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맛
10월 초하루는 시월절(十月节)로 가장 추운 날이었다.
이날, 임 노태야는 아침 일찍부터 집안의 남자들을 데리고 위풍당당하게 성 밖으로 나가 조상의 묘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 임 노부인은 집에서 겨울옷으로 갈아입은 집안의 여자 식구들을 모아놓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준비해 먹었다. 그녀들은 난로를 둘러싸고 앉아 술을 데우고 고기를 구우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주씨와 도씨 두 사람은 최근 서로 호흡이 잘 맞았다. 한쪽이 술을 올리면 다른 쪽이 고기를 건네주었다. 그녀들은 한 사람이 말을 꺼내고 또 다른 한 사람이 한 마디 보태는 식으로 임 노부인을 치켜세웠다. 두 사람의 호흡은 흠잡을 데 없었고 손자며느리들도 때때로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띄워 임 노부인을 즐겁게 했다.
지금 가장 기분이 나쁜 사람은 바로 라씨였다. 그녀는 ‘감기’가 완쾌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감히 임 노부인 곁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그녀는 술 한 잔을 임 노부인에게 올린 후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구석에 앉아 혼자 고기와 술을 먹었다. 그녀는 이따금 원한 어린 눈빛으로 주씨와 도씨를 몰래 쳐다보며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임근주가 따뜻한 동양주(东阳酒) 한 잔을 살며시 라씨에게 건네주며 도씨 쪽을 보고 계속 말을 걸었다.
사람이 때론 굽힐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남에게 발목을 잡혔다면 패배를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라씨는 이를 악물고 그 술잔을 들고 일어나 도씨에게 말했다.
“셋째 동서, 술 한 잔 받아. 평소에 나한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더라도 같은 동서의 처지로 체면을 봐서 용서해줘.”
그녀는 도씨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한입에 술잔을 다 털어 마셨다.
“내가 먼저 한 잔 비울게.”
나한테 구정물을 끼얹어 놓고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시려고? 도씨가 냉담한 눈길로 임 노부인을 보니 임 노부인이 손자를 데리고 노는 척하면서 두 눈으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도씨는 입꼬리를 올리고 두 손으로 잔을 들어 라씨에게 화답했다.
“둘째 형님, 평소에 제가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같은 동서로서 체면을 생각해 용서해 주세요.”
그녀는 이 말을 끝내고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주씨가 주변을 빙 둘러보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유, 잘 됐네! 다 같이 즐겁게 먹고 마시자고!”
두 사람이 화해한 것을 보고 기분이 아주 좋아진 임 노부인이 주씨에게 지시했다.
“사슴이 한 마리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좋은 부분으로 골라 반을 나눠 네 시아버지 몫으로 남겨두고 나머지 반은 가져다가 기름을 발라서 다 같이 구워 먹자꾸나. 오늘은 너희들이 많이 마시고 술에 취한대도 내 문제 삼지 않으마.”
임 노부인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저마다 맞장구를 쳤다. 임근주가 웃으며 말했다.
“사슴 고기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몰라요. 사실 어제도 할머니께 먹고 싶다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단정치 못하다고 싫어하실까 봐 꾹 참았어요. 어젯밤에는 눈만 감으면 사슴 고기가 생각나더라니까요. 지금 너무 신나요. 할머니께서 제 소원을 이뤄 주셨잖아요!”
임 노부인이 큰 소리로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이 먹보가 정말 걸신이 들렸나 보구나! 어서 우리 여섯째한테 크게 한 접시 썰어 주거라. 오늘 우리 이 아이가 얼마나 먹는지 한번 보자.”
사슴 고기가 올라오자 해씨, 문씨 등이 사슴 고기 한 접시를 들고 와 임근주 앞에 내려놓았다.
“여섯째 아가씨 많이 먹어요.”
임근주는 시녀들의 도움을 거절하고 빙그레 웃으며 골고루 기름을 발라 난로 옆에 앉아 고기를 구웠다.
“다들 저보고 많이 먹으라고 하셨으니, 많이 먹는다고 비웃으시면 안 돼요.”
사람들의 웃음이 터졌다.
“왜 비웃겠어. 안 비웃을게, 많이 먹어!”
임근옥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임근주 옆에 가서 앉았다.
“여섯째 언니, 내가 도와줄게.”
임근주가 그녀를 쫓아냈다.
“저리 가, 내 거 뺏어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난 네가 눈알만 굴려도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
임근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어, 사실은 네가 임근옥인 거 아니야? 안 그러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
임근옥이 임근주의 귓불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봐봐, 뭐가 잘못된 건 아닌지 확인을 해봐야겠어…….”
임근주 침을 퉤 뱉더니 말했다.
“넌 네가 누군지도 모르냐?”
모두들 하하 하고 크게 웃자 주씨는 임근옥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너 일곱째니, 여섯째니? 술 많이 마셨지?”
임근용은 따뜻한 동양주 한 잔을 들고 웃음을 머금은 채 쌍둥이들의 장난을 구경했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옆에 있는 임근음에게 말했다.
“여섯째와 일곱째가 나쁜 짓을 하지 않을 때는 사람들의 환심을 정말 잘 사네. 어쩐지 할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더라니.”
임근용은 두 번의 생을 살면서도 이런 능력을 배울 수는 없었다.
임근음이 웃으며 말했다.
“저것도 다 타고난 능력이지. 억지로 하려고 하면 오히려 보기 흉해. 고기가 기름지니까 마음 내키면 이따가 사람들한테 차나 끓여 줘. 분명히 다들 좋아할 거야.”
임근용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낮은 소리로 여지에게 자신의 다구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고개를 돌리니 도씨가 라씨에게 붙어 앉아 작은 소리로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씨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눈을 빛내고 있었고 라씨는 가늘게 다듬은 초승달 모양의 눈썹을 점점 더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났고 도씨는 의기양양하게 두 딸 곁으로 다가와 마주 앉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여섯째랑 일곱째 동생들은 성격이 활발해서 사람들이 좋아하겠단 얘길 했어요.”
임근용은 그녀가 라씨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작은어머니한테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
도씨가 웃으며 말했다.
“별 말 안 했어. 아가씨가 근래에 집에 오지 않았으니 아가씨한테 사과할 자리를 마련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언질을 해줬지.”
사실 그녀는 라씨에게 육함과 임근주의 혼사를 얼른 확정 짓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이런 대화를 하는 와중에 임근옥이 자리에서 일어나 라씨에게 작은 소리로 몇 마디 하고 또 임근주 옆으로 가 무언가 속삭였다. 임근주는 아무것도 못 들은 듯 표정 변화 없이 침착하게 계속 고기를 구웠다.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히히 웃으며 말했다.
“다 됐다!”
고기의 뜨거움이 가실 때까지 잠시 들고 있던 임근주는 검은 젓가락으로 고기를 잡고 작은 백자 접시에 받쳐 임 노부인의 입가로 들고 가 애교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오늘 첫 번째로 구운 사슴 고기예요. 제일 연한 부위를 구웠어요. 먼저 맛보세요. 할머니는 이가 안 좋으시니까 딱 한 입만 드셔 보세요.”
임 노부인은 손녀의 효심에 즐거워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맛을 음미했다.
“맛있구나.”
그녀가 고기를 삼키자 임근옥이 살갑게 따뜻한 술 한 잔을 건넸다.
“할머니, 술 한잔 하세요.”
임 노부인은 그녀들의 빈틈없는 시중에 웃으며 말했다.
“우리 손녀들 중에서는 우리 근주가 날 제일 잘 모시는 것 같구나. 너희들이 근주보다 더 똑똑할지는 몰라도 근주만큼 내 마음을 잘 헤아리지는 못할 게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말을 들은 임근옥이 질 수 없다며 바로 나서서 애교를 피우고 농담을 했겠지만 오늘의 임근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음을 머금은 채 임근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임근주는 이런 칭찬을 받고도 얼굴에 기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살짝 의기소침한 것처럼 보였다.
“제가 여섯 살 되던 해 할머니께서 직접 구워 주신 사슴 고기 맛을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임 노부인이 잠시 멍해졌다가 바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바로 이 맛이었지. 요것이 기억력도 좋구나.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나니?”
임근지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질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여섯째 혼자 다 먹겠어요.”
임근주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랫동안 고모와 운이를 못 봤는데 둘 다 구운 고기를 정말 좋아하잖아요. 그 집에 음식이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또 이 만큼 맛있는 게 있을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지금 와서 놀러 오라고 하기도 곤란하고요.”
이 말로 인해 임 노부인은 걱정거리가 떠올랐다.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참 세심하구나. 네 고모가 널 아끼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 여봐라, 사슴 고기 두 접시를 옥진이네로 보내고 여섯째 아가씨가 보낸 거라고 전하거라. 그리고 내일 시간이 되면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해라.”
그러더니 사람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 아이의 공로를 할미가 뺏으면 안 되지.”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그 의미를 깨닫고 웃어 보였다. 임근주는 얼굴을 살짝 붉혔지만 난로 앞으로 돌아가 눈을 내리깔고 계속 고기를 굽는 일에 전념했다. 그녀는 고기를 구운 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임근용 역시 맛있게 먹으며 동양주도 꽤 많이 마셨다. 그녀는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져 자리에서 일어나 다도를 선보였다. 임근용은 차 거품으로 길한 글자를 써서 사람들에게 주었다. 임 노부인에게는 특별히 ‘수(寿)’ 자를 써서 바쳤고, 임근음에게는 ‘호(好)’ 자를 써 주었다. 또 아직 차를 마실 수 없는 큰 사촌 조카에게는 ‘안(安)’ 자를 써 주어 사람들로부터 진심 어린 칭찬을 받았다. 이에 임근용도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와중에 육씨 가문에서 답례하려고 방 마마를 보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녀는 새끼 양고기 두 접시에 금빛 찬란한 귤 두 광주리를 들고 들어왔다.
방 마마가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웃으며 말했다.
“부인께서 여섯째 아가씨의 효심을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지주댁의 송 부인께서 초대를 하셔서 오시기 어렵다 하셨습니다. 원래 노부인과 외숙부인, 사촌 아가씨들을 모시고 놀러 갈 생각이 있었는데 연이어 여러 집에서 초대를 하는 통에 바빠서 정신이 없으셨답니다. 부인께서 좀 한가해지시면 술을 마련해놓고 초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임 노부인이 그다지 믿지 않는 것 같은 말투로 말했다.
“그럼 우선 중요한 일들부터 빨리 처리하라고 해라. 그리고 한가해지면 나를 보러 오라고 전하거라. 내가 할 말이 있다고.”
“예.”
방 마마가 작별 인사를 하자하자 라씨가 최 마마에게 눈짓을 했고 그 뜻을 알아챈 최 마마는 사람들이 어수선한 틈을 타 조용히 따라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그녀가 라씨의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바쁘신가 보더라고요. 그런데 아직 화가 덜 풀리신 것도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니 걱정 마세요. 노부인께서 버티고 계시잖아요.”
긴장으로 바짝 당겨져 있었던 라씨의 얼굴에 마침내 조금 편안한 기색이 감돌았다. 그녀의 표정이 좋아지는 걸 본 임근주는 꽉 쥐고 있던 손수건을 조용히 놓았다.
사람들은 또 다시 웃고 떠들었다. 신시(*申时: 오후 3시~5시 사이)가 가까워지자 임 노부인은 너무나 피곤해졌다. 그녀가 해산하자고 하려는데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임씨 가문 남자들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맨 앞에 있는 임 노태야는 평상시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어 희노애락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뒤에 있는 임 대노야, 임 이노야 등의 사람들이 전부 활짝 웃고 있었다. 임 삼노야는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와 발을 들썩거렸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해가 서쪽에서 뜨기라도 한 것처럼 도씨를 향해 자발적으로 웃어 보였다. 더 젊은 세대 아이들의 얼굴은 더욱 싱글벙글 이었다.
임 노부인이 남편과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의아해하며 황급히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었어요?”
임 대노야가 임 노태야를 힐끗 쳐다보았다. 임 노태야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본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어떤 소식을 들었는데 조정에서 급히 식량이 필요해서 입중(入中) 방식으로 상인을 모집해서 식량을 운반한다고 하더라고요. 식량을 북쪽으로 운반하기만 하면 750전짜리 조(粟)를 2000전으로 사 주고 나중에 경성이나 동남주군에서 돈이나 소금으로 바꿔준다고 하네요!”
갑자기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피어났다. 주씨는 흥분해서 손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랐다. 라씨는 두 눈을 빛내며 얼른 돌아가서 얼마나 벌 수 있는지 계산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이와 비교하면 삼남가는 훨씬 평온한 편이었다. 도씨는 의기양양했지만 침착하게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임근용 옆에 다가가 칭찬하듯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