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화조절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올 때쯤 막 만 15세가 된 임근용은 이미 몸단장을 마치고 서둘러 도씨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씨도 이미 일어나 앉아 공 마마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철괴가 보낸 명세서에 적힌 물건들은 다 샀어? 또 길바닥에서 잊어버린 물건이 생각나면 곤란하니까 꼼꼼히 점검해 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는데 하나같이 다 호의호식하던 사람들뿐이라…….”
공 마마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 오후에 간 물건들은 두 번 확인 했고, 오늘 아침에 갈 식재료들은 방금 노비가 한 번 더 확인했는데 틀림없었어요.”
도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머리야, 그 손바닥만 한 곳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북적거리고 있어야 한다니, 거기서 밤을 지내지는 않을 생각이라니 천만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내가 가서 향을 피우고 복을 빌 수나 있었겠어! 그 사람들 시중드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질 텐데.”
공 마마가 불평했다.
“이게 다 이부인의 농간이잖아요. 대부인께서 가문의 돈을 내 준다고 했는데도 기어코 부인께 돈을 내라고 종용하고! 돈 쓰는 건 둘째 치고 이부인이 의기양양해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요.”
도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여자 마음은 더 불편할걸.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신지도 공부에 분발하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쓰리겠어.”
그녀가 또 냉소했다.
“이런다고 자기들이 나한테 무슨 손해를 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큰 돈을 본 적이 없어서 저러지.”
임근용이 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웃는 얼굴로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우리는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을 초대하는 것도 가뿐히 해낼 수 있고 또 제대로 대접할 능력도 되잖아요. 예전 같았으면 어디 엄두나 냈겠어요? 더구나 신지를 위해서라도 할아버지는 꼭 가셔야 해요. 그럴만 한 가치가 있는 일이에요.”
그녀의 말을 듣고 도씨는 싱글벙글했다.
“누가 아니라니,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걸 대접 못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겠지만 그 돈을 아껴서 너희 남매에게 좀 더 남겨 주지 못한 걸 두고두고 가슴 아파했을 거야.”
도씨는 여기까지 말하고 임근용을 끌어당겨 유심히 관찰했다.
임근용은 오늘 개나리꽃을 수놓은 상아색 봄옷을 입고 비취 금보를 차고 있었다. 머리는 하나로 틀어 올려 진주봉두비녀를 꽂았고 귀에는 같은 모양의 진주 귀걸이를 찼다. 늘씬한 키에 긴 눈썹과 수려한 눈, 도자기 같은 피부가 어우러져 보고 있으면 눈이 즐겁고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도씨는 자기 딸이 이제 막 여자로 성장했고 재능과 덕까지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절로 우쭐해졌다.
“우리 귀여운 딸이 벌써 처녀가 다 됐네. 너도 이제 곧 어미가 되겠구나. 솔직히 말해서 어미가 네 덕을 많이 봤어.”
임근용이 아니었다면 도씨가 이렇게 짧은 일년여의 시간 동안 형님들 앞에서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었을 것이고 또한 장남가에서 지금처럼 그녀를 존중하고 차남가를 멀리하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임근용이 미소 지었다.
“우리는 원래부터 한 몸과 같은 사이인데 어머니와 딸 사이에 덕을 보고 안 보고가 어디 있어요. 남들이 들으면 웃지 않겠어요? 더구나 어머니께서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좋은 날도 없었을 거예요.”
이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임근음은 임신을 하여 이제 곧 출산을 앞두고 있었고 오씨는 병으로 쓰러져 병세가 아주 심각해졌다. 임 사공자는 혼인을 했고 임역지도 올해 5월에 혼인을 할 예정이었다. 임세전은 그 매씨 성의 상인을 따라가 식량을 운반하고 소금으로 바꿔온 후 시야가 많이 넓어져 처세나 일 처리 방면에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히 발전해 있었다.
그리고 임근용은 수중에 있던 얼마 안 되는 비상금은 원금을 전부 회수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이윤도 챙길 수 있었다.
올해는 관청에서 37가지 종류의 약물 거래를 허가해주는 중요한 한 해 였기 때문에 그녀는 임세전이 이 일을 맡아서 처리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도씨의 신임과 총애, 도순흠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들이 전부 그녀의 의견에 반대하고 그녀를 이 제한된 세계 안에 가둬두려 했다면 그녀는 기껏해야 염지와 후한 혼수 정도밖에 얻지 못했을 것이다.
공 마마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모녀가 서로 상대방 덕을 보았다며 공을 돌리시니 이렇게 복을 받게 되신 것 아니겠어요. 이거야말로 진정한 복이지요.”
그녀는 차남가 방향을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에 여섯째 아가씨와 이부인이 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해요. 삼소부인이 말리러 갔다가 괜히 무안만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삼남가는 형편이 좋아질수록 평온하고 화목해졌다. 임근용도 점점 말수가 많아져 이곳저곳에서 여자 가족들의 환영을 받기 시작했다. 임근주는 이것이 모두 육씨 가문과의 혼사로 인해 생긴 일이라고 생각해 라씨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서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라씨를 원망했다. 그래서 그녀는 사소한 일로도 라씨에게 화를 내고 울며불며 소란을 피워댔다.
도씨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자업자득이지. 그러게 진작 확정했으면 됐잖아.”
공 마마가 말했다.
“이부인께서 샘이 그리 많으신 분인데 우리 아가씨와 다섯째 아가씨랑 비교도 해 보지 않고 어찌 마음대로 두 쌍둥이 아가씨의 혼사를 확정하겠어요?”
도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딸의 혼사를 뭐 하러 남하고 비교를 해? 난 애당초 우리 근용이한테 살림이 넉넉하고 유능하고, 본분을 지킬 줄 알고, 성격이 너그러운 사람을 골라 줄 생각이었어. 젊은 부부가 서로 화목하게 잘 살기만 하면 감사한 거지. 그 여자처럼 기다리고 있는다고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야.”
비록 이미 1년 이상이 지났고 앞으로 직면하게 될 모든 상황에 대해 상세한 계획을 세워두긴 했지만 임근용은 여전히 이 혼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화제를 전환했다.
“어머니, 어머니와 상의해야 할 것이 있어요. 류아가 벌써 두 살이 넘었는데 계속 유모와 시골에서 사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지난번에 만났을 때 보니 말이 아직 서툴더라고요. 이번 기회에 할머니께 말씀드려서 여기로 데려오는 게 어떨까 해요. 제대로 가르치고 키워야 어머니가 그 아이를 도와주고자 했던 처음의 의도가 바래지지 않을 거예요.”
“내가 알아서 하마. 좋은 일을 하는 거니 네 할머니께서도 반대하시지는 않을 거야.”
도씨는 의기양양했던 표정을 거두고 정색하며 말했다.
“네 외삼촌이 지난번에 편지로 세전이가 유능하다고 칭찬을 하더구나. 고생도 잘 참고 눈치도 보통이 아니라고 하더라. 아이가 참 성실하고 좋은데 언젠가는 붙잡아 둘 수 없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구나…….”
임근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익을 위해 사람을 붙잡아 두려 하면 오래 붙잡아 두기 힘들겠지만 마음을 얻어 곁에 있게 하면 그래도 좀 더 오래 잡아 둘 수 있을 거예요. 오라버니는 원래부터 우리 집에 속한 하인이 아니에요. 오라버니도 패기가 있는 남자잖아요. 만약 오라버니가 떠나고 싶다 하고 또 그게 도리에 맞는 일이라면 그땐 어머니께서도 이해해 주셔야 해요.”
임근용은 처음부터 임세전을 평생 붙잡아 둘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임세전이 그저 지금처럼 자신과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를 유지하고 앞으로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 주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새가 마음껏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넓은 바다에서 뛰놀듯이 어디든 그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게 해 줄 생각이었다.
도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럼 또 어쩌겠어? 아쉽지만 내 친자식도 아니고. 우리 신지가 빨리 컸으면 좋겠구나. 너도 친오라버니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도씨는 눈으로 임근용의 몸을 힐끗 쳐다보며 말끝을 흐리고 공 마마에게 지시했다.
“시간이 거의 다 됐구나. 넌 나가서 물건들을 가지고 먼저 출발하라고 해라. 난 어머님을 모시러 가 봐야겠어.”
“어머니, 가는 거예요?”
임신지가 싱글벙글 웃으며 뛰어 들어왔다. 임근용은 그가 새 옷을 입지 않고 평소에 입던 옷을 입은 걸 보고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을 뵈러 가는데 왜 어머니가 특별히 준비해 준 새 옷 안 입었어?”
도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육함이가 줄곧 제 선생 댁에서 공부했잖아? 며칠 전에 너의 할아버지께서 육함이하고 주매한테 제 선생의 취향에 대해 물어 보셨는데 신지를 너무 호화롭게 입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하더구나. 제 선생께서 그런 것을 싫어하신대. 깔끔하고 단정하기만 하면 될 거라 했어.”
그러더니 임신지의 옷을 정리해 주며 작은 목소리로 당부했다.
“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 걸 잊지 말고 선생님께서 널 제자로 받아들이시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해.”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문하에 학생이 많지만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잘되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너도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야 해.”
임신지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육함 형님도 나한테 똑같은 말을 했어. 선생님께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시니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임, 육 두 집안이 약혼을 했으니 풍습에 따라 육함은 각 계절과 절기마다 선물을 보내고 방문해 인사를 드려야 했다. 이로 인해 육함과 임신지가 마주치는 일이 잦아져 두 사람의 사이도 꽤 좋아졌다.
임근용은 임신지가 거기 서서 작은 가슴을 펴고 자신감 있게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절로 뿌듯해졌다. 전생에서 임신지는 늘 남들에 한참 못 미친다며 꼬투리를 잡혔다. 그는 임 노태야나 임 삼노야와 이야기를 할 때 늘 가슴과 등을 움츠리고 눈만 깜빡이며 감히 시선도 마주치지 못했었다. 지금과 같은 자신감 있는 풍모를 어디 볼 수나 있었겠는가? 그녀는 그가 계속 이렇게 탄탄대로를 걸어주기를 바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씨 가문 사람들이 전부 모였다. 그들은 말을 탈 사람은 말을, 마차를 탈 사람은 마차를 타고 위풍당당하게 도씨의 장원으로 출발했다.
거의 도착할 때쯤 되자 갑자기 행렬이 멈췄다. 공 마마가 발을 들어 올리고 밖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웃으며 말했다.
“부인, 사촌 공자께서 마중 나오셨어요.”
도씨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화조절인데 왜 집에 안 갔지?”
공 마마가 말했다.
“아마 남아서 공부를 계속하려고 그러신 게 아닐까요? 듣자 하니 아주 열심히 공부하신다던데 오며 가며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 그러셨겠지요.”
공 마마는 이렇게 말하며 도씨에게 눈짓하고 한쪽에서 눈을 내리깐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임근용을 힐끗 쳐다보았다.
도씨는 무언가 깨닫고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