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착란
도씨는 활짝 웃는 얼굴로 앞에 있는 앞에 있는 금은쌍승어(金银双胜御), 비단 두건, 초록 상의, 장화 등을 뒤적거리며 공 마마에게 말했다.
“이것들은 전부 최장(*催妆: 옛날 신부가 시집을 갈 때 어서 몸치장을 하고 출발하라고 재촉을 하는 의식) 때 답례할 물건들이니 실수하지 않게 네가 잘 보관해 두거라.”
임근용은 한쪽에서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임근음을 쿡쿡 찔렀다.
“언니 축하해. 혼례날도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네.”
“너도 곧 이런 날이 올 거야!”
임근음은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이를 악물며 임근용을 살짝 꼬집었다. 두 자매가 웃고 떠드는 사이에 대문 쪽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시녀가 소리쳤다.
“아가씨, 아가씨!”
곧이어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무슨 일이야?”
도씨가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말을 하자마자 갑자기 문발이 확 젖혀졌다. 문 앞에는 창백한 얼굴에 눈물 자국을 단 임근주가 눈을 크게 뜨고 분노한 눈빛으로 임근용을 매섭게 노려보며 서 있었다.
임근용이 웃음기를 거두고 일어나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여섯째야, 무슨 일이야?”
임근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임근용만 죽어라 노려보았다. 이어서 임근옥이 들이닥치더니 임근용에게 갑자기 덤벼들며 소리쳤다.
“이 음흉한 소인배, 파렴치한 인간!”
임근옥이 한 걸음 더 내디디자 여지가 그녀를 덥석 껴안았다. 화가 난 임근옥이 손을 뻗어 여지의 얼굴을 할퀴려 했다. 춘아가 이걸 보고 얼른 달려들어 임근옥의 두 팔을 꽉 잡고 여지와 힘을 합쳐 그녀를 한쪽으로 데리고 간 뒤 작은 소리로 달랬다.
“일곱째 아가씨, 할 말이 있으면 좋게 말로 하세요.”
임근옥은 아무 말도 없이 마구 발로 차고 때렸다.
도씨가 벌컥 화를 내며 급히 쌍둥이를 뒤따라 들어온 시녀에게 물었다.
“뭣들 하는 게냐? 할 말이 있으면 좋게 말로 해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조신한 규방의 여인이 대체 이런 무지막지한 짓을 누구한테 배웠단 말이냐!”
자유와 녹평은 눈을 마주치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삼부인, 다 사정이 있습니다…….”
도씨가 분노하며 말했다.
“사정이 있건 말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아무리 사정이 있어도 이렇게 함부로 굴면 안 되지! 저 아이들 어머니한테 나한테 와서 제대로 설명하라고 해라!”
공 마마가 서둘러 관련 없는 사람을 쫓아내고 함구령을 내린 후 돌아와 쌍둥이를 달랬다.
“두 분 아가씨, 무슨 일이길래 말씀도 안 하시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십니까?”
임근주는 자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실성한 사람처럼 통곡했다. 최근 며칠 동안 보였던 단정하고 조신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임근옥은 안타까운 듯 씩씩거리며 욕을 했다.
“임근용, 이 속이 시꺼먼 소인배, 곱게 죽지는 못할 거야!”
임근용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억지로 괜찮은 척 버티며 말했다.
“난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라씨가 뒤에서 쫓아 들어와 한 손으로 임근주를 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임근옥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갈며 냉소했다.
“셋째 동서, 동서가 부린 잔꾀에 우리가 보기 좋게 다 속아 넘어갔어. 태명부의 이노부인에게 선 자리를 알아봐달라고 서신을 보냈다고 하더니 사실은 뒤에서 몰래 일을 꾸며 이렇게 허를 찔렀네. 이제 동서가 원하는 대로 됐어? 한 가족끼리 이런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해? 동서는 그래도 솔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남들과 똑같은 비열한 인간일 줄이야!”
도씨는 영문을 몰라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똑바로 말을 하세요!”
라씨가 냉소했다.
“무슨 말을 하라고? 동서가 한 짓은 나보다 동서가 더 잘 알지 않아? 한 가족이라 체면을 차릴 필요도 없다 이건가. 할 말은 많지만 더 할 필요도 없겠어.”
주씨가 얼른 달려와 중간에서 가로막고 목소리를 낮추며 간곡히 부탁했다.
“둘째 동서, 이 일은 정말로 셋째 동서와 근용이도 몰랐던 일이야……. 밖에 손님들도 아직 안 돌아 가셨는데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얼마나 볼썽사납겠어?”
라씨가 빨개진 눈으로 주씨를 가리키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욕을 했다.
“두 사람이 한통속이 돼서 못된 짓을 했군요. 돼먹지 못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얘들아 가자!”
그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흉흉한 기세로 쌍둥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라씨는 임근옥이 발버둥 치며 저항하자 세차게 따귀를 때렸다.
“남들이 너희들 체면을 상하게 만들면, 너희들도 그 인간 체면을 짓밟아 버려! 누구든 또 다시 나한테 망신을 주면 다 때려죽여 버리겠어!”
라씨가 욕하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임근용의 귓가에 명을 재촉하는 것 같은 주씨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방금 육 노태야와 육 노부인이 직접 찾아오셨어. 육함이와 근용이를 맺어주자며 혼담을 꺼내셨는데……. 아버님께서 벌써 승낙하신 모양이야, 어머님께서는…….”
임근용은 귓속이 윙윙거려 그 뒤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망연자실해 사방을 둘러보니 주변이 온통 검고 하얗게 보이며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면서 주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 귀를 기울였다. 임근용은 노부인이 반대했는지 들어보려 했지만 귓가엔 임근음이 외치는 소리만 들렸다.
“근용아……!”
주씨는 임근음의 품에 픽 쓰러진 임근용을 보고 깜짝 놀라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어찌 이렇게까지?”
도씨는 잠시 넋이 나갔다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명령해 임근용을 부축해 침상에 눕히고 그녀의 인중을 힘껏 눌렀다. 잠시 후, 임근용이 가볍게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도씨의 손을 잡고 비 오듯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
임근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옆에 있는 주씨에게 사과했다.
“큰어머니, 근용이가 쌍둥이 동생들 때문에 너무 놀라고 억울해서 견디기 힘든 모양이에요. 아까 그 일이 밖으로 새나가면 다들 체면이 말이 아닐 거예요. 번거로우시겠지만 큰어머니께서 좀…….”
아직 어린 소녀고 갑자기 이런 억울한 수모를 당했으니 견디기 힘든 게 당연했다. 탓을 하려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 임옥진과 제멋대로 날뛰는 라씨 모녀를 탓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주씨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처리할게.”
그러더니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집안에 외부인이 사라지자 임근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필사적으로 도씨의 손을 잡아당겼다. 임근용의 이가 주체할 수 없이 덜덜 떨렸다.
“어머니, 저랑 약속하셨잖아요. 전 죽어도 그 집으로는 시집 안 갈 거예요.”
“그래, 알아.”
도씨가 딸의 어깨와 등을 힘껏 쓰다듬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사전에 아무 말도 들은 게 없는데.”
임근용도 왜 이러는지, 그들이 왜 갑자기 이런 말도 안 되는 변덕을 부리는 건지 정말 알 수 없었다.
공 마마가 말문이 막혀 아무 대답도 못 하자 임근음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육운이 왔을 때, 작은어머니께서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셨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육씨 가문이 좋은 사돈이 아니라는 건 그녀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혼담이 결코 실수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노태야가 승낙한 이상, 아무리 노부인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반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라씨와 쌍둥이가 하는 짓거리를 보면 이 일은 이미 돌이킬 수 없어진 것 같았다.
도씨는 눈살을 찌푸리고 잠시 앉아서 결사의 각오를 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침착한 목소리로 임근용을 위로했다.
“아가, 걱정 마. 어미가 너한테 약속했잖아. 내가 곧 할아버지와 할머니한테 가 볼게. 아직 납폐를 보낸 것도 아니니 아무 일도 아닐 거야.”
임근음이 얼른 말했다.
“어머니, 저랑 같이 가요…….”
도씨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미도 분수껏 행동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어. 넌 여기 남아서 동생을 돌봐.”
임근음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임근용과 도씨를 번갈아 보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임근용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 봐. 난 괜찮아.”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임근용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전생에 임옥진이 처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 혼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건 임근음의 혼례에서였다. 그런데 지금, 임근음의 혼례가 아직 한 달 가까이 남아 있는 상황에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육 노태야와 육 노부인이 직접 임 노태야를 찾아오기까지 한 것이다.
임근용은 입을 꾹 다물고 뚫어져라 창틀을 바라보며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면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아 억지로 참았지만 결국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대체 뭣 때문에 지금껏 그렇게 노력하고 고생을 했단 말인가?
‘분명 변화가 있었고, 활로가 보였어. 한 걸음, 딱 한 걸음 차이로도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것도 틀림없이 봤어. 그런데 어째서 남들이 말 한 마디로 내 앞길을 정해 버리는 거야? 인정 못해, 절대 인정 못 해!’
눈물 한 방울이 예고도 없이 그녀의 뺨을 따라 흘러내리며 얼굴을 적셨다. 임근용은 소매를 들어 피부가 아플 정도로 힘껏 문질러 닦았다. 또 다른 쪽에서 눈물이 또 한 방울 흘러내리자 그녀는 계속해서 이를 악물고 방금 전처럼 문질러 닦았다.
누군가가 부드럽게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손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짝 닦아 주었다. 여지가 마음 아파하며 임근용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초조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그러지 마세요.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세요.”
그녀는 당연히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가 없었다! 임근용이 고개를 돌려 여지를 보고 살짝 눈을 깜빡이자 또 눈물 두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여지가 눈물을 닦아 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할아버지께 가 봐야겠어.”
여지가 아직 입도 열지 않았는데, 계 마마가 깜짝 놀라 임근용의 소매를 움켜잡았다.
“아가씨, 그러시면 안 돼요. 부인과 셋째 아가씨가 벌써 가셨잖아요? 일단 그분들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보고 다시 얘기해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어요.”
임근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붉히며 밖으로 걸어 나가려 했다. 계 마마가 꽉 잡고 있는 소매를 놓지 않고 여지에게 와서 도와달라는 듯 눈짓했다. 아가씨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혼사에 대해 말을 꺼내면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해야 존귀해 보이는 법이었다. 어르신 앞에 가서 스스로 이 혼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반박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임근용은 힘으로 계 마마를 상대할 수 없자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거 놔!”
임근용은 두 손으로 자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계 마마는 상기된 얼굴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죽어도 안 돼요! 부인께서 노비에게 아가씨를 잘 보고 있으라 명령하셨어요. 절대 못 나가게 지키라 하셨단 말이에요.”
여지도 달려와서 임근용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노비들 말 들으세요. 아가씨도 방금 전에 이 일을 알게 되셨잖아요? 부인과 셋째 아가씨께서 가셨으니 일단 그분들이 돌아올 때까지만 참고 기다려 보세요. 만약 얘기가 잘 안 되면 그때 다시 가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한 번에 힘을 다 빼지 마시고 여지를 좀 남겨 두세요. 혹시라도 두 분께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실 수도 있잖아요.”
그래, 조급하게 굴지 말자. 조금만 더 기다려보지 뭐. 감정이 좀 가라앉은 다음에 가도 괜찮을 거야. 임근용은 눈을 들어 창밖의 하얀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에 힘을 풀며 말했다.
“여지야, 물 좀 떠와, 세수하고 머리를 빗어야겠어.”
설령 임 노태야와 공개적으로 싸우러 가는 것일지라도 일단 단정하게 차려입고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