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준비
갑자기 휘장이 움직이더니 임근용이 두 사람을 지나쳐 지나가며 담담하게 말했다.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너희들이 나 대신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너희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나머지는 모두 내가 책임질 거야. 여지야, 그건 이제 그만 정리하고 나랑 어머니한테 갔다 오자.”
여지는 조용히 하고 있던 일을 내려놓고 임근용이 외출할 수 있도록 몸단장을 도왔다. 계 마마가 밖을 한 번 내다보고 말했다.
“아가씨, 지금은 햇빛이 너무 강해요. 부인께서도 아마 낮잠 자고 계실 거예요. 좀 더 여기 있다가 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임근용이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뭐가 생각나서 그래. 꼭 지금 가서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해.”
이 무렵이면 도씨 가문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파견한 사람이 임씨 가문에 도착했을 것이다. 며칠 전 임근용은 사람을 시켜 임세전에게 한 번 들렀다 가라는 편지를 보냈다. 만약 그녀의 예상이 맞다면 임세전은 이번에 소식을 전하러 오는 사람과 함께 왔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느라 정신없는 이때가 임세전과 이야기를 나누기 가장 편할 때였다.
계 마마는 그녀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아예 체념하고 계속 앉아서 바느질을 했다.
* * *
대문 밖으로 나가자 여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계 마마가 눈치챘어요.”
임근용이 말했다.
“다 들었어. 네가 아주 대처를 잘했어, 그래야지. 앞으로는 글씨 연습을 더 열심히 하도록 해, 네가 장부를 볼 줄 알아야 나중에 너한테 안심하고 일을 맡기지.”
임근용의 진지한 말투에 여지도 곧 눈치를 채고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앞으로 노비한테 아가씨 장부를 맡기실 생각이세요?”
임근용은 웃는 듯 마는 듯하며 그녀를 힐끗 훑어보았다.
“여집사가 되는 건 어때? 내가 너한테 돈이랑 사람 관리를 맡기는 거야. 그럼 남자들도 감히 네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겠지.”
여지가 상기된 얼굴로 살짝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또 노비를 놀리시네요.”
임근용이 탄식했다.
“누가 널 놀렸다고 그래? 내가 너한테 그 편지들을 보게 한 이유가 뭔지 아직도 몰라? 단순히 너한테 글자를 가르치기 위해서만 그랬던 게 아니야.”
여지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문득 무언가 깨달았다. 이에 그녀는 절로 놀라 묻는 듯한 눈길로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임세전은 청주에 가서 또 먼 길을 다녀온 이후 수시로 임근용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보통 누구와 어떻게 거래를 하는지에 대해 쓰여 있었고 때로는 그가 사람들과 교제하며 깨달았던 바를 쓰기도 했다. 임근용은 매번 편지를 읽을 때마다 여지에게 주며 다시 한 번 읽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고 나서 여지에게 몇 가지 문제를 냈다. 임근용은 그녀가 대답하지 못해도 윽박지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편지를 들고 창가에 앉아서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임근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지야, 앞으로는 이런 편지가 더 많아질 거야.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세전 오라버니한테 주고 오라버니가 장사하는 법을 배우게 할 생각이야. 그럼 오라버니가 나하고 상의하거나 내 의견을 물으려고 더 자주 편지를 보내겠지. 네가 편지를 볼 줄 알고 일을 처리할 줄 알아야 날 도와줄 수 있어.”
여지의 입이 또 크게 벌어졌다.
“아가씨, 노비가 계속 내원에 있긴 했지만 공 마마가 도 대노야 댁에서 살 때의 일들을 전해 들은 적이 있어요. 장사를 배우려면 견습생으로 시작해서 대개 7, 8년 정도는 배워야 하고 10년은 넘게 배워야 혼자 장사를 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세전 공자는 지금 도 대노야 댁에서 배운지 1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아가씨는 걱정도 안 되세요? 손해를 보면 어쩌시려고요?”
임근용이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부터 크게 할 생각은 아니고 그냥 오라버니가 연습할 수 있을 정도로만 할 거야.”
임근용은 임세전이 지금껏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모습이 진짜라면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제 정말 더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여지는 임근용의 신뢰를 얻어 아주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 무한한 걱정이 밀려왔다.
“도 대노야 쪽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어머니하고 의논하려고 하는 게 바로 그거야. 우리가 알아서 가게를 차려야지 언제까지 외숙부하고 사촌 오라버니한테 기댈 수는 없잖아? 친척들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성씨가 다르잖아. 근음 언니도 시집을 갔으니 기댈만한 친정이 필요할 거야. 더구나 신지도 곧 정식으로 선생님 문하에 들어가서 공부하게 될 텐데 남들한테 우리 집이 언니의 시집에 붙어서 먹고 산다는 소리나 듣게 하면 안 되지 않겠어?”
모양새를 보니 임근용은 오래전부터 이 계획을 세워두었던 것 같았다. 여지는 당연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임근용이 시키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 해내는 것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도씨의 집 대문 밖에 도착했다. 때마침 중문 쪽에서 소식을 전하러 오던 시녀와 우연히 마주쳤다.
“도씨 가문에서 셋째 아가씨 모자께서 무탈하시다는 소식을 전하러 사람이 왔습니다!”
도씨는 이 말을 듣고 다급하게 춘아와 하엽을 불러 몸단장을 시키며 활짝 웃었다.
“얼른 들어오라고 해! 그리고 노부인과 삼노야 쪽에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해라.”
그리고 또 호탕하게 지시했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상금을 내리거라!”
방 안은 한동안 축하하는 소리와 축하를 받는 소리가 뒤섞여 아주 떠들썩해졌다.
임근용도 웃음을 머금고 이 광경을 지켜보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전생에서도 이 소식을 들은 도씨가 사람들에게 상금을 내렸었다. 하지만 이렇게 후하게 베풀지는 못했다.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은 오씨를 모시는 송 마마와 임근음이 시집갈 때 데려간 양 마마였다. 두 사람은 웃으며 도씨에게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아주 순조롭게 잘 낳으셨어요! 공자는 무게가 6근(*斤: 1근은 약500g) 8냥 정도 되고 피부가 하얗고 아주 귀엽답니다……. 도 대부인께서 마음을 졸이며 약도 못 드시고 계시다가 모자가 무탈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바로 죽을 반 그릇이나 더 드셨어요! 정신적으로도 많이 좋아지셔서 요즘은 아주 안정적이세요. 소부인께서 어찌나 건강하신지 깨어나자마자 닭고기 탕을 두 그릇 드시고 닭다리도 한 개 드셨는데 그래도 배고프다고 하시더라니까요.”
“그래, 잘 먹으면 좋지!”
도씨가 만개한 꽃처럼 활짝 웃었다.
“그래도 근음이한테 좀 조심하라고 전해. 너무 많이 먹어서 살찌면 빼기 힘들어.”
공 마마가 두 사람에게 잠시 쉬면서 밥을 먹으라고 안내하자 양 마마가 몇 걸음 뒤떨어져 그녀를 따라가며 도씨에게 물었다.
“세전 공자도 이번에 같이 와서 지금 중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부인, 지금 만나실 생각이세요?”
도씨가 말했다.
“만나긴 할 건데, 난 일단 어머님께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해. 세전이는 우선 류아부터 보러 가라고 해. 할 말은 좀 이따 만나서 자세히 하자고 하고.”
임근용이 말했다.
“어머니, 제가 세전 오라버니를 마중 나갈게요.”
도씨가 개의치 않아 하며 말했다.
“홀대하지 말고 잘 대접해 줘.”
도씨는 이렇게 말한 뒤 옷자락을 휘날리며 황급히 화락당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받고 또 상금을 내렸다.
임근용은 조용히 임세전에게 할 말을 떠올리며 빈틈이 없는지 확인하고 고개를 꼿꼿이 든 채 류아가 있는 작은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류아의 거처는 도씨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얼마 걷지 않아 임근용은 바로 대문 앞에 도착했다. 여지가 문을 열자 노란색과 흰색 털이 덥수룩한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신나게 뛰쳐나와 임근용의 발 가에 멈춰 서서 고개를 파묻고 그녀의 신발 냄새를 맡았다.
“이 개가 어디서 나온 거야?”
여지가 의아해하며 개를 쫓는데 뽀얗고 토실토실한 류아가 밖으로 뛰어나왔다.
“뚜뚜야, 뚜뚜…….”
그녀는 임근용을 보더니 웃으며 다가와 임근용의 손을 잡았다.
“언니…….”
임세전이 복도에 서서 임근용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임근용은 류아의 손을 잡고 꼬리를 흔들며 류아의 주위를 빙빙 도는 강아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셋째 오라버니가 데려온 거예요?”
“급하게 오느라 셋째 숙모하고 너한테 상의도 못 했어.”
임세전이 다가오더니 약간 불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개가 크지 않고 얌전한 성격이라 함부로 짖지 않을 거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면 될 거야. 류아의 놀이 상대로 만들어 주려고 데려왔어.”
아무래도 남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에 살아있는 생물을 들이는 건 남한테 폐를 끼치고 불쾌감을 줄 수도 있는 일이어서 그는 조심스러워했다.
“괜찮아요, 우리 어머니랑 난 개 안 무서워해요. 안 그래도 엊그제 어머니랑 대여섯 살 정도 된 시녀를 류아의 놀이 친구로 들이는 게 어떨까 이야기했었어요. 셋째 오라버니가 보고 적당한 아이가 있으면 보내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임근용은 임세전의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류아는 확실히 여기서 같이 놀 친구가 없었다. 임씨 가문의 비슷한 또래의 아가씨, 공자와는 함께 놀 수 없었고 그렇다고 임씨 가문 하인들의 자식과 함께 놀 수도 없었다.
임세전은 입을 열자마자 임근용이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 주고 시원스럽게 허락까지 해 주어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에 봐둔 아이가 하나 있어. 지금 셋째 아가씨 곁에서 규율을 배우고 있는데 다 배울 때쯤 되면 이쪽으로 보낼게. 그 아이 생활비는 내가 댈 거야.”
임세전은 이렇게 말하며 긴장된 표정으로 임근용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도순흠을 따라다니며 장사를 배우면서 돈을 모아 돌아올 때면 늘 돈을 가져오거나 선물을 사 왔다. 비록 임근용과 도씨에게 받은 은혜를 이런 것들로 갚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녀들의 호의를 거저 받고 싶지는 않았다. 또 류아를 남이 베푸는 도움에 기대 기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작은 물건들을 들이는 것과 사람을 집으로 들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 임근용이 불편해할까 봐 걱정했다.
임근용이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말했다.
“그래요. 오라버니가 여유가 있으면 집을 사서 사람을 더 고용해 류아를 데려다 돌보게 해도 괜찮아요.”
이 말이 나오자 여지와 임세전의 고개가 절로 임근용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은 임근용의 태연한 표정과 맑은 눈빛을 보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그녀의 말이 진심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도씨가 이렇게까지 그를 믿어준 이유는 류아가 여기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세전도 이런 이치를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임근용이 지금 그에게 원하면 언제든 류아를 데려가도 된다고 분명하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협박을 하는 것도, 어떤 조건을 건 것도 아니고 무언가와 교환을 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임세전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고 임근용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