리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 또한 그녀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임근용은 그저 미리 준비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다고 해도 사실 대부분의 경우는 막을 수 없었다. 운명이란 것은 그녀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덮쳐와 그녀를 매섭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정말 어렵다, 어려워……. 임근용은 팔짱을 끼고 창문 앞에 한참 동안 묵묵히 서 있다가 결국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지금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의 상황이 전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았는가? 어찌 되었든 그녀는 이 운명과 끝까지 싸워야만 했다.
* * *
또 며칠이 지났지만 도순흠이 예상했던 대로 임씨 가문은 조용했다. 오, 육 두 가문에서는 각각 오상의 맏형과 육씨 가문의 이노야를 직접 청주로 파견해 도순흠과 만나 협의를 거친 후 각자 능력껏 돈을 벌러 갔다. 그리고 도순흠은 이때 제일 먼저 번개처럼 첫 번째 물건을 사 갔다.
이어서 임세전도 서둘러 돌아왔다. 7, 8일 동안의 고생으로 그는 까맣게 그을리고 살이 쏙 빠져 있었다. 그는 철괴의 두 아들과 십여 명의 건장한 소작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는 밥을 먹을 겨를도 없이 일단 도씨를 만나 돈과 함께 임근음의 편지를 전달했다.
“전에는 계속 철 집사가 일을 도와줬었는데 철 집사는 너무 얼굴이 알려져서 소식이 새 나갈까 봐 이번 일에는 나서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지체가 됐어요. 더 빨리 오고 싶었는데 이렇게 많은 물건을 가지고 움직이느라 조심해야 해서 밤에는 길을 재촉할 수가 없었어요. 사람이 너무 많으면 또 숨겨야 해서…….”
그는 또 얼마 전부터 임 대노야와 이노야가 전부 나서서 식량을 수매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임무를 훌륭하게 잘 해냈다. 도씨는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바로 칭찬했다.
“세전아, 고생 많았다, 일단 가서 밥부터 먹어라. 그리고 앞으로는 여기 남아서 우리 오라버니를 따라다니며 잘 배워 두거라! 날 실망시키면 안 돼.”
임세전은 놀랍고 또 기뻐서 눈을 들어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임근용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역시나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 * *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자 육씨 가문 저택 곳곳에 차례로 등불이 켜지고 저택 전체가 희미한 빛에 둘러싸였다.
육 노태야의 거처인 집현각(集贤阁)은 더욱 밝았다. 새로 꺼낸 네 개의 붉은 비단 등롱이 줄지어 집현각의 현관 위에 걸려 주변을 멀리까지 밝게 비췄다.
육함은 오랜 세월이 흘러 미광을 뿜어내는 코뿔소 자단목 탁자 앞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었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발밑의 청석 바닥을 바라보며 조용히 육씨 가문을 관장하는 육 노태야를 마주하고 있었다.
일 년 내내 병을 달고 살고 늙은 티가 나는 육 노부인에 비해 63세의 육 노태야는 아직도 꽤 젊어 보였다. 그는 어두운 색 무늬가 있는 홍갈색 비단으로 된 일상복을 입고 바닥이 두꺼운 청포면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의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은 매끄럽고 단정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눈썹은 아주 짙었다. 그 눈썹은 너무 짙어서 마치 얼굴에 눈썹만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시시각각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는 오히려 쉽게 간과하게 됐다.
육 노태야는 넓은 자단 안락의자에 편안하게 기대 앉아 있었다. 그는 손자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고 출중하지만 어릴 때부터 집을 떠나 상대적으로 제일 낯선 손자를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청주에서 있었던 일은 그게 다냐? 더 할 말은 없고?”
그는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고 표정 역시 온화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바로 이런 무표정하고 온화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여지를 주지 않는 표정과 태도로 육씨 가문을 오랫동안 지배해왔다. 육 대노야 육건신은 여러 해 동안 멀리 지방에서 벼슬을 했지만 아무리 바쁘고 지위가 높아져도 절대 자기 가문과 가족들을 잊지 않았다. 그는 명절이 되면 일찌감치 사람을 보내 문안을 드리고 선물을 보내며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육씨 가문 이노야인 육건중(陆建中)은 집에서 가업을 경영한 지 오래됐고 이미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불만이 생기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그저 묵묵히 뒷일만 감당할 뿐 육 노태야의 면전에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육건중은 육 노태야가 앉지 말라고 하면 앉지 못하고 서지 말라면 서지도 못했다.
육씨 가문 삼남가의 삼노야 육건립(陆建立)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옹색해지고 처세를 하려 하면 할수록 갈수록 낙담만 하게 되어 무슨 가문을 일으키고 싶다는 마음 따위는 전혀 없고 그저 편안하게 뒹굴거리며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육 노태야 앞에서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펴고 서 있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육함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무언가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육 노태야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얘야, 난 네 친할아버지란다. 이 육씨 가문 사람들은 다 내 자손들이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법이야. 누굴 더 예뻐하고 누구는 미워하고 그러지 않아.”
육 노태야는 자신이 충분히 분명하게 의견을 전달했다고 생각했다. 이 집안에서 육함을 가장 잘 이해하고 육함에게 제일 자상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건 바로 육 노태야일 것이다. 육함이 속으로 아무리 깊은 고민을 하고 있더라도, 또 아무리 입장이 난처해도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육함의 얼굴에 망설임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는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고르며 입을 열었다.
“북방에 큰 가뭄이 와서 북막의 소와 양이 많이 죽었다고 해요. 올해 겨울은 아마 태평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이 소식은 서생들 사이에서 이미 도처에 퍼져있는 소문이었다. 육함은 육 노태야의 그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눈썹 아래에 있는 눈을 찾아 그 안에 무슨 기색이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화? 분노? 아니면 기분이 나쁜 걸까? 육 노태야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듣고 있으니 계속 말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임씨와 오씨 가문에서 전부 앞다투어 식량을 수매하고 있는데 어찌 노태야의 눈을 속일 수 있겠는가? 육함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올겨울에 식량 가격이 반드시 크게 오를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우리는 이미 한발 늦었다. 지금 평주의 식량 가격이 엊그제에 비해 두 배가 뛰었더구나. 네 큰형이 근처 대주(代州)로 가서 값싼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만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운임을 포함하면 지출이 상당할 게야.”
육 노태야는 차분하게 사실을 이야기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떠나기 전에 밖에서 고생하지 말라고 내 꽤 많은 돈을 주었지. 듣자 하니 태명부에 있을 때 돈을 많이 절약했다고 하더구나. 그래 지금은 얼마나 남아 있느냐?”
육함이 잠시 침묵했다 대답했다.
“대략 은화 10냥쯤 남았어요.”
“어째서? 도씨 가문에서 돈을 충분히 벌지 못했나 보구나?”
육 노태야는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약간의 조소를 담은 눈길로 육함을 쳐다보았다.
“아, 네가 돈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게로구나. 식량을 수매한 일은 겨울이 되어서야 수중에 돈이 들어 올 것이고 향약의 경우도 첫 번째 물건을 가장 빨리 팔아도 아직 네 손에 돈이 들어오기는 이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