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강함과 부드러움
도씨가 빠른 걸음으로 급하게 달려갔지만, 육씨 가문의 마차가 이제 막 떠나는 것이 보였다. 그녀를 본 임 노부인은 별다른 감흥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임 노태야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뭐 하러 왔느냐?”
도씨는 주위에 서 있는 하인들을 힐끗 보고 임근용의 체면이 상할까 걱정되어 조급한 마음을 누르고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 며느리가 아버님과 어머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녀가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자 임 노태야는 조금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그는 소매를 흔들고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청리가 임 노부인을 부축하려 다가가는데 도씨가 얼른 앞으로 나서서 그녀를 대신했다.
“내가 할게.”
난생 처음 있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확실히 아주 드문 일이긴 했다. 임 노부인은 도씨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임근음도 조용히 앞으로 나가 도씨와 함께 임 노부인을 부축했다.
임 노태야가 청도거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도씨는 본능적으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거기서 임신지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들 앞에서 이런 일로 시부모님과 논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도씨가 임 노태야에게 이에 대해 말하려 했지만 임 노태야가 고개를 쳐들고 들고 뒷짐을 친 채 아주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가 버려 도저히 그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신지가 안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안락당으로 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임 노부인은 곁눈질로 도씨를 힐끗 보고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근음은 임 노태야가 임근용의 이 일을 처리하는데 청도거를 선택한 것이 아주 타당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청도거는 안락당에 비해 잡다한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보는 눈도 그리 많지 않았고 당연히 안에서 하는 말이 함부로 새나갈 가능성도 적었다. 임근음은 도씨의 소매를 가볍게 잡아당기며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고 눈짓했다.
이에 도씨는 말을 하려다가 끝내 참고 조용히 임 노태야를 따라 청도거로 들어갔다. 임신지는 창가에 있는 책상에 앉아 글씨를 쓰고 있다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더니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는 급하게 의자에서 뛰어내려 오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필묵을 내려놓고 종이까지 잘 눌러 놓고 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셋째 누나, 어찌 이리 같이 오셨어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임 노태야는 그를 보고 축 처져 있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임신지의 머리를 어루만지더니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춥니?”
임신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화로가 아주 따뜻해요.”
임신지는 호기심 가득한 까만 눈동자로 여기저기 살폈다. 그는 도씨에게 가고 싶었지만 감히 그러지는 못하고 임 노부인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임 노부인은 그의 손을 잡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손이 너무 차갑구나,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자주 문질러 주거라.”
임 노태야도 그의 행동을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책상으로 가서 그가 쓴 글씨를 확인했다. 그는 잘못된 부분을 가려내 지적한 뒤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은 좀 일찍 끝내 주마, 맥자한테 가서 네가 좋아하는 과자를 달라고 하거라.”
임신지는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가 도씨와 임근음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서 있자 맥자가 그를 데리고 나갔다.
임 노태야는 그제야 자단목 서안 뒤에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
“셋째 며느리가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게냐?”
도씨는 일단 임 노부인을 부축해 옆에 있는 여의무늬 의자 위에 제대로 앉히고 손을 공손히 모으고 똑바로 서서 예의 바르게 말했다.
“아버님, 며느리가 방금 육씨 가문에서 육함과 근용이의 혼담을 꺼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임 노태야는 도씨의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냉담한 말투로 임근음에게 말했다.
“근음이 너는 일단 나가 있거라.”
임근음이 어찌 도씨 혼자 이 두 사람을 상대하게 두고 나갈 수 있겠는가? 그녀가 나가지 않으려고 핑계를 찾고 있는데 입을 채 열기도 전에 임 노태야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나가라니까!”
임 노태야가 평소에 사납긴 했지만 그래도 아들과 손자들 앞에서는 집안의 여자 식구들 기는 살려 주는 편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일들을 냉담한 태도로 방임했을 뿐 이렇게 흉악하게 군 적은 없었다. 임 노부인과 도씨는 전부 화들짝 놀랐다. 임근음은 부끄럽고 당혹스러워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눈물이 다 핑 돌았지만 딱딱한 말투로 인사를 하고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임근음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도씨가 좀 전에 그녀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기를 바라며 문밖을 지켰다.
임 노태야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도씨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어쩔 테냐? 무슨 불만이라도 있다는 게냐?”
그는 연거푸 두 번이나 반문했다. 도씨는 임 노태야가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과 그가 임근음에게 화를 낸 것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살이 이미 시위를 떠났는데 도씨가 어찌 자신의 귀한 딸이 그 고통을 받는 걸 눈 뜨고 지켜보고만 있겠는가? 그녀는 이를 악물고 임 노태야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이 일은 부당하니 아버님께서 명령을 거두어 주십시오.”
임 노태야는 냉담한 눈길로 그녀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임 노부인이 입을 열었다.
“뭐가 부당하다는 건지 한 번 말해 보거라.”
도씨는 이 말을 듣고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말했다.
“두 아이의 성격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아용이는 어머님께서도 아시다시피 평소에 쓸데없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까다롭고, 고집이 센 데다가 어리석고 무뚝뚝합니다…….”
도씨는 여기까지 말한 뒤 계속 자기 딸의 결점을 늘어놓기는 곤란해 잠시 멈춰 말을 고쳤다.
“아무튼, 아이가 아직 철이 없습니다. 안 그랬으면 난로회에서 그런 일도 저지르지 않았을 겁니다. 아이는 아가씨를 기분 나쁘게 하고 사촌 여동생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별로 친해지지 못했습니다. 고모와 조카가 불화하고 심지어 아가씨와 올케가 불화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혼사가 어찌 좋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근용이는 식구가 적은 집에 어울리는 아이입니다.”
“크흠!”
임 노부인이 가볍게 기침하고 말했다.
“노태야…….”
임 노태야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임 노부인의 말을 자르고 차가운 말투로 도씨에게 물었다.
“이 혼사는 네가 원했던 것이 아니더냐?”
도씨가 깜짝 놀라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저와 아가씨는 여태껏 말이 잘 통하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도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도씨를 제외하고 누가 시누이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을 이렇게 스스럼없이 꺼낼 수 있을까. 마침내 임 노태야의 눈빛에 서려 있던 냉기가 조금 가셨다.
“일어나서 말하거라.”
도씨가 고개를 들며 간청하는 말투로 말했다.
“아버님, 그럼 이 일은?”
임 노태야가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어나고 싶지 않으면 계속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어도 괜찮다.”
이건 대체 도씨의 청을 들어준다는 말인가 거절한다는 말인가? 도씨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아버님, 며느리는 이 일을 천천히 신중하게 의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줄곧 근주가 육함이의 짝이 될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근용이로 변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면 자매 사이에 많은 오해가 생기게 됩니다. 어느 한 사람만 억울함을 당하는 데에 그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이래선 안 됩니다…….”
“누가 너한테 근주라고 했느냐? 누가 그런 말을 했어? 대체 누가 너한테 그런 말을 했단 말이냐?”
임 노태야가 성난 목소리로 도씨의 말을 끊었다.
“근용이가 너한테 싫다고 했느냐? 근용이가 너한테 자기랑 육함이가 마음이 안 맞는다고 했느냐? 둘이 친하게 지낸 적이라도 있느냐?”
도씨는 임근용을 보호하려고 얼른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 근용이는 줄곧 법도를 잘 지켰습니다.”
그러자 임 노태야가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렇지 않은 이상 그 아이들이 마음이 맞는지 안 맞는지 네가 어찌 안 단 말이냐? 이 무슨 헛소리야? 앞으로 근주가 어쩌고 하는 말은 다시는 입 밖으로 내지 말거라! 만약 근주가 어쩌고 하는 소리가 한 마디라도 내 귀에 들리면 내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도씨는 갑자기 목구멍이 꽉 죄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온몸에 털이 쭈뼛서며 식은땀이 났다. 그녀는 다급히 임 노부인에게 간청했다.
“어머님, 아버님을 좀 설득해 주십시오. 이 일은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임 노부인은 초조한 눈빛으로 임 노태야를 보며 말했다.
“아니면, 다시 천천히 신중하게 의논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임 노부인은 육 노태야와 임 노태야가 정원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원에서 돌아온 후 갑자기 그의 태도가 이 혼사에 동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임 노태야는 임 노부인을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내 직계 손녀들인데 누구를 중시하고 누구를 홀대하고 그러려는 게 아니오. 난 그저 그 아이들이 모두 잘되기만을 바라오. 하지만 육씨 가문에서 바라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근용이라오. 육 노태야는 근용이의 조용하고 온화한 성격과 재능이 마음에 든다고 하더군. 옥진이가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친고모와 조카 사이인데 누구라도 마찬가지 아니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도씨에게 말했다.
“이 혼사는 결국 신지에게도 좋을 게다. 네가 근용이를 정말 아낀다면 가서 아이를 설득하고 잘 타이르거라.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쓸 필요 없다.”
도씨는 이 말을 듣고 라씨 모녀가 그렇게 난리를 치고 근용이가 기절까지 한 것은 더 이상 이 일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한동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얼굴을 가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임 노부인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옥진이도 그 아이도 참, 미리 사람을 보내 얘기를 해 줬으면 좋았을걸. 그럼 이렇게까지 당황해서 우왕좌왕하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이건 중간에 아마 다른 속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걸 완곡하게 임 노태야에게 알리기 위해 한 말이었다.
임 노태야가 짜증 난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더 이상 의논할 필요가 없으니 돌아가거라.”
설령 임옥진이 이 혼사에 불만이 있다 한들 그녀가 또 뭘 어쩌겠는가? 육씨 가문에서 임옥진의 처지가 어떠한지는 그녀보다 남들이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임옥진이 가진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멀리서 벼슬을 하며 늘 친아들을 낳을 생각뿐인 남편과 곧 시집을 가게 될 딸 하나, 그리고 남한테서 입양한 아들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지지 않으려는 기질에 성격도 강했다.
그 외에 그녀가 가진 것이 또 뭐가 있을까? 만약 임, 육 두 집안이 대대로 혼인을 해서 관계가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육씨 가문의 두 어르신이 과연 지금처럼 너그럽게 임옥진을 대했을까?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처음부터 아이를 잃은 그녀에 대한 연민과 더불어 가문 간에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앞으로도 임씨 가문의 딸이 그 집으로 시집을 가야 하는데 구태여 육 노태야 부부를 기분 나쁘게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괜한 고집을 부리면 누가 손해를 보겠는가? 손해를 보는 건 임옥진 한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근주에 대해서는 여태까지 임옥진과 라씨 사이에서만 얘기가 오갔을 뿐이었다. 육씨 가문의 두 어르신과 다른 사람들은 한 번도 임근주에 대해 호감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임 노태야 입장에서 달리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